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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5, Feb 2022

장르라는 이름 아래 가두지 말라 아티스트라는 단어로 충분한 ‘로리 앤더슨’

U.S.A.

Laurie Anderson
The Weather
2021.9.24-7.31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 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 ● 이미지 Hirshhorn Museum 제공

'To Carry Heart’s Tide (The Canoe)' 2020 Installation view of 'Laurie Anderson: The Weath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 2021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Ron Bl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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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 콘텐츠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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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전시장 입구, 스크린이 펼쳐진다. 앳된 얼굴의 그가 춤을 추고 있다. 무술을 하듯 절도 넘치는 움직임엔 강력한 타악기의 진동이 따라붙는다. 하얀 점프 수트를 입은 그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 낮은 북소리가, 무릎을 치면 약간 높은 피치의 쿵 소리가, 손에 쥔 장치를 움켜쥐면 심벌즈 소리가 난다. 소리가 움직임을 만드는지, 움직임이 소리를 만드는지 모르겠는 무아지경의 <Drum Dance>(1986), 그 주인공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백남준의 아티스트 그룹, 요새 말로 ‘크루’이자 동료였던 바로 그 앤더슨이다.

가수이자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작가 등 전방위 예술가인 앤더슨의 대규모 개인전이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Hirshhorn Museum)에서 오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더 웨더(The Weather)’라는 이름으로 미술관 한 개 층을 가득 메웠다. ‘회고전’이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1977년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아티스트인 밥 빌레키(Bob Bielecki)와 함께 제작한 일렉트릭 바이올린인 테이프 보우 바이올린(Tape Bow Violin)부터 1985년 사용한 디지털 바이올린, 1978년 제작한 핸드폰 테이블, 2015년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간성과 미국 정부의 이중성을 꼬집어 수없이 회자된 <Habeas Corpus>, 가장 최근 작업한 회화까지 (기자간담회 때 작가는 작품을 걸고 나서도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 또 흰색을 덧칠했다”고 고백했다) 장르와 시기를 총망라한다.


‘장르’는 깡그리 무시하고 ‘예술’에만 집중하는 그의 스타일 덕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인격으로 각인 됐을 것이다. 백남준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사람은 백남준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로, 1981년 데뷔앨범 ‘빅 사이언스(Big Science)’의 싱글 <O Superman>을 기억하는 사람은 최고의 가수이자 퍼포머로, 2015년 하비아스 코르푸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최첨단기술을 활용해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부조리를 극적으로 소환한 아티스트로 기억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에서는 앤더슨에 대해 “‘멀티미디어’라던가 ‘초학제적’이라는 단어가 이 사람 때문에 탄생했다. 12개가 넘는 앨범을 발매하고, 여러 권의 책과 수십 개의 에세이를 썼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매체를 변주했다. 영화, 비디오테이프, CD롬, 심지어 가상현실까지”라고 설명한다.




<The Witness Protection Program (The Raven)>

2020 Installation view of <Laurie Anderson: The Weath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 2021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Ron Blunt




조명을 받으면 여러 각도에서 반짝이는 미러볼처럼, 앤더슨의 예술적 ‘부캐’들은 제각각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난다. 이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최신 기술’이다. 일렉트릭 바이올린 개발, 인공위성을 이용한 영상쇼, VR 작업 등 ‘최신 기술’이 관통한다. 그러나 전시를 다 보고 나면 기술을 활용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독하게도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신작이자 장소 특정적 작업인 <Four Talks>(2021)가 그렇다. 작가는 몇 주에 걸쳐 전시장의 검은 벽과 바닥을 하얀 낙서로 빼곡하게 채웠다. 성서의 구절, 고인이 된 남편 루 리드(Lou Reed)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앤디 워홀(Andy Warhol),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비틀즈(The Beatles), 존 케이지(John Cage)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감상을 마음이 가는 대로, 의식이 흐르는 대로 적었다. ‘누가 달을 소유하고 있나’, ‘문명은 처음 화난 자로부터 출발한다’, ‘물건보다는 날씨에 더 가까운-존 케이지’(케이지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오랜 협업 관계를 묘사한 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작업을 하는 내내 케이지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2017년 대만 작가인 힌-치엔 황(Hsin-Chien Huang)과 함께 제작한 초크룸(The Chalkroom)의 현실 버전이다. 당시 VR로 제작하고, 심지어 2017년 ‘베니스 국제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최우수 VR 체험상을 받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VR헤드셋을 공유하는 것이 감염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미술관의 정책에 따라 ‘현실계’에 만들어졌다.




좌: <Neon Violin> 1982/1985 Metal and neon

bulbs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Jason Stern
우: <Viophonograph> 1977/2010 Instrument

and electronics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Jason Stern




<Four Talks>가 한창인 방에는 3개의 조각이 설치됐다. 끊임없이 떠드는 앵무새 <My Day Beats Your Year)>(2010/2021), 검은 갈가마귀 <The Witness Protection Program>(2020), 금색으로 칠한 카누 <To Carry Heart’s Tide>(2020)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텍스트처럼 앵무새의 말도 앞뒤가 긴밀하게 연결되진 않는다. 워싱턴 D.C.에 있는 허쉬혼 미술관의 위도 경도 좌표를 읽는가 하면 불이 났다며 ‘코드 레드’를 외치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인생의 작은 깨달음을 속삭인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몸은 다이아몬드가 된대. 그리고 또 찻잔이 되기도 하지. 그냥 분필이나 숯이 아니야. 너무 많은 사람이 프로작(신경안정제)을 먹어. 내 생각은 이래. 이 행복한 척 꾸며대는 것이 나를 정말 우울하게 해. 있잖아, 그냥 산책 좀 하고 우리 자신으로 살면 안 될까?”


갈가마귀는 노아가 생명을 찾기 위해 방주에서 날려 보낸 새다. 희망을 찾아 떠나야 하는 갈가마귀는 날지 못하고 한껏 웅크린 자세다. 카누는 중간 부분이 깨져 나무를 덧댔다. 지구가 망망대해 우주를 떠도는 (노아의) 방주라면, 우리 내부에서부터 이미 물이 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호주에서 2년 전부터 레지던시를 하고 있는데 환경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현재는 노아의 방주를 오페라로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Citizens> 2021 Installation view of

<Laurie Anderson: The Weath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 2021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Ron Blunt




전시 오프닝이 있었던 2021년 9월 23일은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8월 30일)를 선언한 지 3주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미군 철수 후 아프간은 바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갔고, 우왕좌왕하는 대처에 바이든의 지지도는 현재까지도 계속 하향세다. <하비아스 코르푸스>는 9.11 이후 급진 무장단체 탈레반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 미국이 똑같이 괴물화한 전쟁의 이면을 보여준다. ‘Habeas Corpus’는 원래 라틴어로 ‘당신은 몸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법률 용어이기도 한 이 단어는 구금이 적법한지 판사가 심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정당한 법적 판결 없이 임의로 구속하거나 또한 구금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앤더슨은 2015년 이 <Habeas Corpus>가 침범당한 가장 부조리한 사건인 모함마드 엘 가라니(Mohammad el Gharani)를 위성 프로젝션으로 뉴욕 파크 애비뉴에 불러낸다. 엘 가라니는 지난 2002년 14세의 나이로 관타나모에 수감됐다. 혐의는 1999년 그가 런던에서 발생한 알 카에다 작전에 참여했다는 것. 당시 가라니는 11살, 심지어 자신의 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밖으로 나온 적도 없었다. 이후 7년 동안 영문도 모른채 수감생활을 하면서 신체적·정신적 고문을 당했다. 2009년 풀려났지만 미국 정부는 왜 풀려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가라니는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돌아가지 못하고 북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다. 앤더슨은 35분간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그가 관타나모에서 겪은 ‘노예’와도 같았던 생활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2000년대에도 이런 노예가 여전히 존재한다니까요”라는 그의 외침은 “그래도 미국은 정의로운 국가”라는 증언과 상호 모순되며 현실의 부조리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Sidewalk> 2012 Installation view of
<Laurie Anderson: The Weather>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 2021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Ron Blunt




전시장에서 작가는 “2015년 이 작품을 공개할 당시, 위성과 연결이 사실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면서 “이런저런 기술적 문제로 뉴욕 청중의 목소리가 그에게 닿지 못하고 그의 목소리도 전달이 매끄럽지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한 말은 “미안해요”였다.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는 미국을 좋아한다.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앤더슨의 ‘The Weather’는 예측 불가능한 날씨처럼 종횡무진 한다. 시각예술과 청각 예술을, 퍼포먼스와 회화를, 최첨단기술과 가장 아날로그적인 터치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나든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다 해가 뜨지만 이 날씨에 흔들리는 것은 인간일 뿐, 자연은 순응한다.


가장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기억하는 것은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앤더슨의 전시는 가장 희망적이고, 가장 인간적이다.PA



글쓴이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감정평가사협회(Appraisers Association of America, AAA)의 미술품시가감정과정을 수료했고 AAA의 준회원 후보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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