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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4, Sep 2013

임란 쿼레시
Imran Qureshi

절망 속 피어나는 희망 꽃

뉴욕의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센트럴 파크. 공원의 웅장한 나무들이 이루는 녹음 뒤로 고층건물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MET)의 지붕은 그야말로 뉴요커들의 주말 명소다. 그런데 현재 이 지붕에 붉은 핏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지붕의 바닥에 직접 그림을 그려 대담하게도 지붕 전체를 채워버린 작가는 다름 아닌 임란 쿼레시(Imran Qureshi). 파키스탄 출신의 작가는 올 한해에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발견되었다. 도이치 뱅크(Deutsche Bank)에서 후원하는 ‘올해의 작가 2013(Artist of the Year for 2013)’으로 선정되어 2013년 봄에는 Deutsche Bank KunstHalle에서 화려하게 개인전을 가졌고, 여름에는 5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 전시에 참가하여 현재 전시를 진행 중에 있으며, 지난 5월에는 [The Roof Garden Commission: Imran Quresh]라는 제목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지붕에 장소 특정적 설치를 한 것. 해외 미술계의 소식에 발 빠른 사람이라면 베를린, 베니스, 뉴욕의 뉴스를 두루 살펴보다가, ‘이 작가가 그 작가야?’하고 물었을 법하다. 우리에겐 조금 낯설 수 있는 이 파키스탄 작가, 누구인가.
● 문선아 기자 ● 사진 Corvi-Mora Gallery 제공

Installation view of 'Imran Qureshi: Artist of the Year 2013' Deutsche Bank Kunsthalle Berlin Photo: Mathias Schormann ⓒ Imran Qureshi and Corvi-Mora,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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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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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쿼레시는 현재 파키스탄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모티프와 엄중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전통 세밀화를 현대 미감으로 발전시키는 구상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MET에서와 같은 장소 특정적 작업이라기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되고 있는 전통세밀화(traditional miniature painting) 양식의 작업. 전통세밀화는 무굴(Mughul) 스타일의 회화 양식을 말하는데, 20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표현 양식으로, 자연 안료를 전통적 미디엄에 섞어 제작한다. 작가는 이 양식을 전공으로 하여 라호르의 예술국립대에서 학사를 받았는데, 그가 주목받는 점은 1990년대부터 세밀화를 예술가의 표현으로서 현대의 형식으로 확장시켰다는 것. 고전적 세밀화는 보통 초상화나 종교적 이야기, 전쟁의 묘사, 궁정생활을 표현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던데 반해, 쿼레시는 현대적 내용들을 그 형식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그것을 뉴미디어나 개념 미술과 같은 현대 예술 형식들로 확장시킨다.



Installation view of 
<Blessings Upon the Land of My Love> 
2011 Acrylic and emulsion paint on interlocking brick 
pavement Site-specific installation Photo by Alfredo Rubio 
Commissioned by Sharjah Art Foundation 
ⓒ Imran Qureshi and Corvi-Mora London



<Moderate Enlightenment>를 보자. 이 작업은 2006년에서 2009년 사이에 시리즈로 작업되었는데, 작가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한없이 디테일하게 세계를 재현한다. 부서질 것 같이 연약한 나뭇가지와 덩굴식물 그리고 나무는 장식적인 틀과 패턴을 만들기 위해 서로 얽혀있고, 부드럽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은 꿈을 꾸는 듯,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그들의 의복. 그들은 무슬림복장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메고 있는 나이키 메신져 가방이 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면 그는 군인을 연상시키는 카무플라쥬(camouflage) 양말을 신고 있고, 또 다른 남자 역시 카무플라쥬 무늬의 메신져 가방을 메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파키스탄에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파키스탄의 분쟁상태를 상기시킨다. 더불어 작업 전체는 제목으로 돌아가 ‘온건한 계몽주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슬람세계는 사실상 이미 종말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경직된 종교적 원본주의와 반서구 감정을 벗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는데, 쿼레시는 비눗방울과 같은 상징으로 이슬람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They Shimmer Still> 2012 
18th Biennale of Sydney Cockatoo
 Island Sydney ⓒ Imran Qureshi
 and Corvi-Mora London



쿼레시의 형식과 내용의 확장은 계속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진 구상작업을 위해 이용되던 세밀화 기법으로 추상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 그는 와슬리(Wasli)라는 전통 세밀화용 종이 위에 기하학적 패턴을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흩뿌린다. 또는 종이와 캔버스 위에 금박 잎을 입히고 그 위에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금박을 이용한다는 점과 모티프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전통 세밀화와 크게 맞닿아 있다. <Opening Word Of This New Scripture>시리즈에서 나타나는 달걀이나 싹 등 새로운 새 생명을 생각나게 하는 타원형의 형태, <Through and Through>에 나타나는 폭력과 억압을 상징하는 가위의 형태 등은 전통 세밀화의 상징들과 바로 연결된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를 잇고, 그가 살아가는 사회적 맥락을 환기시킨다는데 큰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궁극에 있는 작업이 바로 그가 2001년부터 시작한 장소 특정적 작업이라 하겠다. 사실 그의 장소 특정적 작업은 20세기의 예술에 있어서 그 중심적 배열 시스템이었던 ‘그리드(grid)’를 일상적인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건축이나 특정한 장소의 특징으로 그리드를 발견했고, 땅바닥의 홈이나 벽돌 사이의 각을 이용하여 그 코너나 틈으로부터 이끼처럼 흘러나오도록 꽃과 같은 장식들을 그려 넣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감은 감정이 요동치듯 넘칠 듯 튀겨지거나 장식성이 매우 강조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이는 시대에 뒤쳐졌다고 여겨지는 전통적 세밀화의 장식성을 강조한 것으로, 말하자면 엄격한 모던을 상징하는 그리드에 대한 반란이다.



<Time Changes> 2008 
Living Traditions Queen's Palace 
Bagh-e-babur Kabul ⓒ Imran Qureshi 
and Corvi-Mora London



이 장소 특정적 작업은 2010년, ‘작가의 집 근처의 플라자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를 계기로 큰 전환을 맞이한다. 작업에 이용하는 물감의 색이 붉은 색으로 변한 것. 그는 꽃을 장식적으로 그린 후 위에 붉은 물감을 튀기거나 부어, 추상적인 붉은 물감 아래 희망적 꽃의 형태를 은닉시킨다. 이제 작업은 널부러진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루어진 붉은 피바다를 연상시키며 슬프거나 끔찍한 사건들, 그리고 파키스탄의 정치적 상황을 환기시킨다. 파키스탄은 독립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다른 종교적·도덕적 그룹들이, 특히 수니(Sunni)파와 시아(Shi'ite)파가 충돌하는 폭력의 장소가 되었다. 게다가 9.11 공격 이후, 미국과 정치적·군사적인 동맹을 맺으면서, 파키스탄은 점점 더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폭력은 거의 매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쿼레시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자신의 작업에서 보여준다.

2012년 시드니 비엔날레에 설치한 <They shimmer still is the poetic>에서 붉은 물감은 계단과 시드니 항의 카카두 섬의 앞쪽의 부두의 경사면을 채우는데, 풍부한 양의 피는 여기저기 쏟아지고 흩뿌려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은 그냥 흩뿌려진 피가 아니라 수 백송이의 장식적 꽃이다. 즉, 붉은 꽃들이 시멘트와 녹슨 메탈로 이루어진 길과 섬을 뒤덮는다. 이러한 작업이 <Blessings Upon the Land of My Love>의 설치로, 그리고 MET의 설치작업으로 이어지는 것. 쿼레시는 자신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폭력을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폭력은 파키스탄에서만 경험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 도처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시스템들을 통한 폭력이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작업이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며 보편적 언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쿼레시는 피 속에 감춰진 ‘피어나는 꽃’들에 ‘Shoots of hope’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희망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쿼레시는 이 작업으로 한 표면 위에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그려내고 있는 셈. 그리고 그 끊임없는 교대와 순환을 실존의 순환으로 표명한다. “이 형태들은 폭력으로부터 나왔고, 피의 색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삶의 대화이다.”는 쿼레시의 말처럼, 그의 작업은 충돌과 폭력을 호명하면서도 언제나 희망을 동반하고, 그것을 꽃의 모티프로 드러낸다.



<And They Still Seek the Traces of Blood> 
2013 Installation view of 
<Imran Qureshi: Artist of the Year 2013> 
Deutsche Bank Kunsthalle Berlin Photo: Mathias 
Schormann ⓒ Imran Qureshi and Corvi-Mora London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파괴와 죽음에 부드럽게 대항하는 큰 생명의 에너지의 부분’이라는 것이 작업 전반에 깔린 기본적인 그의 생각. 설치 작업에서, 관람객들은 그의 작업을 직접 보고 밟으면서 작업의 일부가 되어 그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도이치뱅크 쿤스트 홀에서 있었던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전시장의 한 가운데 생고기를 쌓아놓은 것 같은 설치작업을 해두었는데, 관람객들이 다가가서 종이를 펼쳐보면 이내 그것들이 붉은 물감으로 꽃을 그린 그림을 쌓아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관람객들은 펼쳐보는 행위를 통해 파키스탄이나 자신들의 삶의 근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상기하고, 동시에 마음 한 켠에 다시 희망의 꽃을 품게 되는 것. 앞으로 미디어 쪽으로도 작업을 하고 싶다는 임란 쿼레시. 오는 9월, 로마현대미술관(Macro Museum)에서도 전시를 열 예정이라는데, 그가 또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상황을 작업 안으로 불러들여 희망을 이야기할 지 기대된다.  



<Imran Qureshi> 
Photo: Hassan Rana ⓒ Imran Qureshi 



1972년 파키스탄의 히데라바드(Hyderabad)에서 태어난 임란 쿼레시는 라호르(Lahore)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라호르의 예술국립대(National College of Arts)에서 전통세밀화 전공으로 학사를 마쳤으며, 전통 세밀화의 엄격한 기술과 모티프를 응집하여 구상을 선도하는 작가로 여겨진다. <Blessings Upon the Land of my Love>로 2011년 사라자 비엔날레(Sharjah Biennial) 상을 받았고, 2006년 싱가폴 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 2012년 시드니 비엔날레(Sydney Biennale)에 참여한 바 있다. 런던의 코비모라 갤러리(Corvi-Mora Gallery), 라호르의 로타스 갤러리(Rohtas Gallery) 등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3년 도이치뱅크의 올해의 작가로 뽑혀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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