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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3, Apr 2020

임자혁_그러는 동안에

2020.3.5 - 2020.4.18 갤러리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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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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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길들여지지 않기 위한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임자혁의 최근 작업은 구체적인 단상이나 사건으로부터 도출된 이미지나 풍경이기보다 고정된 형태로 포착되기를 지연시키며 계속해서 흐르는 움직임의 집합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로서의 습관에 따라 화면 속에 있는 서사 혹은 암시를 찾으려 작품 제목을 찾아보니, 사용된 색 중 일부가 각 작품의 이름이 된다. 노랗거나, 매우 연하지만 붉거나, 짙은 푸름이거나 하는 색의 상태가 그림의 제목이다. 그래서 다시 살펴본다. 이것은 색에 대한 이야기일까. 분명 각 작품은 붙여진 이름의 색으로부터 파생된 무엇으로 보이며, 생동감 넘치는 색 간의 배치를 읽어내는 시간 역시 즐겁다


그러나 동시에 색을 견인하는 크고 작은 자국들이 캔버스 전체를 지탱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흔적들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임자혁은 작업 세계를 확장해감에 있어 언제나 작가로서의 태도가 인위적인 절차나 사전 지식, 습관에 따라 규격화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가 만들어내는 평면은 습관이나 치밀한 계획, 규칙을 걷어낸 자연스러운 시간의 집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얼룩들 역시 계속 스스로의 태도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하나의 장치이거나, 고착화된 조형적 언어의 덫을 피해 가기 위한 우회로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우선 작가의 경쾌한 몸짓을 따라 생겨난 큰 붓 자국들이 캔버스 전체를 채우며 이미지의 속도를 결정한다. 그다음은 표면에 생긴 흔적들을 고집스럽게 따라다니며 땅따먹기를 하듯 붓질 사이의 여백을 메꿔나간 세심한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여있다. 어디론가 이동하다 임의의 지점에 불시착 한듯 곳곳에 흩뿌려진 기하학적 도형들은 이미지가 특정한 대상의 표현으로 해석되는 것을 방해한다. 작가는 이 모든 요소가 자신이 재빠르게 훑고 지나갔던 공간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어느 한 부분이 다른 한 부분보다 우선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그림을 균질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동시에 한 작업의 단계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거나 우선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임자혁이 새롭게 제시하는 장면들은 납작하고 공평하다. 그려진 이미지 중 어떤 것도 독단적으로 화폭의 중심이 되거나 배경이 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추상표현주의의 전면 회화(all-overpainting)와 동일한 의미의 평평한 물질적 표면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 테다. 그의 작업 세계에서는 완결된 형식이나 재현의 여부가 아니라 회화라는 시각적 언어가 구축되는 방법론에 더 큰 방점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캔버스에 붙여진 제목은 작품들의 대표적 특성을 지칭한다기보다 작품이 시작되는 시점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식이다. 그에게 색이란 또 하나의 작업을 이끌어가기 위한 작은 단서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수많은 붓 자국들과 만나 이미지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가 이미지를 어떠한 서사의 종점으로 이끌어가려 하지 않았으므로 완성된(혹은 그렇다고 가정한) 화면 위에서 관람객의 시선은 지정된 동선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스레 작품과의 시각적 거리를 계속해서 변경하며 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시선은 남겨진 무수한 자국들의 그림자를 따라 팽창하기도, 수축하기도 한다


한걸음 물러서 있을 때와 바짝 다가섰을 때, 관람객은 상이한 리듬의 충돌과 즉흥적인 조형적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결코 미완의 상태와 대면한다는 뜻이 아니며, 그가 자신의 회화에 남아있을지 모를 관습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매 순간을 새로운 감각으로 채우려는 실험의 과정에서 표면 위로 떠오른 장면의 조각들을 시시각각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룩들의 수많은 층위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동안에(in the meantime), 작가가 캔버스 앞에서 보냈을 매일의 시간과 움직임은 보는 이의 감각으로 천천히 옮아간다. 그러므로 이것은 색으로 쓰인 자국들에 관한 이야기다



*<연보라> 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90.9×116.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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