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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8, Jul 2021

에듀케이팅 뮤지엄_미술관 역사교육

Educating Museum

예술은 언제나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미술관은 사회적인 산물인 예술 작품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과거의 시간과 오늘의 장소를 기억하는 경험, 말하자면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소장품과 아카이브를 주축으로 작품의 역사적 가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장소로서, 미술관은 어떻게 시간을 기록하는가? 이야기 서술자로서 지식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 기획 김미혜 기자 ● 글 이민주 미술비평가

Circuit Unlocks Digital, Cambridge 2016 Wysing and Kettle’s Yard Photo: Catrina Rodrig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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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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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페다고지(pedagogy)

미술관에는 전시뿐만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고 전수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 학술 심포지엄부터 공공프로그램, 교육 워크숍 등 각기 다른 형식으로 지식을 공유한다. 이때 미술관이 배움의 장소로서 특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미술관에서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이미지에 관해 말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고 마주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최근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중국이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예속화를 시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역사는 패권 싸움의 터전이다.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진실의 문제는 언제나 화두가 된다. 

통념적인 차원에서 역사는 해석의 산물이고 역사가에 의해 서술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역사 서술자가 과거의 사건 배후로 사라지는 것처럼, 과거가 스스로를 가시화하는 것처럼 사건을 바라본다. 왜 서술 주체로서 역사가들의 존재는 자주 가려지는가? 이는 주로 역사가 학문화되는 과정에서 사료 비판에 근거해 증명의 방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따라 역사는 늘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미명 아래 전수되며 페다고지를 실천했다. 

페다고지는 어린이(paida)를 대상으로 이끄는(agogos) 기술로서 학습자의 잠재된 역량을 어떻게 이끌고 개발할지 교수자의 능력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학습 과정이다. 이와 주로 비교되는 개념으로서 안드라고지(andragogy)는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학으로 학습자를 중심으로 학습 체계가 꾸려지고,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학습 자원의 가치로 삼는다. 굳이 이분화한다면 페다고지는 의존적 교육, 안드라고지는 자기 주도적 교육법이라 말해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역사 교육은 페다고지적 실천으로 곧잘 이어졌다. 역사적 진실은 교과 중심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식은 제도 안에서 고정된 채 보수되었다. 한편 미술관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방식은 페다고지적 교육학 체제와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역사 쓰기에 관한 미술의 다른 관점에 근거할 것이다. 



Tate Modern Photo: Dan Weill




지식을 그리는 방법으로서 미술관 교육

역사를 화두로 한 교육프로그램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의 사례를 주목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주년을 기념하여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를 세 개의 관(서울, 과천, 덕수궁)에서 개최했다. 이 전시는 20세기 이후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차용해 1900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근현대 역사와 사회의 중심에서 미술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강조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를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금, 우리, 광장에 서다’라는 주제로, 근대화와 민주화의 상징인 광장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기 위한 청소년 워크숍이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총 12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참여자들은 역사학자, 전시기획자, 작가 등을 직접 만나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전시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이후 학생들은 모둠을 지어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제작 방식과 과정을 친구들, 전문가들 앞에서 공유해 스스로 생각을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을 기획한 심효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전시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미지의 교차와 충돌을 보여주는 작업이라면, “교육은 오늘을 경험으로 미래에 기록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미술관 교육의 비전을 제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로그램이 역사라는 흐름 안에서 그 시간의 자취를 짚었다면, 아트선재센터의 프로그램은 주로 동시대의 이슈들을 다룬다. 최근까지 아트선재센터 교육프로그램을 전담했던 정유진 전 에듀케이터는 “동시대 또한 역사의 산물이므로 지금 미술관이 만들어내는 담론이나 전시에 포함시키게 되는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역사, 좁게는 해당 이슈에 대한 고민의 결과와 맞닿아 있다”며 미술관은 작품을 둘러싼 맥락과 그 시간에 대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에서 ‘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참여자들을 교육하려는 목적보다 그들이 미술관에 와서 할 수 있는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나 과정으로서 기능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려 노력한다”고도 덧붙였다. 



St. Petersburg, Russia - September 21, 2012: 

Children on an excursion to Russian Museum 
considered masterpieces of painting and sculpture, 
listen to the story guide of the works of great artists 
이미지 제공: Akimov+Igor/Shutterstock.com



타 제도 기관의 교육이 표준화되어 있고 특정 기준에 따른 평가가 뒤따른다면, 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은 교육의 결과와 그에 따른 평가를 종점으로 두지 않으며, 과정 자체에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이는 아트선재센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름 ‘스터디’, 겨울 ‘스터디’로 하계, 동계에 기획되는 연속 강연 프로그램에서 강연자가 참여자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공부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교육 방법론에 관한 이러한 경향은 국내에 국한하지 않는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테이트 리서치 센터(Tate Research Center)’ 부서를 설립하면서 미술관 전체 비전을 제시하는 키워드 ‘배움’, ‘연구’, ‘실천’을 이행한다. 테이트는 ‘써킷 테이트(Circuit Tate)’ 프로그램, ‘테이트 익스체인지(Tate Exchange)’ 프로그램 그리고 학술적 교류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테이트 스튜던트쉽(Tate Studentships)’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이트 교육프로그램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제도 기관과 지역 사회, 계층과 세대를 연결하는 문화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며 실천적인 차원으로 교육에 접근한다.1) 

이처럼 미술관 교육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이나 지식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이때 강조되는 것들 중 하나는 공간 속 실제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다. 비록 팬데믹 이후 비대면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환경을 조건으로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있지만, 미술관 교육에서 ‘작품을 실물로 보는 경험’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고 있다. 과거를 지나 오늘의 자리에 놓인 실물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른 차원의 경험치를 제공하는가? 작품이라는 이미지를 매개한 교육에서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와 이미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역사 페다고지를 넘어설 가능성을 마련할 수 있다.



‘전시를 말하다_Talk’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2부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이미지로서의 역사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어느 인터뷰에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역사 방법론을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이미지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느닷없이 이미지들을 서로 근접시켜 불꽃 같은 섬광을 촉발하는 것이다.”2) 앞서 언급한바, 역사는 통상 과거의 사실들을 검증 가능한 사료로 조사하고 그에 대한 해석으로 구축된다. 그렇다면 역사는 과거에 준거한 학문인가? 역사의 대상은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가? 고다르가 참조하는 벤야민의 역사관은 역사에 대한 통상적인 시간성을 뒤집는다. 

벤야민에 따르면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연대기 순으로, 연속적인 흐름으로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를 채집하는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현재적 경험, ‘지금’의 시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진정한 역사의 시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선형적인 시간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벤야민이 비판하는 역사주의는 영원할 과거의 이미지를 그리지만, 벤야민의 유물론적 역사관은 풀이되지 않는 이전의 시간이 오늘에서 의미를 드러내는, 그 순간의 출현을 기술한다. 그에게 현재의 순간은 과거와 언제나 결부되어 있는 것이며, 현재는 늘 과거를 통해 다시 인식되길 기다린다. 

현재의 경험에서 출발해 과거의 이미지를 마주할 때 역사는 인식의 대상으로서 구성되는 것이다. 이를 벤야민은 ‘이미지’라 부른다. 곧, 그는 이미지를 기록물이 아닌 시간적 차원에서 다루며, 역사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이미지를 제기한다. 벤야민의 논의에 깊게 관여하는 미술사학자 조르주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 역시 역사는 과거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역사(history)는 그 이름에 함의된 성질처럼 ‘이야기(story)’의 허구성을 늘 포함하고 있으며 실제 사건에 대한 지식과 허구적 이야기의 일시적 충돌, 그 역동적 순간에 대한 이미지인 것이다. 



제15기 ’열린강좌-근현대미술사 아카데미’ 

강의 장면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바로 이 지점이 미술관을 배움의 장소로서 특권적이게 만드는 까닭이다. 미술관은 특정 시대를 반영하는 구성물로서 이미지의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을 매개로 역사를 교육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역사 쓰기의 방식을 제안하면서 관람객과 함께 역사에 대한 인식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에듀케이트(educate)’의 어원이 가리키는 것처럼, 우리에게 잠재된 무엇을 바깥으로 끌어내는(ducare) 훈련이다. 한국의 공교육이 지식을 분류하고 주입한다면, 미술관 교육은 이미지를 매개로 역사적 인식을 창출한다. 이때 문화적 제도 기관으로서 미술관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 할지, 촉발된 이미지가 어떻게 내면의 잠재된 무언가를 밖으로 유인하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A

[각주]
1) 대표적으로 ‘테이트 연맹’ 프로그램 중 축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써킷 페스티벌>을 살펴볼 것. Alex. R (2017), CIRCUIT FESTIVALS - A NARRATIVE REPORT. 2 [인터넷 보고서], www.tate.org.uk/file/circuit-festivals-narrative-report
2) Antoine de Baecque (Entretien avec Jean-Luc Godard), “Le cinéma a été l’art des âmes qui ont vécu intimement dans l’Histoire”, Libération, 6 Nov. 2003. 이정하, “<영화의 역사(들)>(고다르)의 벤야민적 역사인식과 역사서술 방식”, 영상문화콘텐츠연구16집, 2019, p. 215에서 재인용



글쓴이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주로 시각예술에서 이미지가 드러나는 형식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전시를 꾸린다. 전시 <이브>(2018), <동물성 루프>(2019)를 협력 및 공동 기획했다. 현재는 다큐멘터리 이미지와 형식에 관한 전시 <논캡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미지연구공동체 반짝 멤버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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