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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5, Dec 2022

제주비엔날레&창원조각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

적어도 편집부에게 대한민국 곳곳에 펼쳐지는 비엔날레는 애증의 대상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를 미뤄놓고 며칠을 투자해 직접 보자니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대형 전시이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를 통해 또렷한 기획과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지역의 풍광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더러 굉장히 실망스러운 행사도 존재하는 까닭에 각 도시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시즌이 돌아오면 살짝 겁까지 나는 게 사실이다. 한데 올 가을 열린 비엔날레들은 진심으로 볼만하다. 지역이 주최하는 대형 행사를 초월해, 기획이 추구하는 방향은 물론 찬란한 비전도 선보인다. 이제 막 개막한 비엔날레부터 성료한 비엔날레까지, 편집부가 직접 돌아본 그것들을 여기 소개한다.

● 기획 · 진행 편집부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 박지혜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 1' 2022 싱글채널 4K 비디오, 컬러, 사운드 12분 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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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주 편집장, 백기영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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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JEJU Biennale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11.16-2023.2.12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외 4곳
jejubiennale.org
● 정일주 편집장


기사를 작성하는 지금 이 시간, ‘제주비엔날레’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핫한 행사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비엔날레 취재 중 업로드한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고 수많은 사람이 내게 “행사가 볼만 한가?”, “관람 시간을 얼마나 잡아야 하나?” 물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듣기만 해도 가슴이 몰랑몰랑해지는 이름 ‘제주도’에서 행사가 치러지는 데다 굵직한 비엔날레가 대부분 끝나 새로운 볼거리를 찾는 시기와 맞물렸고, 또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치러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11월 16일부터 오는 2023년 2월 12일까지 개최되며 16개국 55명(팀)이 참여한다. 제주도립미술관을 필두로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등 총 6개 전시장에 165점의 작품이 선뵌다. 장장 5년 만에 선보이는 ‘제주비엔날레’를 기획한 박남희 예술감독은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이란 주제를 세웠다. 땅과 달, 인류의 삶에 가장 기본인 그것들을 더듬으며 인류세, 자본세를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는 이 비엔날레가 새로운 지질학적 개념이 제기되는 기후위기 시대에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의 하나가 될 것이란 포부를 드러낸다. 이에 박 감독은 기후 및 다양한 생태 환경이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만든 제주를 자연 공동체 지구를 사유할 장소로 상정하고,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란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된 세계의 공존 윤리와 관용을 함축한다는 이론을 기획의 바탕에 깔았다.



김기대 <바실리카> 2022 
농업용 건축 자재 700×2,000×850cm



기획을 극대화시키고자 제주도의 자연 지형과 생태가 인간의 시간과 사건으로 연결된 6곳의 장소가 무대로 선택됐다. 2곳의 주제관과 4곳의 위성전시관은 총 10곳에 달했던 후보지에서 고르고 골라진 곳이다. 우선 제주도립미술관은 자연을 주제로 밀도 있는 작업을 펼쳐온 국내외 33명 작가 작품으로 구성된다.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예술가 김수자의 <호흡>(2016)을 비롯해 30년 넘게 인종, 정체성, 탈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심해온 가나 작가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의 <트로피코스(Tropikos)>(2016)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강요배는 거의 높이 7m에 달하는 회화 <폭포 속으로>를 통해 작가 내면에서 재구성된 자연의 심연과 응축된 힘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문경원&전준호의 싱글채널 비디오 <이례적 산책>(2018-2019)을 국내 그것도 섬에서 대면하는 것은 꽤 신비로운 경험이다. 2012년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에서 발표되었던 <세상의 저편>의 연장선이기도 한 이 작품은 버려진 물건을 줍는 주인공을 통해 시대의 불안과 욕망이 드러나는 풍경을 보여준다.

제주현대미술관으로 가는 길목엔 김기대의 <바실리카>가 놓여 있다. 초기 교회 바실리카 건축의 형태와 유사하게 만든 온실 구조물은 앙상하고 헐거워 보는 이를 집중시킨다. 미술관 안에선 미디어 아티스트 콰욜라(Quayola)의 기계의 눈으로 본 자연을 주제로 한 <산책로(Promenade)>(2018)와 박형근의 <Fluidic topography>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지표면을 연구하는 지형학에서 작품 이름을 빌려온 박형근은 오랜 시간 변화가 축적된 제주의 지표면과 인간의 몸이 서로 접촉하는 ‘걷는다’는 행위에 집중한다. 제주의 동굴, 숲, 돌, 용암 단층 등은 지금도 내외부의 접촉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장소를 직접 걷고 눈으로 매만지며 촬영하여 가시적 세계의 이면을 깨닫고자 한다.



문경원&전준호 <이례적 산책> 2018-2019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40초 선박고철,
 LED 패널 323×680×140cm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는 제주 바다와 관련된 작품들로 해녀복을 수집하여 공동체의 이해를 확장하는 이승수의 <불턱>과 ‘탐라순력도’를 재해석한 이이남의 미디어 작업이 놓였고 미술관옆집 제주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설치 미술과 공연을 선보이는 태국 예술가 리크릿 티라바닛(Rirkrit Tiravanija)의 삶의 순환과 공유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 <무제 2022>로 채워졌다. 나머지 두 곳, 삼성혈과 가파도 일대는 장소 그 자체로 카리스마 넘친다. 자칫 공간이 작품을 집어삼킬 수 있겠단 노파심이 들 즈음 자연으로부터 신화로 연결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팅통창(Ting tong Chang)이나 박지혜의 작품이 존재를 과시한다. 박지혜의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은 제주만의 독특한 신화적 모티브에서 출발한 영상 작업이다. 그는 삼성혈에 깊이 박힌 탐라국 전설을 현실과 교차시키며 전혀 색다른 시공간을 발생시킨다. 한편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가파도엔 작품이 뚝뚝 떨어져 놓였다. 이 작품들을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섬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아주 행복한 고통이다. 심승욱, 윤향로, 홍이현숙 등의 되직한 작품은 바다를 둘러싼 섬을 지그시 누르는 듯하다.

인간, 물질, 신화, 역사 등을 공동체로, 그 사이 만남과 떨림, 소통과 공존의 경험을 권하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무엇보다 발을 땅에 딛고 걷는 일과 숨을 크게 들이켜 호흡하는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콰욜라(Quayola) <산책로(Promenade)>
2018 4K 비디오 20분 36초




Changwon Sculpture Biennale 2022
2022 창원조각비엔날레 <채널: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
10.7-11.20 성산아트홀 및 창원특례시 일원
changwonbiennale.or.kr
● 백기영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조각(彫刻)이 새삼스럽게 다시 회자되고 있는 요즘이다. 포스트 인터넷의 유행을 타고 확산된 최근 조각의 경향은 데이터의 형태로 존재해서 스케일의 변형과 질료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3D프린팅 기술,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다양한 가상공간의 존재를 불러내는 마술적인 메타버스와 함께 디지털미디어 예술작품의 NFT 판매도 가능해져 지금까지 우리가 ‘조각’이라고 불러왔던 것들의 경계를 하염없이 확장시킨다. 2010년 ‘문신조각심포지움’에서 출발해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이하고 있는 ‘창원조각비엔날레(Changwon Sculpture Biennalem, 이하 CSB)’는 한국을 대표하는 창원 출신조각가 문신, 김종영,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의 예술적 성취에 빚지고 있다.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문신 회고전은 ‘우주를 향하여’라는 부제와 함께 문을 열었다. 문신이 1970년 프랑스 발카레스 항구(Port Barcarès)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가해 제작한 13m짜리 토템 조각은 지금 보아도 깜짝 놀랄만한 대작이다. 이 작업은 조각가의 신체가 수행할 수 있는 작품의 물리적인 한계(높이와 무게)를 시험하는 듯했다. 문신은 이처럼 하늘을 향해 무한히 솟아오르는 조각과 우주적인 형상 생물학적인 세계의 기하학을 연구하며 작업하는 데 평생을 매진했다. 창작의 열기로 가득 찼던 당시 조각심포지엄 현장은 기하학적이고 대칭적인 조각에 천착했던 작가가 꿈꾸었던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색을 살아있게 하고, ‘미지의 세계’로서 ‘우주’처럼 열려있게 했으며, 평생의 도전이자 작가가 돌아간 ‘고향’처럼 꾸준하게 유혹했다. ‘CSB’가 문신의 문서고에서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마르코 바로티(Marco Barotti)
 <조개(CLAMS)> 2022 혼합재료 500×500cm



모더니즘 조각가 문신의 시대를 돌아서서 최근 동시대 조각의 논의는 단순히 전통적인 3차원 입체를 구축하는 조형 행위로서 조각에 머물지 않고 바람, 공기, 소리와 같은 비(非)조각에서부터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나 파동에 이르기까지 한없이 확장된다. 그동안 ‘CSB’를 기획했던 예술감독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전시에 녹여내기 위해서 애써왔다. 2018년 윤범모 감독은 당시 조각가 김종영의 ‘파격(破格)’을 부제로 표현 방법과 재료의 확장을 시도했던 ‘불각(不刻)의 균형’을, 2020년 김성호 감독은 조각과 비조각의 경계를 탐색하는 ‘비 조각-가볍거나 유연하거나’를 실현했다.

올해 예술감독을 맡은 조관용은 이와 같은 문제들에 선제적으로 대처할만한 주제 ‘채널: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을 제시했다. 동양의 고대 사유를 양자물리학 이론에 차용해 인간과 자연, 기계, 비인간 등 다양한 생명체의 순환적인 생태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조 감독의 개념을 예술적으로 실현시켜줄 작가로 본전시 1 <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에 출품한 이용백과 김윤철은 그 명성만큼이나 비엔날레 전체를 강력하게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이용백의 <NFT 미술관(생각하는 사람)>은 블루스크린이 생각하는 사람을 덮었다가 이내 사라지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물질적 개념에 중심을 둔 조각의 실체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텅 빈 공허함을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은 투명 망토처럼 허공을 감싸고 공허함을 판매한다.



마이클 위틀(Michael Whittle) 
<태양나비(Butterfly on the Sun)> 
자외선 방지 시트지 Printed Plastic
 (UV-resistant) 창문에 가변설치



김윤철의 <태양들의 먼지 II>는 프랑스 시인 레이몽 루셀(Raymond Roussel)의 희곡과 같은 제목으로 인공과 자연이 융합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물질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혈관처럼 얽힌 호스를 따라 이동하는 고온의 열과 물 그리고 음파 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광물들은 유체가 되어 빛을 출렁이게 한다. 그리고 성산아트홀 유리 지붕에 설치된 영국 작가 마이클 위틀(Michael Whittle)의 <태양나비(Butterfly on the Sun)>는 지난 150년간 연구해온 태양 표면의 흑점에 관한 작업이다. 에드워드 몬더(Edward Maunder)가 11년 주기로 나타나는 태양흑점을 도표로 그린 ‘나비도표’를 활용한 것이다. 위틀의 <태양나비>는 이 비엔날레가 천체적인 확장과 함께 태양과 우주를 향해 있음을 암시한다. 본전시 1은 성산아트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산의 315해양누리공원, 창동예술촌아트센터, 진해의 흑백다방과 중원로터리로 확장된다.



이용백 <NFT 미술관(생각하는 사람)>
 2022 싱글채널 비디오 1분 30초



본전시 2 <공간을 가로질러-공명(across-space.art)>은 해외작가들이 온라인을 통해 창원시 일원에 작품을 구현하고 해외 레지던시들이 실험적으로 운영하는 웹, 가상, 온라인 레지던시를 통해 교류했다. 특히 창원지역작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작가들의 일상도 공유토록했다. 놀랍게도 이번 비엔날레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매우 상이한 경험을 웹 공간을 통해서 확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조각에 안주하고 있는 지역 언론사 기자들은 이 비엔날레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 삶을 둘러싼 환경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조각은 늘 명징하게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윤철 <태양들의 먼지 II> 2022
LPDS 용액, 아크릴, 알루미늄, 모터,
마이크로 컨트롤러 260×150×100cm




Busan Biennale 2022
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9.3-11.6부산현대미술관, 부산항 제1부두, 영도, 초량
busanbiennale2022.org
● 정일주 편집장


“주축 실무진의 농익은 역량, 자르디니 보다 어쩌면 더 아름다운 항구, 슈퍼스타로 떠오른 오우암, 차세대 전시 감독의 번번한 데뷔!” 11월 6일 65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한 ‘2022 부산비엔날레’의 특징을 말하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서울 한복판엔 미술시장이 출렁이고, 하늘길이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영국과 프랑스를 순회하던 시기와 딱 맞물려 행사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총 14만 명에 달하는 관람객을 끌어모은 비엔날레는 지난달 8일 기꺼운 마음으로 폐막 자료를 송출했다. 개막하자마자 하늘이 뚫린 듯 내리쏟은 비로 행사 관련 모든 이들이 수선스러웠던 것을 제외하곤 행사 전반에 안정적 행정과 다듬어진 시스템이 가동됐다. 이 차분함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홍보와 전시팀은 새로운 피로 수혈됐지만 사무를 총괄하는 처장과 위원장이 지금까지 비엔날레와 궤를 같이 한 인물들인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던 듯하다. 한 기관의 목표나 프로젝트의 성패는 관련자들의 경험과 노하우에 의해 좌우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항 제1부두, 영도 폐창고와 초량의 주택에서 개최된 비엔날레는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를 주제로 25개국 64팀 80명의 작가가 작품 239점을 선보였다. 김해주 전시감독은 ‘이주’,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 ‘도시 생태계’, ‘기술의 변화와 로컬리티’를 전시 관람의 4가지 항로로 제시하곤 그에 조응하는 작품을 배치했다. 그는 기획과 리서치를 보좌한 큐레토리얼 어드바이저들과 적극 소통하며 주제에 적합한 작가를 물색하고 직접 움직여 만남으로써 기획의 밀도를 높였다. 전시 곳곳에서, 감독이 단지 피상적으로 작가 혹은 작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면밀한 대화를 통해 기획에 맞는 작품을 끌어왔다는 인상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웬 라이언(Eoghan Ryan) <개소리(Doggerel)>
 2022 영상 스틸, 3채널 UHD 비디오 13분 57초



한편 부산의 근현대를 상징하는 공간을 새로 발굴한 것 또한 이번 비엔날레가 호평받는 이유다. 그간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2018)나 중앙동의 40계단 일대 공간(2020)을 전시 장소로 선택한 바 있는 비엔날레는 올해 근대 조선 산업과 피난시절을 담은 영도, 이주와 노동의 맥락에서 역사와 지형을 드러내는 초량을 비롯해 그야말로 격변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닌 부산항의 제1부두 창고를 둘러보게 만듦으로써 공간이 뿜는 매력으로 비엔날레 전체 뉘앙스를 끌어올리는 찬스를 다시 써먹었다.

작가 중엔 단연 오우암이 돋보였다. 이미 지난 호에 “그(오우암)의 그림은 해방과 한국 전쟁 전후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기차역과 번화가, 정비 창고 등을 노년에 이르러 붓을 든 작가는 사실적이기보다 기이한 초현실적 느낌으로 완성했다. 여러 번 반복되는 꿈처럼 그가 그리는 특정 장소와 장면에는 어떤 원형적인 기억이 간직된 듯하다. 비비드한 색감을 두르고도 화면은 어쩐지 처연하다”고 적은 내 기사는 물론 주요 일간지와 전문지 모두 여든네 살의 신비로운 예술가에게 매료된 채 아티클을 쏟아냈다. 비엔날레 메인 전시관 지하 진입로에 걸린 오우암의 작고 우아한 작품들이, 어지간히 냉정한 사람이 아니고선 홀릴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필리다 발로(Phyllida Barlow)
 <무제: 블루캐처; 2022> 
2022 철, 그물, 시멘트, PVA 625×850×600cm 
이미지 제공: 작가 및 하우저 & 워스



그런가 하면 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웬 라이언(Eoghan Ryan)도 오우암 못지않게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의 3채널 비디오 설치 <개소리(Doggerel)>는 모두 귄터 그라스(Gunter Grass)의 소설 『양철북』에서 내용과 형식을 가져온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오스카의 눈을 통해 본 20세기 전반기 유럽의 상황과 현재 21세기 초반의 상황을 연결 짓는다. 작품 서사 중 오스카가 자신의 무덤 곁에 서서 불규칙한 압운(押韻)시를 작곡하고 양철북을 연주할 때, 미니어처 유럽의 이미지와 국경이 야기하는 갈등이 분리되거나 포개지는 장면에서 기막힌 편집의 묘미를 느꼈다.

“부산에 대한 사전 리서치와 다층적 연구로 완성도 높은 전시를 이끌어 냈다”는 비엔날레 스스로의 평가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지난해 4월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된 김 감독은 부산의 역사적 장소와 겹쳐진 세계 도시와 사건, 시공간, 관점과 논쟁을 짚어보는 전시를 구현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2006년 ‘부산비엔날레’ 코디네이터를 거쳐 드디어 전체 전시를 기획하는 직함을 거머쥐었을 때 그가 느낀 사명감과 욕심 또한 긍정적 효과로 작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어느 장소에서나 모든 작품이 전시 주제에 꼭꼭 들어맞는 비엔날레는 지루함이란 반작용을 선사키도 했으며, 이주, 생태 등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스펙터클한 설치 작품조차 일반적으로 보이는 영향도 받았다. 조직위원회가 지닌 탄탄한 역량에 비해 외국 매체에 지나치게 집중된 홍보와 결과 보도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의 연결을 확인하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물결을 딛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비엔날레는 어느 때보다 변화무쌍한 단상을 선사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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