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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5, Dec 2022

반디산책: 지구와 화해하는 발걸음

2022.9.1 - 2022.12.2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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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안소연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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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를 둘러싼
냉소와 유머와 성찰과 실천 등


<반디산책>은 ‘ACC 미디어파사드’ 연례 기획 전시로 올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야외 공간에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주제로 진행됐다. 대형 미디어월을 큰 축으로 삼아 야외에 조성된 마당과 쉼터, 통로 등의 설치 작업을 비롯해 소방도로를 활용한 프로젝션 스크리닝까지 약 4개월간 실외에 놓인 작품들이 환경과 공존하며 관람객들의 이목을 끈다. 코로나 팬데믹의 전 세계적 유례없는 공포와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온라인 가상 플랫폼과 개방된 야외 공간으로 삶의 조건들이 하나둘 이동하여 적응해가면서 현실 및 가상공간의 생태에 관한 희망과 성찰이 동시에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들어 왔다.

그중 단연 “인류세”에 관한 화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의 원인과 결과를 둘러싼 진단과 성찰에 맞물려, 인간 중심의 생태 질서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확대해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기획된 전시와 더불어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제시하는 연구 및 학술적인 토론의 자리에서 인류세의 문제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다뤄져 왔음은 대부분이 목격한 바다. <반디산책>은 그 연속에서, 미디어와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하여 별도의 전시 지지체 없이 기존 야외 환경 및 설치물을 활용한 전시 형식을 부각해, 인류세라는 당대의 시의성 있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전시는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독일 출신 작가 총 16팀의 작품 27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포스트 코로나를 향하는 시점에 개최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인류세를 사는 지구인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는 전시 기획 의도가 보도 자료를 통해 소개됐다. 이에 ‘기억하기’, ‘실천하기’, ‘준비하기’라는 키워드를 제시해 개별 작품을 통한 경험과 사유의 매개를 시도함으로써, 인류 공통의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다져보려는 솔직한 노력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인류세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지구 환경 문제를 다루는 전시가, 동시대 미술의 매체 확장 및 변화와 더불어 기술적 효율성과 발전에 편승하는 포스트 미디어 관점에서, 스스로의 한계와 모순을 쉽게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아주 표면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만 보더라도, 전시라는 물리적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전시공간은 현실과 가상의 환경에 수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인간 중심의 예술적 실천과 경험의 장을 조성하여 인공물의 미학적 당위 아래 포기되는 생태의 지속성에 (부분적으로) 경고등이 켜진 것도 단지 최근의 일이다. 그렇기에 전시가 인류 공통의 문제에 보편적 공감대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공감대가 전시 안팎을 가로지르며 어떤 개별적인 공감과 그 간극에서의 다양한 냉소와 유머와 성찰과 실천 등을 제시할 때 일련의 불가피한 인류세의 난제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경로가 생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최지이 <인간의 순교> 2022 
폴리카보네이트 카빙 후 성형, 조명, 시멘트,
 혼합재료 가변 크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소장



그런 의미에서, <반디산책> 기획자 권은영은 전시 준비와 실행의 과정뿐만 아니라 전시 연계 국제 포럼 및 여러 워크숍 등을 진행하면서, 이 전시가 봉착한 인류세의 난제에 직면하여 스스로 대안적 해답과 남겨진 과제 또한 전시 안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을 테다. 인류세 시대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전시 구성의 개별적인 키워드를 볼 때, 이것은 단지 “지구와 화해”하는 낭만적 희망(만)을 제시하기보다 인간 중심적 사고의 전환과 그것을 위해 감수해야 할 인간적 수고와 기억에 의한 퇴행적 혹은 쇠퇴한 시간의 복구를 암묵적으로 독려하는 셈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형 미디어월에서는 아홉 점의 영상 미디어 작업이 순차적으로 상영됐다. 각각 신작과 구작으로 전시 주제에 맞춰 참여한 성실화랑, 찰스 림 이 용(Charles Lim Yi Yong), 정혜정, 에이에이비비(AABB), 장종완, 디지털 세로토닌(Digital Serotonin), 김을지로, 김아영, 레이레이(Lei Lei)의 작업은, 마치 왕복 3차선 이상의 도로 건널목에 서서 길 건너편 대형 건물 외벽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화려하게 쏟아져나오는 빛의 이미지들을 대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깐 붙잡아 놓기에 충분해 보였다. 화려한 빛과 움직임의 파동 너머로 일련의 시간과 맞바꾼 서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이는 공익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이미지에서부터 잠깐의 몰입으로 거대한 상상과 사유의 세계를 경험하고 다시 되돌아와 바뀐 신호등에 길을 건너게 하는 마술적 차원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파사드 위 무빙 이미지들이 어떤 공론장의 물리적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구는 시종 동화 같은 상상에 유머를 섞어 현실에 대한 냉소를 대신하는가 하면, 누구는 미디어의 메시지 전달력을 공고히 해 구축된 정보와 분석된 데이터를 이미지로 치환한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가상의 시나리오도 있을 법한 근미래의 지구 환경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을 유보하고, 누구는 과거의 묵시로서 현재의 재난을 엮어낸다. 스펙터클한 미디어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열, 가상 이미지의 속도와 스케일 탓에 이미지의 서사에 대한 몰입에 있어 문득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할 테지만, 한편으로 저 미디어 기술 너머에서 형상의 근원을 복구하고자 하는 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오래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야노베 켄지(Yanobe Kenji) <함재묘(항해)> 
2022 스테인리스 스틸, 황동, 섬유 강화 플라스틱, 
아크릴, LED 조명 300×380×120cm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소장



상상마당과 나무 그늘 쉼터, 나비정원 음악분수, 하늘마당, 열린마당, 배롱나무 숲 등의 야외 공간에는 소위 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 장소 특정적 입체 설치 작품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병찬의 <크리처>와 성실화랑의 <멸종위기동물 그래픽 아카이브: 사막여우, 수리부엉이, 인도들소, 통킹들창코원숭이, 해달>, 엄아롱의 <움직임의 징후>, 야노베 켄지(Yanobe Kenji)의 <함재묘(항해)>, 최지이의 <인간의 순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은 작품의 특성상 인공물로서의 예술 작품이 환경 문제와 마주했을 때 피할 수 없는 탄소 배출 및 환경오염의 문제점을 지적받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동시대 미술이 좀처럼 해결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문제로, 다만 개별 작품들이 인류세의 산물로서 인류 공통의 지구 환경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파괴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을 겪고 있는가의 문제와 이에 대한 “예술적” 당위 안에서 어떠한 변별성을 제시하는가에 따라 어쩌면 그 모순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이병찬의 <크리처>는 LED 조명, 비닐, 필름지, 에어모터, 폴리에틸렌필름 등의 산업 재료들을 사용해 “도시가 만들어낸 자본 생태계”의 유기체를 시각화 한 것이다. 이때, 그는 거대한 괴물 이미지로 사회적 인공물을 제작하기 위해 포장용 플라스틱과 일회용 비닐 및 조명 장치를 재료로 선택해 상당량 사용했다. 도시의 자본 생태계를 상상적으로 재현한 이미지가 갖추어야 할 (윤리적, 미학적) 조건은 무엇인가? 단지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했을 때 윤리적인 예술 작품으로서 제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불가피한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류세의 지구 환경 문제를 다루는 예술 작품이 어떤 논쟁적 좌표 안에 놓일 수 있는가를 우리는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공감과 갈등을 동시에 자아내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이병찬의 <크리처>나 엄아롱, 성실화랑, 켄지 등으로 이어지는 비슷한 조형적 감각은 그들이 동시대의 예술적 매체로 인공물에 둘러싸인 현실의 환경 속에서 예술적 경험과 실천이 매개하는 사유와 성찰에 스스로를 세워놓았다는 점에서 일견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편 소방도로의 외벽과 경사로를 이용해 기획자 권은영은 밤 시간에만 한시적으로 여섯 점의 영상 작업을 상영했다. 별도의 전시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기존 시설물을 이용해 장소에 대한 인지와 더불어 현실에서의 가상적인 시공간에 대한 간단한 경험을 불러온 것이다. 이 한시적 무대에서 이조흠, 정혜정, 찰스 림 이 용, 최지이, 디지털 세로토닌, 임용현의 영상이 각각 상영되는데, 무엇보다 전시 제목인 ‘반디산책’이라는 문구를 여기서 다시 떠올리면서, 동시대 산책자의 경험이 걷잡을 수 없는 인류세의 재난과 비극 속에서 어떤 가상의 힘을 불러올 수 있을까를 (낭만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이 낭만적인 태도는, 다시 여섯 점의 영상에 몰입함으로써 개별적인 이미지들의 발화 속에서 공론장의 냉소와 반성을 마주하게 된다.  


* 카입×이슬비×이지현 <카본 클럭 @ACC> 2022 증강현실,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가변 크기 7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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