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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89, Jun 2022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

공간을 재정의하는 현대조각의 힘

“강철과 공간, 또는 대상과 빈 공간은 하나가 되고 같은 것이 된다(The steel and the space, or the object and the void, become one and the same).”
● 김진 프랑스통신원 ● 이미지 작가, Gagosian 제공

'Te Tuhirangi Contour' 2000-2002 Weatherproof steel 6m high×257m long overall×5cm thick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irk Rein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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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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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미니멀리즘에 맞닿아 있는 작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는 현대미술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중 하나다. 그는 금속을 주재료로 녹이고, 자르고 비틀거나 구부려 제작한 거대한 강철판으로 감상자를 압도하는 대형 조각작품을 만든다. 금속의 형식적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재료의 진정한 예술적 승화를 이야기해왔다. 기이하고 위협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세라의 작품은 감상자들을 당황케 하고 때로는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지만, 결코 대중에게서 무관심하게 남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조각을 통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1983년, 파리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에는 길이 36m, 높이 3.4m의 두 개의 반원 모양으로 휘어진 강철판 조각 <클라라-클라라(Clara-Clara)>가 놓였다. 원래 이 작품은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기획하고 주최될 그의 첫 프랑스 대형 전시를 기념해 만들어졌으나, 압도적인 무게를 건물이 견딜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으로 이어지는 튈르리 정원 입구 쪽에 설치된 것이었다. 두 개의 강철판 조각 사이 통로를 따라 걸으며 앞쪽을 바라보면 콩코르드 광장 중앙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탑(Luxor Obelisk)이 정확히 중심에 보이고, 그 뒤로 샹젤리제 거리(Champs-Élysées)와 더 멀리 개선문(Arc de Triomphe)이 일직선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감상자가 조각에 의해 좌우의 시선이 차단된 채 오롯이 조각이 제시하는 시선에 따라 그 앞에 펼쳐지는 공간을 바라보도록 강요된 것을 보면, 작품이 놓인 위치와 방향이 다분히 의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The Hours of the Day> 1990
Hot-rolled steel Twelve slabs in four sets of three: 
all slabs in each set respectively 
180.3cm×5.1m×15.2cm; 165.1cm×5.1m×15.2cm; 
149.1cm×5.1m×15.2cm; 134.9cm×5.1m×15.2cm
Collection: Bonnefantenmuseum, Maastricht, 
The Netherlands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Dirk Reinartz



세라의 작품 대부분이 이러한 재료적 특성과 형식을 가지고 있다. 철, 강철, 납 등을 녹여 만든 높고 긴 길이의 대형의 판 모양의 조각이 어떤 공간에 놓이면서 그 특성을 재정의한다. 이러한 재료와 크기의 미학적 선택은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기인한다. 4살이 되던 1943년 11월 어느 날, 당시 선박제조 회사에서 배관공으로 일하던 아버지를 따라 샌프란시스코 항만에 갔던 세라는 여러 채의 거대한 배들이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정, 파랑, 오렌지색의 전함들이 무게에 굴복하지 않고 물 위를 자유롭게 미끄러지듯 떠나는 모습은 어린 소년에게 일생 사라지지 않은 경외심과 놀라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 기억 속에 작품의 모든 영감과 재료가 담기게 됐다.

세라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미술에 대한 꿈으로 1960년대 초반(1961-1964)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에 진학해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당시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제강소에서 일을 했는데, 이때의 금속에 대한 이해가 훗날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후 1965년에 장학금 후원으로 파리로 간 그는 그랑드 쇼미에 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 다니면서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작품을 발견하곤 그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공간속의 새(Bird in Space)>(1928)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브랑쿠시는 금속을 주재료로 추상 형태의 조각을 현대미술에 도입한 영향력 있는 작가였다. 이후 그는 초현실주의 조각과 1960년대 미니멀리즘에도 탄생에도 길을 열었다.



<Tilted Spheres> 2002-2004 
Weatherproof steel Four spherical sections 
Overall: 4.3×13.9×12.1m plates: 5cm thick Collection: 
Greater Toronto Airports Authority Installed in 
Terminal 1 of the Toronto Pearson International
 Airport, Mississauga, Ontario, Canada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Elsa Mendes



“나는 강철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감각이 있었고, 그때까지 조각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I realized that I knew about how to deal with steel, and I had a feeling for it, and I could use it in a way that it hadn’t been used in sculpture up to that point).”

세라의 초기 작업은 ‘거터 스플래쉬(Gutter Splaches)’라 불린다. 일종의 퍼포먼스가 포함된 작업으로 보호복과 장비를 착용한 뒤 녹인 납을 공간에 뿌리는 물리적 액션인데, 예술이 만들어지는 작업 과정에 중점을 두는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로서 작품의 최종결과보다 전개되고 완성되어가는 창작 여정에 집중한다. 이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서 깊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페인팅을 떠올릴 수 있다. 폴록이 붓이나 막대기를 이용해 바닥에 펼쳐진 캔버스에 물감을 흩뿌리며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과 재료의 물질성을 강조해 완성했던 것처럼, 세라는 벽과 바닥이 만나는 직각 모서리 부분에 녹인 납을 뿌렸다. 그리고 작업이 끝난 후 굳은 고체의 납은 벽에서 분리해 따로 전시했다.

이러한 작업은 그에게 미적인 오브제가 공간에 놓이는 방식에 대해 흥미를 갖게 했다. 세라는 작품의 크기나 설치법에 따라 공간이 재정의되고 새롭게 구조화되는 점에 착안해 구상에 몰두했다. 거대한 크기의 조각은 감상자들을 돌아다니게 하고 공간의 물질적 성격을 깨닫게 한다.



<Inside Out> 2013 Weatherproof steel 
Overall: 4×24.6×12.3m plates: 5cm thick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Lorenz Kienzle



“기본적으로 그것이 나의 주제다: 나는 강철을 이용하여 공간을 조직한다(Basically, that is my subject: I use steel to organize space).”

1960년대 그는 스스로 ‘프롭스(Props)’라 일컫는 금속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산업재료를 사용해 조각을 만들고 감상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탐색하는 것으로, 벽에 기대어진 강철판과 그것을 받치는 커다란 철 막대기의 구성이라든지,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 세워진 두 개의 강철판 등의 작품을 일컫는다. 철, 강철, 납 등에 지워진 힘의 밸런스는 자칫 미끄러지거나 떨어질 수 있는 긴장감을 발생시켜 감상자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개인의 취약성에 대한 인식에 질문을 던진다.

철학자들이 인간과 물리적 세계의 관계 해석에 관심을 두듯 세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깨닫게 한다. 공간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우리는 공간을 사거나 팔거나, 장식을 더하거나 재배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인간과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 사이의 유대와 관계성에 대한 탐색할 것을 요구하며 세라는 거대한 조각들을 배치한다. 그런가 하면 세라의 조각은 원시적이고, 직관적이기도 하다. 미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도 전에 두려울 정도로 크고 무겁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만약 우리가 작업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작업을 설치하던 작업자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무게는 부정할 수 없고, 그 안엔 민감성이 존재한다.



<Viewpoint> 2003-2006 Weatherproof 
steel Two cylindrical sections,
each: 9m high×13m along the chord×6.4cm 
thick Collection: City of Dillingen/Saar, Germany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Lorenz Kienzle



1970년대부터 세라는 자신의 가장 주요한 작업을 완성한다. 대지미술(Land Art) 작품 <스파이럴 제티(Spiral Jetty)>(1970)를 만든 친구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에게 영향을 받고 나서부터다. 미국 유타주 소금 호수에 설치된 <스파이럴 제티>는 진흙이나 작은 현무암 바위, 나무 등을 이용해 길이 457m, 폭 4.5m의 띠가 나선형으로 펼쳐지도록 만든 작품이다. 이를 통해 세라는 특정한 위치선정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고, 그 맥락을 결정짓는지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통적 전시실인 화이트 큐브(White Cube)보다 어떻게 굽이치는 들판이 작품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 장소특정성 개념에 대해 파고들었다.

1981년 세라는 장소특정성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공공예술, 특히 사회가 공간과 관련된 공공예술을 대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미국 연방조달청은 세라에게 로어 맨해튼의 시민센터 광장, 법원과 10여 개의 다른 연방 건물 사이의 열린 공간에 공공 조각작품을 설치하도록 의뢰했고, 그는 <기울어진 호(Tilted Arc)>를 완성했다. 길이 37m, 높이 3.7m, 두께 6.4cm에 이르는 단단한 강철판 작업은 이름이 의미하듯 살짝 기울어진 둥근 활 형태로,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지나다니는 광장에 세워졌다. 대중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지자들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고 조각 개념을 발전시킨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품이라고 묘사한 반면, 비판적 입장의 사람들은 작품이 아름답지 못하고 공간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라는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 장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예술로 장소를 재정의하려 한 것”이라 의도를 밝혔으나 대중의 반발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8년 간의 법정 싸움 끝에 <기울어진 호>는 철거됐다.



<East-West/West-East> 2014 Weatherproof 
steel Four plates; two plates, each: 
6.7m×4m×13.3cm two plates, each: 14.7m×4m×13.3cm
The Brouq Nature Reserve, Zekreet Desert, 
Qatar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Rik Van Lent Jr.



<기울어진 호>를 그렇게 성공(또는 파괴)하게 만든 것은 작품이 가진 규모였다. 세라는 강철 조각품을 충분히 크게 만들어 감상자가 그 주위를 지나가거나 사이를 통과하도록 만든다. 수동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시선의 공간은 한계가 있고, 적극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몸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각이 만들어내는 공간 사이를 이동하고 존재에 의해 공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봄으로써 관람객은 순전히 비실용적인 차원의 본질적 공간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는 공간을 재료로 여긴다. 공간의 표현은 다른 관심사보다 우선시된다. 나는 공간이 구별되게 하기 위해 조각적 형태를 사용하려고 시도한다(I consider space to be a material. The articulation of space has come to take precedence over other concerns. I attempt to use sculptural form to make space distinct).”

 세라의 조각은 공간의 실용성이 아닌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는 방식으로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조각의 재질과 크기에 압도되지만, 사실 작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롯이 공간을 이해하는 데 있다. PA



Richard Serra at Henrischütte Hattingen 
overseeing forging of Weight and Measure  
© Richard Serra/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Stephan Erfurt



작가 리처드 세라는 193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동시대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인 그는 전 세계에 걸쳐 건축과 도시, 조경환경을 통한 대규모 장소특정적 작품을 선보여왔다. 1972년, 1977년, 1982년, 1987년에 독일 카셀 ‘도쿠멘타(documenta)’, 1980년, 1984년, 2001년, 2013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 참여했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으며,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Chevalier de l’Ordre national de la Légion d’honneur)’(2015), ‘장 폴 게티 메달(J. Paul Getty Medal)’(2018) 등을 수상했다. 200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 이사회 의장 마리 호세 크라비스(Marie-Josée Kravis)는 “리처드, 당신을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Richard, we built this for you)”며 작품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노스포크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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