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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1, Oct 2021

흑인 작가가 읽어낸 미국의 역사

U.S.A

Mark Bradford
Pickett’s Charge
2017.8-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 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헤럴드경제』 기자 ● 이미지 Hirshhorn Museum 제공

Installation view of 'Mark Bradford: Pickett’s Charge' at the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2017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Cathy Ca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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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헤럴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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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11월 19일, 당시 미국 (북부)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후대 수없이 인용될 연설을 한다. ‘게티즈버그 연설’로도 알려진 이 스피치는 같은 해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기를 거머쥐게 된 중요 전투인 게티즈버그 전투(Battle of Gettysburg)에서 전사한 병사를 위한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이뤄졌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싸우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헌납하는 것이 이 봉헌식”이라는 것이 링컨의 말이었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링컨 기념관 계단 앞에 서서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를 연설한다.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그림자를 남긴 사람이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이 상징적 선언은 불의에 시달리던 수백 만에 달하는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을 주었다(Five score years ago, a great American, in whose symbolic shadow we stand today, signed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This momentous decree came as a great beacon light of hope to millions of Negro slaves who had been seared in the flames of withering injustice).”




<Pickett’s Charge (The High-Water Mark)> 

(detail) 2016-2017 Mixed media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oshua White




킹의 감동적 연설이 100년을 가기도 전인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로츠빌에서는 백인 극우파 집회가 열렸다. 동시에 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맞불 집회를 하면서 두 세력이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기서 일반인 1명과 경찰 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기자회견을 열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과 대항 시위대의 폭력은 동등한 것”이라며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해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흥미로운 건 트럼프와 링컨 모두 공화당 소속이라는 지점이다. 링컨은 공화당 초대 대통령, 트럼프는 공화당의 가장 마지막 대통령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늘 변한다. 역사가 진보와 퇴보를 반복한다고 느껴지는 건 우리 사회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가 늘 달라지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옳음’이 더 이상 ‘옳지 않게’ 되고, 터무니없다 여겨졌던 혹은 지나치다 싶던 가치들이 인정받는다. 그사이 어떤 가치들은 오래 살아남아 ‘선견지명’으로 읽히기도 한다. 워싱턴 D.C.의 허쉬혼 미술관(Hirshhorn Museum)은 LA 베이스의 흑인 작가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작품을 상설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미국관 대표작가로 개인전을 치른 이래 대규모 개인전은 허쉬혼이 처음이었다. 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완성된 작품명은 ‘피켓의 돌격(Pikket’s Charge)’. 남부군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E. 리(Robert E. Lee)가 북군 진영이 위치한 묘지 능선을 향해 돌격하며 게티즈버그 전투의 핵심으로 꼽히는 사건이다. 


게티즈버그 전투 중 가장 치열했고, 이곳의 승패로 남부군의 상승세를 누르고 북부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을 탄생시켰던 그 주인공이기도 하다. 브래드포드는 “미국관 작업을 하다가 ‘피켓의 돌격’을 떠올리게 됐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우리는 또 다른 벼랑 끝에 서 있다. 우리가 국가로서 어디에 서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한다. 작품명인 ‘피켓의 돌격’은 1986년 전투를 뜻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작가 폴 필립포테오(Paul Philippoteaux)의 1883년 작품 <피켓의 돌격>을 가리키기도 한다. 게티즈버그 전투를 묘사한 장대한 사이클로라마(원형 파노라마)로, 길이 100야드(약 91m), 무게 6t에 달하는 대작이다. 필리포테오도 1879년 시카고 투자자 그룹에 커미션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 수 주 동안의 필드 리서치, 사진 촬영을 거쳐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약 1년 반이 소요됐다. 작품은 그림 말고도 조각과 설치까지 포함됐는데 게티즈버그 전투를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는 등 당시로써는 최고의 공감각적 작품이었다. 




<Pickett’s Charge (Dead Horse)> 

(detail) 2016-2017 Mixed media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oshua White




브래드포드는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포테오의 사이클로라마에 대해 “초기 아이맥스 극장과 비슷했다. 관람객들은 독특한 경험을 위해 길게 줄을 섰고, 영웅적 이야기가 담긴 이 그림을 즐겼다”고 설명한다. 필리포테오는 게티즈버그 전투 중 4개 장면을 그렸고, 그중 2개는 펜실베니아 게티즈버그 국립 국방공원에 있다. 브래드포드는 이 2개 작품의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프린트한 뒤, 줄이 박혀 줄무늬처럼 보이는 여러 겹의 종이 패널에 붙였다. 일부는 찢어내고, 다시 붙이고, 불에 태우기도 하고 오브제를 붙이는 등 복잡한 과정을 통해 질감이 풍부한 미국적 추상화로 변형시켰다. 


브래드포드가 선보인 <전투(Battle)>, <두 남자(Two Men)>, <홍수의 흔적(The High-Water Mark)>, <증인 나무(Witness Tree)>, <연속 포격의 굉음(The Thunderous Cannonade)>, <잡목림(The Copse of Trees)>, <죽은 말(Dead Horse)>, <깃발을 든 사나이(Man with the Flag)> 등 8개의 작품 중 일부는 필리포테오의 원작을 짐작할 수 있고 일부는 완벽한 추상화다. <죽은 말>에서는 땅에 쓰러진 말과 건초더미 그리고 일부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작가는 “이른바 미국식 대형 역사화가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인식하고 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찢어내고 불태우고 그래서 속에 숨기고 있던 수많은 레이어(색상)를 드러낸 회화는 겉으로 드러난 ‘역사’ 아래 수없이 생략된 맥락과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국 남북전쟁도 ‘노예해방’이라는 단어로 그 목적이 요약되지만 사실 노예가 많지 않았고 산업화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북부의 주들과 노예를 통해 부를 영원히 창출하고 싶었던 남부 주의 충돌이었다. 역사는 냉정한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읽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8개의 작품 중 2개의 주제가 나무다. 작가는 게티즈버그 전투 현장을 답사하다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것이 나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작가 손장섭이 서낭당의 나무를 그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진정한 객관성을 담보한 증인은 자연일 것이다. 역사가나 문필가, 기자가 아니라. 가로 줄무늬처럼 캔버스에 박힌 로프는 일부는 표면으로, 일부는 표면 아래로 숨었다. 뽑혀 사라진 것들도 있는데, 그 자리엔 찢기고 짓이겨진 상처만 남았다. 인종차별은 2021년에도 유효하고, 이것을 끊어내는 데는 앞으로 100년이 걸릴지 200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한 끊어낸다고 할지라도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이미 찢어져 버린 캔버스처럼 회복 불가능할 것이다.




<Pickett’s Charge (The Thunderous Cannonade)> 

(detail) 2016-2017 Mixed media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oshua White




브래드포드가 제작한 대형 회화 8점은 허쉬혼 미술관 3층 벽을 가득 채웠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입구에서 출구까지 거의 모든 벽면을 차지한다. 원형건물의 벽을 따라 걸린 작품은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작가 차용한 필리포테오의 사이클로라마처럼 관람객을 압도한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과 인터뷰에서 작가는 “모든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은 원형으로 지어진 허쉬혼 미술관의 순환적 특성을 반복하고, 마모된 표면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작품이 어떻게 노화되거나 변했는지를 암시한다”며 “캔버스가 마치 이곳에 영원히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쉬혼 미술관이 자리한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은 양 끝단에 국회의사당과 링컨기념관이 자리한 미국 정치의 1번지다. 경찰국가를 자처한 국가를 대신해 세계 곳곳의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기념비들 사이로, 1년에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내셔널 몰의 중심은 스미스소니언 재단 산하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내셔널 몰이라는 장소를 생각하니 거버넌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맥락이 너무 좋아 작품이 자연스레 나온다.”  PA



글쓴이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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