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180, Sep 2021

고뇌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의 노래

U.S.A.

Niki de Saint Phalle
Structures for Life
3.11-9.6 뉴욕, MoMA PS1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것이 예술이다. 하지만 예술은 때때로 우리에게 환희를 선사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더욱 많은 이들과 함께 소통하고자 한 미국계 프랑스 작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본능적이고 강렬한 색감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작품은 충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이다. 자유로운 환희의 에너지와 더불어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력은 생팔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MoMA PS1 제공

'La femme et L’oiseau fontaine' 1967-1988 Painted polyester resin 349.9×300×209.9cm © 2021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정재연 미국통신원

Tags

뉴욕 현대미술관(MoMA) PS1에서 열리는 <Structures for Life>는 1960년대 중반부터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건축, 조각, 설치, 미디어, 드로잉, 주얼리 등 약 200여 점의 작품을 아우른다. 미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그의 첫 대규모 전시로, 건축과 공공미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시는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한 작가의 인도주의적 유토피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미술의 역사나 기존의 관습을 완전히 배제한 채 불가사의한 것들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신화를 순수하게 창조한 생팔. 전시를 통해 세상을 품겠노라는 그의 관대함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추상적인 예술인 건축과 단순한 기하 형태로 환원되는 조각의 만남은 오히려 미술 본연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완전체’일 것이다. 생팔은 늘 건축적인 무언가를 하길 갈망했고 꿈꿔왔다. 그래서 그의 조각 스케일은 꿈처럼 점점 커갔다. 장 팅겔리(Jean Tinguely)와 함께 1967년 최초의 공공미술 작품으로 선보인 <환상적인 낙원(Le paradis fantastique)>을 시작으로 그는 공원과 놀이터에 여러 대형 작품을 설치했다. <환상적인 낙원>은 몬트리올에서 뉴욕 센트럴파크로 옮겨와 1년 동안 전시되었는데, 할렘과 인접한 공원 부근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당하는 이웃들에게 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다. 인종 간의 위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던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었다. 이후 1968년 첫 건축 프로젝트인 ‘새의 꿈(Le rêve de l’oiseau)’은 그의 상징적인 작품 <나나(NaNa)>가 대형 조각으로 설치되면서부터 시작됐다. 


<Maquette for Le dragon de Knokke> c. 

1973 Painted polyester 47×132×122cm  

© 2021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Photo: Katrin Baumann




‘생팔’ 하면 풍성한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볼록한 배를 가진 여성의 나체 연작 ‘나나’가 떠오를 것이다. 그만의 독창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여성은 희망이자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나’는 오늘날과 다르게 남성 중심 사회에서 폄하되고 있는 여자의 속어다. 하지만 작가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과 정반대로 유쾌하고 당당한 거침없는 여성으로서의 ‘나나’를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각각의 ‘나나’들은 당당하고, 멋지고, 아름다웠다. 가장 중요한 건 그의 권리를 위해 성의 위계 구조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전시장에 진열된 작품들은 눈이 부시게 생생하고 선명한 색감들로 가득하다. 밝고 재미있는 색감들의 드로잉과 조각들은 그만의 즐거움을 관람객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고 전시장은 놀라움의 연속인 놀이터와 같다. 


생팔은 아이들을 위한 첫 번째 조각으로 <골렘(Golem)>(1972)을 디자인했다. 입으로 어린이들을 뱉어내는 듯 익살스럽게 보이는 괴물 모양의 혀는 미끄럼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품은 도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흙장난을 하며 놀았는데, 놀이 기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 작품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고풍스럽고 비싼 작품에 신성함은 찾아볼 수 없다. 1973-1975년에 지어진 <드래곤(Le Dragon)>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으로 내부에 숨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인 놀이 공간과 역시 유머러스한 형상의 긴 혀는 길게 늘어져 미끄럼틀로 만들어졌다. 예술가의 손으로 빚어낸 ‘아이들을 위한 집’은 거실, 부엌, 화장실 등 모든 것이 갖추어진 환상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인간적이고 유쾌한 건축에 대한 그의 시도는 완전한 성공을 이루었다.


동남아시아의 전설 혹은 모하비 사막에서 얻은 그의 환상적인 동물 우화집은 우리에게 달콤한 공포를 제공한다. 1955년, 생팔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i Cornet)의 구엘 공원을 방문한 후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가우디의 포부와 거대한 스케일에 필적한 만한 자신만의 공원을 지을 것이라는 야망을 품었다. 결과물은 1979년에 시작해 1998년 대중에게 공개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됐다. 로마 북쪽 토스카나에 지어진 타로 공원(Tarot Garden)이 바로 그것이다. 코뿔소, 타조, 보아뱀, 거미, 이구아나 등의 괴물은 그가 이야기하는 소재들의 바탕이 된다. 뱀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유년기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공포심과 다양한 경험이 더해진 주제이기도 하다. 




<Tarot Garden> Garavicchio, Italy © 2021 

FONDAZIONE IL GIARDINO DEI TAROCCHI 

Photo: Peter Granser




공원은 생팔의 완전한 상상력을 지원해주는 타로카드의 그림과 상징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22점의 대형 조각으로 이어진다. 가우디 건축의 독특한 형태인 동그란 모서리와 모자이크 방식의 표면처리가 동일하게 적용했다. 빛, 색상, 정신, 판타지 그리고 물과 기쁨의 정원이다. 직각이 없는 형태 안에서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물결 모양은 그가 생각하는 ‘자연’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럼으로써 작품은 산과 나무가 어우러진 곳, 호수 등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있다. 작품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사이로 바람과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 같았다. 금색과 은색의 모자이크 도입은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공원 내 작품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존재다. 생팔은 자신의 예술 법칙을 고수하면서도 전통과 현대의 기법을 혼합한다. 손으로 반죽하여 구워낸 도자기들에서 옛 이탈리아의 전통을 계승한다. 상이한 재료들은 상충하면서 색들은 서로 반사된다. 


팅겔리와 함께 <스트라빈스키 분수(Fountain of Stravinsky)>는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근처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설치된 것으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에게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하트, 뱀, 죽음, 사랑, 불새, 코끼리 등 총 16점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생명을 지닌 듯 음악적 율동감에 맞춰 물줄기를 뿜어지게 만들어졌다. 조각들이 음악 소리와 물의 순환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작품의 유기적인 생기를 불어넣기 위함인데 마치 서커스나 카니발을 연상케 한다. 예루살렘의 어린이 동물원에 세워진 조각공원 <노아의 방주(Noah’s Ark)>(1994-2000)도 일관되게 일반 대중들의 삶 속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곤충과 딱정벌레, 도마뱀, 설화 조각 등으로 그림 이미지와 부적 모양의 글자를 만들었다. 


화려한 색채의 조각과 함께 유머러스한 표현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들은 대중과 그의 예술을 쉽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의 작품은 앞에서 어렵게 해답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고, 뒤로 물러서거나 움츠러들지 않아도 됐다. 그저 그만의 독특한 조형 방식과 화려한 색감의 작품들이 마냥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1950-1960년대 정치·사회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던 전반부 작업보다 긍정적이고 유쾌함이 드러나고, 깊고 힘 있는 감정들을 흥겨움으로 상징화하면서 생팔은 역설적인 표현을 지속해 나갔다.




Visitors entering <Hon> 1966 

© Hans Hammarskiöld 

Heritage  Photo: Hans Hammarskiöld




1980년대 이후 생팔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관심을 옮겨 여성의 권리에서부터 기후 변화와 에이즈 예방 및 교육 활동 등에 참여했다. 여러 드로잉과 글귀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작업 <에이즈: 손을 잡는다고 걸리지 않아요(AIDS: You Can’t Catch It Holding Hands)>(1986)는 6개 언어로 번역되어 책으로 출판됐고 에이즈 예방에 박차를 가했다. 인상 깊었던 드로잉은 에이즈 감염경로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침이나 악수, 모기, 헌혈, 컵으로 물 마시기, 목욕탕 및 수영장을 함께 사용한다고 에이즈에 걸리지 않으니 외로움에 홀로 있는 친구들을 찾아가서 안아주라는 내용이었다. 


생팔의 오랜 관심은 늘 이미지와 텍스트였다. 그래서 그는 책, 자서전 그리고 전시 카탈로그를 지속해서 제작했다. 평생 셀 수 없을 정도의 편지를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썼고, 아이처럼 꾸밈없이 낙서하듯 자유롭게 드로잉을 했다. 드로잉 선의 자유로움은 어린아이들의 이상처럼 순진하고 희망과 생기가 가득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만의 자유롭고, 새롭고, 독창적인 표현과 보는 이를 의식하지 않는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 억압적인 권력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생팔과 작품의 관계는 비평적이거나 분석적이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다. 전시에서 1960년대 초반 ‘사격 회화’ 같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그의 성향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삶의 모순을 자유롭게 다룰 줄 알고 부정적인 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줄 아는 강철같은 정신의 소유자 모습만 보일 뿐. PA




Niki with <Clarice Again> at her front garden, 

outside of Paris, France 1981 Gelatin Silver Print 

31×21cm © Michiko Matsumoto 

Photo: Michiko Matsumoto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어와 텍스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하였고, 2016-2017년에는 문화역서울 284 <다빈치 코덱스>전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현재, 뉴욕 첼시의 작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