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현재 위치
  1. Artists
Issue 84, Sep 2013

김주현
Kim Joo Hyun

사실과 해석과 상상의 줄다리기

그런 일이 종종 있지만, 2000년대 미술계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한다고 해보자.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작가가 있을 것이고,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 있을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추리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헌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누군가가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려 한다고 해보자. 경중을 고려하여 비중을 나누고, 세련된 플롯을 조직하는 동안 그 누군가는 왜 하필 이런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나 후회하며, 무의식의 결정을 거듭하게 될지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일을, 해낼 만한 이가 있다. 작가 김주현이다. 무심한 듯 꾸준히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그를 적임자로 꼽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과 문제를 풀어내는 추진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뒤틀림-그물망' 2010 동선, LED 300×200×200cm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정일주 편집장

Tags

물론 김주현은 결코 그런 주제에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인간적이거나 혹은 관계에 얽매이는 것이 아닌 분명한 공식과 결과를 지닌 수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비율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조형을 컨트롤하고, 연결 가능한 것과 절대로 이어서는 안 되는 선 혹은 면들의 공식을 꾀고 있는 작가. 그는 자신의 작품을 아는 이들에게 늘 만족감과 생경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2005년 김종영미술관과 2009년 경기도미술관에서 <22,000> 또는 <9,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작업을 전시했던 그는 2010년 공간화랑에서의 <뒤틀림>전에서 전혀 다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 스스로 “이 전시를 기점으로 내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고 말하듯 경첩, 쌓기, 복잡성연구와 같은 이전의 작업에서 직선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단위들을 반복 조합하여 유기적 형태의 결과를 유도했던 작가는 <뒤틀림>전을 통해 길이가 서로 다른 곡선을 사용, 완성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재료를 부리는 작가 특유의 감성과 그 감성이 촘촘히 박힌 표현에 반했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지만 재료를 다루는 날카로움과 그것으로 전해지던 차가운 이미지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생명의 그물-뒤틀림> 
스텐레스 스틸, LED 730×720×1500cm 
고양버스터미널 설치 사진: 진효숙  



그는 오래도록 작업한 탓에 익숙하고 제작에도 용이한, 조각가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직선의 세계를 떠나, 그리기에도, 수치화하기에도, 도면대로 만들기 역시 어려운 제멋대로 곡선의 세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바탕에는 2008년 그가 우연히 알게 된 ‘위상수학(topology, 位相數學)’이 있었다. 작가는 고등학생을 위한 한 강좌를 통해 ‘위상수학’ 개념을 접했는데, 기하학적 도형의 불변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 재현해 낸 곡선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 “세 시간의 강의가 끝났을 때, 빼곡히 따라 그린 노트를 손에 쥔 나의 머리는 제 맘대로 늘어났다 줄었다, 붙었다 떼었다 한다는 2차원 위상도형인 토러스로 채워졌다. 그것의 표면 위에 뫼비우스 띠를 능가하는 무한순환 나선을 그려 넣어 하나로 연결시키면 어떨까? 클라인병이라는 어느 누구도 그릴 수 없다는 4차원 도형을 그 보다 몇 겹 더 복잡하게 꼬아 만들어내면 학자들은 거기에 뭐라고 이름 붙일까? 등의 질문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들은 엄청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작가 노트 중 한 대목은 당시의 전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식물이 있는 탁자> 
2009 나무 볼트 조립 200×180×75cm 
2009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출품작  



그리곤 연습이 거듭됐다. 그가 봤던 우아하고 고상한 나선들을 구현하기란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이었다. 위상수학에 드러나는, 우주 공간과 연결되며 우리가 아는 기하학이나 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었던 개념, 평평하지 않은 공간의 유형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노력과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잘 빠진 곡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 ‘피보나치 수열’이나 ‘매듭 이론’에 천착했던 그였던 까닭에 조형에는 수많은 숙제들이 더해졌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플러스 전류가 흐르는 선과 마이너스 전류의 선을 조합해 부드럽게 돌아가는 곡선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중간 중간 ‘쉬운 매듭’, ‘조금 복잡한 매듭’, 그리고 ‘대단히 어려운 매듭’ 등의 단계를 더해 자신의 작업을 쉼 없이 곤경에 빠트리는 것이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도록, 예기치 않은 함정을 만들고 그것을 헤쳐 나가며 성취감을 얻는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1621장의 알루미늄 판 쌓기> 
2000 60×60×60cm



우선 경첩드로잉의 선 길이를 조금씩 늘이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다 얇은 철사로 입체모형을 만들던 작가는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전깃줄을 이용했다. 전깃줄을 쓴 김에 (+)와 (-)의 관계를 대입시킨 작가는 자신이 연결한 선에 전기가 통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교차로에 전구를 달았다. “전기만큼 순환과 상호관계성을 잘 표현할 수단은 없다.”고 그는 여겼다. 한편 우리가 3차원에서 경험할 수 없는 고차원이 어쩌면 가느다란 선과 같은 저차원 안에 돌돌 말려있을 지도 모른다는 ‘숨겨진 차원’에 대한 책을 읽은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얇은 구리전선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나선의 결합으로 표현해보겠다는 계획까지 수립한다. 그의 숙제는 끊임없이 난이도를 더해가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고군분투 중이다. 그것에 이르기까지 생산해내는 수도 없이 많은 그물망, 뒤틀림, 토러스 습작들이 주위를 가득 채웠는데도, 스스로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단언한다. 가설을 세우고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지켜보는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열 번째 연습에 그는 기꺼이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22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2001 약 28000×8000×30cm 2002년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작품을 보충하기보다 오히려 해체하는 것이 어쩌면 더 훌륭한 작가일지 모른다. 작품이 명멸하는 동안 미학적 의미들을 채취하고, 그 잔해에서 의미의 사리들을 수습하는 것. 이를테면 관념을 파괴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 말이다. 공들여 세운 작품을 부수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김주현을 보며 느낀 감상이다. 그는 쌓고 그것을 해체함으로써 자기만의 이론을 확고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과 논의된 작품에 매혹돼 몰입했다가 거기서 맞닥트리는 생경한 인상을 즐길 줄 아는 작가다. 사람들의 시선에 그다지 의미 있는 것으로 지각되지 못한 수, 공식, 법칙과 차원을 그는 기묘한 예민함으로 포착해서 그 사소한 조각을 가지고 하나의 우주를 구축한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부과한 진정한 과제는,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그러나 아직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언어와 세계의 구축인 듯하다. 그의 작품은 미술과 수학의 경계를 변증법적으로 허무는데, 불가피하게 역사, 재료, 정의와 같은 보편 범주의 자기장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오랜 숙련으로 터득한 방법을 통해 분명 남들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보는 이의 의식 속으로 깊숙이 휘감겨 들어오는 작품들은 전구처럼 반짝거리며 새로운 맥락을 제시한다. 그리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다시 작품으로 귀속된다. “갖고 있는 개념에서 파생될 내용이 무궁무진하다.”는 김주현, 그래서 응당 주목받는 그에게 마음이 쏠린다.  



김주현



작가 김주현은 1965년 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1993년 토아트스페이스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01), 김종영미술관(2005), 공간화랑(2010), 갤러리시몬(2011) 등 지금껏 총 10회의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100년전>(2006), 백남준아트센터 <수퍼 하이웨이 첫휴게소>(2009), 문화역서울 284 <카운트다운>(2011) 등 기획전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09), 창원조각비엔날레(2012), 부산비엔날레(2012)에 참여했다. 2005년 ‘김세중청년조각상’과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한 그는 2009년 록펠러 재단 벨라지오 레지던시(Rockrfeller Foundation Bellagio Residency)와 2011년 NARS Foundation 레지던시(New York Art Residency and Studios Foundation)에 참여한 바 있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