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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3, Oct 2022

우리, 할머니

2022.9.5 - 2022.9.25 탈영역우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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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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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이의 모든 삶을 긍정하는 힘,
할머니!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사나 미술시장은 저항, 도발, 혁명, 새로움 등과 같은 가치나 열망으로 규정되어 왔고, 그것을 추동한 것은 각 시대의 젊음이었다. 하지만 미래주의 예술가들이 30세 미만이라는 나이 제한을 강령에 새겨 넣고 전통 세계를 파괴하는 상상을 예술적 원천으로 삼았듯이, 시대, 지역, 이념을 불문하고 젊고 건강한 신체가 이상적 아름다움과 권력의 영원성을 표상해왔듯이, 젊음과 미술의 결합은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미술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만큼 오랜 연령차별(ageism)의 역사를 구축해왔으며, 성차별과 연령차별은 긴밀하게 교차한다. 그 안에서 나이든 여성이라는 표상이나 주제는 권력과 가장 동떨어진,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였고, 그래서 어두운 사회의 민낯이나 부패한 권력을 고발할 때 그리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남성 작가들의 무력감과 사회적 분노를 투사할 때, 추악한 초상으로 보는 사람을 위협하곤 했다.

<우리, 할머니>는 젊음과 안티에이징(anti-aging)에 대한 강박, 가부장제적 통치 시스템에 따른 성차별과 권력관계 등을 본격적으로 질문에 부친 페미니즘 미술운동의 계보에 위치시킬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전시는 저항, 도발, 대결 등과 같은 20세기 미술사의 문법 대신 ‘혐오의 시대’에 절실한 이해, 공감, 연대의 감각과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 실마리는 맞벌이 부모가 다수인 MZ세대와 그들의 양육과 돌봄을 담당해야 했던 할머니 사이의 관계에서 찾았다.

부모의 부재로 형성된 이 특별한 세대 간 연결은 탈가부장제적 가족공동체의 경험, 그로부터 확장되는 다양한 역사적 주체나 삶에 대한 재발견 그리고 공식역사에서 누락된 그림자와 같은 삶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과 연대의 길을 만드는 행동들에 주저함 없이 열려 있다. ‘할머니’는 그저 나이든 여성이 아니라, 이러한 세계관의 전환과 인식의 재배치를 가동시키는 중심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나이”(앤 라모트(Anne Lamott)), 모든 힘겹고 굴곡진 삶과 역사, 그 울퉁불퉁한 지평들을 포용하고 복권하는 표상이자 전통적인 미술의 성차별적-연령차별적 언어들과 단절하는 현재성의 원천이 ‘할머니’인 셈이다.



사만다 니(Samantha Nye) 
<비주얼 컬처/주크박스 시네마-캘린더 걸> 
2016 HD 비디오 4분 15초 사진: 홍철기



‘할머니의 일기’, ‘시대의 할머니’, ‘할머니 되기’라는 세 섹션을 노드(node) 삼아 교차시키고자 한 만큼, 각 개념적 섹션에 속하는 작품들은 탈영역우정국 공간에 층별로 분할되지 않고 섞여서 배치되었다.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초상(윤석남의 <Women of Resistance>), 위안부 여성들의 초상(차진현의 <108인의 초상>)은 익숙한 역사적 주체이나, 실상 그들 각각의 이름과 얼굴은 생경하다. 늘 익명화된 집합적 주체로 기념/기억하는 관행적 서사 안에서 그들의 모든 나이와 다양한 삶의 궤적은 쉽게 약분되고 표준화된다.

윤석남과 차진현이 목표로 삼은 100인 또는 108인의 초상은 이 기억하면서 지우기 또는 지우면서 기억하기라 할 만한 역설적 기념/기억의 서사를 기각하고, 각각의 이름과 얼굴과 인생을 복권하려는 프로젝트다. 하여 이 ‘할머니’들의 초상은 현재의 모습을 넘어 젊은 날의 피해 경험은 물론 그 이후의 삶과 위안부운동의 역정까지도 아우르는 시간성의 아카이브, “모든 나이”를 함축한 역사인물화다.

하지만 공식역사와의 접속을 통해 집단적인 역사적 주체(‘독립운동가’나 ‘위안부’)로 호명되지 못한 더 많은 삶들이 존재하며, 그들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은 역사적 서사 내에 등재할 항목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분장을 지운 여성국극 배우들의 삶(정은영의 <틀린 색인>),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집회에 모인 발들과 발언하는 목소리(조이스 빌란드(Joyce Wieland)의 <Solidarity>), 할머니의 기침 소리(모스타파 사이피 라흐무니(Mostafa Saifi Rahmouni)의 <Persistence>), 카메라와 손편지를 매개로 한 교감과 대화(오석근의 <마주보기>), 존재의 취약함을 환기시키는 반기념비적(counter-memorial) 조각들(강서경의 <둥근 계단>, <그랜드마더 타워 #1>)은 역사에서 누락되거나 주변화된 이들의 존재를 잊지 않고 공동의 기억으로 만들어갈 대안적 방법론을 모색하는 미술 언어의 지평을 보여준다.

전시의 마무리는 지하 1층에 나홀로 자리한 사만다 니(Samantha Nye)의 <비주얼 컬처/주크박스 시네마>다. 번쩍이는 금빛 배경과 욕조 위로 작가의 어머니, 할머니, 그들의 친구, 퀴어 커뮤니티의 고령자들이 모여 노화된 신체를 한껏 뽐내며 즐기는 뮤직비디오가 흐른다. “머릿속에 있는 모든 목소리와 나에 대해 갖는 기대에 귀 기울이는 것을 멈추고 진정한 자신이 되는”(르네 젤위거(Renee Zellweger)) 것이 노화라는 인식 전환을 고스란히 녹여낸 듯, 영상 속 할머니들의 성과 섹슈얼리티와 나이를 막론한 연대는 유쾌하다.

역사가 나/우리를 기억하든 잊든, 인정하든 부정하든 나/우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인생은 금빛으로 찬란하다! 이 위풍당당한 긍정과 포용의 세계 앞에서, 할머니들을 과소평가한 공식역사와 미술사와 온갖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순간 빛을 잃고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인다.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로 시작해 우리의 할머니 되기로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은 자명해 보이지만, 전시는 “누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것”(문선아)이기에 공감과 연대는 가능하고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낙관적 비전을 제안한다. 아, 할머니!  


* 트흘렛 펄 와이스텁(Tchelet Pearl Weisstub) <하와이 - 불가피한 탈출 - 서울> 2022 장소 특정적 경험, 영상 기록 26분 사진: 홍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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