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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78, Mar 2013

권대섭
Kwon Dae Sup

일탈한 우아, 정제된 억압

권대섭에게 백자란 그가 대중과 소통하는 기호다. 어떠한 것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기호는 형식으로서의 ‘기표’와 내용으로서의 ‘기의’란 두 요소로 이뤄지는데, 작가 권대섭은 독창적 방식인 기표와 자신이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를 담은 기의로 타인들을 매료시키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창작했다. 백자는 권대섭을 홀리는 색채와 형태의 놀이이자 상상력의 결정체고, 때론 그의 전부이다. 젊은 시절부터 백자에 집중해 남다른 예술적 열정에 사로잡힌 그에게는 영락없는 작가로서의 경쟁력이 있었다. 자신의 청춘을 걸고 내달렸던 예술 놀이 그리고 겨루기에서 작가는 온몸에 전율이 돋는 희열을 느꼈고, 백자 영역의 고지에 올라섰다.
● 정일주 편집장 ● 사진 서지연

2009 아트마이애미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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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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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다. 차갑다. 은은하다. 깊다. 아득하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수식이 붙는 것이 백자다. 말 그대로, 하얀 도자기를 지칭하는 백자에는 원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색이 담기고,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차이의 형태가 존재한다. 작가 권대섭이 “반복 작업 같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매번 다른 결과를 얻기 때문”이라고 피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료와 소성에 따라 색이 변하고, 손의 움직임과 감각에 따라 형이 완성되는 백자는 그야말로 혼과 정신을 투사하는, 섬세한 메커니즘과 다름없다. 어떤 본질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거나, 장식하고 혹은 변형하는 것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는 그이다. 권대섭은 재료와 과정, 거기에 나름의 노력이 더해져 완성되는 백자에 몰두해 벌써 30년째 열중해 있는 작가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규슈지역으로 간 작가는 임진왜란 때 건너간 우리나라 도공들이 만든 유일한 관요가마에서 기술을 배우고 실력을 다졌다. 5년 남짓한 시간은 일본인인 스승과 동료들 틈에 끼어있음에도 한국의 혼을 새기며 철두철미한 기술을 연마하는 기회가 됐다.      



<백자 대호>



귀국해 경기도 광주에 터를 잡은 그는 현대미술 속 백자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혹자는 “똑같은 형태의 항아리를 계속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극한의 형태가 항아리다.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미 최고의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분명한 한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최고의 희열을 선사한다. 주지하듯, 한계란 사람의 의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닌다. 누구나 ‘익스트림’에 도전하고 그것을 깨서 넘으려는 욕구가 있지 않나. 자신의 실력을 깨고 또 발전시키는 권대섭은, 그런 의미에서 한계의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앎이 단순한 사람들은, 백자와 전통을 동등하게 여긴다. 흙을 빚고 가마에 굽는다는 것만으로 현대를 배제한 채 전통에 매진한다고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엄연한 의미에서 권대섭은 가장 현대에 맞닿은 시간의 흐름을 탐구한다. 물과 흙, 불이란 자연 그대로의 것들로 현대미를 표현하는 과정에 심취해 있는 것이다. 그가 선보여온 행보 또한 일맥상통한다. 도예, 공예로 한정된 행사와 공간으로부터 보내져 온 수많은 프러포즈를 마다한 작가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선보이는 갤러리와 미술관, 그리고 국제적인 행사를 통해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미갤러리, 서미앤투스갤러리, 공간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아트바젤이나 아트마이애미 등 세계적 아트페어에 참여해 성과를 얻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병종, 구본창 등 작가와 기획전을 선보임으로써 현대미술 범주에서의 백자를 재해석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최근 대구 동원화랑과 2012대구아트페어에서 전시된 작가 이배와의 2인 전 또한 평면 작품과 백자를 교차시킴으로써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숯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이배의 작품과 권대섭의 정제된 백자는 서로 강하게 대비되며 세련미를 선사했다.



“그는 그 맑고 도도한 백자 빛의 흐름에 혼을 맡겼고, 
전통이라는 강물 속에 자신을 던져버렸다”.  



권대섭의 백자는 단순한 항아리가 아닌 완성된 오브제로 인식된다. 이는 각각의 작품에 작가의 혼과 고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까닭이다. 흙색을 존중하고 본질에 순응하는 작가는 인간미와 천생적인 소박함을 본연으로 삼아 불필요한 면을 걷어낸 형태를 갈고 닦는다. 그에게 작업은, 새로운 실험을 펼치고 강한 장식을 더하기보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연에 충실을 기하는 것이다. 음각이나 획을 치는 등의 변주를 전혀 배제한 채 그는 흙을 다지고 물레를 돌리고 가마에 구워내는 숙련의 과정만을 똑같이 되풀이할 뿐이다. “그는 그 맑고 도도한 백자 빛의 흐름에 혼을 맡겼고, 전통이라는 강물 속에 자신을 던져버렸다.”는 윤익영 평론가의 말처럼 작가 권대섭은 백자에 모든 것을 내걸었다.



2012 대구아트페어 동원화랑 
<권대섭, 이베>전 전경



이상미를 충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도의 숙련이 필요했다. 백자는 사치와 기교를 배격한다고 하지만, 질 좋은 흙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정교한 공정의 끝손질에 이르면 사치품(정신적)의 반열에 올랐고, 서민적이라고 하면서 지극히 귀족적인 품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는 물질적인 실용성보다는 보거나 느끼면서 사용하는 마음의 소용, 심미적 대상에 가까웠던 백자 본연의 역할을 파악했고 그것에 힘을 싣고 있다. “백자 달 항아리는 비어있는 충만함이고, 완벽한 미니멀아트”라고 그는 말한다. 정제된 틀과 형식으로 억압된 듯 보이지만 권대섭의 항아리에는 무수한 일탈과 무한한 찰나가 담겨있다. 그 다채로운 변화들이 그가 쉴 새 없이 물레를 돌리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권대섭



작가 권대섭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큐슈의 이마리 나베시마가마(오가사와라 7대)에서 5년 동안 수학했다. 나베시마는 임진왜란 때 잡혀간 우리나라 도공이 만든 일본 내의 유일한 관요가마이다. 귀국해 조선의관요인 광주분원과 금사리가 보이는 곳에 장작가마를 짓고 30년간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전통을 넘어 백자의 현대적 의미를 확립코자 노력하고 있다. 서미앤투스 갤러리, 서미갤러리, 동원화랑, 공간화랑 등에서 총 20여회의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2009년 아트바젤과 아트마이애미에 참여했다. 멕시코 국립미술관, 러시아 국립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다카 국립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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