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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0, Sep 2021

샌정_temporality

2021.6.17 - 2021.9.3 우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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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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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정의 회화 속으로



모든 출품작의 제목을 무제(Untitled)로 명기한 이번 전시는 샌정이 스스로 표현한 바와 같이 “정신적 사유가 머무는 최고의 단계인 형이상학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전시다. 작가는 단순한 형태의 기하학적 도형과 절제된 색감으로 매 순간 파고들었던 ‘형이상학적 사유’의 결과를 드러낸다. 그의 회화는 다양한 명도의 회색 컬러가 캔버스의 전 표면에 흐르는 듯 채워져 있고, 마치 대리석 돌 위에 색연필로 색을 칠한 듯한 이질감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또한 샌정의 캔버스는 벽면 전체를 압도하는 사이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은은하게 때론 명료하게 발현되는 회색조가 작품이 걸려있는 전시장의 흰 벽면조차 회색 톤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샌정의 작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관람자는 크게 네 가지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단연 ‘색감’이다. 적게는 두 가지, 많아야 예닐곱 개의 채색을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작품에서 회색을 기조로 한 무채색은 결코 단조롭지 않으며 흡사 수묵화적인 대기감까지 이끌어낸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회색조에 파묻히듯 평면 속에 자리 잡은 어스름한 한 줄기 색채감은 메마름 속 단비 마냥 반갑기까지 하다. 작가는 오랜 시간을 유럽에서 보내면서 오히려 수묵화의 감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현대미술이나 현대회화에서 그것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정의할 것인가에 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가 선택한 회색의 모노톤에서 동양적 색감을 느끼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동시에 무심한 듯 칠해진 붓질의 텍스처는 기름기가 도는 유화를 더없이 담백하게 담아내며 화선지에 먹이 번져가듯 가파른 속도감까지 느끼게 하는데, 이는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를 서양화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묘미를 제공한다. 




<Untitled> 2021 캔버스에 유채 140×170cm




이것이 그의 작품에서 두 번째로 발견할 수 있는 요소인 ‘여백’이다. 세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때론 거칠게, 또는 투박하게, 혹은 오히려 서툴러 보이기까지 한 그의 ‘붓질’이다. 작가는 흘리거나 번지는 기법을 사용해 연한 회색조를 보여주는가 하면, 물기 하나 없는 빡빡한 붓끝을 꾹꾹 눌러 위아래로 긁어내린 듯한 기법을 사용해 심연의 세계 어딘가에 닿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여준다. 끝으로 그의 작품을 가만히 감상하고 있노라면, 점점 더 화면 앞으로 다가가 가늘고 흐릿하게 표현된 외형의 실체를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네 번째 요소인 ‘도형’이 있다. 샌정은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 원형, 직선과 곡선이 캔버스 곳곳을 부유하며 물리적으로 제한된 평면 속 공간감을 무한정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샌정의 회화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지 않고, 작품이 내포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서술하지도 않는다. 열정적이면서 과감한 그의 붓 터치는 분명 작가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언가를 강렬히 끌어내고 있지만 이내 다시 차분함을 덧입는다. 그 이유는 화면의 중앙과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선과 도형 때문이다. 이 도형들은 일종의 ‘미술 기호’로 읽혀질 수 있다. 그의 작품이 함의하고 있는 이 단순하고 절제된 기하학적 도형들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미술 기호의 산포(dispersal)와 관계하며 산발적인 규칙을 유발한다. 벽면에 무심히 낙서를 한 듯한 형태 없는 텍스처, 얇은 가죽을 투박하게 꿰맨 듯한 짧게 끊어진 직선, 곡선과 직선의 경계를 모호하게 흩뜨려 놓은 사각형과 원형들… 


작가는 이 기호들을 제시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관찰 대상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 특히 원석을 처음 다듬어 놓은 다이아몬드 같은 형태의 도형은 작가의 내면에 있는 대상의 물질성을 파편화하고 그의 작업 세계를 형성하는 정신적 체계가 일정한 구조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작가의 미술 기호는 특정한 역사성을 가진다. 이 역사성은 그의 어린 시절 매우 인상 깊었던 한 에피소드일 수 있고, 현재 그의 작업 방식을 지탱하고 있는 경험적 배경일 수 있다. 그의 붓질 한번이 지나간 선 하나에 우리는 작가의 노스탤지어, 나의 노스탤지어 그리고 우리의 노스탤지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미술 기호가 더욱 대범한 자율성을 띨수록 그로부터 회화의 순수성을 자각하게 되는 것은 분명 오랜 시간 회화의 본질을 추적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작가의 시간이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변화를 보여주는 샌정의 미술 기호를 따라가며 다음 작품에서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Untitled> 2021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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