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현재 위치
  1. Features
  2. Public & Tech
Issue 85, Oct 2013

회고담: “흐르고 흘러, 다시 공공미술이로세”

SUSPICIOUS ARGUMENT

질문. 한국미술계에서 스스로를 ‘공공미술가’라고 단번에 말할 수 있는 예술가가 얼마나 될까? 공공미술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 대한, 이 ‘주저함’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위 공공미술의 ‘황금기’라 불렸던 참여정부 시절이 지나간 이후, 공공미술계(?)의 어떤 소강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염되고 남용되고 있는 ‘공공’의 개념들은 너도 나도 공공미술가이면서 또 한편으론 그렇지 않은 현실을 절감케 한다. 공공미술이란 재고돼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듯 복잡다단한 궁금증에 대해 속 시원히 풀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퍼블릭아트」는 창간특집호를 맞아 전문가들을 초대했다. 공공미술 1세대라 불리는 박찬국(68년생), 이섭(60년생), 박삼철(64년생)이 그 주인공이다. 박찬국은 잘 알려졌다시피 공공미술 작가 겸 기획자로 꾸준히 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공공미술계의 대선배. 한편, 이섭과 박삼철은 한국 공공미술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는 아트컨설팅서울(ACS)의 주역으로서 현재 각각 이론과 행정 쪽에서 제 임무를 열심히 수행 중인 인물이다. 이들에게 물었다. “한국 공공미술,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 기획·진행 안대웅 기자, 이정헌 객원기자 ● 정리 최 선 인턴기자 ● 장소협찬 블루스퀘어 네모

최정화 '꽃나무' 2004. 리옹, 프랑스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안대웅 기자

Tags

공공미술, “어디에 있나, 어디에 있어야하나”


퍼블릭아트: 세 분은 이제 9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활동해오고 계십니다. 당시에 어떤 계기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셨고,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그 당시 공공미술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가치, 여기에 대해 간략하게 세 분이 돌아가시며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이섭 선생님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이섭: 저는 사실 정보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한 후 “이제는 공공미술로 전환해야된다”이런 식으로 공공미술을 이해한 건 아니에요. 미술판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일, 저런 일 하면서 방황하다가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에서 요구했었던 미술의 한계에 눈을 떴어요. 이런 저런 시도를 하던 중에 공공미술에 관련된 정보가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우습게도 공공미술이라는 것을 정식화시키고, 이 루트를 통해 한번 일 해보자 하는 것은 여기 계시는 박삼철씨가 동기부여를 제일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미술 기자이면서 미술 내부로 들어온 케이스거든요. 미술 내부에 있었던 저는, 외부의 시선으로 검증되고 확인돼있는, 그런 것에 동의를 한 거죠. 그래서 공공미술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하고 결과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 우리 실험은 사실,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공공미술과 얘기가 달라요. 근데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공공미술에 관심이 있거나 관여했던 다른 분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면, 작가 중심적이지 않았다는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박삼철씨나 제가 작가 입장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으로 남는 결과물에 치중하지 않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들한테 두 가지 측면에서 공공예술,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중요하거나 시기적으로 조금 긴박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자생성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을 작품의 일정한 평가 기준으로부터 획득하는 것에서 좀 더 자생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은, 이게 다행스럽게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이 정책입안과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일정한 금액들이 계속 제시되요. 거기서 경제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공공미술은) 기존의 미술계가 가지고 있었던 기준이나 잣대와 다른 잣대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잣대에 시민 의식, 시민과의 만남, 관계 형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자기의 행위가 얼마나 정당한지, 타당한지 검증받을 수 있겠다, 하는. 조금 더 욕심을 내보니까 다행스럽게도 외국에서 공공미술을 제안한 것이 1967년 정도인데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걸 자기화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어요. 만약에 한국에서 자기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만 확보하면 “갑자기 공공미술에 관한 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로 간다. 이거는 뉴욕 안가도 되는 거니깐 너무 좋다.”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제 입장을 정리해보면 저는 그렇습니다.


박삼철: 살다보니까 흐름이 자연스럽게 왔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게. 굳이 질문하신 고리를 돌아, 잠깐뒤돌아 봤더니 그랬던 거 같아요. 미술기자하면서 처음으로 미술을 접했고 작가들을 만나게 됐죠. 매력적이었어요. ‘이런 세상도 있구나’했죠. 그런데 만나고 어우러질 수록 폐쇄적인 어떤 것, 방안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미술하시는 분들은 이의 제기하지 않더라고요. ‘이 좋은 게 왜 이렇게 골방에 갇혀있나. 이 좋은 걸 나눌 수 없을까’하다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야, 이거 그냥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근거와 명분은 무엇인지 고민했고 공공미술을 만나게 된 거죠. 처음에 저는 순수미술을 어떻게 바깥으로 끄집어낼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 했는데, 하다보니까 순수미술과 공공미술에서 중요한게 각각 있는데 이 대립적인 관계가 서로를 굉장히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를 열심히 닦는다고 하잖아요. 순수라는게 굉장히 사회가 못 가진 중요한 미술적인 덕목이고, 기왕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획일적인 것과는 다르게 많이 만들어 내더라고요. ‘이걸 밖으로 끄집어 내면 굉장히 재미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더 성숙하게 가져야 할 부분이야말로 예술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관계방식이겠다.’ 그런 생각을 한거죠. 결국은 그런 부분들이 공공성을 예술적으로 수용한다는 개념보다는, 예술적인 부분을 공공적으로 나누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거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죠. 뭐 미술적인 착오 뿐 만 아니고, 사회와의 관계방식에서 많은 착오들이 있었는데, 그나마 예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냐라는 부분에 대한 고민들은 계속 성숙돼 왔던 것 같아요. 답은 아직 안나왔지만, 저는 뭐 꼭 답을 낸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죽은 답일 것 같아요. 계속 끊임없이 생성해나가고 문제제기해나가고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은 공공예술이 예술에 던진 어떤 문제제기 방식이나, 반대로 예술이 사회에 던지는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거죠.


박찬국: 두 분 말씀하신 거에 대부분 얘기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굳이 풀자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작가는 대부분 상황에 반응했던 것 같아요. 한국이 일종의 모던아트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였고, 사회적으로는 여러가지 정치적 격변이랄까, 여러가지 상황들이 계속 있어왔고요. 그런 상황이 개인을 개인으로서 그냥 가만히 있게 놔 두지 않았어요. 훨씬 더 센 얘기들이 많고.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나 개인이나 혹은 안이나 밖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그런게 있잖아요. 박삼철 선생님이 얘기한 ‘수신(修身)하고 밖으로 나간다’ 이런건 아니고, 오히려 작업과 사회,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어떻게 자기를 일치시킬 건가. 이런 고민이 되게 작가적인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이라는 행위가 어떤 오브제에 다 스며버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면, 작가라고 하는 건 뭘까. 가치 싸움이랄까, 이런 것들이 많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그나마 만날 수 있게 해줬던것이 저 개인적으론 공공적인 영역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밖으로 나가고, 사람들하고 만나고, 시대에 대한 얘기같은 것들을 담으려고 했고. 형식적인 틀이 형성이 되기도 하고. 그게 바로 지역일 수 있어요. 로컬리티. 개별화될 수 있는 가치 같은 것들이 지역에서 탄생할 수 있다. 이런 개념으로 읽히고 느껴지는데 그러다 보니까 (차이점을 발견하기 위해) 외국의 활동 같은 걸 많이 눈여겨보게 되고 영향도 받았어요. 박삼철 선생님이 번역했던 책(편집 자주: 맬컴마일스, 『미술, 공간, 도시))도 굉장히 많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그러한 지점들이, 지나고 봐도 역시 상황에 따른 맥락, 작가가 ‘어떤 위치에 있을거냐’라는 싸움 내지는 그런 활동이란 생각이 들어요. 공공미술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할게 아니라고 봐요. 작가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그거가 뭐 무슨 예술이냐... 뭐 그런건 중요치 않잖아요. 크게 봤을 때 한국사회에서 퍼블릭아트가 차지하는 위치를 저는 그런 맥락에서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삼철: 그 말씀은 중요한거 같아요. 대체로 보면 예술을 할 때 ‘무엇을 그릴 것인가.’ 이런 소재적인 논의가 강한데, 박찬국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들을 공공미술을 통해 가지고 공유해서 숙성시킨 것같아요. 그런말이 있잖아요. ‘네가 어디에 있는가가 너의 정체성이다(Where you are is what you are).’ 사실 그런 맥락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거죠. ‘왜 우린 이렇게 폐쇄적이고,연결되지 않느냐.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들이 어떻게 살 것이냐. 예술로서 이런 시대에나 공동체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이냐. 공공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에는, 특히 ‘어디에 있을 것이냐’라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이섭: 우리 세 명이 사실 알고 지내면서, 얼마만큼 알고 지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구분을 잘 못하다가 오늘 앉아서 보니까 박찬국 선생님은 작가로서의 공공미술을 주도했었고,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고, 박삼철씨는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공공미술에 대한 책을 번역하고 자기 글을 썼었어요. 그러면서 정책입안자들이나 행정을 운영하는 사람과 공공미술에 대한 자기 신념,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 노하우 이런 것들을 결합시켜서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운영했던 사람이고, 저 같은 경우에는 공공미술을 운영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뒤로 쭉 빠져가지고 지금은 굉장히 이론가처럼 내 일 아닌 것처럼 보는 그런 단계, 입장이 되었어요. 참 그래서 공교롭게도 그렇게 이제 자기 역할을 나눠서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생각이 드는데.


박삼철: 그런데 문제는 박찬국 선생님이 작가로서 공공미술 작업 안하고 있고, 저도 중간에 매개자로서 역할 안하고 있고.


이섭: 저는 지금 작가로 입봉(!)했습니다. 제가 왜 앞에 그 말씀을 드리냐면, 박선생님이 얘기하시고, 박삼철씨가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주는게 우리가 공공미술을 얘기할 때, 도대체 우리가 부르는 이 ‘공공’이라는 말이 한번도 안 물어봤어요. 개인적으로 물어본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미술판에서 ‘공공을 이렇게 의미규정해보겠다’하는 얘기를 정식으로 안했다, 이말입니다. 얼마 전에 공공미술이라는 얘기를 해야 되는 입장에 서서 할 수 없이 따져봤어요. 공공.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최소한 ‘퍼블릭(pubilc)’하고 ‘공공’을 구별해서. 서양과 한국은 공공을 어떻게 이해했나. ‘공공’이라는 말은 깜짝 놀랄 정도로‘함께 있다’는 것을 공식화한다는 얘기예요. 그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가족구성원이 내가 가족구성원이고 내가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잘 살아요. 근데 언뜻 잘 사는 거지, 사실 정확하게 규정 안하고 살기 때문에 항상 위기에 살죠. 공공이라고 하는 말의 속뜻을 들여다 보니까, 오늘 얘기하신것과 딱 맞아떨어지네요.

내가 어디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에 대해서 자각해버리면 공공성을 확보하는 거죠. 반대로 반성적으로 물어보면, 우리나라 공공미술을 한 십년, 십오년했다 치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려고 애를 써본 적이 없다는 거죠. 회의결과, 이게 공공성이 아니야? 라고 얘기해 본 이 정도 였었지, 확실하게 ‘우리 함께 사는 거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해보기 위해선, 이 행위가 꼭 필요해.’ 이렇게 생각 안했던 거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한번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물론 앞에 좋은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 맹탕은 아닌 거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오늘 얘기할 때 그런 방향 안에서 얘기들이 나올 거란 생각이 듭니다.


퍼블릭아트: 위치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한 말씀 드립니다. 최근에는 파견 예술가란 말이 나올 만큼 사회참여적인 예술이 한편으론 대두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작년에는 콜트 콜텍에 참여했던 작가들, 강정, 홍대 밥집 두리반 등이요. 거기 직접 참여했던 작가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내가 어떤 공공적인 행위를 한다거나, 공공미술을 하고 있다라는 규정을 피하려고 하고, 아예 더 한발짝 나아가서 이건 예술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얘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를 공공미술로 볼 수 있을 것이냐’라는 질문, 그리고 ‘역사적으로 한국의 공공미술은 언제 어떻게 시작 했는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현재 한국에서 공공미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시작점이 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80년대 미술운동은 특히 아까 말했던 두리반, 콜트콜텍, 강정 같은 활동과 크게 다를게없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공공성이란 도대체 뭘까?”

이섭: 80년대 민중미술 움직임안에서 공공성을 찾을 수 있다. 저도 분명히 동의는 하는데, 민중미술의 경우 사회에 눈 뜨는 초창기 우리나라 미술의 낯섦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하지않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굉장히 순발력있게 다양한 역할들을 같이 했어요. 근데 그 공통점, 특징을 뽑아내면 제가 볼 때는 정치적인 행위를 예술과 결합시켜서 했다라는게 제일 확실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이 민중미술이 됐건, 정치미술이 되건, 외국 나가서 보여줬을 때 바로 ‘폴리틱 아트(politic art)’라는 이름을 붙여줘 버렸잖아요. 내부에서도 사회변혁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라는 의식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의 참여가 아니라, 그래서 자기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향을 예술을 통해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볼 때, 공공성을 정치적 영역에서 다룰 것인지 공공성을 사회영역에서 다룰 것인지 고민하는 생각의 동기가 (공공미술의 영역에서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때부터, 민중미술이 참여했던 사람이 대부분 공공미술 영역에 활동을 많이 했는데, 그 활동 영역에 선후배 관계를 통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했단 말이에요? 문제는 작가는 자연스럽게 이행을 했지만 내용은 다르다는 거에요. 공공미술 참여했었던 작가들의 행위나 행위결과는 사회적 영역에 대한 발언 또는 미래에 대한 제안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두 가지(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를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시발점을 잡을 때에는 이 차이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을 하고 어떤 시점을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이런 방법이 있어요. 여기 계시니깐, 박찬국이라고 하는 작가에 대한 작가론을 쓸 때, 공공미술이 하나의 작가의 어떤 지점으로부터 발현되는 게 분명히 보여요. 그럼 앞 부분은 박찬국이라는 작가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미술행위와 사회에서 접점을 만들어냈었고, 이후에 사회행위로도 정당한 예술행위를 구사한다. 이게 구분이 되야 되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거를 90년대 중후반으로 보고싶은 이유가, 민중미술이 갖고 있는 정치적인 지향이 사실은 반독재였단 말이예요. 그런데 충분하진 않지만 가시적으로 반독재를 넘어선 다음에, 예술가들이 좀 더 깊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함께 살자’, ‘함께 사는 사회 아니야?’, ‘함께 라는 게 뭐야?’ 이런 걸 물어봤어요.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장르 영역을 넘나들었죠. 왜냐면, 회화과, 조소과라는 교육입시제도에서 ‘이상에 대한 묘사’를 강하게 자의식으로 심어줬는데, 확실한 것은 ‘순수예술(fine arts)’을 아직도 쥐고 있는 작가들은 이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어요. 근데 ‘퍼블릭아트(public arts)’ 영역으로 와서 작업하는 작가들은 ‘하다못해 미장이부터 칠공사까지 한다.’ 여기서 굉장히 큰 차이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제안하는 거는 90년대 중반 전후를 잡아서 거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낸 작품들을 많이 모아서 정리해보면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끌어내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제 아이디어예요.


박찬국: 70년대 80년대, 특히 80년대 거치면서 많이 바뀐거 같아요. 공공미술이냐 정치미술이냐 예술로서 의미가 어떤거냐 구분도 뭐 여러가지 방식으로 할 수는 있습니다만, 예술에서 ‘의미를 갖는다’라는 것은 그게 어떤 사건으로서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주냐, 어떤 충격을 주느냐 이런 것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20대의 힘>전이 85년에 있었는데, 전시가 철거되고 뭐가 사건이 있었죠. 물론 그 이전 미술계에서도 비슷한 활동 많이 했지만, 그 사건은 굉장한 영향을 미쳤어요. 사회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예술이 뭐냐’ 이런 질문이 있던 거죠. ‘거기에 출품했던 작품이 뭐냐’란 질문이 아니라 ‘어 이게, 이 시기에 예술이 뭐냐’라고 하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그런 사건들이 몇 번 씩 있었고, 저는 그런게 예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모방하는 방식으로 반복되는 양상이 오면서 그야말로 예술로서의 영향력이 굉장히 약해졌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도 한동안 방황을 하는 시기가 왔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90년대 들어와서는 그런데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 먹고 사는게 힘들게 됐죠. 뭔가 개인적으로 살면서도 사회적으로도 활동할 수 있는 근거들을 찾았던 것 같아요. 저도 구체적으로 벽화를 했는데, 어떻게든 생존하고 관련된 문제와 결부돼 있는 거죠. 그 시기를 보면 만화를 그린다던지, 애니메이션을 한다던지, 아이들 그림책을 만든다던지. 어떻게보면 그 민중미술이라고 하는 개념 내에 있는 퍼블릭한 개념이 하나의 정치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묶여있다가 시각예술의 전 범주 안에서 실용과 결합하기도 하고, 디자인과 결합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확장된 것 같아요. 그 지점이 제가 보기에는 퍼블릭아트라고 하는 거에도 상당한 영향이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그 때 우리나라의 예술활동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각예술의 전반이 확장되던 시기 90년대 중반, 전 후반, 굉장히 결정적인 거 같아요. 그 지점들이 사실은 아직 잘 포착이 잘 안되고 있는 거 같아요. 미술계 내부보다는 사회전체에 미쳤던 확정된 영향력이나 그 이후에 작가들이 살아가는 방식 이런 것들은 잘 이야기되고 있지는 않은데, 결국 그런건 확실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삼철: 그런데 이제 그런 어떤 선후관계는 분명히 있는거 같고요. 뭐 박찬국 선생님 입장에서는 굳이 공공미술, 예술을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으시잖아요. 어차피 박선생님 사는 방식은 똑같으시니까. 가치도, 지향도 똑같으시니까. 그런데 작가가 예를 들어서 하나의 예술가이자 사회인으로 사는 방법은 저는 크게 구분할 필요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인 미디어로서의 예술, 공공예술이라고 하면 조금 더 엄밀한 필요가 있다고, 저는 보는거죠. 엄밀한게, 이게 한편으로는 분명하게 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감옥에 가두는 이런 모순적인 것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80년대를 경험했던 예술 운동의 속성과 공공미술을 구분을 하자고 하면, 80년대 쭉 예술적인 이런 것은 주장, 이즘적인 속성이 강하다고 봅니다. 반면, 공공미술의 장에서는 주장보다는 참여적인, 이즘보다는 관계적인 속성이 많이 강해진거죠. 그러나 흐름, 정신은 똑같죠. 똑같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는 방법들은 달랐고, 지향점도 아주 달랐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는, 속성을 구분해서 뭐가 얼마나 바뀌느냐를 따지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분명히 우리가 민중미술의 공공성의 속성을 거론하는 부분이 아주 많이 있죠. 그러나 하나의 라벨을 붙이고자 할 때, 그것을 공공미술과는 아주 다른 문제라고 보는 거죠.

반면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보입니다. 이미 60년대말부터 관제적인 조형물을 만드는게 쭉 있었죠. 이게 공공성의 속성은 있었죠. 왜냐하면 공개된 장소에서 이렇게 하는 거니까. 그러나 그것을 공공미술로 불러야 하는가. 그것도 역시 저는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어떤 우리가 용어에 엄밀성, 지향성 이런 논의들을 하다 보니까 저는 자연스럽게 ‘공공미술이 어떠해야 한다’라는 방식이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분명히 정치성을 다루는 공공미술이 있죠. 그런 정치성 중심의 예술은 분명히 어떤 주장과 계몽을 시켜야 되고 이런게 많은거니까 문제제기 이런 것들이 있을거고요. 정치성을 강조하는 공공미술에 있어서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틀림없이 저는 관계를 만들거 같아요. 보다 더 참여적인 형태, 그래서 공론장을 오히려 설계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분명히 공론장을 설계할 때는 목적의식이 있죠. 정치적인 각성이나,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게 있겠지만. 그것이 깔려있는 거지. 이전에서 봤던 이미 다 드러나 있던, 조정되어 있는.

저는 공공미술의 중요한 특징이, 조정되어져 만들어 진 것을 던지는 것이 아니고, 조정하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공공미술의 중요한 덕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점에서 저는 당연히 분명히 공공성이나 정치성의 요소가 원시시대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범위를 거기까지 잡을 것이냐, 그건 아니고. 공공미술, 예술의 중요한 특징은 전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거죠. 우리가 어디에, 아까 위치로 치면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간다라는 인식을 상당히 깔고 있다는 거죠. 그러나 그런 어떤 민중미술 이런 부분은 그 체제에 대한, 그 사회에 대한 그런게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하고는 상당히 다르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분명히 80년대에 어떤 미술, 예술 운동이 공공미술의 분위기를 깔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민중미술과 공공미술이 지향하고 관계맺는 방식에서는 이거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정치 일변도의 그런 어떤 것과 그 다음에 보다 더 넓은 그릇의 사회적 지향성, 이런 부분은 구분을 해야 어떤 포지셔닝이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질문도 하셨지만 도대체 공공미술이란 용어가 적합한지, 공공미술의 기원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이런 부분들은 계속 논의가 필요한거 같아요. 그래야지, 물어봐야지 그게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고, 이거 물어봐야지 이게 자기의 아이덴티티가 잡히는거니까. 공공미술의 역사적 연원이 풍부한건 환영할 일이죠. 반면에 한편으로는 공공미술의 정체성과 공공미술의 범주에 대한 문제, 그게 없으면 사실은 공공미술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 버리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엄밀성에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이섭: 두 가지 이야기의 붙임말처럼 해보고 싶은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질문을 하고, 그 다음 단계에 더 정교하게 질문을 하고, 그 다음에 더 정교하게 질문을 하고, 그게 사실 사람이 한계를 가지고 사는 가장 정직한 방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현대라고 하는 시공간 안에서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이 너무 제한하고 한정시킨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이 방법을 벗어나서 구가하는 방법인데. 저는 미술에 있어서 질문 하는 것이 그런 방식에 좀 돌아서 있어줬단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는 이 공공성에 있어서, 함께 살자고 있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 중에서, 정치적 공론 영역이 분명히 있고요, 사회적 공론영역이 분명히 구분돼요. 정치적 공론 영역은 대의를 얘기하는 거예요. 이것저것 내 개인적인 사정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설수 없는 것,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이야기하고 합의 볼려고 하는 거죠. 그게 정치적 공론 영역이고. 이거는 플라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유효하다는 거죠. 서양놈들이 이때 썼던 퍼블릭하고 사회 영역으로 넘어와서 공론 영역을 똑같은 말로 써요. 얘들은 똑같은 말을 쓰면서도 각기 다른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역사적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거죠. 사회적 공론 영역에서는 대의가 아니라, 대의때문에 감추어졌거나 또는 위축되어있는 일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거죠. 그런데 일상이란 말은 우리말에서는 잘못 되가지고, 너무 소소한 것까지 일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기준을 잡아주는게 시민이예요. 시민으로서 자의식이 없는 사람은 일상 논의에 참여할 수 없어요.

아까 박삼철씨가 계속 지적한 거는, 왜 미술 왜 이 좋은게 폐쇄적으로 되느냐. 미술가들이 자의식이 자기가 시민이라는 의식이 없어서 그래요. 자기가 재능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내가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자임하고 나한테 주어진 책무를 예술로 어떻게 해결할 건지 의식이 없다는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사회적 공론 영역에서 어떻게 일상을 얘기하고, (일상을) 회복시킨다면 어떤 방향으로 회복시킬 건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공공미술 쪽은, 참여했던 작가들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나 순발력,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거의 예언자처럼 과정 없이 확확 가버려요. 그러다보니까 생태문제도 가보고, 환경문제 참여하고, 또 흩어져 있는 공동체에 들어가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어떤 아이템도 던진단 말이예요. 다 좋은데, 한 작가한테는 문제가 안되요. 그런데 이게 사회현상으로 갑자기 들어가기 시작하면 일상을 정확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순서가 필요한데, 어떤 것부터 우리가 먼저 우리가 공동논의부터 해야할 지 헷갈릴 수 있으니까,그런 부분은 항상 열려있어야 되요. 얘기하고 다시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면 역으로 「퍼블릭아트」라고 하는 잡지에서 이 영역에 피쳐링했냐는 거예요.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매달 공공미술에 대해서 얘기하는 미술 쪽은 매체가 이거 밖에 없으니까. <시사인>에 부탁한다 해도 못한다 이거예요. 이런 부분들을 염두해 두면, 조금 더 얘기가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박삼철: 항상 이 용어의 문제, 참 힘든 것 같아요. 근데 여차하면 규정적이고 가속화 된걸로 보이지만, 근데 그 용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게 되어버린 거죠. 꽃이라 해야 꽃이라고 하는 것처럼.


박찬국: 아까 이섭선생님이 말씀하신 질문을 계속 한다라는 하는 얘기가 사실 우리한테 진짜 필요한 것 같아요. 질문이 대게 단편적이잖아요. 바로 질문이 나오면 답해야 하는, 지금 말씀하신거가 질문을 계속 하는 방식인데, 사실은 저희들이 그런거에 익숙치가 않는 거죠.


장소특정성? 커뮤니티아트?

퍼블릭아트: 공공미술이 장소특정적 미술, 그러니까 장소성에 크게 기댄 미술의 한 형태였다면 최근엔 공동체로 이행하고 있다는 관점도 있는 데요. 선생님들께서는 90년대 중반부터 쭉 봐오셨으니까 그런 흐름에 대해 한 번 짚어주시죠.


박삼철: 많은 부분들이, 제 경험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아이템을 던진 거지 프레임을 던진 부분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아이템을 던지면 좋은 건 통하고, 아니면 거부하고. 좋을 수도 있지만, 안좋으면 고치라 하고 그런거죠. 공공미술이라고 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어떤 건지에 대한 전체적인 체계를 못 긋다보니깐 제안하는 모든게 아이템적인 거고. 그래서 공공미술이라고 했다가, 커뮤니티 아트로 했다가, 상품을 바꾸는 거예요. 그런데 상품은 팔릴 수가 있겠지만, 그러면 결국은 이전에 공공미술은 쓸데 없는 걸로 다 하고, 새로운 차를 바꿔 타는 이런 양상이 되어버린 거죠. 제가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양보되면 안되는 부분은,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고 관계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예술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사회는 예술을 어떻게 관용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거에요. 지원이라는 관계는 절대 안되요. 그거는 우리가 공공미술을 계속 실패한 큰 이유라 봐요. 아이템적으로 제시하고, 앵벌이하듯이, “당연히 지원해야 한다” 그런 거죠.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있었다고 하면, 그거는 당연히 ‘써야’하는 거예요. 왜 디자인에는 돈을 쓴다고 하고, 예술은 지원한다고 하고 이렇게 되느냐 말이죠. 당연히 사회기본비용으로 써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그런 어떤 프레임을 못 만들다보니까 아이디어 좋네, 그럼 받아주고, 아이디어 후지네, 안 받아주고. 이런 어떤 굉장히 단편적인 이런 관계 구도를 만들어 버린 거죠.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고민이 다시 이 지점에서 되짚어 져야 하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떤 공공미술의 트렌드가 예를들어서 뭐 쉽게 얘기하면 그렇잖아요. 누구나 책에 나오듯이, 공공장소에 나온 미술이던가, 장소성이 굉장히 강조하는 공공미술이라 하고, 그 다음에는 공익 속에, 공익 미술, 커뮤니티 아트로 가는 듯하게 얘기를 하는데 그거는 제가 볼 때는 상품 적인 논리 쪽에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뭘 해야 하는가로 따지면, 어떤 때에는 공유지 자체로 만드는게 중요해요. 물리적인 공유지 자체로 만드는게 중요해요. 사실 그 플레이스 하고 커뮤니티하고 같은 말이라고 봐요. 플레이스는 터전, 터의 문제이고 그 터에 참여하는 컨텐츠는 퍼블릭 인터레스트(public interest), 공익이라는 이런 문제이고. 그것의 주체적인 문제는 뭐냐면, 작가도 그렇고 시민도 그렇고 거기에서 커뮤니티로 만나는 그런 거거든요. 그게 다 갖춰져야 하는 거죠. 터의 문제, 삶의 문제, 주체의 문제가 사실 통합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물건 팔아먹는 사람은 어떤 때는 요거 팔아먹다가, 장소를 강조하다가 그게 안 팔리면 이제 공익을 강조하죠. 공익을 강조하다가 안 팔리면 커뮤니티 얘기를 하는 거죠. 지금 이제 보면 서울시에서 보면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 비지니스, 이런게 막 나오고... 제일 쉬운게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거 아니예요? 계속 공공미술 하다가 마을, 마을 미술 프로젝트, 커뮤니티 아트로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어디에도 공공미술이라는 제일 기본적인 고민들,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같이 서로를 필요할 것이가 요런 논의는 없다는 거죠. 없고, 계속 팔아먹는 돈 빼먹는 이런 논리만 있다보니까 계속 소모적이고. 저는 공공미술의 가장 큰 문제가, 이런 지속 가능하지 않은 문제, 그 다음에 사회적으로 공유 안되는, 확장 불가능한 구조가 제일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박찬국: 제 최근의 관심사이기도 한데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현상은 분명히 강하게 있다고 생각이 되고요. 어디가 완성시점이 있는거예요. 완성시점이 있는 걸 “뭔가를 한다”라고 하는 생각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한거 같아요. 사실 제가 지금 물건 만드는 걸 게을리 한다거나 뭔가를 계속, 지금 게을리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한테는 어떤 질문이 오냐면, 예술이 정말 생활이나 삶이나 장소 속에서 존재한다면, 어떤 것일까 하는 거예요. 물건을 만들면 일시적으로 뭔가를 촉발하거나 공유하거나 이런 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계속해서 반복해서 반성적으로 질문을 해준다거나,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거나, 이방인적인 시각을 드러낸다거나 이런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됐든, 아니면 질문이 됐든 재충전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그 안에는 행위도 있고, 시스템에 대한 질문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때 작가가 제안하는 방식은 일방적으로 그냥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응축시켜서 사람들의 상상력과 같이 다른 세계로 이행해본다거나 다른 뭔가, 한방 죽비를 맞은 것 같은 상황을 계속해서 연출 할 수 있는 일종의 통찰 같은 것들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럴러면 커뮤니티 아트라고 하는 범주, 지금까지 얘기되는 범주 안에서 얘기 될 수 있는 건가. 그렇게 보면, 커뮤니티 아트라고 하는 것도 계속해서 ‘어떤 상이 만들어진다’라고 하는 걸 전제하면서 계속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시스템 내에서 탈주 할 수 있는, 조건 같은 것을 작가들이 계속해서 제출할 수 있는가, 제안 할 수 있는가. 이런 지점으로 보면 훨씬 더 다른 지점으로 생각이 되거든요.


이섭: 아까 장소특정성에 대한 언급, 그 부분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장소특정성이란게 얘기를 하기 전에는 어떤 예술 행위에서 장소를 특정시켜 생각하거나, 규정해 보려고 애를 쓴 적이 없어요. 영국 피카델리 광장에 가면, 넬슨 제독이 있어요. 높은데 서있단 말이예요. 파리 뤽상부르 공원인가 거기 가면, 오벨리스크가 있어요. 이집트에서 훔쳐온거. 반성 없이 진행을 하다보면, 기념할 만한 것들이나 노획물이나 전리품갔다 세워놓고 즐기면되는데. 갑자기 자기 일상으로부터 물어보는 거죠. “저것이 도대체 내 에브리데이(everyday)를 어떻게 간섭하고, 관계 맺고, 그래서 뭐가 유의미한가.” 만약에 전리품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매일 죽을꺼 아냐. 도대체 예술 행위에 장소가 갖는 의미가 뭔지 한번 물어보자는 제안이 있다면 공공미술에 있어서 질문 형태가 될거예요. 예전 박삼철씨가 진행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에서 작가들을 모아놓고 거의 강연수준으로 장소특정성에 대해서 요청을 했는데, 그거는 어떤 저는 그걸 들을 때 어떤 방향으로 요청했었냐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화문에 있어야 할 우리는 이유를 모른다는 거예요.

앞으로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발산하거나 거기 갖다놔야 할 이유를 그 최소한 첫 번째, 그 지역의 역사 같은 거를 찾아봐라, 제발 좀 관계된 거를 좀 갖다 놓자, 이거 였어요. 작가들의 리액션은 뭐였냐면, 또는 그 이후에 장소특정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어떻게 바꼈냐면, 무조건 들어가는 장소의 역사를 찾아보는거야. ‘여기에 뭐가 있었지?’ 홍길동이 만약에 전국에 일곱 군데 있다면, 홍길동을 일곱 군데에 다 넣는거야. 장소특정성의 단어에 요청을 할 때, 우리 미술계가 가지고 있는 또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한 반성을 이 용어를 통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행위할 건가 요청을 했다면, 너무나 일면만을 받아들인거예요. 커뮤니티 아트도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관계형성이 안된다라고 하는 문제 인식 때문에, 공공미술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조금 더 밀착시키거나, 조금 더 규정해버리려고 하는 거예요. 제발 행위하기전에 관계형성부터 하자. 그런데 어느 순간 커뮤니티 아트라고 하는 형식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진단 말이예요. 왜 우리는 모든 용어를, 또는 그 고민거리를 기능적으로 이해할까. 이게 문제예요. 제가 생각할 때, 기능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한계가 분명히 있어요.

제가 볼 때에는 두 가지로 진단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자기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진짜 커머셜(commercial)한 아이디어로 사는 거예요. 그리고 정책 입안 해가지고 돈을 내주는 입장에서도 분명한 결과물로서 그것을 보상 받고 싶어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그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하고 나서 자기가 엉뚱한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차단해 버리는 거예요. 그거는 우리 현대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와 딱 일맥상통하는거 같은게, 그리고 저는 이 두 번째 이유에 화가나 있는게, 예술가라면 거기서 집어던져야 하거든. 프로젝트를 포기하란게 아니라. 다른 소리를 내야한다는 거지. 그런데 한번도 우리는 그렇게 안했어. 그런 부분들이 좀 심도 있게 다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으로 장소특정적 작품들을 뽑아서 도판들을 쫙 나열해 놓고, 그것이 심층적으로 장소 특정을 어떻게 얼마만큼 이해했는지를 한번 이야기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잘됐다,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라.


박삼철: 이게 공공미술의 실패하고 바로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소특정, 기법적으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장소-일반적이라고 하는 말에 대응해서 한 번 보죠. ‘사이트-제너럴(site-general)하다’라고 하는 건 뭐냐하면, 작품이 주가 되는 거죠. 작품이 어디에도 갈 수 있다를 전제로 하는 거고, 사이트-스페시픽(site-specific)이라고 하는 것은 ‘장소의 맥락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술을 푼다’라는 전제가 되는 거죠. 뭐냐 하면, 장소특정적이라는 것은, 예술을 통해서 장소의 맥락을 더 풍성하게하는 것. 문제제기를 포함해서요. 그걸 다들 기법처럼 쓰고 있죠. 정작 중요한 게, 저는 문제제기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이렇게 닫혀지고 획일화되는 사회를열 수 있는 그런 문제제기 능력이 예술의 제일 본원적인 요건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과학자는 가능성을 만들고, 디자이너는 솔루션을 만들고, 예술가는 문제를 만든다’라고 했어요. 그건 뭐, 이미 상상하신 봐잖아요. 그죠? 예술가는 보다 더 한 발짝 떨어져 나아가서 ‘야, 사는 꼴이 이게 다 일까?’ 질문해보는거죠.

꼴, 모양새, 다 같은 말이지만, 삶의 내용이나 형식이나. 그 다음에 주인의 문제, 특히 저는 이게 중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이때까지는 늘 장소-일반한 것은 예술가가 주인으로서 독점해버리는데, 특정적 맥락을 잘 고려한다고 하면 다양한 주체들을 생성해내는 이런 것들이 진짜 중요해지는 거죠. 그런 지점에서 예술이 자기의 기능을, 역할을 놓쳐버리고 그냥 자기 이름 붙는 작품 하나 또는 몇 푼되는 돈, 그것으로 모든 목표를 잡으니까 굉장히 기능적인 공공미술이 될 수밖에 없어요. 분명히 공공미술이 기능성을 갖춰야 돼요. 사용성을 갖춰야 하는 거죠. 개인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같이 사용하는 거죠. 공간을 사용하든, 문제를 사용하든 그런 식으로 이제 넓혀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너무 진짜 왜소하죠. 또 한편으로는 그것 못지 않게 필요한게 서사성을 만들어 내는 거죠. 문제를 새롭게 보는 그런 서사성.


박찬국: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이게 이제관료적 관점에서 서비스라고 하는. 우리 사회는 모든 걸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다 해결하잖아요. 그래서 공공성이든, 복지든, 뭐든 전부 서비스라고 하는 개념 안에서 관이 하거나 아니면 자본이 하거나, 둘 중에 하나에요. 놀러 가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물건을 소유하는 거, 개인의 취향까지, 전부 서비스라고 하는 개념 안에서 다 재단해요. 예술도 그 지점에서 전혀 다르지 않아요. 특히 커뮤니티 아트같은 경우에는, “이러이러한 서비스가 좋은 서비스다”라는 걸 정해 놓고 “그런 서비스를 해라”이런 식이 강하고. 그게 어쨌든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되어서, 그걸 해야만 생활 할 수 있다, 이런게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마 많은 작가들이나 아니면 시민이 모두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죠. 이게 의미가 없고 새로운 문제를 설정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것도 사실이죠. 또 하나는 뭐냐면, 아까도 이야기 나왔지만, 기능성이 지금 너무 약하잖아요. 작가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있어야 하는데, 적어도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거나 아니면 자기 존재가 인정되어서 뭔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거나. 그래야 좀 자기를 투자해서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죠. 근데, 두 가지 모두 열악한 거예요 현재. 요 부분에서 조금 더 작가로서의 어떤 존재의 맹렬한 의식이 필요한데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성장하는 방식, 대학 생활 같은게 중요해요. 제발 대학이 아무것도 안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너무 모든걸 쥐고 있고 생산 형식 자체를 전부 쥐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그걸 극복하고 자기 활동을 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 같아요.


박삼철:
박찬국 선생님이 돈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예술가들이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이 돈은 관에서 그냥 주는 돈이 아니고, 공동체 기본비용이니까. 그래서 예산의 구성이나 쓰임은 모두, 그것도 당연히 공공 기관에서 검증 가능한 형태가 돼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뭐, 예술가가 뭐 예술가인데 예산 구성이 뭐 잘못됐다 그 다음에 영수 처리를 안 한다…” 이런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하되, 다만 예술가가 참여하고 역할하고 부분에 대한 회의가 제대로 되어 있느냐 안되어있느냐, 이 부분이 중요한 거죠.


박찬국: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훨씬 더 래디컬(radical)해야 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예술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지금 이대로 좋은가. 이미 컨템포러리 아트에대해 질려있고,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얘기할 때에도 그런 지점에 맥락이 닿아 있다고 보는데, 마찬가지로 계속 그런 것들을 장르적으로 받아들인다거나 활동을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는 어떤 계기로 이용하려고만 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훨씬 더 질문 자체가더 래디컬 하게 있어도 좋다. 심지어 정말 예술이 한국 사회에서 돈 받고 하면, ‘야 전부 사회적으로 파업하자’, 이런 정도의 래디컬한 부분이 필요한 것 같아요.


APAP·마을미술 프로젝트,“ 당신이 되면 어떻게 하겠소?”

퍼블릭아트: 올 해 같은 경우 한국에서 가장 큰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하면, 마을미술프로젝트와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를 들 수 있겠습니다. 특히 안양같은 경우에는 예산이 반토막 날 위기도 있었죠. 안양시의 의원 중 하나가 “안양시가 이렇게 어려운데 예술 따위에 돈을 쓸 겨를이 있느냐. 공원 안에 있는 시설물들 부수고 철거하는데만 돈이 몇 천씩 깨지는데, 이렇게 소모적으로 돈이 계속 나갈 바에야 하지 말자”와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컨셉은 ‘힐링’이에요. 잘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섭: 지금 안양은 그, 백지숙씨가 총 감독인데, 지금 예를 든두 가지가 저는 개인적으로 다 연결돼있어요. 안양은 “예술감독 후보가 됐으니 와서 인터뷰를 해라” 그러더군요. 다짜고짜 “당신이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래서 “시설물을 일단 유지,관리 하는 정도, 페인트 칠하는 정도 집어 넣고 하드웨어를 다 포기하겠습니다. 나보고 기회를 주면 백퍼센트 프로그램을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결과적으로는 안됐어요. 다행히 백지숙씨라는 좋은 양반이 됐는데. 제가 그 때 이런 대답을 했어요. “당신들이 공공미술을 이해하는 방법과 공공미술을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양은 계속 한 방향에서만 만났다. 끊임없이 시설물 만들고, 그걸 행사로 했는데 오프닝 이후에 남았냐?” 안 남았데요. 시설물들은 남았지만. “나는 오프닝 이후에 남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예술 행위라고 생각한다. 시민 교육시켜야 되고, 시민 교육의 목표는 그 이후에 그 노하우로 색다른 자신들의 사이클을 만들어 내는 거다. 그럴려면 당신들 생각하는 것 보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결과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인터뷰하는 국장이 “그러면 시공무원 입장에서 어떤 걸 평가를 하고, 이선생님 얘기에 ‘좋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까?”이래서 “신뢰하십시요” 이랬어요. 사람을 믿어야지. 하여튼 떨어졌어요. 우리나라 공공미술이 어떻게 이해되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게 사람들한테 서로 편리한가 확인했던 기회였죠.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이번에 제가 작가로 참여했어요. 제가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비용을 두 개로 나눴어요. 45%가 인건비, 55%가 제작비. 그런데 제작비를 먼저 지급하고 선금처럼, 그것이 종료된 이후에 실행계획서와 결과물이 얼마나 잘 일치하는가가 확인한 다음에, 회계정산을 충실히 다 이행한 걸 확인하고 나머지 잔금 조로 인건비를 주겠다고 하더군요. 제작비는 재료를 구입하는 거는 허용을 하지만, 품값이 안들어가 있는거야. “누가 칠합니까. 이거 돈 누가 주는 겁니까” 그러니깐 “그건 알아서 하십쇼.” 그러면 결과적으로 모든 품, 교통비, 숙박비, 식대는 내가 개인적으로 빚을 내게 되죠. 도대체 왜 이렇게하냐. 이랬더니 앞의 선례 상, 작가들이 너무 많이 자기의 이윤을 취하더라는 거예요. 품 하나 들어갈 거 두 품 들어간다 그러고, 재료 백만원 들어갈 꺼 백 이십만원 측정하더라는 거라는 거예요. 아, 그런 문제가 있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제일 나쁜 방법으로 해결 하는 구나. 이것도 공공미술이라고 하는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간과하는 거예요. 행정적 기능 편의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안타까운거는, 저는 인간관계로 했어요. 중간에 그만하고 싶더라고.


박삼철: 박찬국 선생님이 작가가 래디컬해야 한다는 의식적인 측면을 짚어주셨는데, 저는 행정적 측면에서 래디컬해야 할 것 같아요. 당연히 작가가 작업을 할라고 하면 그런 재료가 있고, 노무 개념이 있고, 진행 경비 개념이 있고, 사실 그거는 공식적으로 행정적인 용어가 다 되어 있는 거예요. 재료비, 노무비, 일반 진행경비, 이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거 마저도 지금 못 만들어내는 구조인 것 같아요. 얘기를 얼핏 들어보니까. 마을미술사무국이 사무지원능력이 없는 거죠. 중대 역할을 못 하니까, 이 사람들은 모든 세상의 이 기운들을 몰아가지고 작가들에게 다 덤탱이 씌우는 거고, 작가들은 정말 돈이 어떻게 이 커뮤니티든 플레이스든 작품을 할 구조가 안 만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그 부분은 공공미술의 문제가 아니고 상식, 상도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거를 안해주는 놈이다 그러면 책임방기의 일그러진 행정이네요.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깊게 논의를 할 수는 없지만, 공공미술이 왜 실패하고,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가, 이게 굉장히 중요한 논의중의 하나라고 보는데. 저는 공공미술이 실패한 제일 큰 원인이 모든 이니셔티브를 관이 지고 있다, 예술가는 거기서 뭘 했느냐 라고 볼 때에, 예술가들의 역할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거죠. 공동체가, 커뮤니티가 문화적인 채널, 미디어를 통해서 돈을 벌든, 캠페인을 하든, 동아리를 만들든, 그 형식이 점점 문화화 되어야 하는 거고 그럴 때 공동체와 커뮤니티와 예술가의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무브먼트와 비슷한데, 아티스트 스페이스 무브먼트 이런 것은 작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중요한 문제 의식을 주변과 같이 공유하는 방식이고 커뮤니티 예술쪽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런 커뮤니티의 문제나 필요성을 가지고 답하는 거죠. 그래서 이 아랫단이 튼튼해야지, 그 아랫단이 지속되어야지 관에서 진짜 공공적으로 내는 기금에 건강한 운영과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다는 거죠. 이 아랫단이 없다보니까 관에서 ‘그거 페인트만 사야지, 칠하는건 니네 알아서 해’ 이런 얘기가 일방적으로 나오고, 예술가들은 못 믿을 사람이라고 되는게, 예술적인 견제 장치나 예술적인 시스템을 제안을 못하니까 그런 거죠.

저는 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말 만들기, APAP 이런게 아니고요, 예술가가 공공미술을 주도할 수 있는 그런 정책적인 부분, 커뮤니티가 예술가를 대행자, 대변자로서 자기들이 가진 사회적 이슈들을 효과적으로 소통시키고 표현하는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제도적으로 열어주는 역할을 인정하고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면, 우리가 뭐 미국 후지다, 어떻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만, 그 사회의 공공적인 부분이 합리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그런 제도적인 기반을 다 갖춰준다는 거죠. 처음에 걔네들도 시작은 건축물에서 나왔죠. 건축물에 몇 퍼센트에서 나왔지만 점점 진화시켜가지고, 옛날에는 건축물의 일부만이 공공미술이였는데 이런 커뮤니티도 참여하게 하고 그 기금 일부는 예술가가 프로포절을 통해서 쓰이고요. 쌓인 프로포절로 부터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관계에서 뽑아내는 축제적인 장이 되잖아요. 지금 정책에서는 저는 마을미술제 안했으면 좋겠어요. 공공미술 2.0도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면요. 당장 나오잖아요? 부패방지위원회같은데에서 미술장식제도 폐지해라. 이런 얘기 나오는 거죠. 한 푼 받아먹기 위해 가지고 지금 맞춰주고, 맞춰주고 하는데 결국 그게 독약이 되는 거죠. 결국 미술의 역할이 필요없다는 것을 대변해주는거죠.


퍼블릭아트: 박삼철 선생님이 역시 현직 행정가로서 하실 이야기가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정치와 분리된 사회적 장으로서의 공공성, 예술 행정의 문제, 작가로서의 태도 등 좋은 화두들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좋은 콤비네이션이었습니다. 세분 모두 선배로서 자신의 경험과 그 추이를 비교적 잘 설명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작가, 이론가, 행정가로서 보여진 입장 차이도 흥미로웠구요. 긴 시간에 걸친 대담, 대단히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박찬국]
박찬국은 일본 교토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벽화를 전공했다. 90년대 중반에 ‘엠조형연구소’를 만들어 커뮤니티형 도시벽화 제작, 일상성을 강조한 어반아트(urban-art)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2002년부터 여주에서 밀머리 미술학교를 운영하며 공간, 문화, 사회적 이슈, 교육과 결합한 프로젝트를 해왔다. 2003 문화부 학교문화예술교육TF에 참여하여 4년간 학교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운영으며, <따뜻한 왼손>, <고구마 프로젝트>, <도시를 감싸는 무지개>, <쑤욱> 등의 예술감독, 2004광주비엔날레현장3 큐레이터, 2008서울 디자인 올림픽 <어어어 : 마을대회> 예술감독, <도시갤러리 황금시장> 예술감독 외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박삼철]
박삼철은 서울대학교 영문과 졸업. 스포츠조선 문화부에서 6년간 미술 분야 기자로 일했다. 이후 이주헌, 이섭, 김진하 등 큐레이터들과 함께 차린 미술기획사 ‘아트컨설팅서울’에서 미술관 바깥의 미술인 공공미술을 맡아 작업했다. 미술인회의 공공미술위원장, 서울시 도시갤러리 추진단장 등을 역임했고,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 행정중심복합도시 기획조정단 등에 객원위원으로 참여했다. 『미술, 공간, 도시』(역서, 학고재, 2000), 『미술전시기획자들의 12가지 이야기』(김홍희 등 공저, 한길아트, 2005), 『왜 공공미술인가_미술, 살만한 세상을 꿈꾸다』(학고재, 2006)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는 서울디자인재단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비스디자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섭]
이섭은 대표적인 공공미술 기획자로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미술의 기존 개념을 넘어서는 미술을 꿈꾸며 삶의 자리와 연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무화랑, 아트컨설팅서울(ACS), 일주아트하우스 기획부문에 종사했으며, 3회 광주비엔날레 영상부문, 주안미디어페스티벌 전시부문, 2005년 광복 60주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또한 2007년 <종촌, 가슴에 품다>, 2008년 <마음속에 마음을> 등 농촌 지역에 작가들이 개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