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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6, Mar 2022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 과정과 관계로서 문화유산

Cultural heritage as a process and relationship

우리나라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시선은 어떠한가? 석굴암, 경복궁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찬란한 문화유산은 국가의 정체성을 물질로 증명하는 상징인 동시에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긍심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미래 세대에게 이를 흠 없이 전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지워져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문화유산이 개인의 사유재산권 침해와 연결되는 경우 상황은 더욱 곤란해진다.
● 기획 · 진행 김미혜 기자 ● 글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유산연구센터 연구교수

국보 제24호 ‘경주 석굴암 석굴’ 이미지 제공: Stock+for+you/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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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유산연구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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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문화유산의 귀중함과 그것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일이 애국이라고 배웠던 터라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문화유산 진정성 보호 참여에 ‘억지로’ 동참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여 구성원 대다수는 절차조차 까다로운 문화유산 보호를 국가와 문화재청에 맡기고 되도록 문화유산과 개인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문화유산 보호를 둘러싼 무거운 화두는 전문가에게 위탁한 채 편안하게 소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하다는 인식은 있으나 정작 ‘나’의 삶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문화유산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문화유산’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숭례문과 같은 한국의 국보나 인도의 타지마할과 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일 것이다. 이처럼 문화유산은 일반적으로 과거 특정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 혹은 고고학적 유적, 유물 등으로 인식되고 한정된 이미지 속에 갇혀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은 문화유산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는 문화재 용어와 관련이 깊다. 한국의 문화재 개념은 일제강점기 문화재 보호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에 의해 유입된 ‘문화재’란 용어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사용하였던 ‘Kulturgut’를 직역한 것이다. 당시 독일은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국의 문화가 국가의 재산으로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Kulturgut’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문화재의 개념에 경제적인 의미가 강조되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자산으로 시작된 한국 문화재 개념은 해방 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에도 지배적으로 사용됐다. 특히 문화재보호 관리 총괄을 맡은 기관의 이름이 문화재청이기 때문에 그 개념은 더욱 공고히 확립되었다. 이후 2004년 문화재청의 영문 공식 명칭은 ‘Cultural Property Administration’에서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으로 변경됐는데, 국문 명칭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문화재를 뜻하는 ‘cultural property’가 문화유산을 지칭하는 ‘cultural heritage’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문화재 개념 이해에 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보 제223호 ‘경복궁 근정전’ 
전경 이미지 제공: 문화재청



이 같은 변화의 시점에, 문화유산 개념 발전에 대한 세계사적 차원의 이해가 필요하다. 일제에 영향을 미친 서구 유럽의 19세기 말 문화유산 개념 역시 국내의 문화재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구에서 ‘heritage’, 즉 유산은 본래 가문의 뿌리를 확인시켜주고 친족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상징물로서 사적 자산으로 여겨졌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유산을 보호해야 하는 개념이 출현하는 그 시점을 대체로 영국의 고대 기념물 보호법(Ancient Monuments Act)의 제정이 이루어진 1882년, 혹은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가 설립된 1895년으로 추정한다. 19세기 말 당시 유산은 과거 건축가가 만든 건축물 및 기념물이 고고학자에 의해서 ‘발견된(found)’ ‘문화적 산물(cultural product)’로서 이해됐고, 중요한 과거 물질문명의 흔적을 나타내지만 ‘부서지기 쉽기(fragile)’ 때문에 전문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문화유산 개념이 변화된 획기적인 사건은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 Natural Heritage)과 관련이 깊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문화유산이 비단 국가의 소유물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기에 국제적인 차원에서 국제 분쟁 및 내전 등으로 파괴되는 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산 보호 인식에 대한 확대를 가져왔다. 또한 세계유산의 정의를 유형의 인공물과 무형의 표상을 함께 어우르고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정리해 세계유산의 유개념이 ‘소유와 재산’에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과정’에 더욱 방점이 찍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유산협약과 더불어 영국에서도 유산을 뜻하는 ‘heritage’란 단어가 1975년 공식적인 언어로 등장하게 된다. 이어 1983년 영국문화재청(English Heritage)이 출범할 때, 그 공식 명칭에 ‘heritage’ 단어를 사용하면서 1980년대부터 일상생활에도 유산(heritage)이라는 용어가 정착하게 됐다. 즉, 기존에 기념물(monuments), 역사적 건물(historic buildings), 유적(archaeological sites or relics)으로 세분화돼 칭해졌던 것에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통합된 것이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기억 호황 현상(memory boom)’이 유럽 세계를 장악하면서 제1차 및 2차세계대전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에서 어떻게 공적인 기억으로 자리 잡고, 이후 그 공동체 기억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 하는가가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유럽 내 문화유산학이라는 융합 학문이 탄생하면서 문화유산에 얽힌 인간의 기억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게 된다. 이렇게 전개된 학문적 논의에서 제일 중요한 초점은 문화유산이 과거에 박제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수동적이고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시대 및 사회의 요구에 필요한 것이 특별히 선택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과정이 수반되는, 동적이고 능동적인 ‘사회적/인류학적 과정(social/anthropological process)’이라는 것이다. 즉 문화유산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화 과정(heritagization)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과거에서 발견돼 현재 ‘우리’ 앞에 갑자기 놓인 과거의 부산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관통하면서 특정 공간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상관관계 속에서 매 순간 재탄생된다고 볼 수 있다.



군함도 전경 이미지 제공: kntrty/Flickr.com



과정과 관계로서의 문화유산

문화유산 개념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문화유산이 단순한 감상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특히 문화유산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전통 창출(invention of tradition)’에 핵심 역할을 하면서 정체성과 국가 공동체성 형성에 활발히 기여하고 있고, 국내의 정치적인 ‘전략 혹은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는 유산은 세계화 과정에서 국가의 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확대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분쟁 속에서 탄생된 유산의 경우 외교적인 ‘무기(diplomatic weapon)’로 국가 간 분쟁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기록문화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둘러싼 동아시아 내 ‘기억 분쟁’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2015년 7월 유네스코는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등재 소식에 환호했고 한국과 중국은 유네스코에 국제적 유감을 표명했는데, 산업혁명 유산에 속한 23개의 장소 중 하시마 섬(Hashima Island)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군함도’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아시아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 중국인 및 연합군 포로의 강제 노역이 일어난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제 노역 기억은 삭제된 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영광스러운 상징성만이 강조됐다.

동시에 일본은 국제적 이미지에 타격을 준 2015년 난징 대학살 관련 문서가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에 대해선 유네스코에 적극적으로 항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은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을 삭감하겠다고 위협을 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8개국 14개 단체가 연합해 제출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문서(Voices of Comfort Women)’ 또한 이 여파로 2017년 등재보류 판정을 받았다. 일본은 국제적으로 논쟁이 있는 기록물을 편향된 시선으로 등재하는 것이 유네스코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예로 들며 기록문화유산의 심사 및 등재 방식을 수정하는 권고안을 제시했고 결국 그 의견이 반영된 개정안이 2021년에 발표됐다. 그러자 유네스코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군 위안부를 기억하고자 하는 초국가적 시민운동이 더욱 활발히 일어나게 됐고, 일본군 위안부 아이콘으로 대표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국제 분쟁을 넘어 전쟁 여성 인권의 의미 또한 강조하는 연대 메시지를 불러들인다. 이처럼 문화유산이 외교적 메시지로 작용해 각 나라의 주장을 전달하는 주체가 되면서 그 역할이 정치적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됐고, 이를 해석하는데 국제 정세까지 고려해야 하는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게 됐다.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이미지 제공: 문화재청



과연 문화유산으로 인해 행복한가?

문화유산은 사회, 정치, 문화 변화 과정과 그 안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된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문화유산은 문화 산업과 결합해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고, 현대 정치의 전략을 상징하기도 하고, 국제 관계에서는 외교 전략으로서 역동적으로 작동한다. 즉, 문화유산은 보호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각종 현안과 밀접하게 관련해 그 의미와 가치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과정과 관계로서의 문화유산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을 과거에서 현재로 조정시켜 주는데 한몫을 담당했다. 하지만 과연 문화유산은 국가와 국제 관계라는 커다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과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또한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교육에 의한 이해 말고 문화유산이 소중하고 귀중하다고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하다고 말하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문화유산을 과거에서 미래로 전달하는 사명에서 벗어나 현재 ‘나’의 삶과 연결고리를 찾아야 할 시기다. 국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문화재를 억지로 보호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현재’를 파악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통로로서 문화유산이 새롭게 인식되기를 바란다. PA



국보 제52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이미지 제공: 문화재청



글쓴이 이현경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고고인류학과 문화유산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유산연구센터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분야 문화재 전문위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불편문화유산(식민유산 및 냉전유산)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갈등 및 화해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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