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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81, Jun 2013

닉 케이브
Nick Cave

요란한 털복숭이 정령들

공공장소에 괴생명체들이 홀연히 나타난다. 행인들이 그들에게 눈길을 줄 즈음, 리듬악기들이 투박한 비트를 내지르고, 이 화려한 털복숭이들은 흡사 접신을 바라는 제의 의식처럼 격렬한 춤사위를 펼친다. 사람이나 동물이라기엔 무리가 있어 뵈는 괴생명체들은, 제 몸에 붙은 기다란 털과 단추, 나뭇가지 등의 오브제를 너울거리며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인다. 이런 탓에 옷가지에 붙은 오브제들은 서로 부딪쳐 안무 내내 형용할 수 없는 소리를 자아낸다. 닉 케이브의 ‘사운드 슈트(Sound Suit)’와 안무는 이런 광경을 만든다. 전시장에 진열되었을 때는 당최 이해 불가한 아방가르드 패션디자인쇼처럼 보이지만, ‘제의’에서 춤의 역할이 그러하듯, 실제 이 의상을 착용하고 펼치는 안무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를 연결 짓는 역할을 수행해간다.
● 이정헌 기자 ● 사진 Jack Shainman Galley 제공

'Heard NY' Photo by Travis Magee, Courtesy Creative Time and MTA Arts for Tran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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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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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케이브는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운드슈트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계기는 이렇다. 그가 대학을 재학 중이던 1991년, LA에서는 미국사회는 물론 전 세계에 인종차별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킨 ‘로드니 킹 구타사건’이 일어난다. LA 폭동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이 사건으로 작가는 흑인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길 위를 굴러다니던 나뭇가지를 보며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흑인들의 현실을 떠올린다. 패션디자인과 안무, 조각을 전공한 그의 다음 행동은 어쩌면 당연했다. 나뭇가지들을 모아 안무 의상에 붙이는 작업을 시작한 것.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늘 물려받은 낡은 옷을 입고 자란 탓에 정교한 바느질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나무 이외에 여러 오브제를 의상에 부착해 작품을 제작하기 한다. 초기 사운드슈트는 무거워서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었기에 안무용으로는 낙제점을 받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의상을 입고 춤을 출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소리에 매료되기 시작해 점차 안무가의 율동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고안한다. 결국, 처음 그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하는 소재들, 즉 흑인들이 지닌 현대적 모습, 전통적 모습을 은유하는 여러 종류의 오브제를 사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Soundsuit> mixed media 2009 
ⓒ 2009-2012, Jack Shainman Gallery



원초적인 색상과 복잡한 패턴으로 얼핏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오브제를 한데 엮여 만든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무용수가 직접 입고 안무를 선보일 수 있게끔 제작된다. 작품마다 형태는 다르지만, 털이나 천, 단추, 나무, 인형, 구슬 등 주로 사용되는 재료는 비슷하며, 작품제작 초기와 마찬가지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재활용품들로 구성된다. 어떤 사운드슈트는 박제된 새들로 가득 해 도무지 춤을 출 수 없게 되어 있기도 한데, 이는 ‘전시장 관람용’으로 따로 제작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는 안무에 사용됐던 의상을 그대로 전시한다. 사운드슈트는 의상을 착용한 안무가의 움직임이 잘 보일 수 있게 디자인되며 몸짓에 따라 털이나 나뭇가지가 너울거리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 딸깍이는 등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작품의 시작이었던 만큼, 오브제는 흑인 문화를 상징하거나 부두교 등 아프리카 토속신앙을 은유하는 사물로 한정시키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닉 케이브는 ‘부두교’의 제의 의식에서 모티프를 가져 오게 된다.



<Drive by> film still 2011 
courtesy of the artist and 
Jack Shainman Galley



그의 작품이 현재 남녀노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괴상하고 한편으론 귀엽고 화려한 생명체들이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장은 물론 공원이나 학교,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집단안무는, 길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잡아끈다. “장소의 의미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인상에 주목한다”고 밝혔듯, 닉 케이브 스스로도 전시보다는 공연장 혹은 공공장소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퍼포먼스를 더욱 선호한다. 이는 곧 “원초적 제의의 현대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일례로 지난 3월 뉴욕 그랜드센트럴역 건립 10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닉 케이브의 ‘Heard NY’ 프로젝트가 있다. 미국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이 공공장소에서 작가는 수십 명의 현대무용가에게 사운드슈트를 착용시키고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격렬한 안무를 선보였다. 그는 역을 ‘미지의 장소로 통하는 매개체’로 설정해 “상상으로 가득한 장소”로 탈바꿈 시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사운드슈트를 착용하여 춤을 추는 프로젝트, 쇼핑몰에서 선보이는 퍼포먼스 등 장소의 특성이나 관객, 참여자들의 특성에 따라 작품을 변주한다.



시애틀미술관에서 열린 
<Nick Cave: Meet Me at the Center of the Earth>전
전경 Images courtesy of Seattle Art Museum  



이외에도 그의 작품이 사랑 받는 이유는, 아프리카 토속신앙과 부두교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성격, 투박하고도 화려한 면모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굳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더라도 사운드슈트는 작가의도 를 쉽게 눈치 챌 수 있게끔 외형에서 이미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 단추나 짚, 인형 등 부두교의 의식에 사용되는 사물은 그대로 정령의 이미지를 만든다. 의상뿐 아니라 안무도 마찬가지다. 접신 상태로 접어든 주술사들이 선보이는 춤사위에서 착안한 안무는 제의가 지닌 의미를 극대화하며 부두교가 지닌 본래 의미를 동시대 감성에 맞게 환기시킨다. 부두교는 흔히 악마의 종교로 인식되지만, 그 이면에는 서인도제도 식민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 종교수용사가 대부분 그렇듯, 부두교는 아프리카 애니미즘 토속신앙과 가톨릭이 버무려진 것이다. 이 종교에는 정령 숭배 신앙이 존재하는데, 정령은 개인과 개인은 물론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와 사회의 관계를 중재한다.



2011년 잭세인먼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장 전경 
ⓒ 2009-2012, Jack Shainman Gallery



부두교에서 르와(Roa)라 부르는 이 정령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끈 역할을 하며, 정령인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가톨릭 성인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닉 케이브가 만든 사람도 동물도 아닌 괴생명체는 다름 아닌 르와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보면 제의의 옛 모습, 즉 사회의 안녕을 빌고 구성원 사이의 유대와 연대를 다지는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이 바라는 현대적 의미의 제의라 할 때 말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 물들여진 현대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를 시도한다. 재활용된 재료로 꾸며진 사운드슈트를 입으면, 착용자의 피부색이나 성별, 출신 등은 가려진다. 쓸모없는 오브제를 모아 화려하게 재탄생시키는 닉 케이브의 작업은, 외면 받았던 흑인이란 인종에 대한 희망을 전달함과 동시에 계속되고 있는 인종차별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간직한 현대사회를 비판한다.  



Photo by Travis Magee, 
Courtesy Creative Time and
 MTA Arts for Transit



안무가이자 조각가인 닉 케이브는 1959년 미국 미주리에서 태어나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9년 안무가 앨빈 애일리를 만나 현대무용을 배우고, 1981년 캔자스시티 아트인스티튜트에서 패션디자인을, 크랜브룩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1990년대 초반 세 가지 장르를 복합시키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작가는 미국을 중심으로 수십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지난 3월에는 뉴욕 그랜드센트럴역에서 ‘Heard NY’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는 6월 덴버미술관에서, 2014년엔 뉴욕 잭세인먼갤러리, 보스톤미술관 등지에서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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