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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0, Sep 2021

강문석
Kang Moonseok

풍경을 매개하고 바람을 품는 입체 드로잉

강문석의 작품엔 재현과 표현이 공존하지만, 굳이 한 쪽에 힘을 실어 구분을 지어야 한다면 단연 표현이 압도적이다. 세상에 대한 묘사를 입체적 효과를 통과시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은 작가는 현대미술의 유행에 상관없이 본인이 잘하는 일을 안다. 철사를 이어 볼륨을 상상하게 하는 어떤 입체적 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재현에 방점을 찍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형상은 파편적이거나, 사라지거나, 비어있다. 재현이 목적이 아닌, 철사나 구리 선을 이용한 어떤 표현이 목적이라는 데 점차로 생각이 미치는 이유다.
●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 이미지 작가 제공

'초원-달리다' 2019 동, 용접 170×2,260×70cm 5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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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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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석이 철사나 구리를 용접한 달리는 말의 형상으로 명성을 얻긴 했지만, 2005년 첫 번째 개인전은 대리석이나 현무암을 깎은 석조물만 선보였었다. ‘욕망(desire)’이라는 주제로 만든 작품 중 현무암으로 제작된 파묻힌 손목의 형상은 제주도립미술관 야외정원에서 늘 확인할 수 있다. 홍석으로 만든 토르소나 현무암을 깎은 신체상 역시 그의 표현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같은 해 다른 전시에서 선보인 오석을 깎은 손의 형상이나 브론즈로 뜬 손의 일부는 충분히 호소력을 가진 표현력을 자랑한다. 전체를 상상하는 것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일부(부분)만이 가질 수 있는 은유의 힘일 수도 있고,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되레 강조하게 되는 지점일 수도 있고, 부분만을 보여줘도 충분히 힘을 가지도록 연출하는 조형 능력의 힘일 수도 있겠다. 


이 덩어리졌던 부분은 선으로 변주돼 여전히 여백과 함께 신작을 소개한다. 같은 부분을 통해 나머지를 유추하게끔 유도하는 방식을 평론가 김유정은 ‘연상 조각’이라 명명하고, 평론가 이경은은 ‘드로잉 조각’이라 했다. 2000년대의 작품은 연상 조각에 가깝고, 2010년 이후의 조각은 드로잉 조각에 가깝다. 연상 조각에서 드로잉 조각으로 이동한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2000년대의 석조작업은 철이라는 재료를 접하기 전에 작가의 표현능력과 작업관을 볼 수 있어 귀한 전작들이다. 




<숨- made in U.S.A.> 

2018 동, 용접 20×130×20cm




2010년을 넘으며 작가는 인체가 아닌 말을 소재로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철사를 용접하며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철사는 선이 되고, 부분적 형상들을 표현하면서 표현 안 된 나머지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유추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경은이 말한 드로잉 조각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2011년에 가진 개인전의 제목은 <초원>이었다. 이때 처음 소개돼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금 제주도립미술관의 야외공간에 설치돼있는 2m가 넘는 실물 크기의 말은 철사 가닥이 하나하나 모여 든든한 말의 육중함을 가지고 서 있다. 


이 작품명 역시 <초원>이었다. 같은 전시에 철판과 철사를 잇대어 얼룩말의 뒤태(정확히는 뒷다리와 엉덩이, 꼬리)만 잘린 형상을 세 점 소개했다. 이 작품의 제목 또한 <초원>이었다. 체스판 위에 잘 만든 흰색과 검은색의 체스 말이 있다. 전시장 바닥은 체스판으로, 체스 말은 140cm 정도의 FRP(fiber reinforced plastics)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의 제목은 다시 <초원>. 아마 말 자체보다는 말이 뛰노는 초원이라는 공간을 연상하게 만드는 작품명은 복선으로, 차기 전시에서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2016년에 열린 개인전에서 작가는 <초원_달리다>라는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 바닥에 모래 트랙을 만들고 그 트랙을 달리는 4마리의 말이 달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전시장 안에서 진지하게 경주 중인 말들은 실제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몸통은 몇 줄의 철사와 구리 선만으로 이어져 있고 말발굽과 얼굴 정도가 정교하게 표현돼 있는데, 이 작품들은 강문석이 재현보다는 표현에 주력하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하는 대표작들이다. 갤러리 안에서 초원을 달리는 말들이 일으키는 바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확실한 표현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2019년 개인전의 제목은 <철마, 오름을 달리다>였다. 더 농밀해진 표현력은 바람도 단단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한다. 뛰어오르는 말과 달리는 말은 모두 바람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 바람이 부는 초원이나 오름에서 더 빛을 발할 듯한 작품들은, 화이트 큐브에 초원에서 부는 바람을 끌어오고 있었다. 




<용(俑)> 

2008 철, 용접 120×150×210cm




두 개의 전시 사이를 잇는 2013년에 갤러리노리에서 가진 개인전은 조금 더 특이한 지점이 있다. 제목은 여전히 <초원_달리다>인데, 한 점의 말이 전시장 한가운데 놓여있고 그 주변의 말들은 발굽 부분만 허공에 매달려 있다. 자연스레 하늘을 달리는 말을 상상하게 하는 연출이었다. 자연을 텅 빈 캔버스 삼아 입체로 드로잉을 하는 작가는, 작품을 매개 삼고 풍경을 시야에 가둔다. 가능한 범위의 시야 전체가 프레임이 되고, 작품은 관점이 이동함에 따라 변화한다. 자연 안에서 초원을 뛰놀길 상상하며 만든 작품은 어느 위치에 이 입체 드로잉을 가져다 두든 배경과 작품이 어우러지게 되었다. 뚫려 있는 공간이 여백을 자연스레 이어주기 때문이고, 새로운 창작물의 표현과 움직임이 실제 창조물에 가까울 정도라 어색함이 없어서일 것이다. 표현력은 돌이든 철이든 재료에 상관없이 신묘하게 발휘된다.


재현에 가까운 표현 외에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주제는 제주 4·3 사건이다. 매년 ‘4·3 미술제’를 개최하는 탐라미술인협회의 회원으로서, 2001년부터 20여 년이 넘는 시간 ‘4·3 미술제’를 위한 신작을 제작하기를 계속했다. 4·3 작업만으로도 별도의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졌다. 2006년과 2009년에 발표된 <한(恨)평>이라는 작품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마음(心)속에서 어긋나(艮) 한스러운 상황이라는 ‘한’이라는 한자에 넓이를 재는 데 쓰이는 단위인 평(坪)을 붙여 제시한 작품은 유골이다. 2006년 작에서는 제주석을 깎은 두개골 위로 철로 만든 나무 그림자를 드리웠다. 작품이 차지한 공간은 한 평 남짓이었다. 동명의 2009년 작에서는 돌과 뼈가 제주석과 철을 사용해 설치됐다. 3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표된 작품의 두개골과 몸의 뼈를 이으면 작품이 완성될 듯하다. 




<초원> 

2011 FRP 가변설치 45×73145cm 2ea




2008년 작품 <용(俑)>에서는 철제용접으로 짚으로 만든 우비를 입고 창살을 든 용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4·3 사건 당시 용병으로 나가 싸웠던 민간인의 모습을 작가 특유의 표현법으로 해석한 작품인 듯한데, 제목에 목우 용, 허수아비 용, 아프다 용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를 함께 쓴 점이 흥미롭다. 텅 빈 조각은 허수아비 같기도, 4·3의 아픔을 내포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해석을 이끈다. 2010년 ‘4·3 미술제’에 소개한 <압박>은 갑자기 석조로 돌아간 작품인데, 돌을 휘감은 노끈과 발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2013년 작 <채워지지 않는 그릇>은 대리석을 곱게 깎아 사기 술잔 같아 보이는 깊이가 얇은 술잔을 만든 작품이다. 2016년 작 <꽃신-식리>는 동으로 만든 꽃신 한 짝이 현무암 길 위에 놓여있는 장면을 연출한 설치 작품이다. 4·3 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있던 자리에는 늘 신발이 많이 발견되곤 했다. 죽으러 가는 길이어도 신발은 신고 가야 하는 길, 예쁜 꽃신은 다시 그 부분이 꽃신을 신었던 사람과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역사적 의식을 공유하는 회원들과 협업을 한 작품들도 많다. 2007년의 <흙무덤>, 2014년의 <정지문 틈으로 바라본 역사의 흔적>처럼 ‘4·3 미술제’를 위해 공간 설치를 함께 한 작품도 눈에 띄지만, 2010년에 알뜨르비행장에 설치한 박경훈과의 협업 작품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 만든 전투기 격납고엔 특유의 텅 빈 철제 비행기가 있다. 일본 제로센 전투기 형상을 강문석이 특유의 표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매년 혹은 이따금 열리는 기획전시에 맞춰 작가는 표현재료를 달리하며 다양한 감상을 표현해주는데, 이 기록이 모여 ‘4·3’ 시리즈, 혹은 ‘제주역사’ 시리즈가 촘촘히 만들어지고 있다. 




강문석, 박경훈 공동작 2010 알뜨르비행장




제주의 자연을 작품으로 매개하는 일련의 개인적 작업과 역사의식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일련의 협동/개별 작업이 강문석의 작업 세계를 이루는 두 개의 축이다. 작품 제작에 걸리는 시간이 반영돼 자연스럽게 개인전의 주기가 길다. 매년 열리는 기획전에 시간을 쓰는 일이 다시 개인전의 주기를 늘리는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두 축은 뚜렷이 분리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한 명의 작가의 작품을 논하기에 편차 없이 중요한 부분이라 나란히 두고 그 성장을 지켜보는 게 관람객에게 남은 과제다.  PA




강문석




작가 강문석은 제주 출생으로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제주문예회관을 시작으로 2013년 갤러리노리 제주, 2019년 제주 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2020년 제주 숨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제주미술제’, ‘제주국제아트페어’ ‘제주비엔날레-투어리즘’ 등에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였다. 매년 ‘4·3 미술제’를 개최하는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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