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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3, Oct 2022

2022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미술의 공진화

2022.9.2 - 2022.10.3 강정보 디아크 광장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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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 대구미술관 전시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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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의 장에서 소통하는
‘대구현대미술제’


1974년 진취적인 도전정신으로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대구현대미술제’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대구는 매년 달성군 강정보 일원에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예술감독 남인숙의 기획으로 30여 명의 참여작가가 오늘날의 시대정신 속 미술에서 ‘장소’가 가지는 의미와 효용성을 실험하며 그 의미를 이해해보기를 제안한다. 대구 현대미술은 대구 일원에 내재된 예술적 토양과 시대성을 추구하는 개척자적 정신으로 무장한 아카데미즘에 대한 저항, 권위적이고 제도화된 현실에 저항하며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강직한 선비정신과 열성적인 기질이 어우러져 형성된 미학적 전승물이다. 이러한 가운데 집단적 움직임에서 발로된 대구의 현대미술은 오늘날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강정보와 같이 공공의 영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공동의 장소와 관계 맺기를 시도하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공원형 랜드마크처럼 아이들과 가족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강정보 디아크 광장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미디어, 설치, 조각 등 여러 매체로 구성된 이번 프로젝트 역시, 낙동강의 보(洑)를 주변으로 에워싼 드넓은 광장과 고즈넉한 능선의 잔디밭을 토양 삼아 부드럽게 안착해있다.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시민의 편안한 휴식공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는 강정보 광장은 공공의 영역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에 설치된 여러 작품은 ‘대구현대미술제’라는 목표 아래 의도적으로 모였으나 동시에 공공미술로서의 기능도 자연스럽게 부여받았다.



송필 <실크로드, 전설> 2022 
브론즈 471×80×160cm



미술제가 개최되는 장소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멋진 고래 모양을 닮은 디아크(The Arc)라는 건물과 그 건물 바로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였다. 곧게 뻗은 가지 위에 꽤 풍성한 나뭇잎이 달린 이 느티나무 한 그루는, 이지현의 <나무 아래>라는 작품이다. 이 나무가 이번 미술제를 위해 새로 설치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땅에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붉은 흙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혹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나무 아래>는 작품을 통해 연상되는 특정 이미지와 그 이미지 자체에 부여되는 조건화 능력인 ‘작용 이미지(imagines agentes)’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창작자로 하여금 기억, 틀에 박힌 표현, 타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작용 이미지는 관람자의 관점에서도 다수의 기억과 향수를 소환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나무 아래> 주변에는 눈에 띄는 색감을 자랑하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많은 시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사슴 한 마리가 균형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낭창한 하늘에서 추출한 듯한 밝은 하늘색의 몸집에 묵직한 위용을 자랑하는 흰색 뿔 그리고 그 뿔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붉은 새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오동훈의 <바라보다>(2021)다. 강정보 광장 너머 마을 어딘가까지 시선을 주고 있는 이 사슴은 음영효과를 배가시키는 면 분할로 조각된 작품이다.



행사 전경



눈코입이 없음에도 단호한 표정이 추측되는 사슴의 얼굴은 온몸으로 강인함을 표출해낸다. 오히려 이지현의 <나무 아래>보다 더 은유적이며 시적으로 다가오는 <바라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 형상을 통해 비가시적인 무게감을 선사한다. 광활한 광장을 오래도록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몸집과 네 발은, 의외로 매우 얌전하게 땅을 내디디고 서 있지만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묵직한 운동감은 감출 수 없다. <바라보다>는 공적인 장소에 설치된 작품이 종종 내포하고 있는 세 가지 패러다임 - 현상학적 혹은 경험적, 사회적/제도적, 담론적 - 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강정보 광장이라는 공공의 장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광장 한쪽에 사슴 한 마리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높은 돌기둥을 짊어지고 있는 숫양이 한 마리 서 있다. 송필의 <실크로드, 전설>이라는 작품이다. 청동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양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했다면 그저 울퉁불퉁한 비석이 잔디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소한 덩치의 양이 짊어지고 있는 돌덩이는 높이 471cm에 달하는 것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혹자는 이 작품을 보고 삶에 짓눌려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연상하거나, 유목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떼고 있는 숫양의 네 발은, 작품의 재료적 특성과 마티에르(matière)로 인해 더욱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양순열 <호모 사피엔스> 2022 
청동, 레진, 우레탄 도장 80×40×40cm



낙동강의 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설치된 이강소의 <강물의 기억>은 공공의 영역에 무형의 본체로 침투한 사운드아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강소의 작품은 ‘대구현대미술제’를 창립한 멤버로서의 상징성이 아닌 물줄기가 흐르는 강정보의 장소적 특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수용미학(reception aesthetics)’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업이다. 문예비평에서 출발한 수용미학은 창작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예술적 생산’이라고 말하고, 관람자가 그 작품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읽어 그 의미를 완성해 나가는 것을 ‘미학적 창조’라고 말한다.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빗소리, 개울 물소리, 폭포 소리, 파도 소리 등이 송출되는 <강물의 기억>은, 강정보 광장을 메우는 또 다른 소리인 바람, 소음, 이야기 소리 등을 뚫고 나와 청각을 두드리며 관람자로 하여금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며 소리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행위를 이끌어낸다. 이로써 관람자는 예상치 못하게 미술 작품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창작의 완성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작가 수십 명의 작품이 광장 곳곳에 적절히 포진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전하며 불특정 다수가 출입하는 공공의 장소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다. 공공의 장소에 설치된 미술 작품에 대해 장 필립 위젤(Jean Philippe Uzel)은 “공공의 명칭을 획득한 미술 작품은 미술관 밖으로 나와 외부 환경에 녹아들고 관람자가 그것을 능동적으로 수용했을 때 비로소 공공의 예술이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서 위젤이 말하는 관람자란 무색무취의 방관자가 아닌 공공미술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공공의 영역에 위치하고 있는 미술 작품을 관람자가 적극적으로 향유했을 때, 그 작품이 곧 공공미술로서의 권위를 획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화이론가 존 피스크(John Fiske) 역시 이른바 능동적 수용자론을 주장하면서 예술을 경험하는 대중은 일종의 수용자로서 각각 독자성을 가지고 예술에 대한 개별적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류신정 <무지개> 2022 
스테인리스 스틸, 우레탄 도장
 330×300×150cm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지붕 없는 미술관의 대표적인 공간인 강정보 광장에서 매년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야외에 미술 작품을 설치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작품이 설치되는 주변 환경과 설치 조건에 대한 치밀한 계산과 꼼꼼하게 준비된 운영 매뉴얼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공의 장소로 인식되는 외부 공간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해와 장소와 작품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이러한 난제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하는 미술의 장이다. 앞으로도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더 많은 도전과 전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 오동훈 <바라보다> 2021 스테인리스 스틸 365×290×2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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