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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5, Dec 2022

캐롤라인 워커
Caroline Walker

사회와 문화를 입은 여성 이미지

● 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이미지 작가, 스페이스K 서울, Grimm Gallery 제공

'Birthing Pool' 2021 Oil on linen 200×340cm Courtesy of the artist, GRIMM Amsterdam | New York | London, Ingleby Gallery, Edinburgh and Stephen Friedman Gallery, London © Caroline Walker Photo: Peter Ma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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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원 씨알콜렉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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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한국미술계의 관심과 집중을 받으며 개막한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기대감을 안고 행사장을 돌아보던 중, 스티븐 프리드먼 갤러리(Stephen Friedman Gallery) 부스에 걸려있는 캐롤라인 워커(Caroline Walker)의 <수중분만 욕조(Birthing Pool)>(2021)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대형 욕조 안 여인과 의료진의 모습을 담은 200×340cm의 휴먼사이즈 페인팅은 제목을 확인한 후에야 수중분만의 현장임이 파악되었다. 실감나는 사실 표현에도 사건은 판단을 유예하고 그저 조금 떨어져 숨죽이고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는 산부인과 병동에서 지친 산부를 중심으로 그의 분만을 돕고 있는 조산사와 의료진의 리얼하고 내밀한 모습을 관찰카메라의 시선으로 묘사해내고 있다. 워커의 다양한 직업의 여성 작품 중에서 출산 이미지라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소재, 게다가 한국에선 일반적이지도 않은 영국의 수중분만 문화를 그린 작품 한 점이 ‘프리즈 서울’행으로 낙점되었다. 소셜미디어에는 이 작품 이미지가 지인들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태그되거나 게시물로 실시간 올라왔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마스터피스와 글로벌 스타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다른 말로 글로벌 문화산업 현장의 중심에서 재생산된 산부-모성을 마주하며 불편한 논란거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Installation view of <Caroline Walker: Birth Reflections> 
18 February - 4 March 2022 The Fitzrovia Chapel,
London Courtesy of the artist, GRIMM Amsterdam | New York |
London, Ingleby Gallery, Edinburgh and Stephen
Friedman Gallery, London
© Caroline Walker Photo: Peter Mallet



우선 워커는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실제 3살 난 딸을 양육하는 엄마이자 페인팅 작가로서 치열하게 작업하지만 (작가는 이를 “juggling” - 곡예하듯 최대 효율적으로 조직함 - 에 비유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투잡러’다. 2019년 빅토리아 미로(Victoria Miro) 그룹전에서 마리아 베리오(Maria Berrio), 플로라 부크노비치(Flora Yukhnovich)와 함께 영국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최근 상하이 K11 Art Museum에서 대규모 개인전 <Women Observed>를 오픈했다. 또한 한국 스페이스K에서는 이미 두 번의 개인전을 가진 인상 깊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여성 이미지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가정을 살뜰하게 돌보셨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가까운 지인이나 특정 분야에서 일하는 친분을 쌓은 여성 - 네일/헤어 케어, 호텔 청소 등부터 일반사무에 이르기까지 - 노동의 현장을 선량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묘사해왔다.

작가는 특히 어머니 자넷(Janet)의 사생활을 관찰카메라의 렌즈로 추적한다. 쓸고 닦고 돌보는데 티도 빛도 안 나는 반복적인 전업주부의 유대감과 가사노동은 가족에 대한 일종의 ‘헌신’을 강요한다. “여성에 대한 선천적인 관심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직업적으로나 업무 특성상 몰두해있기 때문인지, 또는 어떤 지위나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미처 인지할 수 없거나 간과되어온 여성 노동의 실내, 특히 집처럼 절대적으로 사적인 곳이나 자주 접할 수 없는 은밀한 공간의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 나의 페인팅 속에서 집중하고 있는 여성들과 환경을 살펴보며 관람자 스스로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내러티브를 제안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이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서) 하나의 형상으로서 매일의 죽은 사물에 주어진 회화적 관심과 함께 페인트 표면 ‘전체’를 감각할 수 있는 이유다. 나는 객체들이 우리에게 시간과 장소 그리고 주제가 여성에 대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 흐릿하거나 덜 뚜렷하게 보이는 그림의 영역은 유리, 거울 또는 다른 반사되거나 반짝이는 물질들같이 특별한 표면이나 공간의 깊이를 암시하기 위해 수행된다.”



<Cutting Back, Late Afternoon, October>
 2021 Oil on linen 180×240cm
Courtesy of the artist, GRIMM Amsterdam | New York | London, 
Ingleby Gallery, Edinburgh and Stephen Friedman Gallery,
 London © Caroline Walker Photo: Peter Mallet



이렇게 워커는 미술사적으로 재현된 여성, 가사를 돌보는 여성, 사회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로서 직업이나 전문직 여성의 모습 그대로를 담 밖에서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거리에서 윈도를 통해 실제 업무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인테리어를 관찰하며 도심의 빛과 그 분위기를 묘사한다. 원거리에서 창문이나 문을 통해 피사체의 삶을 들여다보는 형식은 워커의 시그니처이고, 캔버스 틀 속 또 다른 틀 안에서 많은 여성 노동의 그대로의 모습, 조금 나아가면 도덕적인 측면을 건드리고 인식의 전환과 함께 시공간의 역사를 환기한다.

이러한 피사체로서의 여성은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소재로, 워커가 캡처한 화면은 특히 너무 유명한 얀 베르메르(Jan Vermeer)의 내밀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작품의 전통과 유비될 수 있을지 모른다. 베르메르는 당시 개발된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시대의 빛을 따라 중산층 가정의 실내 전경 전체를 간결하고 담백한 붓질로 훑어 나간다. 그리고 그의 예술적 형식을 따르지만 워커의 작업은 또 다른 컨텍스트의 현대적 여성으로 변주된다. 또한 불안과 관음증적 시선으로 교외의 삶과 여인들의 공간을 구상적으로 묘사하며 다양한 터부를 건드리는 - 최근엔 좀 더 과감하게 사회 전반의 정치적 풍자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 에릭 피슬(Eric Fischl)의 작품과 유사하면서도 또한 다르다. 피슬은 워커가 존경하는 작가 중 하나로 예술가로서 성장기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워커의 정치적 기조는 피슬과는 다르게 특정 “정치 어젠다나 사회적 비평”과 같은 실천적 개입보다는 “간과된 순간이라는 공백을 관람자들이 채워 나가게 되는 일종의 고요함(작가적 개입의 최소화)”에 있다.



<Alem II> 2021 Oil on board 36×30cm 
Courtesy of the artist, GRIMM Amsterdam | New York | London, 
Ingleby Gallery, Edinburgh and Stephen Friedman Gallery, 
London © Caroline Walker
Photo: Peter Mallet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인 <수중분만 욕조>는 이전엔 병원 예배당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과 대리석으로 덮인 피츠로비아 교회(Fitzrovia Chapel)와의 협업으로 올해 개최된 전시 <Birth Reflections> - ‘탄생의 모습들’ 정도로 번역하면 좋을듯하다 - 의 출품작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서는 제왕절개수술과 초음파검사를 진행 중인 산모와 산부인과 병동의 모습을 묘사한 기념비적인 대형 페인팅 두 점과 함께 <수중분만 욕조>를 신성한 삼단 제단화 형식으로 설치하여 모성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작가는 “나는 제왕절개수술의 끝, 초음파 스캔 또는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처음 48시간 동안 산후병동에서 지내는 모든 시간의 리얼리티에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의 여성 노동, 즉 출산의 ‘필수’ 노동과 그 과정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여성들의 전문적 노동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현대병원의 고도로 의료화된 환경에서였다… 현대적 렌즈를 통해 고려하기를 원했고, 원형보다는 실제 여성을 묘사함으로써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인식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반영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Night Feed I> 2022 Oil on board 44×36cm 
Courtesy of the artist, GRIMM Amsterdam | New York |
London, Ingleby Gallery, Edinburgh and Stephen
Friedman Gallery, London © Caroline Walker
Photo: Peter Mallet



‘엄마 되기’의 과정은 극단적 맥락을 형성한다. 특히 모성애는 여성으로서 사회적 조건과 의지에 따른 젠더적 입장을 소환한다. 임신과 출산은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 심지어 숭고함까지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불편함이 그 감정과 의미에 균열을 일으킨다. 아시아 어머니의 모성에 대한 이미지가 윤리·문화적으로 이중 억압을 드러내는 것에서 출산결정권의 문제나 임신 중단 비범죄화 같은 제도적 차원의 첨예한 입장을 소환하거나, 최근 한국 정치 현장에 의해 양극화된 젊은 세대의 남녀 간 ‘페미’ 논쟁까지 떠오르게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영상이었다면 기록 그 이면의 의도나 편견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영국 미술비평가 히티 유다(Hettie Judah)도 『프리즈(Frieze)』 이슈 229에 “Birth Reflections”라는 헤드라인으로 기고한 글에서 “실제 모성애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영역으로 남아있음”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의 극단적 측면보다는 너머의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소통”을 제안한다.



<Plunge Pool> 2015
Oil on linen 85×70cm



하지만 작가는 산부의 모습을 중세미술사의 제단화에서 발견되는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수태고지의 모습으로 신성시하거나 산통을 마치 라오콘의 카타르시스로 부각시키는 드라마틱한 재현의 장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저 욕조에 기댄 산모를 중심으로 출산을 지원하는 여성의 노동과 직업적으로 전문화된 코발트빛의 의료 환경에 대한 동시대적 재현에 집중하고 있다. 워커는 또한 여성의 몸이 산업역군이나 노동력을 생산하는 에이전시로만 묘사되길 원치 않을 것이기에 사적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탐구와 리서치를 통해 정교하게 구성된 화면을 그린다.



<Sauna> (detail) 2014 Oil on board(3 panel)
 Each: 37×30×2cm



현재 워커가 공들인 여성의 이미지는 글로벌 문화산업 현장에서 그리고 아시아로 넘어와 열렬히 환영받고 있다. 출산 현장과 그 모성애를 소환하는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여지는 -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 극단적으로 양분된 여성 이미지를 무력화할 강력한 사회·문화적 실천과 변화를 요청하고 있음엔 틀림없다.PA



Portrait of Caroline Walker in her studio, 
London 2022 Photo: Peter Mallet



작가 캐롤라인 워커는 1982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미국,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국내에선 2015년과 2017년 스페이스K에서의 개인전 <배스하우스(Bathhouse)>와 <여성-공간(Painted Ladies)>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전 세계 유수 기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작품은 영국 예술위원회 컬렉션(Arts Council Collection)과 캠브리지 대학 도서관(Cambridge University Library), 네덜란드 헤이그 미술관(Kunstmuseum den Haag)과 보르린덴 미술관(Museum Voorlinden), 노르웨이 키스테포 미술관(Kistefos Museum), 프랑스 로젠블럼 컬렉션(Rosenblum Collection) 등에 소장돼있다. 현재 워커는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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