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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2, Sep 2022

버질 아블로와 함께한 아름다운 생성과 소멸, 그 시간의 궤적을 걷다

U.S.A.

Virgil Abloh
“Figures of Speech”
2022.7.1-2023.1.29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 정재연 미국통신원 ● 이미지 Brooklyn Museum 제공

Installation view of 'Virgil Abloh: Figures of Speech' Brooklyn Museum, July 1, 2022 - January 29, 2023 Photo: Danny Perez, Brookly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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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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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는 늘 새로운 역사를 쓴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의문을 가지고 시작해야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2021년 11월 28일, 우리는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아쉬움 그리고 슬픔을 남겼다.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건축회사 OMA가 전시 디자인을 맡은 전시 <Figures of Speech>는 아블로의 생애와 유산, 예술과 디자인, 패션을 총망라하며 삶의 궤적을 선보인다. 2019년 시카고를 시작으로 애틀랜타, 보스턴, 도하를 순회하고 마지막으로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에서 열리고 있는 <Figures of Speech>는 그의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기념비적인 전시가 됐다. 역사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법. 살아생전 아블로가 맺었던 삶의 관계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시는 궁극에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Figures of Speech>는 천재적인 디자이너이자 기발한 아이디어와 자신을 한정 짓지 않는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 아블로가 이 시대에 남긴 발자취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1970년도에 가나에서 이민 온 부모님이 정착한 시카고 일리노이주 인근 록포드에서 나고 자랐다.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도시공학과 일리노이 공대(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그는 그곳에서 디자인과 협업의 개념을 배웠다고 한다. 건축가 콜하스가 일리노이 공과대학 캠퍼스 내에 건축 중이던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아블로에게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소명을 줬다.




Takashi Murakami and Virgil Abloh

<Times: Flames> 2018 Acrylic on canvas

mounted on board 180×180cm Courtesy of

Takashi Murakami and Gagosian © Virgil Abloh Securities,

Shannon Abloh and Takashi Murakami

Photo: Joshua White - JWPictures.com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자신의 블로그 ‘THE BRILLIANCE’에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그래픽, 가구 디자인 그리고 여러 뮤지션,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그의 커리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와의 인연으로 아블로는 그의 앨범 커버, 콘서트 디자인, 굿즈 기획 작업을 맡아 진행했다. <Figures of Speech>는 약 20년 동안 아블로의 모든 작품에 대한 전례 없는 철저한 조사와 함께 화려한 막이 끝나고는 동시에 다시 시작됨을 알린다. 전시 내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끊임없는 도전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 확신은 첫 작품에서부터 볼 수 있다.


아블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작품 중 하나인 <Functual Art>(2021)는 독일 회사 브라운과 함께 미래 세대를 위한 하이파이 오디오(HI-FI Audio) 스피커 2개를 활용하여 스테레오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는 유럽의 모더니즘과 힙합 사이를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아블로는 창작자로서, 오늘날의 문화 속에 예술이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순수주의 예술(Purist Art)을 차용해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고 청중에게 디자인의 영속성을 제시했다. 전시장 내에는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작업인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 ‘ALASKA ALASKA’ 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커뮤니티 공간 <Social Sculpture>는 물리적 공간에서 음악, 디자인, 시각예술, 대중문화 등 그의 광범위한 학제적 영감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이 공간은 흑인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공간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아블로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최근 ‘Black Lives Matters’ 시위에 이르기까지 그가 살아온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순간을 담고 있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의 모든 사람이 일체 눈을 들어 그를 우러러보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작품과 교감하고 아블로와 대화하는 듯 보였다.




Virgil Abloh in collaboration with Braun

<Functional Art> 2021 Speakers, reel player,

radio/amplifier, record player 88.9×184.91cm

Courtesy of Gymnastics Art Institute & Virgil Abloh

Securities Photo: Jonas Werner Photography




지켜내는 것, 버리는 것,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다

유럽 명품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흑인 디자이너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을 하이패션 반열에 올린 선구자. 아블로의 참신한 디자인은 단연 눈에 띈다. 그는 오리지널에서 조금 변형된 유연한 시선과 상상력, 재치로 승부한다. 오리지널에서 적당히 자르고, 붙이고, 뒤집고, 해체하는 것만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블로의 첫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Pyrex Vision)은 지드래곤의 공항 패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철 지난 럭비 셔츠와 폴로셔츠를 헐값에 산 후, 등판에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 ‘23’과 ‘Pyrex’를 스크린 프린트로 찍어냈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적당히 지켜내고 버리는 것, 대량 생산된 공산품을 예술로 탄생시킨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닮았다. 그는 뒤샹의 레디메이드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과 경외심을 2017년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에서 있었던 강연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아블로는 파이렉스를 운영하며 패션과 예술에 대한 확신을 얻은 듯하다. 또한 그는 미술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창작이 어떤 흐름과 맥락을 제공하는지 피력한다. 미술에 영감을 얻어 카라바지오(Carabaggio)의 회화 작품을 프린트하는 등 본인의 디자인에 미술의 영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2013년 밀라노에 본사를 둔 고급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오프 화이트(Off-White)에선 기존 브랜드와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




Virgil Abloh in collaboration with Sus Boy

<In Other Words> 2017 Video(color, silent):

2min, 5sec Courtesy of Gymnastics Art Institute

& Virgil Abloh Securities

Photo: Gymnastics Art Institute




가격대가 합리적인 기존 스트리트웨어 소재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파격적 디자인을 제시해 상류 패션계 권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존 디자인의 도형을 활용하는 것도 그의 시도다. 건축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극 차용해 화살표, 대각선, 평행선 등을 사용했다. 단어를 강조하는 따옴표는 실제로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개념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와의 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문자를 기반으로 사회적 이슈나 삶의 문제를 담아내 여성, 성 소수자, 이민자 정책 개혁, 인종 차별, 노동 환경 문제 등을 제기하고 인권 운동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프-화이트는 현대적 감각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쥬얼리, 현란한 색들로 칠해진 조금은 불편하지만 감각적인 철망 의자와 테이블, 음악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 공연장과 축제에서 DJ 세트를 직접 제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웨스트 제이 지(Jay Z)와 함께 일하며 쌓은 커리어에 대한 답이었다. 2017년에는 나이키와의 협업을 통해 나이키 신발의 상징적인 10가지 실루엣 형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한 ‘더 텐(The Ten)’을 출시했다. 신발의 구조를 강조하기 위해 투명한 재료, 라벨 부착 그리고 짚 타이(zip ties)등을 활용해 사람들이 이 상징적인 운동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전시장에는 오프 화이트와 나이키가 시제품 제작 단계에 선보이는 미공개 신발이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기계적으로 매끈하게 마무리된 제품의 형태와 차별화를 위해 재공품 즉, 완벽한 미완성 제품을 제작한다. 이는 과정과 결과 사이의 절묘한 지점에서 완전한 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의도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오프-화이트는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했고 브랜드 인지도와 그의 인기는 정점을 찍는다.




Digital rendering for <Social Sculpture> 2022

Courtesy of Gymnastics Art Institute &

Virgil Abloh Securities Photo: Alaska Alaska




세상에 새로운 챕터를 쓰다

2018년 아블로는 루이비통 남성복 레디-투-웨어 라인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하이패션 브랜드 남성복 라인을 이끈 아프리카계 최초의 인물이 된 후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스트리트웨어가 하이패션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까지 넘어오게 되었다. 그의 데뷔작인 2019년 봄-여름 남성 컬렉션이 파리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정원에서 펼쳐졌다. 누구든 평등한 대우를 받고, 소외당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 주목한 그는 쇼의 의상을 화이트, 화려한 그래픽, 강렬한 레드와 블루 등 다채로운 컬러로 구성했다. 특히 오버사이즈 실루엣, 구조화되지 않은 블레이저와 유틸리티 베스트 등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알록달록한 가방과 신발들에 시선이 쏠렸고 완벽한 쇼의 감동은 전시장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줄지어 전시되는 그의 컬렉션은 전시장을 도는 내내 밝게 빛난다. 건축에 대한 영감도 전시장을 도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아블로는 늘 “당신의 멘토에게 질문하라”고 말했다. 아블로가 언급한 멘토는 팩토리레코드의 음반 디자인 등으로 유명한 그래픽 디자인 피터 새빌(Peter Saville)과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미니멀리즘 예술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다. 특히 그는 이케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는 르코르뷔지에의 “집은 주거를 위한 기계다”라는 말을, 저드의 말 중에서는 “디자인은 작동해야 하고, 예술은 아니다”를 인용했을 정도로 멘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선호하는 사고 과정 그리고 미학적 개념에서 저드는 형태적 측면에서 중요 인물 중 한 명이다.




Pyrex Vision c/o Virgil Abloh™

<A Team with No Sport>2012 Video(color, sound):

5min, 55sec Courtesy of Gymnastics Art Institute

& Virgil Abloh Securities Photo: Gymnastics Art Institute




예술과 디자인은 온전히 자신의 의도대로 구현되길 원하지만 적절한 피드백과 커뮤니케이션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전시에서 확인한 그의 작품은 분명 하나의 프로젝트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시 중간마다 아블로의 다양한 생각이나 아이디어 과정 그리고 결과물이 펼쳐지는데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왕성한 창작욕과 아이디어가 그의 작업 방식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우린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과 같은 명품 브랜드와 함께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일부 미술 비평가들이 얼마나 큰 불만을 가졌는지 회상하게 된다. 바우하우스의 종합 예술 정립을 기억하는가? 현시대를 위한 디자인, 예술, 건축, 패션, 사진까지 현대미술의 중요한 경향을 보여주듯, 아블로는 디자인, 퍼포먼스, 건축, 패션, 조각, 음악 등 동시대 예술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진 예술가다.


디자이너로서 그는 사상가이자, 모든 세대 결정들에 도전해야 하는 사람이다. 또한 음악도, 패션도 그리고 건축도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분야와 교류하고 이 모든 관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나갔다. 이는 예술가, 디자이너, 뮤지션, 아트 디렉터 같은 명칭보다 모든 조건을 갖추고 창조해내는 개척자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업적은 절대 과거형이 될 수 없다. 앞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서 미학적인 관점과 사회적인 맥락을 고민하며, 모든 결과물에 존재 이유를 찾던 그가 왜 아직까지도 대단한 인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도. PA



글쓴이 정재연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언어와 텍스트,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에서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탐구해 전시로 풀어내는 것을 장기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2012년 일현미술관에서 퍼포먼스에 대한 교육을 기획 및 진행했고, 전시 <다빈치 코덱스>(문화역서울284, 2016-2017)의 큐레이터를 맡았다. 뉴욕 첼시에 있는 갤러리를 거쳐, 현재 큐레토리얼 그룹 ‘어떤콜렉티브’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내외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때때로 전시 리뷰를 비롯해 예술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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