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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9, Aug 2021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

위그가 만든 초신성

우리 편집부 데이터베이스(DB)에 ‘피에르 위그’를 검색어로 넣어보곤 그 결과에 자못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잡지가 발행된 지난 10여 년 간, 피에르 위그는 현대미술 콘텐츠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 작가 중 하나이며 역대급으로 스펙터클한 작품을 만든 작가인 것에 비해 우리 DB엔 지나치게 소소한 정보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너무 거장이어서, 모두가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인물이라서, 오히려 잡지가 집중적으로 보도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퍼블릭아트」에게 피에르 위그의 소식은 딱 그런 케이스로 분류됐던 모양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이미지 작가, Hauser & Wirth 제공

'The Third Memory' 1999 Film, double projection 9min color, sound, paper archives 22min Courtesy the artist © Pierre Huygh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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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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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위그의 작품은 2001년 만들어진 <백만의 왕국들(One Million Kingdoms)>이다. 색은 명확하게 대비되고 화면이 단순한 이 애니메이션엔 황폐한 지형을 힘없이 헤매는 소녀가 등장한다. 작품 설명을 면밀히 확인하고서야 소녀가 있는 곳은 변화하는 달이며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의 육성이 소녀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녀의 이름은 ‘안리(Annlee)’다. 외형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는 그녀를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와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리암 길릭(Liam Gillick), 티노 세갈(Tino Seghal)의 작품에서도 마주쳤다.     




<One Million Kingdoms> 2001 

Animated film 6min Courtesy the artist 

© Pierre Huygh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지금은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이 지극히 관심 갖는, 원본성과 저작성에 대한 포스트 모던한 문제에 일찍부터 집중했던 위그는 1999년 파레노와 함께 일본의 K-works사에서 가장 저렴한 만화 캐릭터를 골라 그 판권을 구매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캐릭터가 바로 ‘안리’다. 두 작가가 구입할 당시 2차원의 캐릭터였던 ‘안리’는 위그와 파레노에 의해 3차원의 이미지로 재가공 됐다. 그리고 각자의 작업에 이 캐릭터를 활용함은 물론 다른 작가들에게 ‘안리’를 무료로 배포하고 사용을 독려함으로써 작품의 저작권과 사용권을 해체하는 실험을 했다. 실제로 앞서 나열한 여러 걸출한 작가들은 ‘안리’를 이용해 저마다 다른 콘셉트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 일련의 상황이 21세기가 막 도래하던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활발하게 진행됐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 치 앞 상황도 분간하기 어려웠던 그때 작가들 앞에 전면화된 불안정성과 유동성, 우발성이 이렇듯 특정한 방식으로 대변됐던 게 아닐까 싶다.  


디지털 시대의 현실과 허구의 관념을 탐구하며 독창적이고 역동적 작품들을 완성하는 위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와 비디오 설치작품에서부터 대중적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든다. 그뿐 아니라 인형극장과 남극탐험을 기록한 비디오 작품까지 형식을 가리지 않는 그에게 <제3의 기억(The Third Memory)>(1999)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한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다른 스크린에서는 인터뷰가 상영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인터뷰에선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자 은행 강도인 존 요토비치(John Wojtowicz)가 당시를 기억하며 설명한다. 이 작업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와 30년 후 같은 인물을 통해 촬영한 영상이다. 그리고 위그는 작품 제목에 드러나는 총 3개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Retrospective exhibition views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os Angeles, 

November 2014 – February 2015  Courtesy the artist 

© Pierre Huygh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Photo: Ola Rindal




“제1의 기억: 요토비치의 은행 강도 사건 당시의 기억 / 제2의 기억: 영화에서 재연된알 파치노의 연기 / 제3의 기억: 30년 후 요토비치가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의 범행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작품은 말한다. 이 세 가지 기억 중 과연 어느 것이 사실일까. 1972년 8월, 체이스 맨해튼 은행에 삼인조 강도가 들이닥쳤다. 요토비치가 자신의 동성 연인의 성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고자 로버트 웨스틴버그와 살바토르 나투릴레와 합심해 은행에 침입한 것이다. 한데 공범 웨스틴버그가 은행을 털기 전 떠나는 바람에 강도들은 수세에 몰리게 됐다. 그러자 요토비치는 확성기를 가지고 경찰과 협상을 벌이는데 확성기를 통해 그의 이야기가 거리에 퍼지자 군중이 몰려들어 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결국 상황은 FBI가 인질들을 데리고 있는 나투릴레를 사살하고 요토비치를 생포하며 종료된다. 이후 『뉴욕타임즈』 등이 이 사건을 다루며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미국의 영화감독 시드니 루멧(Sidney Lumet)은 알 파치노(Al Pacino)를 주연으로 이 실화를 영화로 완성했다. 영화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는 1976년 개봉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알 파치노의 열연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초로 동성애와 성전환수술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영화는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다양한 평가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위그는 사건의 30년 뒤 인물의 기억을 재조명하며 실제 사건의 주인공에게 범행 장면을 되풀이시키고 루멧 영화 속 알 파치노의 연기와, 요토비치가 재현하는 모습을 두 개의 채널에 병치해 작품을 만들었다. 위그는 요토비치로 하여금 알 파치노가 연기한 은행 강도 장면이 본인의 실제 강도 행위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설명하게 했는데, 요토비치는 자신의 기억과 영화의 기억을 혼동한다. 이로써 ‘제3의 기억’이 생산된 것이다. 




Exhibition view from <De-Extinction> 2014 

Film, colour, stereo sound 12min 38sec  Courtesy 

the artist; Hauser & Wirth, London 

© Pierre Huygh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를 드러내며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비선형적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위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존의 영화를 전유하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dtage)’ 개념이다. 다른 이에 의해 촬영된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상대적 개념 ‘파운드’와 특정한 사건을 담은 장면이나 화면을 의미하는 ‘푸티지’가 합쳐진 용어는 말 그대로 기존의 이미지를 재사용하여 새로운 영상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제작 및 편집 기법을 말한다. 2014년 발표된, 위그의 또 다른 걸작 <인간 마스크(Human Mask)>는 그의 또 다른 작업 형식을 대변한다. 실제 상황에서 영감 받은 이 19분 남짓의 영화는 자연 재해와 인재로 황폐해진 일본 후쿠시마 인근의 황량한 풍경을 훑으며 시작된다. 2011년 후쿠시마의 실재를 관망하는 것처럼. 골조만 남은 건물, 깨진 유리문, 쌓인 폐가전제품을 비추던 카메라는 폐허 속 버려진 식당에 들어가 유일한 생존자로 보이는 사람에 초점 맞춘다. 어린 소녀의 옷을 입은 사람은 그런데 사람이 아니다. 사람의 마스크를 썼을 뿐 몸에 털이 잔뜩 난 정체모를 포유류일 뿐이다. 이 디스토피아적 환경에서 태엽과 톱니바퀴로 구동하는 오토마톤 같은 주인공은 반복되는 역할에 갇힌 것처럼 묵묵히 존재한다. 아니 견디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휴먼 마스크 속 반짝이는 눈빛은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이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엔 무수한 균열이 있다고. 단조로움과 의례적 행위의 반복, 파국적 미래의 가능성,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는 어떤 힘을 떠올리게 하는 위그의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무섭다. 그의 온고잉 시리즈 ‘UUmwelt’는 어떤가. 201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에서 위그는 특정한 이미지와 설명을 골라 각 관람객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상대가 마음속으로 이 이미지를 파악할 때 fMRI 스캐너로 뇌 활동을 캡처하곤 생성된 테이터를 심층 신경망에 전달해 모음으로써 추후 그것들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각각이 구상한 시각적 표현들은 갤러리 전체를 에워싼 LED 스크린에 표시됐고 빛, 온도, 습도, 곤충의 존재, 방문자의 시선을 감지하는 센서에 의해 그 이미지들은 연속되거나 멈추기를 반복했다.      




Stills from <Human Mask> 2014 

Film, colour, sound 19min Courtesy the artist; 

Anna Lena Films, Paris © Pierre Huyghe;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공간의 조건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서로를 변화시켰고 위그가 만든 인간과 동물 그리고 기술 플레이어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형성했다. 『아트리뷰』는 이 작품에 대해 “(위그)는 허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그가 창조한 현실은 불안할 정도로 환상적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피력했다. 위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통한 심미적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고대 희랍의 비극처럼 공포와 불안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오염된 사회를 정화하는 심리적 기제다. 혼돈 속의 질서와 일상공간, 비현실적 공간 사이의 문턱을 위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확인시키고 경고한다. PA




Pierre Huyghe  

Photo: Ola Rindal




피에르 위그는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디지털 시대 현실과 허구의 관념들을 탐구하는 영화, 비디오, 음향, 애니메이션, 건축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발표한 위그는 2002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휴고 보스 상’을 수상했다. 2017년 ‘뮌스터 조각 페스티벌’에서 그는 폐쇄된 아이스링크 내부의 콘크리트 바닥을 절단해 흙을 드러나게 하고 물고기, 벌, 소라게 같은 생물들을 서식하게 만든, 개방된 형태의 구조와 상황이 집약적으로 구축된 작품 <After Alife Ahead>를 선보여 큰 반향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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