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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62, Mar 2020

기후, 환경 그리고 미술

CLIMATE ENVIRONMENT AND ART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렬하고 범인류적 메시지를 전달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작품상 시상자로 봉준호 감독에게 트로피를 전달한 여든 세 살의 배우이자 사회운동가 제인 폰다(Lady Jayne Seymour Fonda)다. 반짝이는 붉은 구슬이 박힌 드레스는 그가 2014년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 참석할 때 입었던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미국 워싱턴 D.C. 의회 앞에서 열리는 기후변화를 위한 정부 대처를 촉구하는 집회를 비롯해 환경 관련 집회에 열렬히 참여하는 그는 패션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임을 시사하며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상에 온 관심이 쏠려 있을 즈음 해외통신엔 진흙으로 얼룩진 어린 펭귄 사진이 떠돌았다. 20도에 달하는 이상기후로 남극의 빙하가 녹자 펭귄들 몸에 진흙이 묻었는데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보호막이 덜 형성된 펭귄에겐 물기가 마르면서 점점 딱딱하게 조이는 흙이 치명적이란 보도였다. 자신들에게 닥친 변화를 영문도 모른 채 고스란히 당하는 펭귄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몸에 진흙이 엉킨 펭귄과 다름없는 처지에 놓였다. 백신 없는 바이러스로 뒤덮인 나라는 서로를 경계하고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기후 위기 상황에서 미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피는 이 기획은 진작 준비됐는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심각한 기후변화를 예술적 관점에서 확인하자는 취지였다. 보다 극적으로 비상 상황이 된 지금, 미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지하고 어떤 변화를 취하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 기획 편집부 ● 진행 김미혜 수습기자

올라퍼 엘리아슨과 미니크 로싱(Olafur Eliasson and Minik Rosing) 'Ice Watch' Supported by Bloomberg Installation: Bankside, outside Tate Modern, 2018 © 2018 Olafur Elia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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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씨위드 대표, 홍이지 전시기획자, 양화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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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

예술이 평화롭게 지구를 걱정하는 방식: 쓰레기, 석유, 그리고 플라스틱_이나연 


SPECIAL FEATURE Ⅱ

압축된 시공간에서 살아남기_홍이지


SPECIAL FEATURE Ⅲ

이 돈이 최선입니까? 예술을 위한 건강한 돈: 보이콧 블랙 오일_양화선




 

 

마이클 핀스키(Michael Pinsky) <Pollution Pods> 

at Somerset House 2018 © Michael Pinsky 

 




Special feature Ⅰ

예술이 평화롭게 지구를 걱정하는 방식

쓰레기, 석유, 그리고 플라스틱

 이나연 씨위드 대표

 


2019 9 20일부터 27일까지는 국제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 주간이었다. “지구의 온도 상승이 1.5도를 넘어설 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시작되고, 우리에게 남은 온도는 0.5도뿐이라며 전 세계 400만 명이 기후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집회를 열었다. 2019 11 5일에는 세계 153개국 과학자 1 1,258명이 영국 옥스포드대 『바이오사이언스(Bioscience)』지에 지구가 기후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은 197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차 세계 기후회의에서 50개국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에 대한 시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1992년 리우 정상회의,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 협약 등이 진행됐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자들은명확한 지표를 근거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지구가 비상사태에 직면하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리고 그 바로 전날인 11 4,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 기후 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기후위기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알리기 위해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제시했다. 2009년 약 1,400ha에서 2019년엔 약 2,750ha의 산림이 사라졌다. 산림감소 속도는 해마다 빨라져 산림감소 면적은 10년 전과 비교해 49.6% 늘었다. 지난 10년간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가 증가하면서 지구 표면 온도도 올라가고 있다. 남극 빙하의 면적은 10년 사이 1 2,300t이 감소했고, 빙하의 두께는 4.84m가 줄어들었다. 이 변화가 플랑크톤과 산호에서 어류, 숲 등 해양과 담수, 육지에 이르는 전 방위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번 성명을 통해지난 40년간 세계 기후 협상에도 우리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기후위기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는 예상보다 심각해 인류의 운명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지구가 회복할 수 없는 기후의분기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더는 통제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이 바로재앙’”이라고 경고했다.  


위기를 알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파업은 사실 과학자들의 성명서보다는 한 소녀의 등교 거부에서 시작됐다. 스웨덴의 열다섯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18 8월부터 매주 금요일 학교를 가는 대신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일인 시위를 했다. 1년 사이 툰베리에게 영향을 받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결석 시위에 동참하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나 운동에 적극 나서게 하는 반향을 일으켰다. 툰베리는 2019 5월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선정됐고,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한 사람의 용감한 행동이 지구적 반향을 일으키고 많은 이들의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갖게 하고 적극적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시각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작가들의 방식은 어떤 게 있었나. 넓게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한 어떤 기획을 하고, 어떤 작품을 만들고, 어떤 운동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너무 늦은 건 아니길 바란다. 지금의 기후위기가 기후변화 정도였을 무렵인 1980년대부터 독일의 녹색당은 환경에 대한 문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다루곤 했다. 현대미술의 대부이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녹색당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일도 있다. 1980 1월 녹색당을 창립한 이들은 히피, 무정부주의자, 예술가,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긴박한 기후변화 행동이 전 세계 이슈가 되면서, 이제 독일에서 녹색당은 20%의 지지를 받는 제2정당이 됐다. 2020년의 영국에선 미술관들에게 석유회사의 후원을 받지 말라는 예술가들의 공동성명서가 제출됐다. 아티스트들이 행위예술 형식으로 미술관에서 시위를 이어나가는 방식이 줄곧 관심을 끌고 있다.





리투아니아관(Pavilion of LITHUANIA)

 <Sun & Sea(Marina)> 58th International Art Exhibition

 - La Biennale di Venezia,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Photo by: Andrea Avezzù © La Biennale di Venezia




이렇게 기후위기와 환경오염, 생태계 보전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술계에선 환경미술과 생태미술이 이슈로 떠올랐다.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보자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생태미술을 주제로 한 기획전들이 2010년을 전후로 다채롭게 개최된다. 2018년에 열린타이베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생태계로서 미술관을 다뤘고, 2019년에 열린부산 바다미술제에서는 아시아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생태미술을 고민했다. 2019 9 28일 개막한 부산의 2019바다미술제 <상심의 바다>에서 이승수는 제주에서 모은 쓰레기들을 시멘트로 사람 형상에 가둬 다대포해수욕장의 해변과 바다에 설치했다. 50점의 등신대 인물상은 제각기 다른 종류의 바다쓰레기를 품고 넓은 수평선과 해안선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작품 제목은 누군가에게서 혹은 부산에서 나와 제주바다로 흘러들어간 쓰레기가 예술로 외양을 바꿔 부산바다로 옮겨진 상황을 묻는다


다대포해수욕장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밀물과 썰물 때의 풍경이 전혀 다르다. 썰물 때의 일몰은 절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아름다운 바다도 낙동강 하구 둑이 생기면서 강물의 유입이 막히면서 수질이 나빠지고 있다. 예술과 자연에게 감탄하고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걱정과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바다미술제의 기획의도에 부합한다. 쓰레기와 예술은, 우리 환경과 지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승수 작가의 작품 사이를 거닐며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다대쓰레기소각장이 있다. 소각장의 외벽엔 바다미술제의 또 다른 참여 작가인 미디어 아티스트 이광기의 작품이 있다. LED 조명으로 쓰여져 해가 지면 더 선명해지는 문장은 이렇게 빛난다. “쓰레기는 되지 말자.” 쓸모없어 버려지는 쓰레기가 되지도 않으면서, 귀한 예술적 가치까지 가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최소한 쓰레기는 되지 않기란 또 쉬운 일이었던가.


마가렛 버트하임(Margaret Wertheim)과 크리스틴 버트하임(Christine Wertheim)의 활동은 조금 더 환경운동에 맞닿아 있다. 2003년에 이 쌍둥이 자매는 IFF(Institute For Figuring)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 <쌍곡선 코바늘뜨개질 산호초 프로젝트(Hyperbolic Crochet Coral Reef Project)>를 진행한다. 과학자인 마가렛과 조형예술대학 교수인 크리스틴이 고안한 이 프로젝트는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 지역에 따른 해양생물을 주제로 삼았다. 지구온난화로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산호들을 전통적인 여성들의 가내수공업이었던 뜨개질 방식으로 재현했다. 뜨개질을 전문으로 하는 이도 아니고, 전문 작가도 아닌 이들이더라도 취지에 동감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 <Botanic 2>

 2015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현재까지 만 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뜨개질로 산호초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었고,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했다. 나아가 <독성의 산호(toxic reef)>는 플라스틱 비닐과 뜨개질을 섞어서 만든 산호 오브제다. 이전보다 더 직접적으로 플라스틱과 쓰레기, 기후이슈를 동시에 논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오브제들은 작품으로 인정받아 2019베니스비엔날레(Venice Biennale)’ 본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자발적인 환경운동 단체들이 산호뜨기에 동참하도록 했다. 환경과 생태에 관심 있는 이주예술가들이 많은 제주에서, 정은혜라는 작가가 비영리단체제주생태프로젝트 오롯을 조직해 버트하임 자매와 같은 방식으로 산호뜨개를 시작했다. 작은 그룹 큰 그룹으로 일반인들이 모여 환경에 관한 고민을 나누며 산호뜨개를 했다


환경과 생태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환경파괴 상황이 지속될 경우 2100년이면 산호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산호는 어린 물고기들의 집이 되어주고 산소를 생산하는 해양 생태계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산호들이 군집을 이루는 산호초는 바다의 열대우림이라 불릴 만큼 많은 생물들이 서식하기 때문에 산호초가 사라지면 해양 생태계의 균형도 깨지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만들어진 산호를 모아 산호초를 만들어 미술관에서 전시하면서 제주바다를 넘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예술의 형태를 취한 환경운동 방식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자연과 환경에 대해 말하며 예술로 날씨를 구현해 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이야기도 잠시 할 필요가 있겠다.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환경을 위한 공공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던 엘리아슨은 엔지니어 프레데릭 오테센(Frederik Ottesen) 2012년에 사회적 기업리틀 선(Little Sun)’을 설립했다. 리틀 선은 전기가 가닿지 않는 에너지 빈국 사람들에게 빛을 선물하는 일을 하는 기업이지만, 엘리아슨이 이를 통해 좀 더 사회적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선언문처럼 보인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는 기후, 환경, 난민 문제 등에 관한 예술 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엘리아슨의 업적을 기려세상을 변화시키는 작가로 선정, ‘크리스털 상(Crystal Award)’을 수여했다. 엘리아슨의 대표작은 테이트모던(Tate Modern)의 터빈 홀에 거대 태양을 띄운 작품이다. 단순히 어떤 날씨나 기후를 미술관 안이나 밖에 환상적으로 재현해내는 건 엘리아슨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들이 그의 이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Cold wind sphere> 2012 

Stainless steel, colored glass(dark blue, blue and light grey), 

mirror, color-effect filter glass(blue), bulb Ø 170cm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London, 2019 Photo: Anders Sune 

Berg Centre Pompidou, Paris  2012 Olafur Eliasson




1998년부터 2001년 사이 베를린, 도쿄, 스톡홀름 등에서 진행한 <초록빛 강(Green River)>은 환경에 무해한 형광 염료인 우라닌을 활용해 도심의 강을 형광 녹색 빛으로 물들인 작품이다. 매일 보던 일상 속 강의 빛깔이 바뀌자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매일 마주하던 자연의 존재를 상기하고, 자연에 대한 의식을 환기했을 뿐 아니라,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2015년에는 지질학자 미니크 로싱(Minik Rosing)과 함께 그린란드의 빙하 덩어리를 코펜하겐과 파리로 옮겨 전시한 <아이스 워치(Ice Watch)>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기후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작품이었다. 2019 UN기후 행동 정상회담 친선대사로 임명된 엘리아슨의 활동반경은 기업이든 공공미술 프로젝트든 미술관의 전시로든, 그 방식은 달라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사점을시각적으로제공한다는 기치 아래 계속 확장된다.


지난 201958회 베니스 비엔날레황금사자상은 기후위기를 노래하는 퍼포먼스 작품 <해와 바다(마리나)>에 돌아갔다. 리투아니아관에 열린 이 퍼포먼스는 전시장에 꾸려진 인공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20명 가량의 퍼포머들이 오페라 형식으로 지구의 환경 문제를 노래한다. 환경 문제를 노래하면서도 줄곧 일광욕을 즐기며 쓰레기를 생산해내고, 음식을 소비하고, 해변을 어지럽히는 존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인간이 초래하고 있는 환경파괴를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이 작품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 이견은 없었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올 여름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5일간 이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근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익숙한 이미지를 마주했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대표작인 수영장 풍경인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인 것 같은데 수영장 표면에 석유가 떠 있는 이미지였다


프랑스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제우스(ZEVS) <빅오일 스플래시(The Big Oil Splash)>라는 오마주 작품이었다. 원작인 <비거 스플래시>가 그려진 게 벌써 1967년의 일이고, 그 해에는 8만 톤의 기름이 바다에 쏟아져 지금까지도영국 최악의 환경오염 사건으로 손꼽히는 토레이 캐논(Torrey Canyon)호 사고가 발생한 해다. 그로부터 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세상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언제나 기후위기보단 경제위기가 더 시급한 일처럼 여겨지는 이때, 과학자도 작가도 아닌 우리 개개인이 인식을 바꾸고, 우선순위를 전환하고, 더 좋은 지구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50년 뒤에 우리가 볼 풍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이나연은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미술비평을 전공했다. 예술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씨위드(SEAWEED)의 대표이며, 제주와 서울에 켈파트프레스(Quelpart Press)라는 거점을 두고 현대미술 관련한 출판과 전시기획을 한다『뉴욕 지금 미술』, 『뉴욕 생활 예술 유람기』, 『미술여행』, 『아틀리에워밍』 등 다수의 저서를 발행했다.

 




제우스(ZEVS) <Oil Painting, Total> 

Blue/Blue 2014 Mixed media on canvas 

120×120cm Private Collection





Special feature Ⅱ

압축된 시공간에서 살아남기

 홍이지 전시기획자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이후 등장한제트셋 큐레이터는 비엔날레를 거점으로 비행기로 이동하며 자신의 물리적인 업무 가능 거리를 확장하였다. 국내 미술계도 1990년대 초반 쌈지스페이스와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레지던시가 신설되면서 많은 신진작가와 기획자는 유학과 레지던시 참여를 통해 네트워킹 확장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세계 주요 아트페어나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등 국제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의 일정을 물어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국내 역시 짝수 해마다 비엔날레를 계기로 해외 작가들과 미술계 관계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러한 이동과 인적 교류에 기반한 네트워크 확장은 국내 미술시장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고, 2000년대 이후, 해외 전시에서 한국 작가들이 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동과 시간은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간과하였다


비행기는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 이제 우리는 주변 환경과 상생하며 이러한 교류와 대화를 이어나갈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나는 늘 예술 작품은 실제로 보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영상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로 업무를 해나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한 점을 보기 위해 9,000km를 날아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문제는 또 있다. 큐레이터는 작품 이면에 있는 다양한 함의와 배경을 함께 이해하며 역사, 문화, 정치 사회적 요소까지도 살피고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접 그곳에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이해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작가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동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통해 소통하고 교류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자넷 로렌스(Janet Laurence) <In the Shadow> 

2000 Fog, casuarina forest, bulrushes, resin, wands 

with stainless steel bases, text 2×9m Installed along 

a creek crossed by three bridges, Olympic Park, Homebush

 Bay, Sydney Australia  the artist and ARC ONE Gallery 





2014년 『뉴요커(The New Yorker)』 매거진의 디.티 맥스(D.T Max)는 대표적인 제트셋 큐레이터인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의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의 여행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오브리스트는 20년 동안 약 2,000번의 여행을 하였으며 52주간 50번의 여행을 한 적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최근 해당 기사를 재인용한 『프리즈(Frieze)』 매거진의 기후 변화 방지 촉구에 화답하듯 오브리스트는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자신의 비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서펜타인의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로 서펜타인의 멀티 플랫폼 프로젝트보통의 생태학(general ecology)’은 환경 전문 큐레이터이자 지난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 국가관을 감독한 루시아 피트로이스티(Lucia Pietroiusti)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피트로이스티와 함께 올해 50주년을 맞는 서펜타인 갤러리가 과거를 조망하고 기념하기보다 시각 예술 작가뿐만 아니라 이론가, 디자이너, 건축가를 초대하여 미래에 집중하는다시 지구로(Back to Earth)’ 프로젝트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프로그램슬로우 프로그래밍은 장기간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이는 전시가 가지는 제한적인 시간 프레임과 갤러리에는 없는 영구 소장품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서펜타인 갤러리가 위치한 공원, 온라인, 웹 뿐만 아니라 런던 외의 지역에서다시 지구로프로젝트와 연계하여 진행된다. 오브리스트는 해당 기사 말미에 자신은 이러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향후 비행 이동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이메일 소통과 에너지 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겠다고도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중국 출신의 큐레이터 후 한루(Hou Hanru)와 공동 기획한 전시 <움직이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1997-2000)을 통해 아시아를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각 도시 자체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아시아 작가들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를 통해 서구 편중화되어있던 미술계의 관심을 아시아로 환기시켜 균형 있는 시각을 촉구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알마 헤이킬라(Alma Heikkilӓ) <in the air-into the lungs> 

2019 Polyester, acrylic polymer emulsion inks, pigment, 

plaster 265×769c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

 Petri Virtanen  Finnish National Gallery / 

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 

 



나 역시도 2018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기획한 <유령팔> 전시와 최근 준비 중인제주비엔날레를 통해 전시를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얼마나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참여 작가들은 모두 작업실이 없었기 때문에 규모가 큰 조각 작품이나 설치 작업을 사전에 제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참여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지속하면서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의 문제와 작품을 폐기하는 문제,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결과적으로는 행위만 있었던 어떠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허무함과 고민이 깊었다. 변화된 창작 환경은 작품의 성격과 창작 방식, 창작물의 수명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마지막을 염두하고 진행되어야 했다. 제주도는 우선 이동 거리가 서울과는 다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배로 작품이 운송되고 자재들 역시 서울에서 제작하여 이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주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쓰레기 처리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제주비엔날레는 현지 제작과 무거운 조각 작품의 운송을 최소화하고 퍼포먼스와 영상을 주요한 매체로 삼고 국내 작가들의 신작 제작 비율을 높였다. 또한 제주 지역 주민 외 타지역 관람객들에게 전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온라인과 웹을 활용하는 다양한 형식과 방법에 대해 다각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자넷 로렌스 <Medicinal Maze Inveiling Glass> 

2017 Site specific installation glass panels, 

laminated duratrans images, medicinal plants

 5×7×2.7m  the artist and ARC ONE Gallery




이러한 전략과 어쩔 수 없는 선택은 동시대 창작자들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생존 전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브리스트가 언급한슬로우 프로그래밍은 이러한 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환경을 생각하고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전시를 만드는 행위,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도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요구된다. 또한, 국공립 기관과 비엔날레에서도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짝수 해 9월에 열리는 비엔날레 시즌을 맞아 각 비엔날레가 공동 투자하고 협업하여 장기간을 담보해주는 작품을 공동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의 예산과 준비 기간은 늘 부족하다. 이러한 반복적인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2020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압축된 시공간을 다시 해제하여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을 살펴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홍콩 큐레이터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2019년부터 이어진 시위와 바이러스 문제 등으로 회의주의가 팽배해진 홍콩 사회에 불가피하게 격리되고 소외된 창작자들은 물론 주변인들과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온라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제 환경 문제는 단순히 기후변화, 일회용품 사용 같이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다. 흔히 환경이라함은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을 대상화하고 특정하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우리 역시도 그 환경의 일부이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임을 간과할 때가 있다. 통신의 발달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계화를 가속화 시켰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주요 관심사인보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변 환경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고유의 경험에 대한 공동 제작자이자 책임자이다.




올라퍼 엘리아슨 <Big Bang Fountain> 2014 

Water, strobe light, pump, nozzle, stainless, wood,

foam, plastic, control unit, dye 165×160×160cm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London, 2019 Photo: Anders Sune Berg 

 the artist; neugerriemschneider, Berlin; Tanya Bonakdar 

Gallery, New York/Los Angeles  2014 Olafur Eliasson 




이 글에서 언급하고자 했던 중요한 메시지는 무조건적으로 이동을 제한하고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문화예술 구성원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기관, 연대, 단체의 구성원들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주변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창의적인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트페어, 비엔날레와 같은 주요 국제 행사는 이러한 목소리를 더 크게 증폭시킬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전시를발명이라고 생각했던 제트셋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유산을 떠올린다. 큐레이터는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조율하고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하지만 나는 큐레이터이자 창작자로서 전시를 디자인하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새로운 발명과 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야 할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홍이지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전시 기획자다.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큐레이팅을 공부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였으며 디지털 매체 연구와 동시대 미술의 조건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비영리 연구 단체인 미팅룸에서 큐레이팅팀 디렉터로 활동하며 전시 기획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연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스위밍꿀)을 공동 집필하였으며, 2020 ‘제주비엔날레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마이크 넬슨(Mike Nelson) <Eighty circles through Canada 

(the last possessions of an Orcadian mountain man)> 

2013 35mm slide projection (eighty slides), 50mm lens, 

ply-driftwood, plywood sheets, metal chains, 

and the remaining personal effects of Erlend Williamson 

(deceased), shelf and screen 9ft×13ft 6×15 in (274.3×411.5×38.1cm)

 Installation view Tramway, Glasgow, 2014 Photo: Keith Hunter 

© Mike Nelson © Tramway, Glasgow; 303 Gallery, New York,

 Galleria Franco Noero, Turin; Matt’s Gallery, London and 

neugerriemschneider, Berlin





Special feature Ⅲ

이 돈이 최선입니까? 예술을 위한 건강한 돈

보이콧 블랙 오일

● 양화선 작가

 


석유사의 후원으론 어떤 도덕적 큐레이션도 없다(There is no ethical curation under oil sponsorship).” 지난해 영국에서는 ‘BP or not BP?’ 슬로건을 내세운 동명의 예술운동 단체가 석유회사 BP(British Petroleum)의 후원을 반대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전시를 벌여 이슈 몰이를 했다.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이 자국 석유회사 토탈(Total)의 후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가 온통 검은 손바닥으로 도배된 일도 있다. 파리의루브르 해방(Libérons le Louvre)’ 단체는 루브르 박물관에 토탈이 후원하는 것에 저항해왔고, ‘석유 말고 예술(Art Not Oil)’ 2003년부터 BP가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 후원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Scotland)은 매년 주최하던 ‘BP 초상화 상(BP Portrait Award)’을 더 이상 개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후 위기 상황을 맞아 BP의 후원을 받지 않겠다고 이유를 밝힌 것이다.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사라 루카스(Sarah Lucas),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등 영국 작가들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BP의 후원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성명서를 제출했다. 이 성명서를 이끈 건 올해 ‘BP 초상화 상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작가, 게리 흄(Gary Hume)이었다. 흄은기금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기후 위기라는 진정한 문제에 납득당했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후 위기 활동에 앞장선 적이 없던 예술가들, 혹은 기후 위기와는 작업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작가들이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미술계에선 최근 문화기관이 무기회사, 아편 회사의 후원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 2019 9월에는 40여 명의 작가가 런던 디자인 미술관(The Design Museum London)에서 그들의 작업을 철수했다. 무기 제조사인 레오나르도(Leonardo)와 미술관과의 관계에 반발하며, 작가들은 철수한 작품들로 그들만의 대안적인 전시를 개최했다. ‘처방되는 아편이라 불리는 중독성 있는 약으로 돈을 벌어들인 새클러 가(Sackler family)는 문화후원으로 유명하지만, 그 약으로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돈을 번 데 있어 주로 미국에서 도덕적인 지탄을 받고 있다.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이 새클러 가의 후원을 거절하면서 국립 초상화 미술관도 1.3밀리언 달러(한화 약 15억 원)에 달하는 새클러 가의 후원금을 거절했다. 많은 박물관이 석유사의 후원금을 받는 일의 적절성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결론은 각 기관에 결정에 달린 일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관심과 논의를 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이제 환경운동을 하거나 환경을 염려하는, 혹은 최소한의 지각이 있는 예술가들의 주된 보이콧 타깃은 석유회사들로 보인다. 이들은 블랙 오일의 돈을 받아서 만든 어떤 기획도 도덕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술가의 영향력이 박물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블랙 오일의 후원이 멈출 때까지 예술가들의 후원금 반대 운동은 지속될 것이다.





‘Libérons le Louvre’ staged performance

 at Louvre Museum, Paris, France 

Photo: Matthieu Ponchel




BP BP가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논란의 가장 중심에 있는 기관은 대영박물관이라 불리는 브리티쉬 뮤지엄(The British Museum)이다. ‘BP or not BP?’는 영국에서 가장 큰 기관이자 상징성이 있는 대영박물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유는 당연히 이 기관이 BP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 11 20, 대영박물관의 새 전시 <트로이: 신화와 현실(Troy: myth and reality)> 오프닝 리셉션 날, 20명의 활동가가 박물관에 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오후 5 30분경 미술관이 대중 입장을 마치는 시점에 밖으로 나가는 대신 조각상으로 분장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트로이에 나오는 헬렌(Helen), 아킬레스(Achilles), 제우스(Zeus), 아테나(Athena)로 분한 이들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신을 창조해냈다. 바로 페트롤러스(Petroleus). BP 로고로 만든 방패를 들고 석유로 옷을 만들어 입은 신이다. 15명의 그리스 합창단도 있었다. 이 합창단은우리는 BP의 멸망을 예견한다는 내용의 성가를 불렀다.


이 일종의 행위예술이 ‘BP or not BP?’가 대영박물관에서만 치른 37번째 이벤트였다. 이 단체는 블랙 오일 관련 57번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그중 37번을 대영박물관에서 진행했다. 대영박물관이 꽤 몸살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대영박물관이 부적절한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인식을 조성하기에는 충분한 횟수의 행사들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영박물관과 로얄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국립 초상화 미술관만이 영국에서 여전히 석유산업과의 후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은 영국문화원에 5년간 BP가 후원하게 되는 비용 중에 7.5밀리언 파운드(한화 약 114억 원)에서 9밀리언 파운드(한화 약 137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나눠 받는 4곳의 기관 중 하나였다


나머지 3곳은 로얄 오페라 하우스, 국립 초상화 미술관,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이고 이 후원은 2022년까지 계속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이탈한 상태다. 지난 십여 년간 문화기관들은 석유회사의 지원을 끊으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사우스뱅크(Southbank) 2014년 셸(Shell)사와의 관계를 끝냈고, 테이트는 2016년에 26년간 지속해 온 BP와의 파트너십을 종료했다. 연극 단체인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환경운동가들의 보이콧 압박으로 예정보다 2년 빠르게 BP의 후원을 끊었다.


돈을 내어주고도 욕을 듣는 BP의 입장은 어떨까? 대외적으로 그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신재생 에너지를 위해서는 오직 3%의 투자만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더 큰 투자는 석유와 가스채굴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이다. ‘BP or not BP?’ BP가 석유와 가스 사업의 확장을 계속하기 위해 예술기관들을 이용해 이미지세탁을 한다고 말한다. 기후과학자들은 기후의 급변을 최소한이라도 막기 위해선 지구에 더 이상 새로운 유전이나 가스시설을 짓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BP는 향후 10여 년간 수백억 파운드를 새로운 유전을 짓는 데 쓸 계획으로 보인다. BP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사업 행보를 변경하지 않는 한, 환경운동가들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Libérons le Louvre’ staged performance in

 Louvre Museum, Paris, France Photo: Denis Meyer 


 


엇갈리는 이해관계


대영박물관의 대변인은미술관 컬렉션이나 관람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이상 (운동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BP의 장기적인 후원은 박물관이 예산을 고려해 사전 기획을 하고 규모 있는 대중적 전시와 그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세상의 문화를 보여주게 한다. 4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BP가 후원한 박물관의 활동들을 즐겼다 BP의 후원을 끊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표했다.


현대미술가인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테이트의 이사로 있으면서, BP와 후원 계약을 새로 할 때 윤리위원회에 있었다. 델러는 예술단체들이 BP의 후원을 거절해야만 하는 것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활동가들이 후원을 받는 예술기관이 아니라 석유회사 자체를 직접적인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나 BP가 아주 똑똑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마치 이 열린 마음의 예술기관에 논란과 활동을 하청한 업체 같다. 그래서 그들이 그걸 처리할 이유가 없어진다. 정직하게, 이 잘못된 면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대중적인 의견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대영박물관의 이사인 아다프 수에이프(Ahdaf Souief)가 박물관과 BP와의 관계를 말하며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수에이프는 젊은이들이 지구에 대한 적법하고 위급한 관심에 대한 박물관 측의 부주의한 대응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영박물관 직원들이 수에이프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의견을 천명했다. 문화예술의 후원을 자처하다가 졸지에 예술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BP가 이런 활동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BP의 대변인이 미국의 한 미술전문잡지를 통해 밝힌 입장에 따르면이 같은(문화예술) 후원에 대한 사람들의 염려를 이해하고, 이런 질문(이미지세탁)들이 일어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예술기관들이 외부지원 없이 더 많은 프로그래밍이나 다른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BP는 단순히 문화기관들이 좋은 행사나 전시를 기획하길 바라는 순수한 의지를 갖고 후원을 하고 있을까?


‘BP or not BP?’의 관점에서 BP와 대영박물관의 관계는 무해함과는 거리가 있다. BP가 지정학적인 위치를 점하기 위해 박물관을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대 시베리아 전시에 BP가 후원하는 것은 러시아 북극에서 석유를 추출하고자 하는 야심과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러시아와 영국 관료들, 에너지 산업 대표들, 그리고 미술관 스텝들이 만나 성사됐다. BP는 전시기획 전반의 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건 미술관 후원이 단순 호의가 아니라 사업적 목적이 있다는 뜻이 된다. ‘BP or not BP?’는 미술관이 기획을 계속하기 위해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부터의 후원은 불가피하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지방의 작은 미술관들은 석유사의 후원 없이도 잘 돌아간다. 운동가들은 대영박물관이 좀 더 도덕적인 후원을 받길 원한다. 이 단체의 리더인 길베르토 토레스(Gilberto Torres)는 그의 납치사건에 대한 간접적인 연관성을 들어 BP를 고소했다. BP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혹은 그들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BP or not BP?’ staged performance

 at British Museum, London, England 

Photo: Hugh Warwick




어디로 가야 하는가?


‘BP or not BP?’ 33번째 퍼포먼스도 대영박물관에서 선보여졌다. 이때도 BP가 대영박물관에서 열린 아시리아 전시의 주요 후원사였다. 그러나 이 액수는 대영박물관의 연수익의 0.5%보다 적다. 이는 다른 새로운 후원자, 도덕적인 기부자를 찾으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금액이다. 박물관 전시는 일반적으로 예술 자금 지원을 하는 기업 후원을 중심으로 이뤄진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I object: Ian Hislop’s search for dissent> 전시는 후원자인 시티그룹을 브랜딩 해 전시명에 시티를 붙였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훔친 유물들에 BP로고를 함께 두고 보는 일을 보기 어렵다는 게 이들이 집단행동을 하게 된 이유다.


2011년에 영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 BP가 공식적으로 요청한 내용이 있다. 이라크는 석유가 풍성한 곳이라 BP는 간절히 그곳에 가길 원하고, 정치적인 문제로 그 기회가 없어지길 원치 않는다고 적혀있다. 이라크 국가 예산의 89%가 석유 섹터에서 나오고 수출의 99%가 다시 석유다. 바스라(Basrah)의 수질오염은 이미 위기 단계에 달했다. ‘BP or not BP?’의 대표는 대영박물관이나 BP 모두 이 전시와 후원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며 “BP는 이라크의 전쟁과 환경파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건 이라크인들이 고통을 겪고 항거해 싸워야 할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이다. 박물관은 반드시 후원을 끊고, 이 전시의 작품들을 어떻게 공급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우리는 이라크 문화가 이러한 대파괴에 기여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BP or not BP?’ staged performance

 in British Museum, London, England 

Photo: Kristian Buus 




퍼포머들은 BP의 직원처럼 옷을 입고 석유색 샴페인을 들어 블랙 오일의 후원으로 열린 전시를 조롱했다. 공식적으로 보이는 배너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적혀있다. “BP: 당신을 역사로 만듭니다(Making You History),” “과거에 후원하기, 미래를 파괴하기(Sponsoring the past, destroying the future).” ‘BP or not BP?’가 박물관에 매단 가짜 배너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우리는 우리의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아니면 최소한 우리의 석유추출 사업 계획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진짜로 재앙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지속될 것이다. 전시를 즐기시길.” 맞는 말이다. 기후변화가 진짜로 재앙의 수준에 이른 뒤에는 전시도 유물도 의미가 없어진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글쓴이 양화선은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에서 석사 학위와 이스트 런던 대학(University of East London)에서 공간의 패러독스에 관한 논문과 회화 작품으로 박사 과정을 마친 후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Fossil Free Culture NL’ staged performance

 in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Photo: Laura Pon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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