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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4, May 2020

어스바운드

2020.3.6 - 2020.3.26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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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언 큐레이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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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를 대면하기 위하여



2년 전 나는 처음으로 등산화를 벗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신발을 벗고 노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것은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행위였다. 문명과 위생에 대한 강력한 훈육은 건강을 위한 맨발 걷기라는 유행마저도 비껴갔다. 그러나 산 옆으로 이사를 한 후, 매일 가벼운 등산을 하면서 나는 신을 벗어 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등산하는 것이 지겨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등산로에서 신과 양말을 벗었다. 지면에 나의 발바닥이 닿았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지구와 나의 몸을 접지한(earthing) 것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처음으로 지구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고, 피부로 지구와 연결되자 내가 동물이라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브뤼노 라투어(Bruno Latour)의 용어로 이야기한다면, 내가지구와 묶인 사람(the earthbound people)’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브뤼노 라투어의지구와 묶인 사람에 대한 개념은 대문자 H로서 인간에 대한 19세기적 관념에 대한 종식과 가이아(Gaia)로서 지구를 다시 인식할 것을 요청한다. ‘더 멀리 나아갈 것(Plus ultra)’을 멈추고, ‘보다 더 내부로(Plus intra)’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적 시민사회가 발명한 자연(Nature)이 아니라 생명체로서 지구인 가이아를 받아들이고, 그 앞에서 겸손해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지금 지구는 메데이아(Medea)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전시 <어스바운드>는 근대가 만들어 놓은 정상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획자는 인간 중심적 육식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파국을 인식하고, 문명이라는 이름의 인류가 만들어낸 성취를 걷어내어, 근대의 잉여물과 퇴적물의 현재를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인류도 지구와 관계맺는 수많은 종() 중의 하나임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는 동물과 식물, 죽음과 삶, 변태와 변이, 문명과 야만, 기술 및 예술과 자연에 대한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모으고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회전하는 인류의 유령적 혹은 좀비적 상황을 드러내어, 인류도 지구에 묶인 하나의 기이한 생명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송상희는 불가해한 생명의 발생과 관계, 그리고 그 순환이 어떻게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한다. 염지혜는 인류세(anthropocene)라는 현재의 단층을 3가지 층위로 나누어 동시대 생태 공간의 기형적 측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검은 태양이라는 은유를 통해 남극이라는 절대적 대상에 대한 문명의 얼룩을 이야기한다. 조현아는 오염과 감염이 일으키는 파괴를 통한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탄생과 덧없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튤립으로 상징되는 생물학적 파괴와 생성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공포와 환상과 중첩되며, 이것은 떠도는 유령들의 현재적 이야기인 일본의 전통극, 무겐노(夢幻能)의 형식과 분절되어 드러난다. 김화용, 이소요, 진나래는 근대적 신념의 표상으로서 육식화 된 예술을 식물화시키기 위한 자신들의 연구를 보여준다. 3명의 작가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와 그 흔적에 대한 각자 자신들의 탐구를 통해서 근대적 제도로서 예술, 미술의 의미 과정에 대해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전시는 인류세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서부터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과 사변적 실재론, 그리고 객체지향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근대성이 야기한 현재에 대한 묵직한 비판적 논의를 저변에 깔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난해하지 않다. 이 전시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삶과 경험에 근거하여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접지한 지구적 상황에 대해서 한편으로 매우 친절하게, 한편으로 매우 분열적으로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모두 여성들인데, 그것은 기획자가 의도한 것으로 생각된다. 남성적 근대성이 야기한 파국을 여성 화자들에 의해서 지금 여기에 출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가들은 이미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왔지만, 우리는 그것을 듣지 않았거나 주의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가이아의 인류에 대한 구속은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멈추어진 지구에서 화려한 봄의 기운이 기괴하리만큼 무겁게 다가왔던 3월의 날들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삼삼오오 전시장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바이러스에 의한 자발적 격리라는 고독한 시간을 잊기 위한 금지된 외출이 아니라 지금을 되돌아보기 위한 위험한 산책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라투어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가이아를 우리의 얼굴로 마주해야 한다. 



*조현아 〈Petit a(s): 1-240 2020 3개의 35mm 환등기, 240개의 슬라이드 가변 설치 사진조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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