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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0, Jul 2022

진동하는 컬러, 유영국의 회화

Colors of Yoo Youngkuk

2022.6.9-2022.8.21
국제갤러리 K1, K2, K3
● 기획 · 진행 편집부 ● 글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국제갤러리 2관(K2)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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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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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회화, 단색화와 다른 ‘컬러’

“그는 신화가 없는 화가다. 분열적인 천재, 기인 등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예술가형과는 거리가 멀다. 직업화가로서 고집스럽게 일 해왔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것이 없다. 삶의 우여곡절도 없었던 듯 보인다. 그만그만한 일이야 다 겪었겠지만, 대패질하듯 그 흔적을 깎아서 ‘좋은 화가’로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유영국은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인성 등 불운한 일화나 진한 개인적 서사가 결부된 신화 같은 이야기를 남긴 동시대 화가들과는 차별적이다. 유영국 연구자 이인범의 말대로, 화업을 직업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채 철저하게 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작가 중의 작가다.

유영국의 예술세계는 ‘작품’ 이외엔 그 어떤 독해를 가이드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유영국 작고 2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전시 <Colors of Yoo Youngkuk>에서는 작가가 평소 지인들과 주고받았을 편지 한 장, 작가의 에세이 한 편, 애장하던 오브제 한 점 등 작고를 기념하는 일반적인 전시에 나올 법한 그 어떤 자료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는 유영국 회화에서 화면 전체를 견고하게 점유하는 단순한 형태의 다채로운 ‘컬러(Colors)’에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전시를 통해 새롭게 대면한 유영국의 예술세계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기호로 확정된 ‘단색화’ 작가들의 집단적 경향과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제 강점기 유입된 낯선 ‘미술(fine arts)’, 그것도 추상미술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인 유영국의 강렬한 컬러 화면의 미학적 독자성과 조형성에 대한 독해의 당위성을 절실하게 한다.



<Work> (부분) 1968 캔버스에 유채 
130×130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전시가 보여주는 것들

국제갤러리 전관(K1, K2, K3)에서 선보이는 유영국 작품들은 시기별 대표 회화작품 70점, 드로잉 22점 그리고 추상 작업의 일환이자 초현실주의적 기법과 시도가 돋보이는 실험적 사진 작업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의 예술세계가 지닌 깊이와 전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유영국의 색채추상>(국제갤러리, 2018)이나 <유영국, 절대와 자유>(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6) 등의 기획전시 가운데 이전까지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유족 소장품이 처음으로 대거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큰 의미가 있다.

전시 <Colors of Yoo Youngkuk>은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 등을 모티브로 강렬하게 육박하는 다채로운 컬러와 기하학적 구도의 절제된 공간 구성을 통한 극도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유영국 작품만의 예술사적 의미를 조망하는 자리로 그의 색채와 그것이 지닌 미학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K1에서는 작가의 초기작과 함께 유영국의 색채 실험과 조형 언어를 파악할 수 있는 대표작들이 소개된다. 고유의 색채와 추상 구도를 통해 독자적 미학과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1950년대, 1960년대 초중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특히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환원하여 더욱 단순화된 형태와 유화의 마티에르(matiere)가 두드러진 특성을 보인다.



<Work> 1992 캔버스에 유채 60×73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K2에서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작업에 몰두하며 집요하게 천착해온 점, 선, 면, 형, 색 등 조형의 기본요소가 색채와 구도의 완급을 통해 자연의 원형적 색감이 심상으로 환기되는 중후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서사적이고, 균형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K2의 2층은 1942년 경주 사진 연작 및 다양한 드로잉, 작가 활동 아카이브 사료로 구성되었다. 1970년대 후반 심장박동기를 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의 회귀를 반복한 작가의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탄생한 평화롭고 서정적인 회화는 완벽한 평행 상태를 은유하기라도 하듯 따스한 생의 빛으로 관람객들에게 색채의 잔상처럼 투영된다.

한편 K3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 및 1970년대 초기작을 전시하고 있다. 어떤 동인 활동도 가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면서 절제된 감정과 순수한 조형에의 선명한 의지를 화면에 전면화한 회화작품들이다. 초록, 파랑, 군청 등 다양하지만 밀도 있는 컬러의 변주를 통해 선, 면, 색으로 이뤄진 비구상적 형태의 자연을 거침없이 담아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유영국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프는 ‘산’이다. 화면 효과는 자연에서 출발했지만 삼각형, 원, 곡선 등의 절제된 듯 충만한 강력하고 단순한 형태, 즉 색면 구성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산’ 등 자연의 재현적 형태와 표현, 기능은 절묘하게 해방되고 차갑고 지적이며 엄격한 추상이라는 유영국 회화에 대한 통념과 선입견은 사라지고 만다. 추상미술의 익명성을 좋아했던 아르프처럼 유영국의 회화에서 ‘컬러’는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추상의 익명성을 성공적으로 지켜내고 있다.



국제갤러리 2관(K2)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s of Yoo Youngkuk>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사진과 추상회화 그리고 유영국의 ‘컬러’

전시가 밝히고 있듯, 유영국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인 1916년 강원도(현재의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나 식민기 제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본 도쿄의 자유로운 학풍의 문화학원(文化學園)에 입학한 후 추상미술을 처음 접했다. 당대 전위적 예술 운동의 최전방이었던 추상미술의 대가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 하세가와 사부로(長谷川三郞) 등과 함께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신조형예술그룹(Neo Beaux-Arts Group)’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했다. 당시 일본에선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당대 미술 경향이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이 최첨단의 아방가르드로서 전면화됐고, 유영국은 이에 깊이 매료됐다.

태평양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강화된 군국주의 정책과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모색하던 유영국은, 경주 남산 불상 등을 소재로 하거나 셀프-포트레이트(self-portrait) 등 초현실적 경향이 포함된 사진 콜라주 연작을 시도한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뿐만 아니라 표현적 다변성을 고심하던 작가는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수학하며 사진을 통한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함과 동시에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로 환원하여 구축된 자연 추상으로 나아갔다.

1943년에 귀국한 유영국은 ‘신사실파’(1948), ‘모던 아트협회’(1957), ‘현대작가초대전’(1958), ‘신상회’(1962) 등 한국 현대미술의 아젠다를 이끌던 그룹들을 주도했다. 1963년에는 김환기 등과 함께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 Paulo)’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했다. 1964년 개인전을 계기로 모든 미술 단체활동을 중단한 유영국은 다양한 드로잉과 산을 모티브로 한 대형 사이즈의 추상회화들을 제작해나갔다.



<Mountain> 1973 캔버스에 유채 135×135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유영국의 ‘컬러’가 어디서 그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는가에 있다. 유영국은 문화학원 재학 시 부조로 제작한 <릴리프오브제> 등 공간과 형태 실험에 보다 집중했다. 그는 사진 작업 이후 사진이 지닌 단색조의 특징을 간파하면서 명백한 컬러 추상과 암시된 자연 재현 사이에서 긴장감을 즐기는 자신만의 추상 세계를 천착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영국의 사진 콜라주 작업은 수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다. 적은 수의 완성도 높은 사진 작업은 작가가 사물에서 해방된 색채를 탐구하는 여러 계기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귀국 후 한동안 생활에 몰두하고 난 후 작업엔 전에 보이지 않던 ‘산’, ‘바다’, ‘바다풀’, ‘기와지붕’, ‘해’, ‘달’ 등을 암시/연상케 하는 자연이 명백한 선, 면, 색채 등으로 환원된 추상으로 전환돼 형태뿐 아니라 움직임의 환영까지도 만들어냈다. 이때 유영국의 색채 사용은 임의적이고 비자연적이다. 그래서 어쩌면 유영국이 초현실주의적 기법이 농후한 사진 작업 이후 자신의 추상회화 작업에서 형상과 바탕이라는 두 영역이 거의 구별을 할 수 없게 되는 가능성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Colors of Yoo Youngkuk>은 유영국의 회화작업들이 전면화해온 ‘컬러’를 주목함으로써, 색채와 함께 공간, 형태 등이 절묘하게 조화된 긴장과 대결, 감각적인 균형을 전면화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신케 한다. 근대기 작가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되게 내면화된 그의 컬러와 조형감각은 동시대 현대미술 지형 안에서 새삼 그 위상이 어디쯤인지 가늠하게 한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그리고 전시에 대한 글을 쓰는 내내 유영국의 ‘컬러’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지극히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할 때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PA



<Mountain> 1970 캔버스에 유채 136×136cm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Courtesy of
 Yoo Youngkuk Art Foundation




[각주]
* 강석경, 「화가 유영국」, 『일하는 예술가들』, 열화당, 1986, p. 105
이인범, 『유영국과 초기추상』, 2000,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p. 10 재인용


글쓴이 김주원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구미술관과 (재)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2014년 일본 기타큐슈 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t(CCA) 초청펠로우를 지낸 바 있고 한국과 일본 등 비서구권에서 서구의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변용, 구성되고 소통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전시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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