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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4, May 2020

미술관 소장품

MUSEUM COLLECTION

미술관의 존립 목적이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을 수집 및 보존, 발굴하는 데 있다면 소장품은 기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와 같다. 그리고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은 각 미술관의 성격을 대변한다.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 소장품에 관한 기획을 마련했다. 먼저 대표적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미술관 소장품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귀족과 국가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의 대명사’ 프랑스, 시민들의 소장품과 민간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현대미술의 심장’ 미국에서 소장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운영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어 한국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을 짚어본다. 이 특집은 비단 미술 강국들과 견주어 현실을 자각하는 데 그치고자 함이 아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른 두 나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제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끝에 얻어지는 단단함으로 국내 국공립미술관이 더욱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기대, 자체이다.
● 기획 편집부 ● 진행 김미혜 기자

Panorama nef © Musée d’Orsay / Sophie Cré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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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김미혜 기자, 이한빛 『헤럴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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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_프랑스

국가와 공공 유산으로서의 소장품_정지윤 


SPECIAL FEATURE Ⅱ_미국

기부와 후원의 결정체_김미혜


SPECIAL FEATURE Ⅲ_한국

왜 걸작들은 사립기관 소장일까_이한빛


 



Portrait de Lisa Gherardini (1479-1528) épouse de 

Francesco del Giocondo, dite Monna Lisa, 

la Gioconda ou la Joconde Léonard de Vinci Datation: vers 

1503-1506 © 2007 Musée du Louvre / Angèle Dequier 

 


 


Special feature Ⅰ_프랑스

국가와 공공 유산으로서의 소장품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국립 박물관의 탄생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명실 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은 2018년 기준으로 누적 관람객 수 총 1,020만 명을 돌파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미술관’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1793년, ‘중앙미술관’으로 처음 문을 연 루브르 박물관이 두 세기가 넘도록 건재한 이유는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대 유물부터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의 회화와 조각, 현대 작가들이 설치한 공공작품에 이르기까지 62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89년 발발한 프랑스 시민혁명의 여파로 설립된 루브르 박물관은 8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루브르 왕궁(Palais-Royal)의 갤러리를 개조 및 확대한 것으로,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의 수집품을 포함해 나폴레옹 집권 시절, 군사 정복으로 획득한 전리품들을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시켜 컬렉션의 기반을 마련했다. 


화려했던 왕궁과 특권층이 독점적으로 향유했던 예술품들이 ‘국가와 국민의 소유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절차는 순탄치 않았다. 국립 박물관은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왕궁이 국립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난제는 국가 유산으로 거둬들인 예술품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다. 이것들은 인류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동시에 구체제의 잔재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이 사안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차원을 넘어 혁명의 명분을 묻는 정치적 쟁점으로 번졌고,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예술품들을 국민이 누려야 할 교육적 자산으로 인정하여 보존하기로 결정한다. 


뒤이어 1791년, 예술품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감독하는 최초의 기관으로 창설된 국립조형예술센터(CNAP)는 훼손된 궁과 문화재를 복원하고, 특정 소수의 취향에 맞춰진 수집품들을 재정비하여 학문적 체계를 갖춘 박물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고대 그리스·로마, 이집트, 동아시아 유물과 각 시대별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여덟 개의 범주로 나누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컬렉션 역시 사전 지식을 갖추지 않은 당시 대중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예술은 더 이상 진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만인의 것이 되었다. 이처럼,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향해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탄생한 루브르 박물관은 봉건제도에 기반한 구체제의 모순에 반발한 시민들이 혁명으로 일구어낸 성과이자, 프랑스 박물관학의 기원이며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문화예술계 전반을 관장하는 특유의 정책적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박물관’을 건립한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Bassin de Latone, Application de la couche d’apprêt

 © Château de Versailles, Thomas Garnier 




지역분권화와 현대예술장려를 통한 컬렉션 확대  


루브르 박물관의 건립으로 본격화된 프랑스의 ‘문화예술 민주화’ 정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9년 신설된 문화부를 주축으로 좀 더 체계화된다. 초대장관으로 임명된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인류의 예술적 자산이 최대한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개방되고,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며, 예술의 창작을 장려하는 것이 국가와 문화부의 소임”이라 밝히며, 보급, 복원, 창작이라는 세 개의 문화예술정책안을 제시했다. 그가 먼저 단행한 조치는 지역문화예술위원회(CRAC)의 개설을 통한 ‘문화예술사업의 지역분권화’이다. 1969년부터 다섯 개의 지역에 선별적으로 시행된 이후, 1977년 문화예술지방국(DRAC)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전국으로 확대된 이 정책은 각 지방에 문화부 산하기관을 두어 지역문화예술사업의 자율성과 형평성을 보장하는 한편, 지역 간의 문화예술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결과, 프랑스 전역에는 박물관, 미술관, 극장, 콘서트홀과 같은 다양한 문화예술기관들이 들어섰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예술품들을 파악하여 기록한 국가문화재 목록이 완성된다. 또한 DRAC은 복원을 담당하는 문화재복원재단(FRAR)과 예술품 구매 및 수장고를 관리하는 소장품관리재단(FRAM)으로 부서를 세분화하여 전문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같이 혁명과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연달아 겪은 이후에도 프랑스에서 미술관과 소장품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문화부와 각 지방의 DRAC를 연계해 문화예술사업을 ‘정부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정책화한 덕분이다. 





Marc Chagall’s frescoes, painted on the ceiling 

of the Opéra Garnier,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globetrekimages/Flickr.com  2. Work in progress - Einblicke i




1982년 이래, DRAC는 매년 복원 사업, 소장품 구매, 전시 및 예술창작지원을 위한 재정산정과 기금 혜택을 받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며, 여기에는 문화부 소속 대표단과 지역에서 선발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참여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의회의 주요 평가항목인 연간 예술품 현황보고를 통해 지역 문화재의 관리실태와 DRAC의 자체 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앙드레 말로가 지휘한 1960-1970년대가 문화예술 인프라의 구축을 통해 소장품을 확대하는 시기였다면,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정부에서 주력하는 부문은 현대예술의 장려정책이다. 그 중심에는 ‘예술의 다양화’를 위해 자크 랑(Jack Lang) 전 문화부 장관이 출범시킨 현대미술지방재단(FRAC)이 있다. 그는 TV,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상업성에 치중된 예술의 생산·소비구조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현상들에 대응해 기존의 예술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 예술시장 밖에 있는 비주류 예술을 포옹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동시대성’에 방점을 둔 FRAC을 각 지방에 설치한다. 


현재 활동 중인 예술가들을 지원하여, 현대예술의 추세를 즉각적으로 읽고 폭넓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총 23개의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FRAC은 회화, 조각, 설치 외에도 레코드, 비디오, 영화, 디지털 매체 작품을 적극 수용하고 있으며, 주류 예술계에서 밀려난 실험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대중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FRAC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에게 창작기금을 대폭 지원하는 대신 작품을 공동 소유하거나 혹은 매매 금액을 절감하는 형태로 소장품을 확충하고 있다. 각 FRAC의 소장품 구입 평균예산이 연간 약 15만 3,000유로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인데 비해, 30여 년간 현대작가 5,700명의 작품, 3만 2,600점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FRAC 총연합대표 베르나르 드 몽페랑(Bernard de Montferrand)이 “소장품의 55-60%가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며, 이는 우리가 투기적 매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공동창작이 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조성했다”라 밝혔듯, FRAC은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뛰어들어 세계예술시장의 불균형 속에서 자국 내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보호하고, 컬렉션을 안정적으로 확충한 성공모델로 꼽힌다. 





제프 쿤스(Jeff Koons) <매달린 마음(Hanging Heart)> 

in Versailles, France 이미지 제공: farm4.static/Flickr.com




국가의 개입과 현대예술 장려를 필두로 한 프랑스의 소장품 구매전략은 1951년부터 시행된 ‘공공주문법’과 공공건축물을 세울 때 총 비용의 1%를 미술품에 할애하는 ‘1% artistique’ 법이 계승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루브르 박물관의 앙리 2세 방 천장에 푸른 하늘을 펼쳐놓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새들(Les Oiseaux)>,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화려한 색채로 물들인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의 천장화,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이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티브 삼아 재탄생시킨 오데옹 국립극장(Odéon-Théâtre)의 천장화,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이 루브르 왕궁의 안뜰에 흑백 줄무늬 기둥 260개를 세워 조성한 <두 개의 고원(Les Deux Plateaux)>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시대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공공주문과 ‘1% artistique’ 법령이 없었다면, 이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결코 프랑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Musée de France


지역분권화와 현대예술장려를 통해 소장품 관리를 직접 관장하는 것 외에도 프랑스 정부는 개인과 사립문화예술기관에 조세지원책도 펼치고 있다. 민간 혹은 기업에서 설립한 미술재단, 박물관이 문화재 복원, 예술품의 증여, 메세나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대규모 조세감면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이다. 예컨대 사립미술관에서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 5년 간 작품 구매가의 20% 공제, 문화재 복원과 예술품 증여, 메세나의 경우 66%의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문화예술 재정을 충당하고, 개인과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독려하는 것인데, 2019년에는 같은 해 4월에 화재로 불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의 복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제율 75%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프랑스가 예술을 앞세운 조세회피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유독 예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오랜 국가적 전통과 국민정서가 맞물려 세제혜택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는 사립기관의 소장품들 역시 공공의 유산이라는 사회의 인식도 깔려있다. 


2002년 제정된 ‘프랑스의 박물관(Musée de France)’ 법령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는데, 정부가 관리하는 국공립 미술관, 유적지와 사립문화예술기관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박물관들의 연합체를 창설한 것이다. 프랑스의 박물관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검증된 컬렉션을 보유하고, 소장품 확대, 복원 활동을 통해 공공재화를 창출해야 한다. 평가가 까다로운 편이나, 일단 승인되면 정부와 지방의 DRAC과 연계하여 재정 지원, 전문가 자문, 예술품 대여 등의 다양한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립기관의 비율은 2020년 3월 말 기준, 1,219개의 박물관이 등록된 가운데 13%에 머무는 수준으로 아직 미비한 편이다. 소장품 대조확인과 신고의 의무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 소장품 목록은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된 상태다. 문화부 공식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뮤제오필(Museofile)과 조콩드(Joconde), 두 개의 데이터베이스는 무려 1억 점이 넘는 소장품 정보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직접 가지 않아도, 누구나 어디서든 실시간 작품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품을 공공의 지적재산으로 간주, 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디지털 아키이브를 통해 대중 접근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21세기형 박물관’의 청사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명 개인과 사립기관의 입장에서 불편한 부분은 있으나, 예술을 공공의 가치로 보존해온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프랑스의 박물관 규모는 점점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는 무엇이 다른가. 두 세기 전 성난 국민들이 쳐들어간 루브르 왕궁 앞에 말 많고 탈 많았던 이오 밍 페이(I. M. Pei)의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진지도 30년이 지났고, 금빛으로 치장된 베르사이유 궁(Château de Versailles)에는 2008년 제프 쿤스(Jeff Koons)를 시작으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입성했다. 긴 세월 속에 빛을 잃어버린 벽화와 천장화들이 후대의 예술가들의 붓질로 되살아나듯, 과거의 유산 위로 현재가 겹겹이 포개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 프랑스에서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공공예술의 대부분이 과거에는 큰 사회적 질타를 받은 것들이다. 훼손된 옛 그림을 덮은 현대회화들은 낙서에 비유되기도 했고, 뷔랑의 기둥은 큰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품 한 점을 둘러싸고, 여전히 온 나라가 들썩인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족적들이 프랑스에 즐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열띤 논쟁에 있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이 전제될 때, 국가와 공공의 유산으로서,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통로로서 예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예술은 곧 미래의 세대들이 전승할 과거의 유산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무엇을 남길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Installation view of <Les Deux Plateaux>

 Palais Royal,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jmbf/Shutterstock.com





Special feature Ⅱ_미국

기부와 후원의 결정체

 김미혜 기자

 


주로 귀족이나 왕실 소유의 컬렉션으로 출발한 유럽의 박물관들과 달리 미국은 시민들이 소장품을 기증하거나 그들의 기부금으로 작품을 구매해 설립된 곳이 대부분이다. , 정부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의 기증과 기부를 통해 컬렉션을 형성하고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 이는 미국 사회의 오래된 뿌리와 같은 기부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은 사회적 도움과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자각과 이에 대한 개인의 책무, 사회공동체적 의식이 기부라는 행동의 동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난해 6 ‘Giving US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인들이 비영리단체 등에 기부한 금액은 4,277억 달러(한화 약 5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우리나라 예산(512.3조 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 사회 전반에 기부문화가 얼마나 잘 형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국 기부문화의 발판을 마련한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철강회사를 설립해 거대한 부를 일궈낸 그는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 외에도 미국 내 기부문화 정착을 비롯해 교육, 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더욱 위대한 평가를 받는다. 카네기는 자신의 저서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유하게 죽는 자, 그는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이다(The man who dies rich, dies disgraced).”

 




Interior view of Gemäldegalerie, Berlin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 David von Becker

 



미국 박물관 연합회 AAM


이렇듯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기부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는 미국에는 프랑스의문화통신부(Ministère de la culture)’, 영국의디지털 문화 미디어 스포츠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와 같은 정부 부처 대신 비영리기관미국 박물관 연합회(American Alliance of Museums, 이하 AAM)’가 있다. 1906년에 설립된 AAM은 미술관(Art Museum)뿐 아니라 수족관, 식물원, 인류학박물관, 자연과학박물관, 아동박물관 등 다양한 형태의 기관을 아우른다. 이들은 박물관의 표준 기준과 우수 사례 개발 등에 힘을 쏟고, 관련 지식을 기관에 공유하며, 박물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와 우려 사항들에 대해 옹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관과 문화예술 전문가, 그리고 박물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까지 포함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조직인 것이다.


AAM은 지난 1981년부터 미국 연방 정부 독립 기관박물관 도서관 지원기구(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와 함께박물관 평가 프로그램(Museum Assessment Program, 이하 MAP)’을 운영하고 있다. MAP는 기관이 스스로 장단점을 평가 및 파악하고 미래 계획을 설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지금까지 미국 전체 박물관 중 약 5,000여 곳 이상이 참여했다. 평가방식은 크게기관의 전반적 운영(Organizational)’, ‘소장품 관리(Collections Stewardship)’, ‘교육과 설명(Education and Interpretation)’, ‘공동체와 지역사회 협력(Community and Audience Engagement)’, ‘리더십(Board Leadership)’ 5가지로 분류되고 다음과 같이 시행된다


기관 직원과 관리 당국이 자체 평가를 완료하고 나면 전문인력 1명 이상이 현장을 방문해 박물관을 둘러보고 직원, 정부 관계자, 자원봉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심사를 맡은 전문인력은 박물관 및 MAP 직원들과 협력해 박물관의 운영을 평가하고 보고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권장 사항을 포함한 자체 평가, 현장 방문, 기관 활동 및 컨설팅 동료 검토 등의 과정을 거치면 박물관은 기관 운영 강화와 미래 계획 수립, 표준 기준 충족 등을 위한 전문가의 다양한 지원과 자료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비영리 공공법인 형태인 미국 내 박물관들은 소장품 취득의 80%와 운영에 해당하는 비용 등을 기부에 의존하고 있어 대외적 이미지와 영향력, 후원 등의 이유로 MAP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를 반영하듯 문화예술 전반에도 자율성, 주체성을 토대로 한 방침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는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소장품 정보 파악과 관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악셀리 갈렌 칼레라(Akseli Gallen-Kallela)

 <아이누 신화, 트립틱(Aino Myth, Triptych)> 

1891 Finnish National Gallery Ateneum Art Museu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Hannu Aaltonen




대중과 공유하는 소장품 관리 기준


미국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소장품 관리 기준과 정책에 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정보를 나타내는 ‘About’란의문서와 정책(Documents and Policies)’ 혹은 정책과 문서(Policies and Documents)’를 클릭하면소장품 관리 정책(Collection Management Policy)’에 대한 내용이 약 10페이지 정도로 명시되어 있다. 세부사항은 각 기관의 성격, 구조, 예산 및 기타 고유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공통적으로는 AAM박물관 핵심 표준(Core Standards for Museums)’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따르고 있다. “소장품은 알맞은 물리적 보관 방법에 따라 관리되어야 하고 법적, 사회적, 윤리적 의무를 수반하는 지적 통제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MAP소장품 관리영역에서 중요한 평가 지표로 활용된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의 소장품 관리 정책을 살펴보면, “현대미술의 흐름과 생명력, 복잡성을 반영하는 높은 수준의 소장품을 설립 및 보존, 문서화함으로써 대중에게 헌신을 표명한다는 미션 아래위원회’, ‘구입’, ‘매각’, ‘출처(취득 방법)’, ‘대여’, ‘보증’, ‘보관’, ‘기록등의 영역으로 문서는 분류된다


소장품 연구와 관리는 기관의 큐레이터가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션, 정책, 절차, 문서를 기반으로 정기적으로 소장품을 검토하고 장단점을 분석해 지속 가능성, 기관과의 관련성 등을 평가한다소장품 구입은 구매와 기증, 유증 혹은 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구입하고자 하는 모든 작품은 큐레이터의 추천과 관장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기증의 경우, 수석 큐레이터가 관장과 협의하여 어떤 작품을 수락하도록 추천하고 거절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기증자는 기증하기 전, 미술관의소장품 관리 정책사본을 보유해야 하고, 뉴욕시의 ‘Abandoned Property’ 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 구매의 경우, 담당 큐레이터가 해당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 이미 소장되어있는 동일 또는 관련 예술가의 다른 작품과의 관계, 그리고 미술관의 소장 및 미션에 대한 특별한 기여도 등 설득력 있는 이유를 동료 및 이사진에게 제시해야 한다


가능할 경우 위원 회의에서 작품이 전시되어야 하며 구입을 위해 위원회 구성원 과반수의 넘는 동의가 필요하다. 소장품 매각 과정은 더욱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매각한 작품으로부터 취득한 자금은 다른 작품을 구입하는 데 한해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현존 작가의 작품은(가능한 작가의 동의를 얻고) 동일 작가의 더 좋은 작품을 소장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목은 다음이다. “이사회의 구성원, 미술관 직원 또는 작품을 구입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는 누구든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작품 매각에 관여할 수 없으며 절대 미술관 소장품의 판매나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렘브란트(Rembrandt) <자화상(Self-Portrait)> 1660 

Oil on canvas 31 5/8×26 1/2in (80.3×67.3cm)

 Bequest of Benjamin Altman, 1913 Accession Number: 

14.40.61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메트로폴리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미국 박물관들이 이토록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소장품 관리 기준과 법규를 마련하고 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의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작품 매각 사건이 있다. 표현주의, 입체주의, 신즉물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며 독일 미술계를 이끈 작가 베크만. 그는 히틀러가 통치하던 나치 시대에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히면서 작품을 몰수당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1950년 베크만은 전시를 위해 메트로폴리탄으로 향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 후 21년이 지난 1971년 공교롭게도 베크만으로 인해 메트로폴리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베크만의 작품 <담배가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Cigarette)> 1971년까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소장품 구입과 매각에 대한 공식적인 지침이나 규제가 마련되어있지 않았던 당시, 메트로폴리탄 관장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 20세기 미술부 수장 헨리 겔트잘러(Henry Geldzahler) 1967년 하트포드(Hartford) 선박회사 상속녀 아델레이드 밀턴 드 그로트(Adelaide Milton de Groot)가 사망 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작품 중 상당 부분을 매각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여기에는 <담배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해 베크만의 작품 3점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작품 <베카(Becca)>(1965)를 구입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인수 위원회를 주재하던 프랑스 출신 금융가 안드레 메이어(André Mayer)의 엄중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메이어는 소장품 판매에 대한 큐레이터의 가치 평가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며 작품 가치에 대한 상세한 견적과 외부 평가를 요청했다. 이에 겔트잘러는 베크만의 한 작품 당 약 2 5,000달러가 넘지 않는다는 수치와 자료를 메이어에게 제시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물 주전자와 젊은 여인(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

 ca. 1662 Oil on canvas 18×16in (45.7×40.6cm) 

Marquand Collection, Gift of Henry G. Marquand, 

1889 Accession Number: 89.15.2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이후 베크만의 세 작품은 입찰식 경매, 소위침묵의 경매(silent auction)’를 통해 비엔나 태생의 아트 딜러 세르주 사바스키(Serge Sabarsky)에게 9 5,000달러에 판매됐다. 겔트잘러가 메이어에게 수치로 제시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고 여기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호빙은(공식적으로는, 어쨌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드 그로트의 소장품 매각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공청회로 향하게 되었고 수많은 신문의 주요 사설에서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 결과 1973 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소장품 매각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4페이지 분량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사회는 책자에서미술관 직원 혹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이는 누구든지 미술관의 소장품 구입과 매각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영향으로 1981년 출범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소장품 매각과 관련된, 비영리기관 예술 공공자금지원 및 국립예술 인문기금위원회 공공기금 등의 예산을 극단적으로 삭감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정부의 지원금이 부족해지자 기관들은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방법 모색에 나섰고, 여기에 1980년대 후반 미술시장 호황이 더해지면서 각 기관은 소장품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규율과 규칙을 마련해야만 했다. 1984년부터 AAM 역시 박물관을 승인하고 평가하는 데 체계적으로 문서화된 소장품 관리 정책을 기관에 요구하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박물관 디렉터 협회(Association of Art Museum Directors)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소책자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소장품 관리 정책을 제정했다. 이로써 미국의 박물관들은 기본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이지만 의무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치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 “판매, 무역, 또는 연구 활동을 위한 소장품 처리는 전적으로 기관의 미션을 증진시키기 위함이어야 한다. 소장품 매각을 통한 자금은 박물관 규율의 확립된 기준에 따라 사용하되, 어떤 경우에도 소장품 취득이나 보존관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 소장품


경제적으로는 부흥했으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전통이 없었던 미국. 이들은 유럽과는 다른 형식으로, 민간 부문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재원을 확보해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이는 박물관마다 존재하는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관의 후원과 기부를 높이는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촘촘히 짜인 그물망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박물관이 운영과 교육에 집중해 대중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소장품도베크만 사건당시 이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체계적이고 문서화된 지침이 마련될 수 있었고 그 기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 자율을 존중하는 사회와 뿌리 깊은 기부문화,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 각 기관의 파수꾼과 같은 이사회 등의 요소들이 합쳐지며 미국을 대표적 현대미술 성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기업이나 시민의 후원, 기부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르지만, 미국 박물관이 서로 같은 기준을 공유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인 것에서 소장품이 어떤 의미와 역할로써 자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의 소장품은 지금 어떤 기준과 정책으로 관리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on canvas 35 3/16×60 1/4in (89.4×15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Gertrude Vanderbilt Whitney 31.426 

© 2019 Heirs of Josephine N. Hopper / 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Special feature Ⅲ_한국

왜 걸작들은 사립기관 소장일까

 이한빛 『헤럴드경제』 기자

 


국공립미술관재원 부족” 1순위 꼽지만

미술관 조직의 비전·방향 모호, 관료적 의사결정 구조도 문제


해외에서 귀빈이 온다. 의전을 해야 한다. 문화적 소양이 상당하다.” 가끔 이런 주문을 받을 때가 있다. 문화부 기자들의 숙명이다. 대개는 무척 급한 상황이다. 얼른 동선을 추천해야 한다. 이런 이들은 한국이 처음이거나 혹은 몇 번 와 봤지만 고궁과 인사동은 싫다는 경우다. 공연은 영문 서브 스크립트가 있는 걸 원한다. 언어가 필요 없는 클래식이나 발레, 국악공연은 늘 좋은 후보들이다. 그러나, 주문자의 한 마디가 더 떨어진다, 늦게 끝나는 거 말고!” 공연이 답지서 사라질 때, 부옇게 흩어지는 머릿속을 뒤지면 나오는 답은 늘 비슷하다. “미술작품 좋아하시면 리움 미술관 가세요. 공예를 좋아하시면 가구박물관이요.” 미술관과 박물관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관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 국가의 문화 저력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라서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여행을 가면 짬을 내 국가 대표 미술관과 박물관을 돈다. 이른바너네집 금송아지를 보기 위해서. 이 때문인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 1 ‘2020년 박물관·미술관인 신년교례회에서국내 박물관·미술관이 전 세계 한류 열풍의 전진기지가 되고, 외국인 관람객 유치를 확대하도록 외국인 대상 전시 안내 서비스, 홍보 마케팅을 강화하는 데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지난 3월 공개된 ‘2020년 업무계획 4대 전략·12대 과제엔 사립박물관·미술관 전문인력 지원도 포함됐다그런데, 어쩌다우리 문화 저력의 핵심을 보여줄 수 있는 곳하면 사립기관이 먼저 떠오를까. 물론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 무조건 대표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전 세계에서도 영국 테이트(Tate) 다음으로 크다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을 대표하는 서울시립미술관도 첫손에 꼽기엔 망설여진다. 굵직한 소장품을 내세운 상설전시가 없고 대부분 기획전이나 특별전으로 운영되기에 맥락을 모르는 이에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들미술관의 정체성=소장품이라고 말한다. 소장품을 통해 기관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고. 100%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루브르하면 모나리자를 위시한 르네상스 고전 작품을, MoMA하면 현대미술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미술관들은 어떤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고, 소장품 수집의 절차와 기준은 무엇일까.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공예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구매 예산 연간 50억 원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2020 4월 현재 8,562점이다. 소장품들은 구입하기도 하고, 수증 받기도 하며 혹은 관리 전환에 의해 국립현대미술관 품에 들어온다. 대상은 한국 근현대미술, 동시대 미술, 국제미술 등 미술사적 가치 및 연구 중심의 작품들이다. 어떤 작품들을 가졌는지는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체 8,562점 중 정리가 되지 않은 일부 작품을 제외한 8,540건을 장르별, 제작연도별, 수집연도별 등으로 찾아볼 수 있다. 작품명이나 작가 이름으로도 검색할 수 있다. 수집연도로도 정렬이 가능하기에 특정 해에 어떤 작품을 소장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2018년엔 222건을, 2019년엔 174건을 소장했다.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나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지 혹은 미술사적 의의, 작품 컨디션 등 깊이 있는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작품 제작 시기나 사이즈, 재료 등 기본정보는 확인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으로는 김환기의 〈새벽#3, 천경자의 〈꽃을 든 여인〉, 장욱진의 〈독〉, 강익중의 〈삼라만상〉, 이중섭의 〈세 사람〉, 유영국의 〈작품(), 윤형근의 〈다색〉 등 한국 작가 작품들을 비롯해 외국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춤추는 사람들〉, 빌 비올라(Bill Viola)의 〈불의 여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여행용 가방〉이 있다. 이중 김환기의 〈새벽#3〉은 2017년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둥까지〉 전에서 선보였으며, 당시 공개한 작품가는 10억 원이었다전체 소장품 중 기증작품은 2019 12월 기준 약 45%, 구매한 작품과 관리 전환한 작품은 각각 52.5%, 2.5%. 구입하는 작품들은 한국 근현대미술 50%, 동시대 미술 45%, 국제미술 약 5% 비율로 수집하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미술관이기에 소장품 구매 절차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먼저 내부 2, 외부 3인 이상의 인사가 참여하는가치평가위원회와 외부인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가격자문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한다


이어 관장, 학예실장, 학예 관련 부서장 등 5인 이상이 참여하는수집심의에서 앞서 두 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미술관 측은 위원회 구성원에 대해명단은 공개할 수 없지만, 분야별 미술전문가 인력풀이 있고, 이 안에서 선정한다고 밝혔다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입예산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6 61억 원이 배정된 뒤, 2017 61억 원 유지, 2018 55 7,000만 원, 2020 53 2,900만 원으로 점차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 대표작가인 김환기의 <우주> 132억 원에 낙찰됐음을 기억한다면 큰 금액은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소장품 수집의 어려움에 대해국회와 예산부처의 이해 부족으로 최근 3년간 구입예산이 계속해서 삭감 중이라며구입예산의 한계로 중요한 근대미술 등 대표작품의 수집 적기를 놓치고 있다. 또한 현대미술 특성상 대형 설치작품 등이 많은데 작품보관의 물리적·공간적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수장고 소장품 설치 전경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3. 우창(Wu Tsang) 

<We hold where study> 2017 Two-channel video 

(color, sound; 18:56 min.) The Modern Women’s Fund

 © 2019 Wu Tsang




서울시립미술관, 기관 정체성 확립할 수 있는 수집체계 마련 착수


서울의 또 다른 대표적 국공립 미술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 수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술관 측은문화시민 도시 서울의 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 수집을 통해 지역 및 지역 간 소장품 교류 추진을 위한 특화 컬렉션 구축을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든 소장품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다. 4 14일 현재 5,173점이 등록돼 있으며, 작품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렬한 국립현대미술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일부 컬렉션을 큐레이팅해 선보이는 서비스가 있다. 1998년 천경자 화백이 93점을 기증하며 만들어진천경자 컬렉션 2001년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기증한가나아트 컬렉션’, 서울시립미술관 대표작품 200선을 선정한 ‘SeMA 컬렉션 200’ 등이다. 


대표적 컬렉션으로는 백남준의 〈서울랩소디〉(2001), 〈자화상〉(1998), Beuys Vox(1961-1986)와 김환기의 〈Untitled(15-Ⅶ-6990)(1969), 유영국의 〈WORK(1967), 이우환의 〈항()-대화〉(2009)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한다는 점이다. 강서경, 김지평, 신미경, 양혜규, 이수경, 정은영, 차승언 등 여성 작가 작품이 약 24%에 달한다. 서울시립미술관도 매년 소장품 구입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2009년과 2010 45억 원 책정 이래 2011년부터는 평균 20억 원, 2018년부터 2020년은 16억 원이다소장품 구매 절차도 국립현대미술관 못지않게 복잡하다. 먼저 구입대상 작품은 공모를 통해 접수를 받고 미술관 내부 학예직의 조사 및 연구에 기초한 수집 제안, 미술관 자체 제안으로 구성한다. 이렇게 들어온 후보군을 놓고 수집선별 회의를 거쳐 일부를 뽑아내고, 소장작품 추천위원회를 열어 우수작품을 추천받는다. 이어 가격평가심의위원회가 가격을 평가하고 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모든 위원회는 미술관 내외부 인사들 5-10명으로 구성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올해 기관 의제로수집을 설정했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수집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까지 수집한 5,000여 점에 명확한 방향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미술관 측은기 소장품 분석을 통해 4년 단위중기 소장품 수집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며컬렉션의 경쟁력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수집 방향과 단계별 중점 수집 대상을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퍼포먼스와 같은 비물질적 예술 활동의 기록 및 수집에 관한 체계 수립, 수집 당시 작성하는저작물 이용허락서를 비물질적 형식, 다중 저작과 같은 동시대 미술 환경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선도 주요 과제다.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2014 세라믹 조각,

 에폭시 수지, 24K 금박 300×140×120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화려한 라인업 자랑 삼성미술관 리움·파라다이스


걸작 컬렉션을 선보이는 미술관으로 치면 단연 삼성미술관 리움(이하 리움)이 최고다. 비록 2017년부터 홍라희 관장이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 뒤 상설전만 이어지고 있지만,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그저 가격이 비싼 작품들일 뿐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동서고금 가장 중요한 작가들의 작업과 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리움은 지난 2010 ‘G20 정상회의때 배우자 만찬 장소로도 쓰이기도 했다. 리움 컬렉션의 규모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 5,000점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홈페이지에서도 컬렉션 일부를 볼 수 있다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솔 르윗(Sol LeWitt),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김환기, 이우환, 박수근, 이중섭 등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심지어 작가의 주요작과 대표작들을 수집해 미술관의 품격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고미술 컬렉션에도 수작들이 들어찼다. 2016년 기준 리움과 호암미술관엔 국보 37, 보물 115점이 소장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국보 95건과 보물이 236건보다는 적지만 사립기관 중에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삼성가의 컬렉션 막후 이야기를 풀어낸 책리 컬렉션’(2016)의 저자인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출간 당시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이건희 회장은 값을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다. 전문가 확인만 있으면 결론을 냈다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위상이 올라간다는 지론에 따른 결과였다고 전했다. 리움의 블록버스터급 컬렉션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는 단연재력이 꼽힌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보는 시각은 약간 다르다. 단순히 경제적 능력만으로 이러한 미술관을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홍라희 전 관장의 경우 해외 유수 미술 잡지에서 미술계 파워피플로 곧잘 선정됐다. 작품을 보는 그의 안목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유네스코 친선대사인 다나 피라스 요르단 공주(Her Royal Hîghness Princess Dana Firas)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2018년 방한 당시 그는 재력만으로 이 같은 컬렉션이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재를 아끼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한국인의 높은 안목과 노력에 감명받았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편, 리움의 수장이 갑작스럽게 떠나며 진공상태에 놓인 사이, 한국 미술계에서는 파라다이스 그룹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전필립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의 부인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이 서 있다. 파라다이스의 컬렉션도 전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주요 작품들은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와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골든 레전드〉,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의 〈무제〉,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GREAT GIGANTIC PUMPKIN,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CONTINENTAL SPLASH, 카우스(Kaws)의 〈Together, 제프 쿤스(Jeff Koons)의 〈게이징 볼 (FARNESE HERCULES)〉 등이 꼽힌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죽음의 공포(The Fear of Death)> 

2007 혼합재료 13.6×20.5×18cm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국공립미술관 컬렉션, 단순히 돈만의 문제일까


이처럼 주요 미술관 사례를 살펴보면, 컬렉션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전제조건이 재원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기관의 방향성과 정체성도 주요 팩터다. 윤해정 이화여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미술관은 단지 소장품을 보관하는 용기가 아니다. 지역, 국가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일원으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이에 맞는 미션과 비전을 수립해 그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그에 맞는 소장품을 수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미술로 감동과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를 비전으로, ‘미술 문화를 나누는 세계 속 열린 미술관을 미션으로 하고 있다. 윤해영 교수는좋은 단어들이나, 미션이나 비전이 모호해 조직의 주요한 의사결정에서 판단 근거로 작용하거나, 궁극적 지향점이 되지 못한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추상적으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국공립미술관이 놓여있는 맥락적 한계도 존재한다. 독립기관이 아니라 대부분 산하기관이기에 관장 선임 등을 놓고 늘 정치적 논란에 시달린다. 정권이 바뀌면 예정됐던 전시 방향도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더 그렇다


관료제 특유의 위험 회피적 성격도 있다. 공모-추천-선정위원회를 거치며 컬렉션 후보들을 추려 나가지만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하는 의문은 늘 제시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위원들의 개인적 취향을 누를 만큼 공평한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또 큰 작품을 하나 사면 다른 작품들을 살 수 없는데, 이 같은 리스크 테이킹을 하기가 국가기관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소장품 연구 강화도 주요 과제다. 이미 학예사들이 연구를 통해 주요 작품을 선별해 내고 있지만, 이들의 권한 및 책임 확대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임우근준 평론가는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은 걸작선을 지향하는 건 아니고, 국가미술관이 그래야 한다는 당위도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시대 대표성을 갖는 작품을 축적했기에 나름의 미술사적 얼개를 보여줄 수 있다. 앞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글쓴이 이한빛은 『헤럴드경제』 신문에서 시각예술 분야 담당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거의 매일 해당 분야 기사를 생산하고 있지만, 엄연히 미술계 머글(비전공자)이다일반인의 눈으로 미술계 소식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선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며 뒤늦게 MBA과정을 밟고 있다. 시장을 맹신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긍정적 시장주의자다.

 



리처드 롱(Richard Long) <Han River Circle> 

1993 리버 스톤 560cm(ø) 이미지 제공: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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