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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0, Sep 2021

비록 춤 일지라도

2021.8.6 - 2021.8.29 CoSMo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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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화 큐레이터, 포스트휴먼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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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춤 일지라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일환 전시 <비록 춤 일지라도>. 전시명에서 ‘춤’은 괄호와도 같다. 말하자면, 다양한 저항적 행위들에 대한 비유로서 춤춘다는 동사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춤은 다른 말로 적절히 대체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용선미가 쓴 글에서는 흙공이 그러했고, 염지혜에게는 물구나무였으며, 오드리 로드(Audre Lorde)에게는 차이가 그러했다. 비록 흙공일지라도. 비록 물구나무일지라도. 비록 차이일지라도…….


누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비록 어떤 것”이 마음속에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없다면 너무나도 이 시대와 잘 들러붙는 아무개로서 이 전시나 내가 하는 말이 안 와 닿을 수도 있겠다. 당연히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물론, 나도 있다. 비록 ***일지라도. 가끔은 그 앞에 ‘빌어먹을’을 넣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의 화는 깊숙이 단전 쪽으로 꾹 눌러 놓고, 매우 사회적인 화용 언어를 쓴다. 바로 그럴 때 나오는 말이 ‘비록’이다. 그렇다. 어쩌면 진짜로 문제인 것은 그게 춤인지, 흙공인지, 물구나무서기인지가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비록'에 있다. 여전히 막강하게 어떤 주류 담론들(이라고 쓰고 고정관념이라고 읽자)이 힘을 행사하는 이 세계의 이야기에서 ‘비록’을 빌어야만 목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말이다.




염지혜 <오이스터(굴)> 2021 

종이에 컬러 인쇄 가변 크기





내가 좋아하는 어느 페미니스트 이론가의 말마따나, 어쩌면 이야기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1) 이 세계의 이야기에서는 ‘비록’이라는 부사 뒤에서여야만 언설되거나 행위 될 수 있는 것들을 위해 이야기를 바꾸려면, 주인공이 바뀌어야 한다. 낯선 주인공의 새로운 이야기에서 춤은, 흙공은, 물구나무서기는 더는 ‘비록’ 뒤에 숨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인간’ 오이디푸스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스핑크스는 정답을 듣고 자살을 했지만, 네 발이거나, 두 발이거나, 세 발로도 살아본 적 없는 누군가가 주인공인 세계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오답과 충동적 죽음으로 끝나는 코미디 설화가 될 뿐이다.


아직은 ‘비록’ 뒤에 있는 행위와 행위자들이 여기에 있음을 알리고, 새로운 이야기라는 가능성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부사적 장치 없이도 힘을 갖게 될 춤들을 위해, 이 전시는 ‘비록’을 단 채로 기획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읽힌다. 그럼에도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래서 이 전시가 표방하고 비유하는 춤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이야기 뒤에 있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가만히 접어두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편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때 실시간으로 구전되고 화자되어 모두를 장악했던 이야기는 결국에 그저 설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인배 <개수> 2018 레진 가변 크기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야기를 전복할 가능성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하나의 이야기의 저항으로써 이 전시를 묶어 버리는 일은, 흙공보다도 무용한 일일 테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 스스로 묻고 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한 부분을 적어본다. ‘비록’이나 ‘만약에’를 지웠을 때 남아 있는 것들이, ‘비록’이나 ‘만약에’ 없이도 홀로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은 이야기가 바뀌지 않은 이 세계에서, “이 세상 몸을 가진 누구나의 움직임이 다시 춤이 되려면”2) 말이다.


[각주]

1) 눈치챘겠지만,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를 인용한 말이다.

2) 전시를 위해 쓴 장혜정의 글에서 발췌



블랙 파워 냅스 <죽음의 합창단(Part X)> 2019 비디오 49분 47초 사진: Xeno Rafaé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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