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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1, Feb 2020

김택상_색과 빛 사이에서

2019.11.21 - 2020.1.10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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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내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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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이 아닌 단색



김택상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이 화산 분화구에 고여 있는 물빛의 색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굉음과 뜨거운 용암이 모두 빠져나가고 남아있게 된 물웅덩이는 이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물’ 웅덩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주 작은 침입만으로 전체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요동칠 것이고, 작은 흐름은 순식간에 판도를 바꿀 것이다. 김택상의 작업도 바로 그 순간에 있다. 고요한 표면 밑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면서. 각각 다른 퇴적물들에 따라 여러 색을 만들어 내는 표면 위로 우리의 시선이 그다음을 찾아 바삐 움직이듯, 그의 작업은 색 면 위에서 우리의 시선을 물결처럼 계속 요동치게끔 한다.


흥미롭게도 그 물의 이미지는 완결된 작업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그와 조우하는 이미지이다. 그의 작업은 오목한 판 위에 물감을 여리게 희석한 물을 담아두고, 그 위에 수성 캔버스의 천을 계속해서 담갔다가 빼기를 반복하는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침전물이 가라앉고, 또 들러붙으며 물감의 색은 서서히 천 위에 물들여지게 된다. 물과 천은 작가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두고 수없이 여러 번 만나고 분리되는 과정을 일종의 수행으로써 반복한다. 그 수행이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보았던 물웅덩이를, 다시 물웅덩이를 통해 발견하고자 기대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작가의 수행은 우연의 결과를 기다리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도래할 형상을 기다리는 과정이 된다.


물론 그의 그림에는 아무것도 그려져있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형상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텅 빈 형상 자체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입으로부터 나왔듯, 명백히 물빛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은 비어 있기 때문에 다음에 나타날 파동을 잠자코 기다리는 형상이다. 그것은 작가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물빛의 형상을 재현하려 했음에서, 그리고 그 과정을 물이라는 매체에서 찾으려고 했음에서 필연적으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용하는 색 면들은 하나의 고정된 색 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단색이 아니라 부유하는 여러 색이다. 그것은 흔들리는 물의 표면에 비치는 여러 외부의 빛과 내부의 침전 모두를 내재하는 빛깔이다. 그 색들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은 채 여러 색이 겹쳐지고 흩어지며, 우리의 시선을 따라 아주 약하게 계속 변화하고 있는 색이다.


관람객들이 그의 작업 <여린 진달래 숨빛> 앞에 서게 되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하게 변화하는, 시야에 꽉 차는 색의 스펙트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옅은 분홍빛으로 시작한 캔버스는 표면을 타고 아주 천천히 진한 색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화면의 중앙에서 그 색들이 변하는 지점을 찾으려고 애쓰며 물 자국을 타고 시선을 계속해서 이동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눈은 그림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림과 그림이 아닌 것의 경계에는 작가가 색을 물들일 때 잡았던 손자국, 고정할 때 사용했던 얇은 핀 침의 흔적, 슬쩍 옆으로 스민 그림과 관계없는 물 자국 등이 무력하게 노출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았다. 캔버스 천은 나무틀에 짜이지 않은 채로 벽 위에 매달려 그 불명확함을 지속시킨다. 그러한 설치는 우리가 이미지의 끝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스르르 사라지는 색의 형상을 더 오래 바라보게끔 이끈다. 그리고 가장자리의 사라짐은 마침내 아무것도 없는 중앙을 응시하도록 다시 우리를 부른다. 그의 그림은 어딘가에 정박하지 않은 채로 관람객의 시선을 계속해서 부르며 그 뒤에 나타날 무엇을, 잔잔히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 잠자코 기다리게 한다. 

 


*<Breathing light-Violet emerald> 2018-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132×1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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