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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5, Dec 2022

구름산책자

2022.9.2 - 2023.1.8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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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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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싸인 미래


한동안 동시대 미술에서 미래는 굳이 뒤돌아봐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리움미술관 외벽에서 10년 넘게 흐릿한 빛을 내뿜고 있는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의 네온사인 설치 작업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2010)은 이런 유형의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래는 현재가 지나쳐 온 과거의 지향점으로 발굴되거나, 아니면 과거의 단편들을 발굴하고 조합하는 연금술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비한 출입구로 상상되었다. 또는 매 순간 갱신되는 현재 속에서 우리가 미래 없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할 때조차 우리의 가장 무방비한 꿈속에 침투하는 희미한 불안과 열망의 대상이었다고 하자. 리움미술관의 2022년 기획전 <구름산책자>는 이런 몽환적 미래를 관람자가 거닐 수 있는 공감각적 공간으로 확장한다.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건 아니나 전시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현대 문명의 한계에 대한 공포, 강박적인 죄책감, 생존에 대한 압력과 그에 대한 피로감을 동시에 촉발하면서, 오늘날 미술 전시의 풍경은 조울증 삽화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과 소진 사이에서 진동한다. 미래의 비전은 때로 지나치게 선명하고 공허해서 그와 대면한 자를 얼어붙게 한다. 이러한 극단적 시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완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구름산책자>는 차라리 미래의 불투명함을 증폭하기를 택한다. 낯선 시간의 기류가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서 모르는 새에 옷깃을 적시는 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려고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참여작가와 관람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진다. 전시를 구획하는 최소한의 프레임은 있지만, 무엇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전시의 인상은 사뭇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

전시가 시작되는 지하층은 건축적 조각, 파빌리온, 주택견본과 모듈, 기념비, 개념적 모형 등으로 채워져 있다. 건축 전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구역에서 미래를 계획하는 건축가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구조체들은 독립적인 전시물인 동시에 또 다른 전시물을 위한 환경 디자인으로 기능하면서 단숨에 조감하기 어려운 다층적 지형을 형성한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지형을 구성하는 물질의 다양성이다. 한편에는 종이와 흙, 대나무 같은 오래된 재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오염물을 흡착하고 분자 단위로 조절 가능한 신소재 패브릭이 있다. 쇠파이프와 시멘트, 폴리스티렌은 건설과 철거의 행위 사이에서 진동하고, 재활용 가능 페트병과 산더미 같은 의류 재고는 석유 산지에서 물류창고와 폐기물 처리장에 이르는 전 지구적 유통 체계를 상기시킨다. 나름의 역사와 생애주기를 가진 이질적인 물질의 배치는 가변적이고 거의 연약해 보이지만 과거에서 미래로의 단일한 시간 축으로 정렬되지 않는 세계의 변형 가능성을 암시한다.



모토구오(motoguo) (feat. 이진샤)
 <당신은 거주하는가 떠나는가?>
 2022 지샤(Zhizha) 공예품, 잉크젯 프린트, 
싱글채널 비디오 가변 크기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물질의 흐름에 대한 불안과 새로운 해결책에 대한 기대가 혼재된 이 불안정한 공간은 도래할 시간들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가 서식할 수 있는 틈새를 제공한다.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stpmj Architecture)에서 설계한 <고요의 틈>은 암회색 펠트 블록을 소라고둥처럼 쌓아 올려 외부의 빛과 소리를 차단한 작은 방이다. 여기에는 SF소설가 김초엽의 얇은 책이 놓여 있어서, 자율적 집단지성을 획득한 인공 입자들이 평화로운 방식으로 인류를 내쫓고 새로운 문명을 조성하는 행성 ‘사모나’의 이야기를 전한다. 관람자는 그 이야기에 몰두할 수도 있고, 어둡고 적막한 공간을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 나올 수도 있다.

모든 공간은 보이는 것보다 조금 더 깊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리는 돈 탄 하(Ðoàn Thanh Hà)의 <물 위의 대나무집>은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메콩강 삼각주 지역을 위한 수상 가옥의 실물 모형이다. 마른 풀로 벽과 지붕을 덮은 이 취약하고 현실적인 구조물은 전시 내에서 루 양(Lu Yang)의 아바타 ‘도쿠’의 춤을 선보이는 극장으로 쓰인다. 가상 공간에서 자유와 불멸을 추구하는 디지털 환생의 시도는 흔들리는 땅에 묶인 현생을 돌파하려는 필사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미래를 향한 가속보다도 미래의 부재에 붙들리지 않으려는 탈주의 안무에 가깝다.

미래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번성할 여지를 찾을 수 없다는 주관적 인식이다. 당신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의 다급함에 무관심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희박한 당신의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나와 적대할 수도 있다. <구름산책자>는 미래 없음의 감각에 수반되는 분열을 애써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그 다성적 소란이 증폭될 수 있는 가상의 지평을 구체화하고 그 속에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의 작은 가지들이 분기하기를 기대한다. 허구를 창안하는 것은 가상의 여정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오래된 방법이다. 나타샤 톤티(Natasha Tontey)의<사변적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촉감적이고 환상적인 전술 선언문>(2017-2018)은 점술가나 신비주의자의 예언조차 기존 현실을 변주할 뿐인 관습적 사고의 한계에 도전하여 두려움 없이 미지의 영역을 개방하는 사변적 상상을 요청한다. 지하층과 블랙박스 공간의 연결부에 벽면 그래픽 형태로 설치된 이 작업은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지시문을 제공한다.



돈 탄 하(Ðoàn Thanh Hà) <물 위의 대나무집>
 2022 & 루양(Lu Yang) <도쿠-헬로우 월드> 2021



물론 허구가 항상 바람직한 미래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전시에서 발견되는 것은 뻔뻔스러운 삶의 욕망과 죽음 너머의 초월에 대한 매혹이 등을 맞댄 기이한 혼종들이다. 웡 핑(Wong Ping)의 <우화 2>(2019)는 유아용 TV 만화의 형식을 빌려 모든 사람 또는 동물이 목숨을 걸고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의 초현실적 냉혹함을 설파한다. 패션 브랜드 모토구오(motoguo)의 <당신은 거주하는가 떠나는가?>는 망자가 사후세계에서 풍요롭게 살기를 빌며 종이로 만든 각종 상품과 가짜 돈뭉치를 태우는 도교식 장례 풍습을 참조하여 메타버스 또는 내세의 사치스러운 거처를 그래픽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렇듯 생사의 경계를 가볍게 돌파하는 욕망의 운동은 모두에게 더 우호적인 거주 환경을 조성하려는 집단적 노력으로 수렴할 수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호기심과 맹목적인 열광 사이에서 자기 파괴적인 모험을 촉발할 수도 있다. 전시는 우리 각자가 미래를 열거나 닫아버릴 수 있는 양가적 가능성에 오염된 수수께끼의 분기점이라고 보고 그 전개를 관조한다. 이런 태도를 아시아적인 것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문제이나, 물질과 데이터의 순환을 규제하는 서구의 시스템적 해법과 전통적 삶의 방식에서 ‘오래된 미래들’을 물색하는 비서구의 토착적 접근 사이에서 뒤엉킨 시공간의 매듭을 더욱 꼬이게 하는 아시아 작가들의 시도가 모호한 기대감을 끌어내는 것은 사실이다.

전시가 마무리되는 블랙박스 공간은 다른 세계가 생성되는 어떤 경계의 저편처럼 연출되어 있다. 이는 미래의 영토로서의 개척지와는 다른데,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도 인간이 건설하거나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 같지 않은 생경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공, 전통과 근대를 불문하고 현재에 존재하는 사물, 사람, 장소를 알아볼 수 없이 변조한 풍경은 인류가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우리와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한 먼 미래에 불시착한 것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분위기는 전시가 열리는 리움미술관을 다른 시간대에 가상적으로 복원된 고대 유적지이자 자애로운 망각의 장소로 그리는 로렌스 렉(Lawrence Lek)의 <네펜테 존(리움)>에서 절정에 달한다.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stpmj Architecture) 
<고요의 틈> 2022 3D 펠트 블록, 철골 보강재 
450×300×300cm 디자인: 이승택, 임미정




스크린 속 영상은 바로 그 스크린이 설치된 전시공간을 보랏빛이 감도는 반투명한 모습으로 반영하면서 관람자에게 왜 여기 왔는지를 기억하는지 질문한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당신은 여태까지의 여정을 되짚으면서 원래의 목적을 기억해낼 수도 있고 영원히 산책을 계속하면서 기억을 모두 놓아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조언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여태까지 누적된 우리의 정체성, 습관, 기억을 잃는 것, 다시 말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다. 만약 그 두려움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 다다를 수 있을까? 미래는 안개처럼 밀려들어 당신을 부드럽게 덮친다.  


* 전시 전경 사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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