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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79, Apr 2013

남춘모
Nam Tchun Mo

반복적 수행으로 겹친 물질과 정신

4cm 정도의 폭으로 길게 잘린 천을 각목 위에 ㄷ자 모양으로 올려놓고 그 위에 합성수지를 발라 딱딱하게 굳힌다. 그렇게 완성된 ㄷ자모양의 모듈을 원하는 크기로 자른 후, 일정한 조형적 질서에 따라 배열한다. 이 배열이 평면에 놓이면 회화, 공간에 놓이면 조각이 된다. 때에 따라서 그 위에 색을 다시 칠한다. 이상은 남춘모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이런 방식을 거쳐 제작된다. 기하학적 요소들로 단순하게 조형된 아름답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작품에 비해 그것에 쓰이는 재료는 흔한 싸구려 천이거나 공업용품 등 비미술적 재료다. 그것들은 작가의 세심한 주의와 끈질긴 육체적 노동의 반복을 통해 가공되는데, 과정이 가히 ‘장인적’이다.
● 안대웅 기자 ● 사진 서지연

왼쪽 'Beam' 혼합매체 160×120cm 2008
오른쪽 'Beam' 혼합매체 160×12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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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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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모는 89년 ‘신조미술대상’을 수상하며 대구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선배작가 최병소를 좋아했던 그는 초기, 선(線)을 조형적 요소로 활용한 모노크롬 회화로 주목 받았다. 그는 한국전통그림에서 선 하나로 사물의 형태는 물론, 농담과 원근감까지 모두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매료되었다. 또 한편으로 기하학이 발전함으로써 인류가 원시상태에서 지금의 문명으로 진보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선을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 본 것이다. 그는 선을 도구로 쓴다기 보다, 그 자체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선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그렸다. 그러던 어느날, 97년부터 청도의 폐교를 작업실로 쓰면서 작업은 급물살을 타는데, 이는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바로 <Strokeline>(1998)이다. 여기서 선은 조형적 요소로서 개념상 입체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학적으로 실체화 됐다.



<Strokeline> 
혼합매체 195×95cm(each) 2008



처음에는 속이 꽉찬 구불구불한 막대기 같은 것을 천장에 매다는 작업을 하다가 구체적으로 ㄷ자 모양의 선을 만들었다. 숫자 0의 발견이 수학에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다 줬다고 했던가. 이것은 남춘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입체로 변한 선은 다양한 변용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공간에 설치한 선은 그 자체로 공간 드로잉이 되었으며, 그 주변은 자연스럽게 배경이 되었다. 또 ㄷ자 홈의 밑바닥을 칠하거나 옆면을 칠하면 좌우로 이동할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빛이 이동할 때마다 색이 변하고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졌다. 마치 조형적 요소가 실제 공간에 현전하고 ‘경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작업을 두고 작가는 스스로 직접적이고, 투명하고, 단순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작업이 미니멀리즘의 영역에 한층 더 다가선 것이다.



<Beam> 혼합매체 100×73cm 2011



한편 전기 모노크롬 회화 작가들이 동양적 정신을 물질에 구현하는데 주력했다면, 남춘모의 작업에서는 산업사회의 징후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는 스스로가 추구하는 선의 기하학이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원초적인 본질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쭉 써오던 ‘strokeline’ 대신, 근작의 제목에 건축용 내장 철골을 뜻하는 ‘beam’을 붙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작품에서 키치적인 싸구려 천이나 합성수지 등의 공업용 재료들을 사용한 것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도 선배 세대의 모노크롬 회화에서는 보지 못 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남춘모는 선배세대에서 부단히도 드러내고자 노력했던 동양적 정신성을 삭제시키고자한 것일까. 그의 모노크롬 회화는 오히려 서양의 차가운 미니멀아트에 가깝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30년대 태생의 선배작가들과 구별하여 50년대 이후 출생한 모노크롬 회화 작가를 ‘후기 단색화’ 계열로 분류한다. 윤진섭은 후기 단색화 작품에는 전기와 비교했을 때 작가의 의식이나 취향, 감수성, 재료가 다른데서 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Strokeline> 혼합매체 1998  



하지만 그는 한국에 단색화 작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그것은 바로 ‘반복'이다. 반복적 행동을 통해서 정신적 초월상태를 지향했다는 것이다. 남춘모의 작업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산업 재료가 쓰였다고는 하지만 과정과 접근방식에서는 전혀 ‘미니멀’하지 않다. 손맛의 효과랄까 정신이 물질과 겹쳤달까. 전술했듯이 그는 오랜 시간의 반복된 노동을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 이런 태도는 단순하고 차가운 반복이라기보다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정신을 고양시켰던 선조들의 수행 방식에 가깝다고 읽힌다. 그의 작품은 명징하면서도 명상적이며, 기계적 외양을 띄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드러우며 많은 정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장인적 미니멀아트’ 혹은 역시 한국의 후기 모노크롬 회화라고 해야 옳겠다. 하지만 작가는 무어라 규정되는 것에 초연하다. 그는 어차피 무리하지 않아도 작업의 의미는 작업에 묻어나는 거지 그것을 의식적으로 작업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열심히 작업을 하다 돌아서 보면 하나의 줄기가 보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모노크롬 회화는 작가를 보는 단지 하나의 현재적 맥락이라는 것이다.



 <Gesture> 
캔버스에 유채 90×110cm 1996



현재 남춘모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시야를 넓혀 독일 쾰른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국내외를 왔다 갔다 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학 졸업 이후 독일로 유학 갔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부를 못 마치고 다시 돌아왔는데 그 열망을 지금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란다. 또한 국내 시장이 갑자기 젊은 작가들에 포커스를 맞추어 50대 60대 작가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그의 포부는 당차다. 이번 4월 뒤셀도르프, 5월 뉴욕, 6월 파리, 8월 싱가폴, 9월 서울 홍지스페이스 등 개인전과 단체전 일정이 국내외에 걸쳐 빡빡하게 잡혀 눈코뜰 새가 없을 지경이다. 올해는 ‘한국의 단색화’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남춘모



작가 남춘모는 1961년 강원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IBU갤러리, 스위스 아틀리에24, 중국 갤러리F5, 독일 우베삭소프시키갤러리 등을 비롯해 국내의 박여숙화랑, 조현화랑, 카이스갤러리 등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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