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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8, Jul 2021

1+1=3 타인들

2021.6.1 - 2021.6.21 갤러리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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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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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이다



<1+1=3, 타인들>은 미술비평가 윤진섭과 사진가 최건수의 사진 작업 전시다. 전시는 작가, 비평가, 이론가, 교육자 등의 이른바 본캐(본래의 캐릭터)와 부캐(다른 캐릭터)의 여러 정체성으로 살아온 공통점을 기초로 하여 포스트모던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의 실존적 지향이 품고 있는 복잡한 지층과 국면을 유쾌하게 드러낸다. 다시 말해 “나는 타인이다”라는 시인 랭보(Arthur Rimbaud)의 언명을 자신의 포트레이트 사진에 차용한 최건수나 “이른바 나란 의식적 주체에 의해 온전히 포괄될 수 없는 어떤 타자성”임을 강조하는 윤진섭의 위트있는 셀프-포트레이트(self-portrait) 사진은 심각한 어조의 철학적 타자성 담론을 강조한다기보다는, 다소 낭만적(최건수) 혹은 과장되게 유머러스한(윤진섭) 어조로 ‘나’라는 오늘의 ‘예술’, ‘예술가’의 결코 무겁지 않은 실존과 연관시키고 있다.


특히 윤진섭은 왕치(Wangzie/王治), Pajama Jun, HanQ, SoSo, Very Funny G.P.S, 천둥치는 이 밤에, 진자(晋子), 지족거사(知足居士), 돈오(Dono, 頓梧), 돈수(Donsu, 頓修), 점수(Jumsu, 漸修) 등 80여 개의 자아와 다수의 이름을 사용하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진섭이 왕치, HanQ 등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라는 본캐가 아닌 부캐로서의 전방위적 현대미술가일 때다. 다수의 자아와 이름을 가진 자신에 대해 윤진섭 스스로 “생전에 334개의 명호를 사용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전위적 예맥을 잇는 것”이라고 하니 본캐/부캐 등의 근래 정체성과 관련된 대중적 분위기의 문제에선 멀리 떠나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일찍이 ‘S.T(Space Time 조형예술학회)’ 그룹 멤버로도 활동했던 그의 ‘예술(가)’로서의 지향점이 아방가르드임을 역설하는 것이며, 코드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비표준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규정 혹은 해체하는 것이다. 결국은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




최건수 작품 피그먼트 프린트 

1/5ed 60×48cm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의 작업들 역시 위트 있는 도구/변장과 연출이 유도하는 놀이로서의 예술, 그 유희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전시된 50점의 셀프-포트레이트 사진은 A4 사이즈의 동일한 크기의 작업이다. 현재진행형인 이 작업방식은 윤진섭의 본캐와 부캐는 물론 인간과 동물, 진짜와 모조, 나아가 다양한 3인칭의 정체성으로 포괄되는 것들의 위계를 흐트러트리고 허물고 있다. 이는 그의 작업 속에 등장해 정체성을 흔들어놓는 생활 도구들에서 비롯된다. 화면 속 변장/도구들은 예컨대, 이태리타올과 김장용 빨간 비닐장갑, 플라스틱 모조품들-선글라스, 왕관, 개 입마개, 가짜 생선-, 인조 털모자, 과일 껍질, 싸구려 패브릭 등 대부분 다이소 등에서 구입 가능한 생활 물품 등이다. 이 도구들은 그의 화면 속에서 대부분 중성성을 지닌 키치한 장신구로써, 위장과 변신 등을 가능케하는 일종의 마스크다. 따라서 이들 도구에 의해 윤진섭은 윤진섭의 ‘윤진섭다움’을 ‘해체’하는 동시에 그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하는 양가성을 수행한다. 


즉 충돌하는 양가성을 논리적/비논리적으로 봉합하면서 예술의 주체인 ‘나’를 흐트러트리고 재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놀이하는 예술, 인간의 예술, 인문주의로서의 예술을 말하고 있다. 윤진섭은 이번 전시 기간에 <아트 오브 도플갱어: 윤진섭>전을 동시에 진행했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 여러 차례의 퍼포먼스를 감행했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예술자유공생군’의 창단이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이미 80명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은 혼자로도 80명의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자유공생군’ 창단식에서도 윤진섭이 생각한 것은 ‘놀이와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즐겁고 자유로운 그의 예술군대는 어찌 보면 일상 속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태도와 시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근래 윤진섭의 행보를 보면서 1923년 뒤샹(Marcel Duchamp)이 <유리> 작업을 중단하고 시작한 예술기획을 떠올렸다. 잘 알다시피 뒤샹은 한때 ‘로즈 셀라비, 정밀 안과의’라고 적힌 이름과 직업이 인쇄된 명함을 가지고, ‘안과의사’로서 회전하는 광학적 원반(<회전 반구>나 <회전부조>)과 영화(<현기증 나는 영화>)를 작품으로 제작했다. 유명한 저작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 의하면 안과의사인 ‘로즈 셀라비’의 작업은 칸트(Immanuel Kant) 미학 이론의 토대를 공격하는 뒤샹의 목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 전시의 출구에서 왕치 등의 80여 개의 자아를 가진 윤진섭의 목소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위계를 흩트리고자 하는 그의 예술(가)의 정체를 난 또다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가 말하는 놀이로서의 예술을 난 또다시 심각하게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윤진섭 작품 피그먼트 프린트 1/5ed 각 28×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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