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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2, Mar 2020

배달의 속도

2020.2.1 - 2020.2.25 스페이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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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양헌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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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관하여



2007년 제1회 맨체스터 국제 페스티벌(Manchester Theatre Festival)에서 <우편배달부의 시간>이 열렸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공동 기획한 전시는 12명의 작가에게 공간을 할당하는 대신 15분의 시간 동안 자신들의 작업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실험적인 오페라로 평가받는 이 이벤트는 경계 없이 영토를 확장하는 시각 예술의 욕망을 보여주는 동시에 각 장르가 보존하고 있던고유한 시간에 대한 질문을 불러들인다. 왜 우편배달부의 시간인가? 파레노는 동명의 에세이에서 시간과 전시의 개념을 탐구하면서 전시장의 관람객은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는 반면, 작품이 내 앞으로배달되는 극장의 관람객은 작품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산책자의 시간과 우편배달부의 시간으로 부를만한 이러한 대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듯하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공연 예술이 점유하고 있던 현전과 유일성의 미학을 시각 예술에도 개방했는데, 끝없이 생산되는 신작이 전시장을 채우는 동안 구작은 밀려나 마치 퍼포먼스처럼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기금이라는 거대한 컨테이너 벨트 아래 다종의 전시들이 생산되는 상황에서 한 작품에 할당된 감상의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가.


<배달의 속도>는 동시대 예술 작품의 생산 속도와 수용의 양태를 지적하며 그 소진의 역학에 관해 묻는다. “작업을 하시는데 얼마나 걸리시나요?”라는 기획자의 질문은 작업의 토대가 되는 생산양식을 지시하며 궁극적으로 투여된 노동과 외화된 결과물 사이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황민규의 작품이 모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청년 세대의 사회적 문제에 주목하는 것과는 별개로 영상이 담지한 1년여의 시간은 제작의 물리적인 속도를 표지하고 있다. 반면, 이유빈과 함성주의 회화는 그 매체적 특성으로 인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제작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불안과 욕망의 근원적인 풍경을 구성하기 위해 스톡모션과 설치, 드로잉을 다루는 문소현의 작업은 어떤가? 그것은 카메라로 실제공간을 포착하는 조경재 작업과 비교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여기서 투여된 시간의 총량과 작품성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영구적인 불안정성과 무기력증, 전례 없는 냉소주의와 함께 자신을 경영하는 주체로서 일종의시간 없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신작에 대한 강박과 요구는 그러므로, 시간을 상징자본과 교환할 재화이자 화폐로 전환하면서 그 사용가치를 특권화 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도가 추동하는 가속주의에 대항하여 예술 생산과 수용의 속도를 이상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가능한가.


보이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프로젝트의 고독」에서 노동집약적인 이벤트와 복잡한 정산, 모종의 불안과 흥분, 사회적 승인을 위한 분투 안에서 프로젝트가 사실상 고독을 생산해왔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을 위한 고독인가? 아마도 미래를 향한,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앞으로의 삶을 위한 초안이자 근본적인 변화를 약속하는 고립의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독은 미술의고유한 시간과도 때로 매우 닮아있다. 출품작 중 하나인 박문희의 <땅 위에 일어나는 일>(2016)은 이러한 고독의 시간을 형상화하는 기념비처럼 보인다. 질료를 세심하게 다루며 감각을 예리하게 조형하는 그의 작품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담겨있는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작품은 시간의 지층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루한 고독을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로부터 미래를 향한 진정한 속도를 이미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달의 속도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스페이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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