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현재 위치
  1. Features
현재 위치
  1. Features
현재 위치
  1. Features
Issue 179, Aug 2021

미술 기증Ⅱ: 국내 편

Art Donation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4년 삼성미술관 Leeum 개관식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리고 작고 후 그의 수집품 중 문화재·미술품 2만 3,000여 점이 사회로 환원됐다. 기증된 작품들은 빠르게 공개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중들 반응 역시 연일 계속되는 폭염처럼 뜨겁다. 미술계로 관심과 열기가 집중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국내 미술 기증의 현주소를 훑음으로써 앞으로의 방향과 과제를 살피고자 한다. 지난달 체계적이고 뚜렷한 기증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끌어가는 국외 상황을 살펴본 데 이어, 이달은 국내 편이다. 우리나라 미술 기증의 역사와 과정, 제도 현황을 정리한 후 국공립미술관장 4인의 인터뷰를 통해 이건희컬렉션을 비롯 미술 기증의 보다 내밀한 사실들을 전해 듣는다.
● 기획 · 진행 정일주 편집장, 김미혜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개방 수장고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문선아 컨트리뷰터·독립 큐레이터,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헤럴드경제』 기자

Tags

SPECIAL FEATURE No. 1 

장서처에서 물납제까지: 소장·기증 활동의 역사와 현황_문선아  


SPECIAL FEATURE No. 2 

국내 미술품 기증 과정과 제도 현황_이한빛   


SPECIAL FEATURE No. 3 인터뷰

미술관의 수준은 소장품으로 말한다_윤범모

기증, 대중과 문화예술 상생 이끌다_이지호

소장품, 미술관의 존립 기반이다_전승보

미술관 미래 설계의 기준_최은주





Special Feature No. 1

장서처에서 물납제까지: 소장·기증 활동의 역사와 현황 

● 문선아 컨트리뷰터·독립 큐레이터



“세기의 기증.”1) 지난 4월 28일,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삼성전자를 통해 발표한 이 회장 소유 미술품 2만 3,000여 점의 기증 계획을 듣고 각종 언론이 쏟아낸 찬사다. 전용관 신설에 대한 문제나 이 컬렉션을 과연 ‘이건희컬렉션’으로 부를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잇따르고 있지만, 기증 소식과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의 개막 등이 연일 뉴스에 오르면서 논란의 시비를 따지기보다 미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국내 미술품 기증의 역사와 의미, ‘미술품 기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고대-근세 국내 소장 활동과 후원의 역사


기증의 역사는 단연 수집·소장 활동(collecting, 이하 소장 활동) 및 후원의 역사와 함께한다. 문헌상 우리나라 궁중에 처음 수장고가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도서가 유입되면서 장서처(藏書處)가 설립됐다.2) 또한 귀비고(貴妃庫), 천존고(天尊庫)와 같은 왕실 창고3)를 지어 귀중품을 보관했다. 북송대 서화 비평가 주경현은 (통일) 신라인들이 당에 와서 주방의 그림 수십 권을 사 갔다는 글4)을 남겼으니, 이미 이 시기 개인 컬렉터가 존재했다는 의미다. 고려 시대에 소장고와 미술품 컬렉션은 더욱 전문화되고 발전했다. 왕은 궁중화원(宮中畫員)과 더불어 그림을 즐겼고, 북송의 사신 서긍(徐兢)은 “장화전(長和殿)의 행랑이 모두 왕실의 창고이며 동쪽에는 송 황실에서 받은 보물을 저장하였고, 서쪽에는 고려의 보물을 저장했다”5)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세종, 문종, 성종, 인종, 선조, 인조, 숙종, 영조, 정조 등이 도화원(圖畵員) 혹은 도화서(圖畵暑)의 화원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후원하는가하면, 조선 중기 이후로는 개인 컬렉터에 대한 기록도 등장한다. 18세기 진경산수화를 정립한 정선은 이하곤, 조귀명, 조영석, 이병연 등 당시 서울 경기 지역 거주 문인들의 후원을 받았고, 19세기 초 김홍도는 1789년 역관이 된 한양 거부 김한태의 후원을 받았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Les amoureux aux bouquets rouges)> 

1975 92×73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소장 활동과 기증 활동의 역사 


새로운 신분 질서의 구축이 이루어진 19세기 말,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화상이 등장6)하면서 개인 컬렉터가 증가할 수 있는 씨앗이 마련됐고, 일제감정기와 해방 직후 적은 수로 존재했던 한국 개인 컬렉터들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우리나라의 불화·도자기·민화 등 문화재가 무더기로 해외 반출됐는데, 전형필, 오세창, 박영철, 김찬영, 서예가 손재형 그리고 의사 박창훈 등7)의 한국 개인 컬렉터들은 일제와 해외 반출에 대항해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다. 그중에서도 전형필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1934년 성북동에 북단장(北壇莊)을 개설하고 보화각(葆華閣)을 세워 방대한 문화재를 수장하고 이를 연구·복원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후원·운영하면서 고서적 등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한편 박영철은 고려자기를 비롯한 미술공예품과 회화 수천 점을 수집했다. 그 역시 조선에 없는 도서관을 세울 구상을 하고 있었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전쟁은 개인 컬렉터들을 더욱더 어렵게 했다. 박병래는 1951년 1·4후퇴 때 소장품을 땅에 묻고 피난을 떠났는데, 돌아와서 파보니 대부분 쓸모없게 되어 폐기처분 할 수밖에 없었다.8) 이홍근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게 된 슬픔을 미술품 수집으로 승화하기도 했다. 이 시기 개인 컬렉터들의 소장 활동은 자연스레 기증 활동으로 이어져 사실상 이들이 한국 기증 활동의 역사를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박영철의 후손은 그의 사후인 1938년 고서화 100여 점과 보존비를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했고, 서울대학교 부속박물관은 이 기증품들로 운영근거를 마련해 체제를 정비할 수 있었다. 박병래는 문화재 수탈을 방지하기 위해 수집했던 문화재 362점을 평생 애장하다가 사망하기 직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이홍근 또한 평생 수집한 4,941점의 컬렉션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9)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홈 향연> 

전시 전경 대구미술관




기증 활동이 미술관에 끼치는 영향


사립기관으로의 기증은 차치하고, 국공립기관으로의 기증은 크게 작가 기증과 개인 컬렉터 기증 그리고 사립미술관 혹은 재단에서의 기증10)으로 나뉠 수 있다. 작가나 개인 컬렉터 그리고 그 후손은 자신의 소장품을 ‘국공립기관에 기증할 것이냐’, ‘그 기반으로 미술관이나 재단을 설립할 것이냐’, ‘그대로 보유할 것이냐’는 선택지를 갖게 된다. 그 기로의 행보에서 소장품은 국공립미술관에서 더욱더 다양한 대중에게 선보여지거나 사립미술관 형성의 근거를 마련하기도 하고, 때로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국공립기관으로의 미술품 기증은 고무되어야 할까. 미술품 소장 활동은 개인의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후세를 위해 훌륭한 문화적 자산을 남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소장품이 최종적으로 국공립기관 기증으로 이어진다면, 그 기여를 가장 확실하게 완성할 수 있다. 


특히 국공립기관으로의 기증은 개인 컬렉터가 수집한 컬렉션들을 바탕으로 박물관·미술관의 전시기획과 확장된 소장품 연구를 가능케 하면서 미술사 재정립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다. 때로는 소장품이라는 물질적인 근거나 수집의 방향성이 미술사의 갈래들을 형성해내면서 미술관의 정체성 구성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립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고 접근도가 높기 때문에 국공립미술관으로의 기증은 독려되지만, 몇몇 현실적 이유들은 이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사립미술관을 설립해 관리하기도 하는데, 간송 미술관이 이 경우에 포함되며, 대전 이응노미술관도 유족이 기증한 대표작 1,300여 점을 기반으로 건립됐다. 이영미술관 역시 컬렉터와 미술관 사이의 기증의 조건이 맞지 않아 새로운 미술관으로 탄생한 경우다. 개인컬렉터 김이환은 1977년부터 박생광의 작품을 수집하고 후원했다. 그는 모든 컬렉션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려는 결심을 했지만, 박생광 상설전시관 개설은 힘들었다.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기획전시에 한해 선보여질 현실적 안타까움 때문에 그 대안으로 직접 사립미술관을 설립했다.11)




천경자 <노오란 산책길> 1983 종이에 채색 

96.7×76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활동의 현황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의 기증 리스트는 해외에 비해 적은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사례로 보자면 이번 이건희컬렉션 기증 전인 2020년 기준으로 기증이 3,966점(45.1%)으로 구입 4,599점(52.4%)보다 적었고, 대부분이 작가나 유족이 기증한 것으로 개인·기업의 순수 기증품은 5% 내외에 불과했다. 전문가들 다수가 이렇다 할 세제 혜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더불어 한 미술시장 전문가는 “국내 미술품 기증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입해 주는 대신 작가로부터 받거나 유족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준 높은 컬렉션을 구성하기 힘들다”12)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증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구미술관은 2020년 ‘대구미술관 수집 5개년 계획’ 발표 이후 같은 해 고(故) 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 105점, 권정호, 최학노, 서근섭, 공성훈 작가 등을 포함 작가 및 개인컬렉터로부터 70점 등 175점의 작품을 기증받았고, 올해 상반기에는 수묵화가 서세옥의 작품 90점, 조각가 최만린의 작품 58점, 화가 한운성의 작품 30점 등을 포함 총 223점의 작품을 기증받았다.


일명 ‘설악산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은 소장품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13)하면서 조선 목공예 수집가로서의 면모를 뽐냈고,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선수의 고문헌 1,208점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14)되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고종 대 첫 장원 시험지부터 추사 김정희가 만든 대나무 자까지도 포함됐다.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점차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소장행위를 즐기며 기증을 희망하는 소규모의 개인컬렉터도 늘고 있다. 일례로 최근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감정가가 1억 2,000만 원에 달하는 문화재 ‘안중근 사건공판 속기록’ 1부, 족자 1점, 엽서 2점을 수집하여 기증한 조규태, 조민기 부자15)가 등장해 큰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증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 주요 박물관 및 미술관은 각 홈페이지에서 기증 안내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기증신청자는 각 박물관 및 미술관의 홈페이지나 개별 연락을 통해서 기증서약서 및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있고, 이후 심의위원회를 거쳐 심의결과에 따라 기증 여부가 확정된다. 이 페이지에서는 기증품 목록 및 정보, 이미지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이응노 <작품> 1982 종이에 채색, 콜라주 

131×173cm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선결 과제들


더 적극적인 기증을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1992년, 서울대학교에서 1978년 대만 판화작가로부터 기증받아 보관해오던 판화 4점을 관리 소홀로 분실한 사건16)이 있었다. 기증자들은 국공립미술관이 수장고, 항온항습, 기록 시스템 등을 통해 작품의 관리·보존을 잘할 것이라는 믿음과 전시, 교육, 출판,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알릴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기증을 한다. 이 믿음과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국공립미술관은 사전에 수장고를 확충하고, 관리·연구·보존에 관련한 전문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또한 감정 시스템에 대한 인프라 구축 역시 시급하다. 천경자의 <미인도> 논란17)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술관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기증 확정과 소장 사전에 감정을 할 수 있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인성 <노란옷을 입은 여인상> 1934 

종이에 수채 75×60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미술품 물납제


이 글이 쓰이는 동안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자신들이 보유한 국보 훈민정음해례본을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로 제작해 판매한다는 소식18)이 들려왔다. NFT 가격은 개당 1억 원으로, 총 100억 원 규모다. 재단은 “문화유산을 디지털 자산으로 영구 보존하고, 미술관 운영 관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근대 서화 수리복원 전문가이자 민화 작가 송규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민화 화본 142점을 기증하고, 일체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건19)과 정확히 반대의 지점에 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문화재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다시 사유화해 소수의 인원이 점유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물납하도록 하는 미술품 물납제에 관한 논의 역시 간송문화재단의 행보에서 재점화됐다. 지난해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려 불상 2점-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부쳤고, 유찰 끝에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구매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문화계 전반에서 물납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러한 논의들이 전형필의 유품과 관련해 재점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 차원에서 의미심장한 논의점들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술품 기증과 관련해 특별한 세제 혜택을 마련하지 않고 기증품에 한해 상속세를 제해주는 정도20)에 그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개인은 66% 세액 공제, 법인은 60% 세액 공제라는 세제 혜택을 주고 있으며, 국립 피카소미술관 등은 물납제를 통해 소장품을 확충해 오면서, ‘국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영국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게 하고 이 경우에는 상속세에서 25% 감면 혜택을 준다. 그 근거로 ‘국가적 중요 자산이 공익을 위해, 영국 내에 보존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상속세 물납제가 ‘부자 감세’라는 의혹에 기반한 국민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지만, 국가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하고 이로써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 세금 대신 받은 작품을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예술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해외 반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 더불어 예술 시장이 활성화된다는 점 등에서 환영할 수밖에 없다. 미술품 소장 활동과 그에 잇따른 기증은 한국에서 머나먼 일로만 느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살펴보았듯 삼국시대부터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시대를 막론하고 지속돼왔다. 이 활동은 자신의 기호품을 모으는 일상적 수집 활동을 뛰어넘어 민족정신과 문화·미술계의 버팀목이 되어왔다. 그리고 바야흐로 자본주의가 도래한 한국 사회에서 일생에 거쳐 그리고 일생을 바쳐 자신이 혹은 선대가 모은 미술품 컬렉션을 타인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기꺼이 내놓는 일은 결단코 쉽지 않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증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독려와 찬사를 보내야 하는 까닭이다. PA


[각주]

1) 「‘세기의 기증’ 특별전으로…이건희컬렉션 첫선」, 『연합뉴스』, 2021.7.21

2) 이희정, 「한국 개인미술품 컬렉터의 사회적 역할과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2009, pp. 41-42

3) 이난영, 『博物館學入門』, 三和出版社, 2006, p. 78

4) 朱景玄, 唐朝名畵錄, 이희정, 위의 논문, p. 42에서 재인용

5) 郭若虛, 圖畵見聞誌: 박은화 옮김, 『곽약허의 도화견문지』, 시공아트, 2005, pp. 588-589

6) 국내 최초의 화상 정두환은 1910년 8월 ‘지전’이라는 상호를 고쳐 ‘정두환 서화포’라는 이름으로 황성신문에 ‘각양 서화’와 ‘각양 지물’을 취급한다는 연재 광고를 냈다. 『황성신문』, 1910.8.27

7) 김상엽, 『경매된 서화』, 시공아트, 2005, p. 625

8) 박병래, 『白磁에의 향수』, 尋雪堂, 1980, p. 102

9) 임창섭, 『이 그림, 파는 건가요』, 들녘, 2004, p. 28

10) 사립미술관이나 혹은 재단에서 국공립기관으로 기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컨대 2018년 한국자수박물관의 허동화·박영숙 부부는 소장품 4241건(5129점)을 서울시에 무상 기증 했다.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박영숙 부부, 소장유물 5천여 점 서울시에 무상기증」, 『중앙일보』, 2018.5.17

11) 김이환, 『수유리 가는길』, 이영미술관, 2004, p.196 

12) 「[미술품 기증 불모지 대한민국] [上] 대기업 창고엔 미술품 가득미술관 벽엔 걸 작품이 없다」, 『조선일보』, 2013.9.2

13) 「파리 물들이는 '설악산 화가' 김종학」, 『서울경제』, 2019.3.15 

14) 「연암 박지원 손자 박선수 고문헌 1208점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 『이데일리』, 2021.6.24

15) 「‘안중근 재판기록 기증’ 고교생…독립운동가 후손에 상금 기부」, 『중앙일보』, 2021.3.8

16) 「서울대, 기증미술품 도난」, 『연합뉴스』, 1992.9.16

17) 「‘미인도 사건’: 검찰 vs 프랑스 업체, 쟁점 총정리!」, 『동아사이언스』, 2017.1.6

18) 「국보 훈민정음도 NFT로…간송미술관, 총 100억원 규모 판매」, 『서울신문』, 2021.7.22

19) 「한국 현대 민화계 산 증인 송규태 화백 소장 민화 화본(?本) 142점 온라인 최초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2021.1.5

20) 상속세법 및 증여세법 16조에 따르면, 상속 재산 중 공익법인 등에게 출연한 재산이 가액은 상속세 과세 가액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글쓴이 문선아는 다양한 관점에서 현재의 시대성을 관찰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하는 기획을 진행해왔다. <제6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공생도시>의 주제전 <내일 보다 나은>(2019), 세대론과 미디어이론을 결합한 ‘시대정신’ 시리즈(2016-2018) 등을 기획했다. 8월 경기도 동두천시에 개관을 앞둔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의 디렉터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관계성 안에서 내일의 시각문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이상범 <무릉도원> 1922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이미지: 159×39×(2), \159×41(8)cm: 

병풍 202×413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Special Feature No. 2

국내 미술품 기증 과정과 제도 현황

● 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헤럴드경제』 기자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부고 이후, 유족들은 이 전 회장이 평생 걸쳐 모은 미술품과 문화재 중 일부를 국공립기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평생 문화를 사랑했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시작된 기증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강원도 박수근미술관, 제주도 이중섭미술관 등 전국 7개 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기증받은 미술관들은 하나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건희컬렉션의 특징은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통섭형으로 한국의 예술사를 풍요롭게 해주는 품격 있는 작품들”이라며 “그간 취약했던 근현대미술사 연구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킬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극찬했고,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이건희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대구와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수묵추상의 대가 고(故) 서세옥 화백은 자신이 평생 수집한 작품들과 본인의 작업을 성북구립미술관과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나누어 기증했다. 성북구립미술관에는 3,290점, 대구에 90점, 국립현대미술관에 22점이 각각 소장됐다. 기증 과정을 지켜본 한 학예사는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기증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유족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이번 기증을 통해 서세옥 전문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성북구 측은 “향후 작가의 가치와 기증의 의미를 기릴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개방 수장고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은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미술품 기증은 과연 어떤 절차를 밟아 이루어질까. 기증 의사만 있으면 미술관에서 다 받아줄까? 각 미술관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국공립미술관은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기증자가 소장과에 의사를 밝히면, 기증목록자료를 확인하고 실무자와 심의위원이 실견한다. 관장을 포함한 3인으로 구성된 수증심의위원회에서 기증받을 작품과 아닌 작품을 구별하고 심의 결과에 따라 통과한 작품만 기증받는다. 이후 작품 포장, 운송을 거쳐 반입하고 기증자에게는 기증확인서를 발급한다. 반입된 작품은 본격적으로 검수 및 상태를 조사해 소장품으로 등록된다. 이건희컬렉션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복수의 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삼성가에서 기증 의사를 타진했고, 이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미법)에 따라 기증 절차를 밟았다. 기증 전에 대상 작품에 대해 실견이 이뤄졌고, 수증심의회의를 거쳐 최종 인계될 때까지 2달이 넘는 기간이 걸렸다. 다른 국립미술관도 박미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기에, 국립현대미술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건희컬렉션 21점을 기증받은 대구미술관도 기증 의사를 듣고 기증의향서 작성 이후 2차례의 작품수집심의위원회를 거쳤다. 회의를 통해 기증 여부를 결정한 뒤 기증협약을 체결하고 작품을 입고했다. 차이가 나는 지점은 심의회의 적용 기준이다. ‘컬렉션=미술관 정체성’이기에, 미술관 별로 그 특성이 드러난다. 


대구미술관은 ‘소장품 수집 5개년 계획’(2020)에 따라 대구 근현대미술 주요 작가의 작품을 우선 수집한다. 또한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주요 사조 및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국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의 작품, 대구미술관 자체 기획전 중 소장 가치가 있는 주요 작품, 현대적 실험성이 돋보이는 가능성이 전망되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 우선 고려 대상이다. 미술관 측은 “이 같은 기준은 기증뿐만 아니라 구입, 기탁, 관리전환 등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좀 더 광범위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관계자는 “근대기 희소성이 높은 작품, 미술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으나 기존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은 작가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전시 출품작 중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국내 및 해외 작가의 작품 그리고 작품의 보존상태, 장르와 작가 연령의 균형 등 종합적으로 검토한다”고 답했다. 수증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작품은 기증희망자에게 돌아간다. 박미법 시행령에 따르면 “기증품을 기증받을지 여부를 결정한 후 기증하려는 자에게 서면으로 그 결과를 통보하여야 한다. 이 경우 기증받지 아니하는 것으로 결정하면 그 사유를 명시하여 즉시 해당 기증품을 반환하여야 한다”(6조 2항)고 명시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특별 수장고 

‘드로잉의 재정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자 예우는? 


미술관의 소장품은 크게 구매, 기증, 관리전환을 통해 수장고로 들어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2021년 7월 현재 1만 621점의 소장품 가운데 구입이 4,627점(43.6%), 기증이 5,777점(54.4%), 관리전환이 217점(2%)다. 기증 비율이 구입보다 10%가량 높은 것은 이건희컬렉션 기증 때문이다. 2020년까지는 기증이 45.1%(3,966점)로, 구입(52.4%/4,599점)보다 적었다. 미술관 소장품의 절반이 기증작으로 채워지지만, 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명예’로 귀결한다. 일부 기관에서는 기증 물건 가치의 10%에 달하는 금액을 되돌려주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박미법에서는 명확하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1항에 따른 기부 등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 자에 대하여 시상(施賞)을 하거나 「상훈법」에 따라 서훈을 추천할 수 있으며, 수증한 박물관·미술관의 장은 기증품에 대한 전시회 개최 등의 예우를 할 수 있다”(8조 6항)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적 보상은 제외돼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증자의 이름을 명판에 명기하고 특별전 무료관람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다만 상속세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 기증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증=상속세 감면 효과’가 있다. 미술관이 발급하는 ‘기증확인서’가 중요한 이유다. 기증자가 이 확인서를 국세청에 제출하면 해당 물건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상속을 포기했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상속이 아닌 평시의 기증은 이 같은 효과도 없다. 박미법은 ‘예우’를 내세워 ‘기증 활성화’를 지향하지만, 기증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이 전혀 없는 정책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미술관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기념전’이 베스트 옵션이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처럼 서울관에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증작을 꾸준히 소개하는 전시는 청주관 4층 특별수장고에서 열린다. 2019년엔 김정숙, 임응식, 한기석, 황규백 4인의 기증작 800점을 소개했고 2020년 말부터 현재까지는 문신, 김영주의 기증작 1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개방 수장고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제대로 된 ‘당근’을 


국내 미술품 기증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기증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다 할 ‘당근’이 없는 상황에서 기증자의 선의에 기대고 있는 상황이라서다. 평생에 걸쳐 컬렉션한 작품이 혹은 평생 작업한 작품이 국공립미술관에 들어가 영원히 대중과 소통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 명예로운 일이지만, 이를 위해 재산상의 이득이나 잠재적 이득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은 아니다. 해외의 경우는 좀 다르다. 미국 세법은 미술품을 기관에 기증할 경우 개인이나 법인이 내야 할 세금에서 해당 작품의 감정평가금액만큼을 감면해준다. 물론 모든 작품에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창작한 작품이나 물건의 경우는 재료비만 비용으로 인정해준다. 


예를 들면, 유명 야구선수가 자신이 서명한 야구공이나 우승 트로피, 우승 당시 입었던 옷 등을 야구 박물관에 기증한다면, 해당 제품의 시장 소매가(에서 추가로 감가상각된 비용)만큼만 감정가로 인정된다. 다만 이 같은 물건을 자녀에게 상속한 뒤, 자녀가 박물관에 기증할 경우엔 시장에서 인정하는 프리미엄 붙은 금액만큼 세금으로 인정해준다. 마찬가지로 기증자가 화가라면, 캔버스값과 물감 비용만 기증금액으로 인정된다. 세법과 복잡하게 얽히며 기증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는 않지만, 세금 감면이라는 거부하지 못할 ‘당근’은 기업인이나 슈퍼 컬렉터들의 기증 수요를 자극했다. 기증이 활발하지 않은 것이 ‘문화차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 전에, 우리 정책의 방향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칭찬이 컬렉터를 춤추게 할지도 모른다. PA



글쓴이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권진규 <자소상> 1967 테라코타 35×23×20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Special Feature No. 3 - 1 (인터뷰)

미술관의 수준은 소장품으로 말한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Q: 사적 영역의 예술품이 대규모로 사회에 환원되며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이번 기증으로 소장품 수가 1만 점을 넘게 됐다. 1969년 10월 경복궁 뒤뜰 옛 조선총독부 미술관에 정식 개관했을 당시 소장품 수가 ‘0’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남다른 성과다. 단순히 표면적인 수치를 넘어 이번 기증이 미술관에 끼치는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가.


A: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민국 유일의 국가 미술관이다. 서울, 덕수궁, 과천, 청주의 4관 체제이기는 하나 국립박물관의 13개 분관 체제와 비교하면 정말 갈 길은 멀다. 단 하나밖에 없는 국가 미술관, 하지만 소장품 숫자는 대외적으로 밝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 할 수 있다. 소장품 8,500점 수준일 때 ‘언제 1만 점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소장품 10만 점대의 미술관을 볼 때마다 부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미술관 구입예산을 생각하면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게 했다. 제대로 된 김환기의 ‘점’ 시리즈 한 점을 구입하려면 구입예산 2-3년 어치를 모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꿈도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더니, 정말 환상적인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이건희컬렉션의 미술관 기증. 유족은 1,488점이라는 소장품을 아무런 조건 없이 미술관에 기증했다. 기증 작품의 구성은 이렇다. 작품 1,226건(1,488점)의 국적별 분포는 한국 작가 238명과 외국 작가 8명, 총 246명이다. 장르별로 보면, 회화가 412점으로 제일 많고, 그다음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그리고 사진, 영상, 서예 등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 제작연대별로는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이 320여 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22%를 차지하고, 작가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1930년 이전에 출생한 이른바 ‘근대작가’ 작품이 약 860건으로 전체의 약 58%에 이른다. 작가별 분포는 유영국이 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으로 가장 많고, 이중섭의 작품이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포함),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순이다. 이중섭의 경우, 은지화와 엽서화가 많기는 하지만 개인전을 개최할 만큼 다량이다. 해외작가는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작품 100여 점을 비롯 모네, 고갱, 샤갈, 달리 등 미술사의 기라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건희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수준을 일거에 높여주었고, 특히 미술사적으로 빠진 부분을 채워주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물론 기증품의 상당량은 명가들의 명품이어서 자랑스럽게 한다. 게다가 이들 작품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여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당장이라도 전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외형적으로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소장품 1만 점을 돌파했다는 것(2021년 7월 기준 미술관 소장품 1만 621점). 꿈의 실현. 이건희컬렉션은 한국미술의 위상을 국내외로 제고시켰다는 점, 미술품 혹은 미술관 문화를 전국화시켜 대중적 관심을 이끌었다는 점, 더불어 기증문화의 환기 등 부수적 효과 또한 적지 않다. 이에 유족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윤범모 관장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국립현대미술관은 5년마다 중·장기 작품수집계획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매년 당해 연도의 작품수집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관은 이에 대한 중요성을 어떻게 느끼고 또 계획을 수행하고 있는가.


A: 미술관의 성격은 소장품으로 말한다. 소장품은 미술관의 품격과 직결한다.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은 다량의 작품, 그것도 우수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특별 전시는 자체 소장품만으로 꾸미기 어려워 다른 미술관 소장품을 대여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그러니까 미술관끼리 주고받으면서 품앗이 형태로 전시를 꾸민다. 이때 소장품의 품격이 미술관의 수준을 말해주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반열에 있어야 작품 대여가 원활해진다. 미술관은 소장품으로 말을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정책을 펼침에 있어 매년 작품 수집계획을 수립하고, 구입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술관의 품격을 고려해야 하고, 작품의 미술사적 평가나 미술계에서의 영향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신중하게 소장 절차를 밟는다. 구입예산이 적기 때문에 중요 작품의 기증을 유도하기도 한다.




김환기 <산울림19-II-73#307> 1973

 캔버스에 유채 264×213cm ©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청주에 수장고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미 수장고의 수장률이 90% 이상 넘었고, 이번 기증품이 모두 과천 수장고에 보관되며 향후 이를 어떻게 관리해나갈지도 관건으로 꼽힌다. 미술관은 이에 대해 어떤 논의와 계획을 하고 있는가.


A: 소장품을 보관하는 수장고 시설은 매우 중요하다. 수장고는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항온항습 시설은 물론 작품 보존의 최적 상태를 유지한다. 이들 작품은 정기적 전수조사를 통하여 보존 상태 등을 점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 문제는 한마디로 포화상태라는 점이다. 과천 이외 ‘보이는 수장고’로 명성을 얻고 있는 청주에 본격 수장고를 마련했지만, 수장 공간의 태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동안 외부의 민간 창고를 임대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이미 청주관 출발단계부터 여유롭지 않았다. 우리 미술관은 매년 200점 수준의 작품을 새롭게 추가하여 등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적극적으로 소장 작품의 확대 전략을 실행에 옮기다 보니 작가 유족이나 생존 작가 그리고 작품 수집가들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이 미술품 기증 대열에 동참해주어 올해만 해도 500점 상당의 신 소장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몇 년 치의 수집 성과를 단숨에 이룩한 것이다. 거기다 이건희컬렉션 약 1,500점까지 더해지면서 미술관의 소장품 내용은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올해의 경우 2,000점이라는 대량 작품을 작품 등록 대장에 추가 작업해야 한다. 물리적 측면에서 보면 10년 어치의 업무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미술관은 ‘즐거운 비상사태’임을 절감하고 특별팀을 만들어 소장품 등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인력 충원과 예산 지원은 절실한 부분이다. 수장고 문제의 해결. 정말 지난한 길이다. 바람직하기는 어디엔가 분관 형식의 미술관 건물을 확보하는 것이다. 제2·제3의 청주관을 추진하게 하고 있다. 물론 미술관은 건물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소장품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연구하는 학예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 성과에 따라 전시, 출판, 교육 등 활용 방안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의 확보, 이는 미술관 품격과도 직결된다. 뿐만 아니다. 소장품의 보존 처리 시설과 전문 인력도 중요하다. 이들은 일종의 특수직이어서 쉽게 확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연륜은 중요하다. 미술관은 외형적 건물로만 이루어지는 것 아니라는 점,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수련이 있는 연못(Le Bassin Aux Nympheas)> 

1919-1920 100×200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관장이시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미술관 인지도를 상승시켰고 특히 직접 진행한 소장품 강의도 인상 깊었다. 지금 시점엔 온라인을 통해 미술관 소장품, 기증품을 알리는 것에 분명한 계획이 서 계시리라 짐작되는데 특별히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또 반대로 경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몇 차례 언급했지만,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 실감하고 있다. 본격적 실력 발휘(?)를 할까 했는데, 웬 코로나19? 정말 답답한 세월의 연속이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 미술관은 개관일보다 휴관일이 더 많았다. 어렵게 전시나 갖가지 행사를 만들어놓고도 문을 닫아야 하는 서글픔, 이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개관 50년이 넘어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본격적 서예전을 덕수궁에서 마련했다. 서화동체(書畵同體)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서예전을 개최하지 않았다는 점은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어렵게 서예전을 만들었다. 개막 즈음에 이 무슨 날벼락인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침공은 미술관 문을 닫게 했다. 이에 유튜브 공개, 영상으로 전시 관람하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대박! 정말 위기는 기회였다. 접속자 10만 명 돌파! 어렵다는 서예전을 국내외에서 참으로 많은 이들이 관람했다. (이 서예전은 해외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수출할 예정이다) 그동안 덕수궁은 근대미술 특화 미술관이어서 중장년층이 제일 많았다. 


하지만 희한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덕수궁관은 20대 젊은이들로 가득 차고 있다. 그동안 동시대 현대미술을 다루는 서울은 20대가 입장객 40% 이상을 차지했다. 미술관을 가득 채운 젊은 세대, 외국인은 젊은 풍경을 보고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한국은 ‘미래가 있고 희망적인 나라’라고 했다. 한국은 IT 강국이다. 이런 저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성과물을 미술관 홈페이지에 별도의 디지털 뮤지엄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400건 이상의 프로그램은 다채롭고도 다양하여 관람객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관람객 설문조사 결과의 하나, 관장이 해설하는 미술관 대표 소장품. 그래서 나는 소장품 한 점씩 선정해 영상 촬영하고 이를 누리집에 올렸다. 아무튼 코로나 난국에 동영상을 적극 활용했고, 디지털 뮤지엄의 존재감은 날로 높아졌다. 그래서였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의 온라인 프로젝트는 국내외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구미의 유수한 언론으로부터 ‘세계 10대 온라인 뮤지엄’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말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믿고 싶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상상미술관’을 상상한다. 지상(紙上) 미술관. 책 안에 도판으로 차린 전시, 정말 상상 속의 미술관이다. 하지만 온라인 시대는 영상 속에서 숱한 미술관을 차리게 한다. 미술관 소장품은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성격과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나름 활용할 수 있다. 유튜브는 물론 첨단 기술을 활용한 미술관 역할은 향후 거의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다. 국력을 국토의 크기로 규정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문화영토의 시대다. 국력은 국토의 크기보다 문화적 역량으로 판단하게 한다. IT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래서 밝다. 게다가 한류 바람은 지구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 않은가. 이제 미술한류의 시대로 진입해야 할 차례다.  




박수근 <유동> 1954 캔버스에 유채 

130×97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미술관 소장 역사에서 괄목할만한 기증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A: 개관 반세기의 역사이지만, 그래도 괄목할만한 기증 사건이라 한다면 역시 이건희컬렉션을 들 수 있겠다. 이 기증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획기적 사건, 정말 미술관 역사는 물론 국제 미술계에서도 기록할만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Q: 국외적으로 ‘한국미술 강화’, ‘미술한류’를 지향·강조하며 같은 맥락으로 2022년 구겐하임 미술관,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등에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향후 국외에 소장품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이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2022년은 미술한류의 원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전시를 본격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교류는 쌍방통행이 정상이다. 이제껏 한국은 해외미술의 국내 수용에 커다란 비중을 두었다. 물론 해외미술의 한국 상륙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한국미술의 해외 진출도 중요하다. 국제무대에서 대우받는 한국미술, 이런 세상을 꿈꾸고 있다. 내년 해외에서 펼쳐질 한국 현대미술 전시는 나름 화려하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국 실험미술 특별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한국근대미술 특별전을 개최한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에서 근대미술과 1960-1970년대 실험미술을 대거 선보이는 것은 정말 획기적 사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해외의 유수 미술관 전시에 대여하기도 하지만, 이렇듯 대거 소개되는 일은 전시 역사를 새롭게 쓰게 한다. 덕수궁 전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중국 국가미술관에서 다시 펼쳐진다. 


한국미의 원형을 탐색하고자 한 전시의 베이징 진출은 남다른 의미를 줄 것이다.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면서, 즉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독자적 미학을 확인시켜 줄 전시이기 때문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본다. 이들 국외전에 이건희컬렉션을 다수 포함해 그 내용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문경원 전준호의 전시는 일본 가나자와현대미술관으로 이동하여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서울에서 개최했던 김순기 개인전은 독일 ZKM에서 다시 펼쳐질 예정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은 다양하면서도 격조 있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제 미술한류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고 믿고 싶다. 순수예술 가운데 미술이라는 장르, 정말 국제 경쟁력 있는 분야다. 해외 일류 미술관에서 한국미술이 대접받을 때, 이는 선작용으로 역할하여 미술시장에도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미술품은 고급 상품이기도 해서 경제 효과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장욱진 <나룻배> 1951 패널에 유채 

13.7×29cm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Q: 기증의 주요 관문인 수증심의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며 기증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는지, 기증자 예우 혜택으로 세금 감면은 어떻게 얼마나 받는지 궁금하다. 나아가 미술관장으로서 기증문화 확립을 위해 제도적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가. 


A: 미술관의 소장품 구성은 구입, 기증, 관리전환 등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미술관은 구입보다 기증품이 많은 경우도 있다. 기증문화의 화려한 결과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1만여 점 가운데 약 55%가 기증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9년 10월 경복궁 뒤뜰 조선총독부 미술관 건물에서 문을 열 때만 해도 소장품은 ‘0’이었다. 개관 52주년을 맞아 대망의 소장품 1만 점 시대에 진입했다. 물론 소장품의 숫자도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작품 수준일 것이다. 미술사를 쓸 수 있는 중요 작품의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작품 구입의 경우, 미술관 학예실과 외부 전문가의 추천으로 시작한다. 이를 토대로 여러 차례의 심의 절차 즉 전문가의 가치평가와 가격평가를 별도로 진행한다. 어려운 절차를 통과하면, 소장가나 작가와 협의 후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위해 객관적 자료를 첨부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무엇보다 기존 소장품과 비교하여 누락된 부분을 우선한다. 근대기의 중요 작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하고자 하고, 미술관 주최의 전시 출품작, 젊은 작가, 해외작가 등 균형감각을 고려하고, 장르와 작가 연령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구입 대상작품 목록을 만든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작품성이고, 더불어 기존 소장 여부가 관건이다.


외부 기증의 경우, 무엇보다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수증심의위원회를 거친다. 기증 의사를 밝힌다고 그대로 미술관에 작품이 들어오는 구조는 아니다. 상당 부분은 기증 심의 절차에서 탈락되기도 한다. 미술관 소장 그 자체가 작가 평가의 척도 역할을 한다. 현재 우리 미술관은 기증 작품의 경우, 작가 1인당 50점 이상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예외적인 사항은 있을 수 있으나, 작가 당 50점 미만의 기증품을 받는다. 다양한 작가를 포함하고 있는 소장가의 기증은 대환영하고 있다. 미술관 수장고 사정 때문에 기증 작품 숫자를 제한하는 방침은 참으로 아쉽게 한다.유족의 작품 기증 문제. 상속받은 작품의 경우, 미술관 기증 등 공공재로 하면 상속세의 면제를 받는다. 개인 재산을 공용화했기 때문에 받는 일종의 수혜라 할 수 있다. 작가 혹은 소장가의 작품 기증에 따른 세금 혜택은 해외 선진국과 비교하여 약한 편이다. 한국 사회는 기증문화와 다소 거리감이 있다. 한마디로 기증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물론 선진국처럼 기증에 따른 혜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은 면도 있다. 재산 상속의 경우, 자식 우선의 사회와 사회 우선의 사회, 여기서 한국의 상속 문제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기증문화의 활성화를 고대한다.



Q: 물납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끝으로 이에 대한 관장님 의견이 궁금하다. 


A: 세금을 현찰 대신 작품으로 납부하는 제도. 시급하고 절실한 부분이다.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을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프랑스는 현찰 대신 작품으로 상속세를 받아 관광자원으로 몇 배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납제의 조속한 시행으로 유작 관리에 일조했으면 좋겠다. 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작이 대책 없이 싸구려처럼 방황하는 경우,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PA




이지호 관장





Special Feature No. 3 - 2 (인터뷰)

기증, 대중과 문화예술 상생 이끌다

●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



Q: 우선 긴 미술관 경험을 바탕으로, 기증이 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문화 향상에 어떠한 기여를 한다고 여기는지 여쭙고 싶다.


A: 내가 오랜 기간 관장으로 있던 대전 이응노미술관은 유족이 기증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 1,300여 점을 기반으로 건립됐다. 건물 자체도 기증 작품 중 대표작인 1970년대 문자 추상 ‘목숨 수(壽)’를 모티브로 하여 설계했다. 이처럼 미술관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소장품’이다. 물론 전시와 교육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소장품의 내용과 규모에 따라 미술관의 규모가 결정되고, 소장품을 통한 전시기획 및 교육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기에 중요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이 그랬던 것처럼 미술관이 소장하는 작품은 미술관의 독자적 매력을 어필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더불어 작품 및 작가 연구의 기초자료가 되는 귀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사회·문화·예술 기관으로서 교육과 전시 그리고 출판을 통해 관람객에게 창의적 사고와 예술적 정서,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기증은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과 친해질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품격 미술품이 개인에서 미술관으로 기증된다면 문화 향유의 범위는 개인에서 대중으로 확대되고, 미술사 연구는 한층 더 심화할 수 있어 미술관 내외부로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기증이 활발해질수록 미술관의 질적 측면은 제고되고, 대중들은 수준 높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아져 문화와 함께 상생하는 효과가 생겨나니 기증은 문화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본다.



Q: 전남도립미술관은 올해 개관과 더불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기증받았다. 관장님이 지향하는 ‘지역미술의 브랜드화’를 위해 소장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여타 지역 미술관과 비교해 전남도립미술관 소장품이 지니는 특성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최근 기증받은 이건희컬렉션에는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가 김환기, 천경자, 오지호, 허백련 등 전남 출신 작가 4인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 유홍준 교수, 김정헌 화백, 박형선 회장으로부터 전남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작품을 다수 기증받았다. 전남도립미술관의 소장품만이 지니는 특성이라 하면 ‘전남 미술사’를 빼놓을 수 없겠다. 전남이 품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전남지역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현대미술관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한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품 약 19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전남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의 작품과 전남의 시대정신을 담아낸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이 기증작품이다.        


소장품으로 기획된 전시도 준비 중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니만큼 미술관의 특색을 잘 드러내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9월 3일부터 이건희컬렉션 기증작품 21점을 소개하는 기증전을 준비하고 있고, 향후 전남 미술사와 현대미술사를 조망하는 상설전시관도 계획하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전남 미술사를 중심으로 21세기 문화적 다양성과 실험적 예술성을 포괄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소개하고 다가올 새로운 예술의 사회적 담론을 조망하는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한 공간이다.





천경자 <꽃과 나비> 39×59.5cm 

이미지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Q: 미술관의 여러 기조와 프로세스를 설계 중이시라 사료된다. 기증의 주요 관문인 수증심의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며 기증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는지, 기증자에 대한 예우와 혜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할 때는 일련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기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미술관은 작품수집추천위원회와 작품수집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기증의 경우 작품수집심의위원회가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고자 하는 이가 제출한 기증 제안서를 심의위원회에 상정하면 별도의 선별 과정을 거쳐 기증 여부가 결정된다. 선별 과정에서는 한국 미술사적으로 가지는 의의, 전남 미술사 정립에 필요한 지역 작가 작품 등 미술관이 지향하는 미술사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진행한다. 


기증의 규모와 상관없이 기증자에게는 ‘무상’, ‘무조건’의 원칙을 적용한다. 더불어 기증받은 작품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기본으로 취해야 할 태도라 생각한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작품에 훼손이 없도록 하고, 작품 전시 이후 발간되는 도록에 기증자 정보를 기재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추후 기증전용관을 만들어 기증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계획도 세웠다. 이는 더욱 많은 사람이 작품을 보고 느끼고 감동하길 원하는 기증자의 뜻을 기리는 데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기증자를 우대하고 예우함으로써 기증문화가 정착된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우리 미술관은 기증 활성화에 힘써서 전라남도의 미술 문화 발전의 도약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Q: 사적 영역의 예술품이 국공립 미술관에 귀속됐고 그 질과 양도 화제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이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갖는다 여기시는가.


A: 미술관의 위상은 컬렉션이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은 이러한 이유에 비춰볼 때 굉장한 의미가 있다. 이번 기증작품들은 전남지역 대표 작가의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처럼 예술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들은 미술관 예산이 많아도 쉽게 구입할 수 없다. 특히 신생미술관의 경우 고품격 미술품을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르는데 하물며 기증은 어떨까.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대단한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게 되면서 전남 미술의 우수성과 위상을 알리고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인문학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기증으로 미술관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연구와 전시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역 문화 육성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도약의 시발점이 되리라 사료된다.



Q: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작품들을 어떤 기획으로 선보이실 예정인가.


A: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은 특별 전시로 기획된다. 전시는 9월 3일부터 11월 7일까지 총 65일간 진행되며 기증받은 21점을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우리 문화재와 미술품에 대한 사랑의 뜻을 국민과 함께 나눴으면 한다’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뜻이 전시 전체에 녹아들 수 있도록 기증자의 수집 철학과 기증 의의를 다루고, 전남도립미술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남 출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특별코너로 배치해 전남 작가 4인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그 명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Q: 미술관 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대두되고 있다. 어쩌면 일반 대중에게 전시 못지않은 영향을 선사하는 것이 교육인데, 소장품 혹은 기증에 관한 교육을 설계하신다면?


A: 도심과 떨어진 곳에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균형 잡힌 교육으로 미래의 인재를 개발하기 위해 어린이·가족 단위의 참여를 유도하는 대중 교육을 특화하려고 한다. 물론 일부 연령층과 대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소년과 성인, 노인 그리고 일반인과 전문가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할 것이다. 특히 전라남도의 수려한 자연과 선비정신이 담긴 미술관 소장품을 통해 초·중·고등학교의 현직 교사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미술관 수업을 운영해 미술 작품의 개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학생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소장품에 대한 정보를 교사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학교 교육이 쇠퇴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전인교육은 공공미술관의 중요한 역할로 거듭 강조되고 있다. 또한 전남은 예향의 도시로 알려진 것에 비해 타지역보다 미술관,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특별 교육을 상시 운영해 문화시설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지역과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예술에 대한 벽을 낮추어 교육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소전(素荃) 손재형 <서예 횡액>

 30.6×153.3cm 이미지 제공: 전남도립미술관




Q: 미술 기증에 관한 한 누구보다 할 말씀이 많을 것 같다. 오래 재직한 이응노미술관이야말로 유족인 박인경 여사의 기증이 미술관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그 매개 역할을 관장께서 직접 하셨으니 말이다. 길고 다양한 경험을 반추하며 작가와 유족이 기관에 작품을 넘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그리고 기관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인가.


A: 2004년 대전시립미술관장 재직 당시 이응노미술관의 개관을 준비하면서 가장 우선시했던 임무는 이응노 화백의 대표작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는 것이었다. 명실 공히 국제적 수준의 이응노미술관을 건립하고 고암 이응노 화백의 연대별 대표작들을 골고루 기증을 받기 위해 박인경 여사와 여러 차례 협의해야 했다. 먼저, 박인경 여사의 허락 하에 우수한 학예사를 프랑스 파리 ‘이응노 아틀리에’로 파견하여 남아 있는 작품의 규모를 파악하고 기록·정리해 기증받고 싶은 작품 목록을 작성했다. 이때 박인경 여사는 여사대로 건립에 걸맞는 규모의 작품을 선별해 따로 목록을 작성했다. 


이렇게 작성된 각자의 자료를 근거로 박인경 여사는 개관 당시에만 600점의 작품을, 이후 2012년 독립운영기관 고암미술문화재단을 발족하며 700여 점을 추가 기증했다. 기증받은 총 1,300여 점은 국제적인 작가미술관으로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정립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듯 작품을 기증받기 위해선 작가의 예술세계에 관한 집중 연구와 작가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기증 협의 과정에서 저작권자이자 소장가인 유족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기증계약서와 기증서 작성 등 관련 절차에 있어 유족의 뜻을 충분히 반영하고 기증자의 명예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서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국립현대미술관, 이응노미술관의 다양한 요직을 거치며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를 비롯 해외 유수 기관과 긴밀히 협의하셨는데 그중 직간접적으로 접한, 가장 인상적인 미술 기증의 사례는 무엇이었는가.


A: 미술관장의 역량 평가에서 소장품 구입 및 수집은 매우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 해외 선진미술관의 관장들은 평소 컬렉터들과 꾸준히 친분을 쌓고, 유명 작가의 아틀리에를 수시로 방문한다. 이는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신뢰 관계를 두텁게 하여 미술관 예산으로 구할 수 없는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을 기증을 통해 확보하고자 함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마다 연말이면 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에서 대통령이 참석하는 퐁피두센터 ‘도네이션 파티’였다. 또 이응노 화백의 대표 작품을 기증받기 위한 세르누치 미술관(Musée Cernuschi)의 에릭 르페브르(Eric Lefebvre) 관장과 마엘 벨렉(Mael Bellec) 학예실장의 진심 어린 태도였다. 


이들은 이응노 화백에 대한 연구와 한국미술사 공부를 선행하는 등 수시로 이응노 유족과 만나 그의 예술세계와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작품 기법이나 작품에 관련된 역사적 스토리 등을 깊이 있게 묻고, 이응노 아틀리에에 수시로 방문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감탄스러웠던 부분은 작가가 생전 작품을 다뤘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작품 관리, 보존수복은 물론 화선지 표구 등의 제작 방식 전반을 최대한 똑같이 하려고 했다. 결국 미술관은 60여 점의 주요 작품을 기증받았고, 기증 작품을 기초자료로 활용해 본격적으로 작가 연구를 하고 얼마 후 미술관에선 이응노의 대규모 회고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베르나르 블리스텐(Bernard Blistène) 퐁피두센터 관장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응노 화백의 중요도를 인지하고, 그의 작품을 기증받기 위해 소장품 수석큐레이터를 이응노 화백 연구 담당자로 선정했다. 이후 담당자와 함께 유족이 사는 파리 이응노 아틀리에를 수없이 오가며 작가에 관한 연구와 전시기획 및 개최까지 모든 일에 직접 참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전문가적인 태도와 극진한 대우는 유족의 마음을 열었고, 신뢰를 받기에 충분했다. 유족이 미술관에 필요한 좋은 작품만 골라서 기증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고, 나아가 미술관은 기증을 받은 이후에도 유족에 대한 예우를 깍듯이 했다. 작품 전시와 미술관 파티에 특별 초청하고, 작품 관리 현황을 비롯한 주기적인 연락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밖에 도록 전달, 저작권 협의 등 유족이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지속해서 관계를 다졌고, 하물며 담당자가 변경되더라도 온전한 관계가 이어지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이처럼 미술관은 작품을 기증한 유족에게 ‘기증’이라는 행위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대가보다 가치 있는 명예로 보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국내 미술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곤 있으나 해외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술관장으로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여기시는가.


A: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기증자들은 물질적인 대가보다 예술적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원했다. 작품이 수장고에 방치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 것이다. 기증 작품이 전문적으로 관리되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돼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높여주길 바라며, 아트상품 소재로 활용되는 등 보다 많은 대중에게 공유되길 희망한다. 따라서 미술관은 작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보존에 정성을 다하고 상설전시 혹은 특별전시 등을 활발하게 개최해 작품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작품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순환시켜야 할 것이다. 작품은 대중과 호흡하는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되어야 하고, 미술관은 기증 작품으로 문화의 장을 형성한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유족은 본인이 기증한 작품이 소위 미술관을 대표하는 명화가 되어 오래오래 사람들의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것이다. PA  




전승보 관장





Special Feature No. 3 - 3 (인터뷰)

소장품, 미술관의 존립 기반이다

● 전승보 광주시립미술관 관장



Q: 2022년은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30주년이다. 기증작을 기반으로 세워진 미술관에 광주 연고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올해도 기증되었는데,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30년을 전망할 때 미술관의 소장품 활용 계획과 운영 방향을 말씀하신다면.


A: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 1992년 개관할 때 지역 인사들이 주도한 작품 기증 활동에 처음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미술관 탄생에 당시 미술계의 기대가 컸고, 전국 유명 작가들이 기증에 참여했다. 30년 기증 역사를 가진 미술관 소장품이 현재 5,270점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3,654점(하정웅 컬렉션 2,603점 포함)이 기증 작품으로 약 70%를 차지한다. 올해는 소장품 전수조사 중이며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작품 보수에 들어갈 예정이다. 전수조사와 더불어 소장품 분석과 분류를 통해 활용계획을 구체화하고, 이를 위해 소장품 수집 정책을 수립해 수집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소장품 활용과 운영 변화를 모색해 이번 가을부턴 일부 기증 작품(하정웅컬렉션)을 중심으로 온라인 VR 상설전시도 처음으로 시도한다. 달라지는 전시 문화를 적극 반영하고,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전 도록과 VR 및 AR을 추가 제작해 이를 개관기념전에 반영할 생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향후 미술관 확장 공사를 통해 개방형 수장고와 기증전시실 등을 만들어 기증문화의 확산 및 소장품 전시를 활성화해 나갈 것이다.



Q: 온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건희컬렉션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유산_이건희컬렉션 “그림으로 만난 인연”>전이 막 개막했다. 이중섭 선생의 ‘은지화’는 물론 역사와 가치가 뛰어난 작품들을 소장하고 시민들에 내보이게 됐는데 그 소회가 어떠신가. 또 이번 기증작의 면면이 미술 대중화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여기시는가.


A: 무엇보다 미술관의 존립 기반은 소장품인데, 그 의미는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공동체의 문화를 기억하고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에 있다 할 것이다. 이번 이건희컬렉션 기증은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만큼 기증문화 확산에 일대 분기점이 되리라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우리의 문화적 감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오늘이 있게 되었는지를 재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된 듯하다. 특히 지역을 대표하면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근대 작가들의 작품은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미술관 교육의 생생한 현장이 되었다. 지역 주민 가운데 이건희컬렉션을 보기 위해 미술관에 처음 왔다는 분도 있으니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이중섭 <은지화(銀紙畵)> 

1950 은지에 새김, 채색

 8.9×14cm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Q: 광주시는 지역 공공미술관 최초로 미술작품 기증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매년 100점 이상이 기증되는 문화 선진 도시이기도 한데, 현재 해당 제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또 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무엇인가.


A: 지난 2019년 1월 예규(例規)로 만들어진 기증자 예우는 미술 기증품 1점 이상 일반회원, 10점 이상 실버회원, 50점 이상 골드회원 명칭을 기증자에게 부여한다. 일반회원 이상의 경우 미술관 기증자의 벽에 이름을 명시하며, 실버회원 이상의 경우 기증감사패 증정과 미술관 전시 도록 및 홍보상품 발송, 골드회원은 1회에 한해 협의 후 미술관 기증 작품 전시를 개최한다. 또한 매년 1회 ‘기증자의 밤’을 운영해 기증문화를 홍보하고 전시 개막식, 문화행사 등에 우선 초청한다. 미술관 발행 소식지 발송,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한 기증자 세제 혜택 서류발급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시장이 기증자 뜻을 기리고 기증문화 활성화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예우가 있다. 기증자 예우는 기증자 본인으로 제한, 유고 시 그 효력이 상실되고 최대 20년으로 제한한다. 다만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연장하게 된다. 현재 코로나19 이후 전시 개막식이 없어지고 출입 제한 등 많은 어려움이 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기증자 예우에 관한 활동들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Q: 기증의 주요 관문인 수증심의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고 기증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가.


A: 미술품 기증은 우선 전제되는 조건이 없어야 하며, 그 대상은 조례 제11조에 의거하여 학문적·예술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근현대기의 국내외 우수 미술 작품 또는 연구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수증심의위원회는 매년 실시되는 소장품 수집 심의 시, 기증미술품 또한 위원회에 상정되며 가격평가위원회의 평가도 받게 된다.



Q: 여러 분관을 갖춘 미술관으로서 기증품을 비롯한 소장품들이 각각의 체제에 맞게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하다. 미술관이 기획전을 만들 때 그것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하정웅이라는 특정한 기증자가 미술관에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미술관 브랜드 확립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 여기시나.


A: 우리 미술관은 특별히 분관으로 하정웅미술관을 운영한다. 기증 컬렉션으로 이루어진 미술관인데 모두 2,600여 점의 기증 작품이 있다. 여기서 기증 작품들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기증자의 정신에 따라 광주지역청년작가 초대전과 지역공공미술관들의 추천으로 전국 청년작가들을 초대 전시한다. 또한 컬렉션 가운데 주제를 분류해 매년 주제 기획전을 열고, 이를 통해 작품의 가치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학술 세미나를 병행하고 있다. 최근 하정웅미술관은 디지털미술관으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하정웅 컬렉션을 기반으로 출발하는 ‘아시아디지털아트아카이브센터’를 건립추진 중이며, 향후 아시아지역의 관계 기관들과 교류하며 상호 협력하는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하정웅 선생의 미술품 기증은 초기 광주시립미술관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우리나라에 미술품 기증문화의 문을 열었다. 다만 아직 우리 문화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나 기증에 관한 정책적 제도들이 미비한 실정이다. 기증 정신을 잘 살릴 수 있는 미술관 정책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따라와야 한다. 게티 미술관(Getty Center)이나 고대이집트 미라 유물에서 18세기 호가드(William Hogath)의 그림까지 하나의 공간에 뒤섞여 전시된 존 소운 박물관(Sir John Soane’s Museum)이 기증자의 이름 그 자체로 고유명사화 된 것처럼, 광주시립미술관 또한 분관이지만 역시 고유 브랜드로 하정웅미술관이 안착됐다.




임직순 <포즈> 1978 캔버스에 유채 

90.7×72.3cm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Q: 우리나라 미술 기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기증 문화가 아직 덜 확립된 것이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여기시는지.


A: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술품 기증 관련 세제 혜택을 기증 시점의 작품 가격이 아닌, 구입 당시의 가격으로 환원시키는 정책으로 홍역을 치룬 바 있다. 단 1년 만에 미술품 기증이 미국 전역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혼비백산한 백악관과 의회는 ‘없던 일’로 만들었다. 이는 시민의 세금으로 구입해야 할 작품이 무상 기증으로 이루어지고, 부족한 재원의 공공미술관 경영에 도움이 되며, 컬렉터의 청년작가 발굴 지원이라는 ‘선순환 시스템’을 정부 정책으로 차단한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은 110%를, 여타 선진 국가들도 대체로 미술품 기증에 100%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도 숙고해야만 한다. 하지만 당장에 미술선진국들의 정책을 전면 도입하자는 성급한 주장도 경계할 일이다. 문화 정책은 오랜 세월 쌓여가며 만들어지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의 변화와 함께 여러 시스템이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미술품 상속세의 경우 물납제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미술품 유통의 음성화(지하 경제화)를 사실상 조장하는 정책은 개선되어야 하고 기증 문화를 연착륙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Q: 마침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방안’이 막 발표됐다. 이 행정의 곳곳에 문화 예술 기증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드러나는데, 한국 현대미술 주요 도시의 미술관 수장으로서 이 방안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허심탄회하게 밝히신다면.


A: 지난 몇 개월간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한 전국 30여 개 지자체의 이건희특별관 유치 경쟁도 생각해 볼 일이다. 덕분에 미술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전 국민이 다시 생각하게 한 공헌도 있겠지만, 지역민들에게 괜한 기대감만 부풀린 정치적 수사는 지양했어야 한다. 각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원하는 이유는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 유치로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된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를 기대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단지 빌바오가 미술관 하나로 문화도시로 번성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미 도시재생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한 부분으로 미술관 건립을 계획했으며, 미술관이 계획부터 개관에 이르기까지는 7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도시를 살리는 여러 방안과 검토가 필요한 과정들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남이 이루어 낸 결과만을 보고 달려드는 것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실패들을 답습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화를 경제 논리와 투자개념으로만 보는 인식으로는 세계적 관광객이 몰려드는 문화도시로 성장하는 데 한계를 노출할 것이다. 문화는 건축물을 짓듯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기증자의 뜻과 무관하게 서로 나에게 달라며 다투는 모습을 보인 것은 ‘나눔의 미학’이라는 기증자의 뜻에도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유족이 기증기관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증품을 가장 잘 보존·연구·전시할 수 있고, 필요한 곳이 어딘지에 대한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듯 지금부터는 문화선진국의 길에 들어설 준비를 할 때다. 지자체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수집과 전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미술관 건축물이 어떻게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는지, 시민들이 미술관을 도시의 자긍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볼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아무튼 이번 일로 전국 각 지역에 작은 규모라도 알찬 공공미술관들이 생겨나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의식수준이 높아진다면 이 또한 이건희컬렉션 기증이 안겨준 선물일 것이다.




오지호 <정물> 1963 캔버스에 유채 

60.3×39.6cm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Q: 끝으로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지역과 지역민들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어떻게 홍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A: 소장품 전수조사 이후 기증 작품들의 상설전시를 중심으로 AR, VR 등 온라인 전시를 확대해 팬데믹 이후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활동들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또한 현재 지역교육청, 컨벤션센터(김대중센터), 5·18재단 등에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장품 활용이 더욱 다양하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며칠 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변경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중진국 선두’라는 딱지를 드디어 떼게 된 셈이다. 다만 이즈음 챙겨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문화선진국은 어떻게 실현되는가?”라는 질문이다. 몇 년 전에 해외 선진국 문화 정책에 관한 보고서와 기증 관련 통계지표를 살펴보았더니, 우리와의 격차를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단순한 지표 지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숫자에 숨어있는 문화적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정책과 실현 가능성도 읽혀졌다. 물론 경제성장과 복지,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각종 통계지표들과 달리 문화적 성숙도는 통계로만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이제 경제적인 분야의 통계나 수치 이면에 우리 사회의 전 영역을 촘촘히 채워 넣는, 정신적이고 의식적인 부분에서도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야 하며, 경제 강국에 걸맞은 문화적 수준과 이를 담보해주는 것들에 대해 차분히 살펴볼 때가 되었다. PA




이응노 <작품> 1974 천에 채색 

201.63×123cm 이미지 제공: 광주시립미술관





Special Feature No. 3 - 4 (인터뷰)

미술관 미래 설계의 기준

● 최은주 대구미술관 관장



Q: 대구는 예술에 대한 긍지가 워낙 높은 도시이지만 유독 관장께서 부임하신 이후 미술 기증 소식이 증가한 것 같다. 행정과 세제 혜택이 뚜렷하게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기증이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


A: 2020년 ‘대구미술관 수집 5개년 계획’ 발표 이후 같은 해 고(故) 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 105점, 작가 및 소장가 70점 등 175점의 작품을 기증받았고, 올해 상반기 223점을 기증받았다. 특히 대구 출신 패션 디자이너 박동준 선생의 유증은 지역사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의미 있는 기증으로 이어졌다. 2021년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이건희컬렉션 기증 외에도 대구,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대량 기증이 줄을 이었다. 2020년 권정호, 최학노, 서근섭, 공성훈 작가 등의 기증도 굉장히 가슴 벅찬 일이었는데, 올해엔 한국을 대표하는 수묵화가 서세옥 화백의 작품 90점, 최만린 조각가의 작품 58점, 한운성 화백의 작품 30점 기증이 연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기증된 작품 숫자만 400점이 넘는다.


기증에 대한 행정과 세제 혜택이 뚜렷하게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작가가 작품을 계속 생산하다 보면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러한 취지에서 생존 작가들은 대표작들을 모아 미술관에 기증하고자 한다. 이때 ‘왜 미술관에 기증하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우선 미술관은 수장고, 항온항습, 기록 시스템 등을 통해 작품의 관리·보존을 잘하리라는 믿음이 있고, 수집된 이후에는 전시, 교육, 출판,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과 작가의 이름이 알려질 수 있으리란 기대도 그 이유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유족에 의한 기증은 조금 현실적인 요인을 갖는다. 


대개 유명 작가가 작고하면 상속세 문제가 작품과 연결되어 대두된다. 상속세는 말 그대로 후손들한테 상속할 때 발생하는 세금이니 상속세 납부 전, 공공미술관 등에 기증하면 상속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기관의 신뢰도다. 미술관은 ‘기증자의 아름다운 뜻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기증자의 명예를 어떻게 하면 잘 빛내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데, 대구미술관의 기증자 프로그램, 기증 작품 활용 등에 있어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기증이 연이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기증은 미술관 작품수집위원회, 작품가치평가위원회 등의 아주 엄격한 작품 수집 절차를 거쳐 소장하게 된다.




최은주 관장




Q: 앞서 소장품 수집 5개년 계획을 통해 2024년까지 소장품 3,000점을 목표하셨다. 올해 상반기 223점 기증으로 목표에 한 발 더 가까이 갔는데, 현재 소장품 기획 및 연구 방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A: 부임 당시 대구미술관은 전시 1·2팀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 소장품 전담부서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큐레이터들이 전시기획에만 매달리는 상황이었다. 내가 경험한 미술관 업무 영역은 소장품 업무가 제1순위였기 때문에 오자마자 소장품 연구팀을 만들어 팀장, 3명의 학예연구사, 코디네이터, 레지스트라 등을 배치했다. 이후 대구미술관 소장품 관리가 좀 더 전문화되어 5년 안에 3,000점의 소장품을 목표할 수 있게 됐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 상황이나 어느 시즌 기획전이 없을 경우, 소장품 활용 전시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3,000점을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5년 안에 3,000점 소장품 수집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해 구입은 140-150점, 기증은 200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와 올해는 기증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기증 목표 숫자는 채울 수 있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소장품 매입은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다. 2022년부턴 매입 부분도 예산을 더 확보해 5개년 계획에 맞게 소장품을 수집해나갈 생각이다.


5개년 계획에는 소장품 목표치와 함께 작가별, 연도별, 경향별과 같은 소장품 분석 자료도 함께 들어가 있다. 분석표에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영역에서 부족한 부분, 혹은 더 확장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아주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드러나 있는데 ▲대구 근현대미술 주요 작가 작품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주요 사조 및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국제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작가의 작품 ▲대구미술관 자체 기획전 중에 소장 가치가 있는 주요 작품 ▲현대적 실험성이 돋보이는 가능성이 전망되는 젊은 작가의 작품 등 수집대상 우선순위에 따라 대구미술관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 나갈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소장품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월 선보였던 <때와 땅>, 10월에 선보일 <모던 라이프>는 대구미술관 소장품을 의미 있게 공개하는 전시다. 특히 <때와 땅>은 대구미술의 맥과 대구 근대미술 소장품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소장품 수집, 전시와 함께 이와 연동한 체계적인 아카이브 구축도 중요한 부분이다. 올해 아카이브 센터를 오픈하고 수집예산 확보뿐 아니라 수장 시설 등을 고려해 소장품을 단계적, 전략적으로 수집할 계획이다.



Q: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에 기존 미술관 소장품도 다양하게 포함됐다. 전시 맥락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이건희컬렉션이 대구미술관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시가 만들어질 수 있지만 대구라는 도시가 가진 한국 근대미술에서의 중요성이 이번 특별전과 잘 어우러진다면 기증자의 뜻이 훨씬 더 선양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증작품 21점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구 근대미술에 있어 중요한 작가들 작품이 다양하게 포함됐다. 대부분 대구에서 출생했거나, 대구에서 활동했거나, 대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다.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은 기증작품 21점과 대구미술관 소장품 및 대여작품 등 총 40점으로 구성했는데 작품을 비교하며 볼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해 그 재미가 상당하다. 가령 이건희컬렉션 중 서동진 작가의 1924년 수채화 자화상과 대구미술관 소장품 중 1927년 그려진 서동진 선생의 청년기 자화상을 비교해 본다거나, 김종영 작가의 돌 작업을 드로잉과 목조각 작품과 함께 비교해 보는 과정 등은 참 흥미롭다.


전시에서는 작품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故) 이건희 회장의 일대기와 삼성이라는 기업이 대구와 맺은 연관성을 보여주는 영상 자료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 기증의 의미, 참뜻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컬렉션에는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고 싶었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열악한 소장품 구입예산으론 소장하기 힘든 작품들이라 이건희컬렉션이 들어왔을 때의 흥분과 설렘을 잊을 수 없다. 또한 최근의 여러 기증은 기존의 대구미술관 소장품과의 관계성을 찾는 작업과 더불어 대구미술관이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미술관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에 대한 의식도 새로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소장품과 함께 미술관, 큐레이터들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유영국 <작품> 1973 캔버스에 유채 

133×133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Q: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을 지역과 지역민들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어떻게 홍보하고 활용할 계획이신가.


A: 이전에는 한 기관의 소장품이 되면 전시 형식 외에 일반인들에게 공유, 알려질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엔 개방형 수장고뿐 아니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소장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구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전엔 홈페이지 게재 등 소장품을 소개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만 택했다면 지금은 영상, 소식지, 아트상품 제작, 렉처 콘서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장품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인성컬렉션 특별전을 오픈하기 전 21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해 채널에 소개했는데 1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았다. 좀 더 친절한 맞춤별 전시, 작품 소개 자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Q: 개인이나 기관이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그리고 기증의 주요 관문인 수증심의위원회 구성과 기증품 선발 기준, 기증자에 대한 예우와 혜택은 무엇인가.


A: 작품을 선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대구미술관 작품수집심의 위원회는 선정심의위원회 7명, 평가심의위원회 3명으로 구성된다. 당연직인 본인(대구미술관장) 포함 미술 관련 분야 전문가 10명 이내로 구성되어 있고 임기는 2년으로 1회 연임 가능하다. 대구미술관 수집 절차는 기증의사 → 기증의향서 작성 → 작품제안서 작성 → 작품수집심의위원회의(1·2차) 개최 → 기증 여부 결정 → 기증협약서 체결 및 기증확인서 발급→ 작품 입고 순으로 이루어진다. 선정심의위원회는 수집 여부를 결정하고 가치평가심의위원회에서는 상정작품가 적정여부 평가와 매입가격, 작품가치(보험가)를 확정하는 역할을 한다. 각각의 심의위원회의 의결은 전체 심의위원 3분의 2 이상 출석, 출석위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일 경우 가능하다. 기증자에게는 기증확인서, 미술관 전시 무료관람 및 각종 행사 초대, 기증자의 벽에 기증자 명패 설치 등과 같은 예우로 감사함을 전하고 있다.



Q: 미술관의 굵직한 기획 설계 시 기존 소장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가.


A: 훌륭한 큐레이터로 활동하려면 일단 자기가 몸담은 기관의 소장품은 꿰뚫고 있어야 한다. 소장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기획할 경우 휘발성 짙은 테마전으로 가기 쉽다. 소장품을 알고 있는 경륜 있는 큐레이터들은 어떤 주제를 발현하고자 할 때 소장품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예산 절감,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지만 전시를 통해 소장품과 미술관의 가치를 높인다는 선순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구의 1920-1950년대를 조망한 소장품 연계 전시 <때와 땅>을 예로 들어 보면, 대구미술관 소장품만으로는 주제를 탄탄하게 보여 줄 수 없었다. 여러 해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근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의 근대소장품을 파악하고 있어 넓은 스펙트럼의 전시를 구성할 수 있었다. 


사실 큐레이팅 작업이라는 건 어떤 주제를 위해 교집합 공집합을 만드는 작업이다. 결국 미술품을 통해 기획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를 최대한 잘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소장품을 아는 큐레이터, 즉 자기 소장품뿐 아니라 다른 기관 소장품까지도 알고 있는 큐레이터와 소장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큐레이터의 차이는 굉장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구미술관 구성원들이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전문 분야 소장품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독려해나갈 생각이다.




이쾌대 <항구> 1960 캔버스에 유채 

33.5×44.5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Q: 국내 미술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해외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 활성화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끝으로 관장으로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여기시는가.


A: 외국의 경우 가장 기초적인 미술에 대한 이해는 ‘미술관은 공공의 영역’, ‘미술 작품은 공공재’로 생각해 기꺼이 미술품을 기증하고자 하는 문화가 기저에 깔려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지난 30년간 한국 미술계 동향을 살펴보면 미술품을 소장하는 일이 비밀스러운 축재수단(蓄財手段)으로 알려져 숨겨놓기 급급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개인소득 3만 불 시대, 국내에도 기증 의사를 밝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기증문화가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적인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신이 모은 컬렉션을 사회로 환원할 때 갖게 되는 만족감이 더욱 커질 수 있도록 기증 문화가 꽃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기증자 우대를 통해 충분한 명예 등이 안겨지면 좋은 사례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의 사례 중 유럽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상속세의 현물 납부다. 이것은 유족들의 상속세 측면뿐 아니라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피카소(Pablo Picasso) 사후, 유족들이 상속세 문제로 많은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는데, 이 작품들이 모여 국립피카소미술관(Musée Picasso)으로 탄생한다. 후손이 없었던 뭉크(Edvard Munch)는 노르웨이 오슬로시에 자신의 전 작품을 기증했는데 이를 기회로 뭉크미술관(Munch Museum)이 만들어져 노르웨이 가장 중요한 미술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문화가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정책 입안자들의 적극적인 세제, 법제 부분의 보완이 필요하다. PA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