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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0, Jan 2020

이재원_retopology

2019.10.23 - 2019.11.9 디스위켄드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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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석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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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된 허상과 현실의 구체


                                                                                                                          

강남이라는 지역이 서울에서 지니는 의미는 실제적인 동시에 가상적이다.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 건물의 매끈해 보이는 유리 외장은 기실 울퉁불퉁하여 비친 대상에 대한 감각을 기묘하게 왜곡한다. 저마다 각자의 기대를 품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 대로는 공허하다. 매끄러운 뒤틀림과 북적이는 텅 빔을 뒤로한 채 한 시간 남짓 청담동 방향으로 걸어가면 편의점과 미용실이 세들어있는 낡은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어쩐지 정겨운 1980년대식 아이보리색 타일 외장을 비늘처럼 두르고 있는 건물 2층에 디스위켄드룸은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그 흔한 간판도 간단한 표식도 없다. 


디스위켄드룸에서 열리고 있는 이재원 작가의 개인전 <리토폴로지 - 표면 재구성>을 찾았다. 본래 3D 그래픽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전시 제목은 작가의 작업 방향을 함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전시된 작업은 크게구체풍경펼치고 접기’, 그리고펼치기로 나누어진다. ‘구체풍경 360도 파노라마 이미지를 둥근 구의 안쪽 면에 프린팅하고 구의 정중앙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카메라는 주기적으로 회전하며 구 내부에 프린팅된 이미지들을 외부 모니터로 전송한다. ‘펼치기 360도 이미지들을 평면으로 펼친 전개도, 그리고펼치고 접기는 이러한 평면도의 일부를 실제 구현한 조형물들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360도 파노라마보다 구체이미지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공처럼 둥근 형체를 뜻하는 구체(球體)인 동시에 구체적(具體的)인 이미지를 뜻한다. ‘구체풍경펼치고 접기’, ‘펼치기세 작업 모두 구체이미지의 재구성을 통한 위상(位相)과 시각의 변이에 대하여 다룬다. 3차원 공간 속 원본을 2차원 평면에 복제하고자 했던 시도인 카메라 옵스큐라는 우리 시대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그 원본의 숨통을 옥죄려 한다. 이미 구체이미지는 스마트폰 지도 앱의 거리뷰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친숙해져 있고 현재와 같은 수준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생활화는 들뢰즈(Gilles Deleuze)나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으리라. 구체이미지를 들여다보는 이의 시선은 이미 가상의 구체(球體) 속에 존재하며 스스로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물리적 실재계를 벗어나있다. 구체이미지는 가상현실을 구성하는 3D 오브젝트들을 한층 더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 소스이기도 하다


가상현실 속에 위치한 이는 실재계로부터 복제되고 재구성된 이미지의 구체적(具體的) 외장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제 어떠한 구체적 이미지라 할지라도 이는 모두 0 1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가상적 조합일 뿐이며 플라톤(Plato) 식으로 말하자면 허상(실재계)의 허상(구체이미지)의 허상(구체이미지의 재조합을 통한 가상적 외장)인 것이다. 이미 세계의 본질적 실재에 대한 이념 자체가 허상처럼 여겨지는 우리의 포스트모던적 삶에서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그리고 그들의 가치상의 차이를 따지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중적 허상의 홍수 속 우리의 실존은 어디쯤 표류하고 있으며 익사 직전의 그를 발견해낼 시선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질문에 작품으로 답한다. ‘구체풍경의 반투명한 은빛 구체 속에 담긴 허상의 세계를 무심히 바라보는 카메라, 그리고 그 카메라가 비추는 것에는 구체 속 허상의 풍경뿐만 아니라 이를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도 포함된다. 관찰자가 동시에 관찰당하는 자가 되고 그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은 얇은 허상의 벽 하나뿐인 상태의 구현은 작가의 날카로움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펼치기를 통해 이러한 허상을 늘이고 줄이고 조각내어 제작된 전개도는 관찰자인 동시에 이미지의 제작자인 작가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편집된 구체이미지의 우연적 패턴이 지닌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전개도가 2차원적 평면에 박제된 개념적 도식으로서 완결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펼치고 접기를 통해 반쯤 접힌 모습으로 구현된 은빛의 다면체들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구체이미지들을 관찰자가 위치한 실재계와 융화시킨다. 세 가지 작업 모두 허상의 위치와 그 허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존재하는 지점에 대하여 되묻는다. 지금 초광각으로 촬영된 새하얀 화이트큐브의 전시장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독자의 시선도, 리뷰를 쓰다 모니터의 공백에 잠시 멈춰 선 필자의 시선도 모두 허상 속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다시 매끄럽고 뒤틀린 곳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북적거린 채 텅 비어있다어쩌면 우리에게서 가장 먼 플라톤이 가장 정확하게 우리 시대를 꿰뚫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소크라테스(Socrates)는 그의 가장 구체적 허상이었을 것이다



*<펼치고 접기> 2019 스테인리스 스틸, UV 프린트 ⓒ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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