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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3, Apr 2020

지원김_오픈 포지션

2020.2.11 - 2020.3.28 씨알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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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욱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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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탕후루(氷糖葫芦) Sugar-coated의 사이그 어디쯤



내 일은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서 손가락을 비집고 집어넣어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부패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45년 전 『뉴요커(The New Yorker)』와의 인터뷰에서 백남준이 했던 말은 지금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작가, 관람객, 작품, 비평가, 미술관, 갤러리 등. 실제로 작동하면서도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는 울타리를 마주하는 작가들, 특히 신진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는 선택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2.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거시적으로는 적극적 활용 방식이기도 하다.

3. 시스템을 이용한다. 제도 자체를 작업의 소재나 주제나 재료로 사용한다.

 

이 밖에도 제도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등 예외의 경우가 몇 있겠지만, 대부분 위의 세 갈래 안에서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전시 오프닝에 가서 어떠한 유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가 자연스레 제도를 탓하기도 하고, 다 떠나서 무신경하게 작업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읊조리기도 한다. 제도를 확인하기 위해 이 환상의 울타리를 손으로 만지며 확인하다 보면, 문뜩 그 울타리 자체가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생각보다 단단하기도 하다가 어떤 부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무르기도 하고, 심지어 한 곳은 아직 미처 완성되지 못한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원김 작가의 첫 개인전 <오픈 포지션>은 작가가 제도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Sugarcoated ASMR for Artists>(2020)에서 작가는 언론에서 접할 수 있는 미술계의 소식을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분명히 한국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커다란 이벤트들이지만, 실제 대부분의 작가에게는 와 닿지 않는 뉴스들을 관람객에게 나긋하게 속삭인다. ‘The Hair of the Artist’(2012-2019)는 작가가 유명 미술관들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몰래 놓고 찍은 사진 모음이다. 시스템이 미처 확인하지 못할 만큼의 작은 흔적들을 남기고 기록하는, 어떻게 보면 소심한 생채기 내기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미묘한 일탈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기에 소심한 복수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으리라. <One of the most->(2014/2020)는 세계 유명 미술관의 소개 글에서 언급되는 ‘One of the most-’라는 어구가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딴죽 걸기이다


권위를 만드는 대표적 수사학이 스스로를 가장 우스운 상황으로 만드는 경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종종 경험하기 마련이다. (라떼는 말이야.) <We never can say what is in us.>(2015)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발췌한 구문들이 들어있는 포춘 쿠키를 까 보이는 영상작업이다. 포춘 쿠키 속의 메모지는 마치 정해진 정답인 양 보이지만, 제도가 말하는 정답보다 의심해봐야 할 것은 없는 듯하다. <Seeking Curator>(2020). 작가는 ‘Institute of Cultural Representation(이하 ICR)’을 설립하여 큐레이터를 모집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작가는 ICR을 소개, 홍보하며 흔히 신진 작가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큐레이터를 모집한다.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은 면접을 보러 온 큐레이터(혹은 기획자)와 심사를 하고 있는 작가를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픈 포지션. 오늘날 미술 작가의 입장은 고정적이지 않다.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기도 하면서, 컬렉터이자 브로커가 되기도 한다. 어느덧 작가가 제도에서 작동하다 보면, 그 스스로가 깐깐한 울타리가 되어버리곤 한다. 그 스스로가 제도의 굴레에서 작동할 때 어느 정도 고착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이 지나치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생각해볼 만한 지침일 것이다. 제도 비판은 제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술가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경직되어 보이는 제도를 희화화시켜 제도의 탁함을 일상의 영역으로 희석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 그 희석이 생각보다 강하게 작동되어 벽이 무너지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또 다른 제도로 작동한다는 점을 명심하여 가능하면 단단한 벽보다는 물렁하고 투명한 공기 같은 벽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 <오픈 포지션> ‘2019 씨알콜렉티브 신진작가 공모를 통해서, 경쟁을 통해 이 울타리에 진입하고자 하는 다른 신진작가들을 대표하여 선정되었기에 더욱더 그렇다

 


* 백남준과의 인터뷰, 캘빈 톰킨스(Calvin Tomkins) “프로파일: 비디오 공상가에서 『뉴요커』 1975

* <We never can say what is in us.> 2015 단채널 영상 2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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