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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2, Nov 2021

에이브 오데디나
Abe Odedina

바벨탑이 무너질 때까지

‘새로운 나라의 젊은 예술가들, 그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나이지리아와 함께 성장해야 하고, 예술을 향한 전통적 사랑을 충족시키기 위해 작업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식민지 과거와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Young artists in a new nation, that is what we are! We must grow with the new Nigeria and work to satisfy her traditional love for art or perish with our colonial past).’ 나이지리아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1960년, 화가이자 조각가, 시인, 미학 이론가였던 우체 오케케(Uche Okeke)는 자리아 예술협회(Zaria Art Society) 선언문에 위와 같이 썼다. 그리고 식민주의의 황혼과 정치적 독립이 도래한 바로 그해, 에이브 오데디나(Abe Odedina)는 남서부에 위치한 이바단에서 태어났다.
● 김미혜 기자 ● 이미지 작가, Ed Cross Fine Art 제공

'The Adoration of Frida Part I & II' 2013 Acrylic on plywood (diptych) 154×124cm(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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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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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이지리아 예술가들은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요루바(Yoruba), 이그보(Igbo), 우르호보(Urhobo) 등 서로 다른 부족의 언어와 관습, 역사의 미적·문화적 전통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민속과 노래를 공부하고 전통 예술 기법을 바탕으로 실험과 도전을 이어나가며 궁극적으로 흑인과 아프리카인의 존엄성 회복을 꾀했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된 열광적 문화적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오데디나는 이때 경험한 고향 요루바의 토착성과 현대성 사이의 간극을 훗날 작업의 기틀로 삼았다. 오데디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비교적 늦은 시기였다. 1980년대 영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마친 그는 브릭스턴에 정착해 건축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는데, 2007년 브라질 살바도르를 여행하며 운명처럼 칸돔블레(Candomblé)를 만나게 된다. 칸돔블레는 노예 신분의 아프리카인들이 브라질로 넘어오면서 들여온 아프로-브라질리안(Afro-Brazilian) 종교 중 하나로, 가톨릭과 아프리카 민속 종교가 결합한 독특한 형태를 띤다. 수백 년간의 끔찍한 정신적 고통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온 조상 요루바인들을 보며 오데디나는 예술의 목적이 단지 미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더불어 자신에게도 예술가로서 부여된 소명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에 관해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자신의 소명을 찾고 그 가치와 원칙에 대한 감각을 지닌 채 그것이 어떻게 예술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It is important for any true artist to find their true calling, to have their own sense of values and principles and see how this can inform their art)”고 말하기도 했다.




<7 Heavenly Virtues> 2018 

Acrylic on plywood 159×72.5cm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종교와 철학의 융합 ‘싱크리티즘(sync-retism)’에 매료돼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캔버스가 아닌 합판에, 유화 물감이 아닌 아크릴로 요루바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신화, 아이티 부두교, 브라질의 전통 등을 그렸다. 그렇게 종교와 신에서 출발한 오데디나의 작업은 거리 속 인물, 상상의 배역 등으로 범위를 확장하며 보편적 형상 중심의 인간 면면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작가의 작품 속 인간의 모습은 자연에서 발현된 창조물이라기보다 인간성 연구를 위해 구성된 하나의 건축물과 같은데, 이는 모두 작가가 의도한 설정에서 비롯한다. 가령 가죽끈에 애완 표범을 매달고 있는 어린 소녀나 쇠톱을 손에 쥔 채 앉아 있는 여성, 악어에게 삼켜지고 있는 흰 양복을 입은 남성 등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초현실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너무나 당연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을 새삼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자물쇠, 카드놀이, 가위, 책, 열쇠, 사다리 등 인물의 주변을 에워싼 수십 개의 반복된 사물들은 상징적 모티브로 프레임을 채우며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렇게 인간과 사물 형상의 독특한 조합으로 빚어진 오데디나만의 대담하고 양식화된 세계관은 조형적 화면을 거듭 창조하며 생경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To Abundance> 2019

 Acrylic on plywood 48×48cm




한편 작가는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집을 방문하곤 그의 삶과 예술에 영감을 받아 두폭 제단화(diptych) <프리다의 경배(The Adoration of Frida)>(2013)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같은 해 작품이 국립 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의 ‘BP 초상화상(BP Portrait Award)’ 후보에 오르면서 전업 화가로 전향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프리카 민속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집요한 연구가 녹아든 오데디나의 작품은 미술계의 이목을 조금씩 집중시켰고, ‘1-54 현대 아프리카 아트페어(1-54 Contemporary African Art Fair)’와 ‘아트 × 라고스(ART × LAGOS)’, 코플랜드 갤러리(Copeland Gallery), 브릭스턴 이스트(Brixton East) 등에서의 개인전과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 스테판 프리드먼 갤러리(Stephen Friedman Gallery), 로얄 아카데미(Royal Academy) 등에서의 그룹전을 거치며 점차 이름을 알려 나갔다.




<Dreamboat> 2021 

Acrylic on plywood 122×122cm




특히 2019년 개인전 <낙원의 새들(Birds of Paradise)>은 오데디나가 회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한 전시라 하겠다. 초상화 작품세계를 총망라해 펼쳐 보인 전시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오데디나의 몸에는 동명의 문장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는데, 한때 그에게 문신은 끔찍하리만치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행위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현재 자신의 몸 대부분을 감싸고 있는 문신을 보며 그는 신체에 대한 물리적 가소성을 발견하게 됐고,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표현의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며 찬란한 감각에 말미암아 상징적이면서 보편적인 낙원에 대한 의미를 떠올리게 됐단다. 하지만 <낙원의 새들>에서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낙원의 모습은 통상 떠올리게 되는 모든 것이 갖춰지고 무엇이든 이뤄지는 완벽한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로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섬뜩하리만큼 빠르게 소멸되고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소고에 가깝다.




<Spring?> 2021 

Acrylic on plywood 60.5×41.5cm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버거운 시대에 유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거나 혹은 심지어 해롭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모든 인간에겐 육체적, 정신적, 이념적으로 낙원을 갈망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고, 이에 대해 시간을 쏟아 치열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고민의 끝에 그가 발견한 낙원은 평범한 삶, 아주 가까이에 있다. 필연적으로 빛을 동반한 그림자와 어둠은 우리 주변을 맴돌고, 심연처럼 깊고 새카만 길을 지나는 동안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데디나는 바로 그 순간 낙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출근길에 적당한 색의 립스틱을 찾는 동안, 향이 좋은 커피를 한 잔 머금는 순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해가 뜨기 직전의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는 때에도 낙원은 우리 곁에 있다.




<True Love> 2017 

Acrylic on plywood (triptych) 120×446cm




『구약성서』의 「창세기」엔 ‘바벨탑’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하늘에 닿기 위해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던 인간이 서로의 불신과 오해 끝에 탑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이를 지켜보던 신이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노해 본디 하나였던 언어를 여러 갈래로 나눠 그 저주로 결국 인간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 진위논쟁을 떠나 오늘날 바벨탑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계획으로 표상되기도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신만의 낙원에 가닿기 위해 저마다의 탑을 쌓아 올리고 있다. 탑을 완성하면 우리는 과연 낙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오데디나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낙원은 도착지가 아닌 경유지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삶을 영위하는 과정, 그 자체일지 모른다. 끝내 바벨탑이 무너지리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PA




Portrait of Abe Odedina 

Photo: Diane Patrice




작가 에이브 오데디나는 1960년 나이지리아 이바단에서 태어났다. LA 언더그라운드 뮤지엄(The Underground Museum)과 함께 2017년 ‘엘스워스 켈리 어워드(Ellsworth Kelly Award)’를 수상했고, 2013년 <Under the Influence>, 2014년 <Hi-Life>, 2016년 <Eye to Eye>, 2017년 <Say it Loud>, 2018년 <True Love>, 2019년 <Birds of Paradise> 등의 개인전을 열며 작품을 선보여왔다.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한 그의 작품은 영국 정부 아트컬렉션(British Government Art Collection)을 포함 세르주 티로시(Serge Tiroche)와 호르헤 페레즈(Jorge Pérez) 컬렉션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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