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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7, Apr 2022

고니_노란 카나리아

2022.3.4 - 2022.3.27 페이지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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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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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들의 이야기


나는 스토리텔링을 딱히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결과물이 회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식의 교조주의적 매체 이론을 답습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찌됐든 현대미술 차원에서 회화의 변천사가 대체로 ‘형식’을 준거 삼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물론 모든 회화 작업이 그러한 경향을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만약 누군가가 회화에 굳이 ‘내용’을 투사하려고 시도한다면, 그것은 별 수 없이 형식을 위반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니의 작업은 얼핏 형식을 위반하는 회화처럼 보인다. 특히나 최근 열린 개인전 <노란 카나리아>는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말 그대로 ‘노란 카나리아’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상정한 채, 그로부터 나름의 스토리텔링을 전개한다. 작중의 누군가는 노란 카나리아에 관해 탐독하거나, 때로는 그 과정을 “유예”하면서 권태와 유사한 감정에 빠지고, 명확한 이유를 종잡을 수는 없지만, 종내 자신이 그간 탐독했던 노란 카나리아에게 “복수”당한다. 그리고 기타 등등. 하지만 이는 연대기적인 서술과는 거리가 멀다. 즉 일련의 작업들 사이에 서사적 인과관계는 대체로 희박하며, 오히려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대상은 노란 카나리아를 발단 삼은 이야기로부터 무작위로 발췌된 일종의 표본들이다.



<카나리아의 유령>(부분) 
2022 폴리스티렌, 마커, 아크릴펜, 
아크릴체인, 유리, 금속 124×126cm



표본들. 이로써 이야기는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다. 굳이 표본이라고 말한 이유는, 관람객이 일련의 작업들을 (반드시 정해진 동선에 구애받지 않은 채) 열람하는 과정에서, 원본의 이야기를 순전히 자의에 따라 짐작하고, 유추하고, 때로는 의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원본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즉 일련의 작업들은 노란 카나리아에 대한 작가의 무작위한 연상 작용에서 비롯한 결과물일 수 있다. 그러나 원본의 이야기의 유무와 상관없이, 본 전시는 오로지 표본들만으로 이야기를 구현한다. 나는 앞서 일련의 작업들 사이에 서사적 인과관계가 희박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므로 본 전시에서 제시된 표본들은 이야기 전반에 얼마간 종속돼있거나, 그것으로부터 유래하지만, 무엇보다 독자적인 대상이다.

표본들 사이의 공백, 즉 작가가 미처 서술하지 않은/못한 이야기의 단락들을 상상하는 것은 오로지 관람객의 몫이다. 심지어 관람객은 그 과정에서 이야기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단순히 개별 작업에 이야기를 투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내용이 결여된 삽화에 가깝다. 특히나 관람객이 이야기 자체를 포기했을 때, 일련의 작업들에서 등장하거나 암시되는 노란 카나리아는 일종의 ‘장식’으로 귀결된다. 심지어 이때의 장식은 때때로 이야기와 무관한, 즉 오로지 시각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한 유사 패턴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로써 이야기의 표본은 마침내 장식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혹은 그럴 수 있는 조형의 방법론을 선취한다. 즉 내용이 결여된 삽화는 점차 회화적인(painterly) 방식으로 변주된다.



<가득 찬 컵> 2021 
캔버스에 유채, 연필, 색연필 100×100cm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여전히 이야기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은, 본 전시가 의도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형식과 내용의 불협화음을 보증한다. 이를테면 노란 카나리아는 장식적 패턴의 일부인가, 아니면 이야기의 주인공인가? 관람객은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유보한 채, 본 전시의 이야기 속에서 선뜻 갈피를 잃는다.


* <카나리아의 복수> 2021 캔버스에 유채, 색연필, 볼펜 100×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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