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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1, Oct 2021

지금이 영원한 예술

France

Anne Imhof
Natures Mortes
5.22-10.24 파리, 팔레 드 도쿄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Palais de Tokyo 제공

'UNTITLED' 2017 Oil on canvas 300×190cm Coll. Pinault Collection(Paris, Venice) © the artist and Galerie Buchholz Photo: Aurélien M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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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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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높게 솟아오른 네 개의 기다란 기둥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대칭을 이룬 백색의 네오클래식 건물. 잘생긴 검은 도베르만 두 마리가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지키고 있다. 때가 이르자, 전시장 안과 밖 곳곳에 흩어져 있던 남녀 퍼포머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건물 외벽의 꼭대기부터, 철망 울타리 위, 유리판 바닥 아래, 벽면 중간에 설치된 구조물에 위태롭게 몸을 지탱하고 있던 그들은 관람객들 사이를 가로질러 걷고, 뛰고, 구르고, 머리를 위아래로 세차게 뒤흔들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누군가는 담배를 태우거나, 중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또 그중 몇몇은 마구 뒤엉켜진 서로의 몸을 격렬히 탐닉한다. 정적과 장엄한 사운드가 교차하는 가운데, 장장 5시간에 걸쳐 인간의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저항의 행위를 선보였던 퍼포먼스 <파우스트(Faust)>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를 그야말로 뜨겁게 달구었고, 이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쇼를 진두지휘한 장본인, 안네 임호프(Anne Imhof)는 그해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시 그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이유는 아마도 파우스트의 강한 여운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어서 그리고 그 잔상이 데자뷔처럼 재연되고 있어서이다.




<STREET> 2021 Steel, glass 

©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Photo: Aurélien Mole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나치의 권력이 정점에 다다른 시기, 그의 명에 따라 엄격한 신고전주의 스타일과 나치 이데올로기를 접목한 건축물이 베를린과 뮌헨을 중심으로 독일 곳곳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1938년 재건립된 현재의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 파빌리온 역시 그중 하나로 나치즘의 산물이자, 나치 건축의 전형으로 꼽힌다. 세계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를 건설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뒤틀린 야망, 그 흔적이 베니스에 남아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독일 파빌리온에 초청된 작가들은 유독 과거사에 매달렸고, 그곳에서 개최된 역대 전시 중 건축물 자체를 매체로 삼은 작업들은 언제나 큰 주목을 받아왔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와 히틀러, 두 독재자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함께 방문한 사진을 전면에 내걸어 불편한 과거사를 들추어내고, 전시장 전체를 산산조각 부수어 파시즘과 나치즘, 더 나아가 신나치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과 경고를 쏟아낸 한스 하케(Hans Haacke)의 <게르마니아(GERMANIA)>(1993)와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자, 반 나치 운동가였던 마가테레 쉬테-리호츠키(M. Schütte-Lihotzky)가 1926년 설계한 프랑크푸르트 부엌(Frankfurter Küche)의 디자인을 전시장으로 끌고 와 반파시즘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던 리암 길릭(Liam Gillick)의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부엌 고양이가 말합니다(How are you going to behave? A kitchen cat speaks)>(2009)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임호프의 <파우스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역시, 그의 퍼포먼스를 독일 근대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바라보는 의견이 잇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국가관 시스템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내려진 단편적인 평에 불과하다. 




<UNTITLED> 2017 Aluminium, acrylic 

300×190×4.5cm Pinault Collection (Paris, Venice) 

© the artist and Galerie Buchholz 

Photo: Aurélien Mole




분명 독일 파빌리온이라는 공간에 내재된 역사성을 배제할 수 없고, 임호프 역시 그 점을 간과했을 리 만무하지만, 작가가 곳곳에 심어둔 코드들은 단지 과거사를 소환시키는 장치로 해석하기에 너무나 감각적이고 개방적이다. ‘불끈 쥔 주먹’이라는 의미가 시사하듯, 파우스트는 ‘저항하는 인간’의 몸부림을 보다 거칠게, 보다 적나라하게, 보다 처절하게 보여주지만, 정작 퍼포머들이 무엇을 향해 그토록 대항하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對象化)를 거부한다. 그 어떤 것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기를 쓰는 몸부림만 있을 뿐이다. 2017년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마누엘 보르하-비옐(Manuel Borja-Villel)이 이에 대해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설치작”이라는 감상에 가까운 넓은 비평을 내놓은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임호프의 거침없는 저항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물화(Natures Mortes)>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임호프는 본래의 전시 공간을 비우고 허물어, 본인의 스타일대로 완전히 무대 전체를 탈바꿈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종종 한 편의 오페라에 비유되곤 한다. 이번 신작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니, 더 진화했다는 편이 맞겠다. 게다가 판도 커졌다. 총면적 2만 2,000㎡에 이르는 팔레 드 도쿄의 거대한 공간을 스테이지로 활용한 전시는 건축, 회화, 드로잉, 사진, 조각, 설치, 사운드,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아우르는 임호프의 ‘총체적 예술(Gesamtkunstwerk)’ 미학을 충실히 따르는 한편, <화(Rage)>, <불안(Angst)>, <파우스트>, <Sex>로 이어지는 본인의 대표작과 신작을 담은 일종의 회고전이자, ‘정물화’라는 키워드에 맞춰 본인을 포함해 총 25인의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함께 내건 테마전으로서 구성적 변화를 꾀했다. 특히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 사이 톰블리(Cy Twombly)와 같이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과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병치하여 시대적 스펙트럼을 넓힌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View of the exhibition 

<Carte blanche à Anne Imhof, Natures Mortes>

 Palais de Tokyo 2021.5.22 - 2021.10.24

 Eléments of Angst opera presented in 2016 

at the Kunsthalle of Bâle, at the Hamburger Bahnof 

of Berlin and in the Biennale de Montréal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Buchhol 

<DIVE BOARD (III)> 2021 Galvanised steel

 ©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FALCON> 2021 Steel: 118.5×56×46cm ©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ROOM VII> 

2021 Steel, glass: 15.5×220×310cm ©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ELIZA DOUGLAS, ANNE IMHOF <BELL>

 2021 Two-way active speaker, chain © the artist,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Photo: Aurélien Mole




덧붙이자면, 이번 전시의 음악과 사운드 작업을 총감독한 임호프의 뮤즈, 엘리자 더글라스(Eliza Douglas)의 사이키델릭한 포크록을 마음껏 감상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어두운 갈색빛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미로 속 어딘가, 환희에 찬 웃음인지, 고통스러운 절규인지, 악에 받친 외침인지, 알 수 없는 작가의 고성이 가득 울려 퍼진다. 관(棺)을 연상시키는 대리석 판과 그 위에 놓여있는 둥근 화환, 쇠사슬로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 다이빙대, 반짝이는 청동빛 헬멧, 전자 기타, 더글라스의 초상화, 유리 미로 곳곳에 남겨진 화려한 그라피티가 겹겹이 포개어진 사이로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퍼포머들은 강렬한 메탈 사운드를 따라 관능적인 몸짓을 선보인다. 정지된 오브제와 이미지, 퍼포머들이 내뿜는 숨과 눈빛이 서로 충돌하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신작 퍼포먼스는 임호프 특유의 해체주의적 공간 구성력과 그로테스크한 연출력을 여실히 입증한다.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가며 마침내 극이 결말에 다다를 즈음 무대 바닥에는 마치 누군가의 추모 의식을 치른 듯, 타고 남은 수많은 초들과 붉은 사과, 장미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프랑스어로 ‘죽은 자연’을 뜻하는 ‘정물화’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애도인가, 아니면 또 한 폭의 정물화가 탄생한 것인가. 임호프는 이번 작업이 피카비아의 <정물화: 세잔의 초상화, 르누아르의 초상화, 렘브란트의 초상화(Natures Mortes : Portrait de Cézanne, Portrait de Renoir, portrait de Rembrandt)>(1920)에서 받은 영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원숭이 인형 하나를 정중앙에 놓아두고, 그것을 가리켜 이미 타계한 거장들의 초상화이자, 동시에 정물화라고 명명한 피카비아의 익살스럽다 못해 발칙하기까지 한 이 작품은 사라짐과 소멸 속에서 새롭게 잉태되는 예술의 아이러니를 풍자한 것이다. 이처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바티나스(vanitas)로 귀결되는 죽음의 미학은 정물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이에 심취한 많은 예술가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정물을 그려왔다. 그렇다. 이토록 정물화가 매혹적인 이유는 비록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언젠가 존재했던 그러나 결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금, 여기(hic et nunc)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아는 인간의 불안과 고뇌가 영원히 박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앙상한 등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한 여자의 뒷모습, 그가 머리에 쓴 검은 캡모자에 임호프는 이렇게 적었다. Now and Forever.PA




Eliza Douglas & Anne Imhof <SOUND RAIL I> 2021 

Steel, speakers Music by Eliza Douglas Sound 

nstallation by Eliza Douglas and Anne Imhof 

Soundtrack: Silver, Melted Star, Scream/Shred, 

Gold, Satan’s Slumber © the artists, Galerie Buchholz 

and Sprüth Magers Photo: Aurélien Mole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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