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196, Jan 2023

일시적 개입

2022.11.18 - 2023.1.21 아르코미술관, 스페이스필룩스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김종길 미술평론가

Tags

보이는 말들의 흔적


미술관에 전시하는 작품(作品)을 떠올려 보자. 딱 떨어지는 회화, 조각, 영상, 사진…. <일시적 개입>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전시의 언어는 짓고 일으키는 창조적 술수로 그물코를 이룬다. 여기에도 회화, 조각, 영상, 사진은 있으나 온갖 서사의 그물로 존재할 뿐이다. 경상도 지역의 선박(船舶) 문화를 구조적으로 탐색한 맵핑 아카이브, 의정부 기지촌 마을 사람들의 산 역사로 이야기 그물을 짜는 프로젝트, 드러남과 사라짐으로 연결하는 여성주의 예술가 레지던시, 제주도 인권 문제와 소수자를 위한 차별 없는 가게 네트워크 부산 앞 바다의 환경에 관한 생태학적 보고서, 광주와 필리핀을 가로지르며 ‘예술하기’의 사건을 이어가는 트랜스 로컬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솔록의 지역 문제를 공유하는 공동체, 기억의 맛으로 되살리는 지역공동체 레시피, 전쟁 경험자들을 위한 치유 그리고 연대….



다이애나랩×우에타 지로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2022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시간 39분 40초



팬데믹은 도둑처럼 왔으나, 사실 그 원인은 인류가 오랫동안 자행한 오만과 위선과 욕망에 있을 터이다. 역설적으로 팬데믹은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을 던져 주었다. <일시적 개입>은 그런 성찰의 시간과 비슷하다. 갑자기 멈춘 일상 속으로 ‘(예술적)개입’이라는 짓고 일으킴의 사건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작품에서 ‘품(品)’이라는 오브제에 집착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작가의 머리가 꿍꿍(想像)하고 그것을 받아 마음이 낸 오브제는 미술이 오랫동안 지켜온 장르로서의 물성(物性)이었으니까. 장르를 벗어나지 못하는 물성은 서사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14명(팀)이 펼쳐놓은 <일시적 개입>의 현장은 품이 아니라 ‘작(作)’에 가까웠다. 그들은 짓고 일으켜 사건이 되는 ‘관계’를 드러내는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브제로 딱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일시적 개입>이 풀어놓은 관계의 미학은 느슨하게 혹은 가로지르듯 연결하는 지역들로 보였고, 때로는 삶의 무늬가 겹겹을 이루며 쌓여가는 지역으로도 읽혔다. 거기에는 무수한 언어의 무늬가 윤슬로 빛났다. 예컨대, 보이지 않는다던 상상의 공동체는 너무도 선명했고, 날 비린내 나는 싱싱한 사람의 체취가 풍겼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마음을 터 이룬 이웃들도 있었다. 이제는 새카맣게 먼지가 앉아 학술적 개념으로만 가끔씩 꺼내 보았던 연대, 돌봄, 마을, 여성, 인권, 소수자, 생태, 환경, 치유라는 말이 살가웠다. 그들은 전시라는 그물코로 관람객을 사로잡아서 ‘빛나는 존재’에 대해 속삭이고 있었다. 나와 우리를 짓고 일으키고 있었다.  



브레이크워터(최영숙×태이)
 <켜켜이 꽃>2021 디지털 프린트와 자수가 혼합된 
태피스트리와 민들레 술병이 묻힌 흙더미 태피스트리:
 4×3m, 흙더미: 5m



팬데믹 이후 뒤바뀐 생활문화 중의 하나는 다른 곳에서 마주하거나 다른 곳으로 건너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남아서’ 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기 삶의 지역에 대한 체험이다. 자기 밖의 풍경이 아닌, 자기 안의 풍경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는 인류의 촉각이다. 그들도 삶의 가장자리 안쪽으로 눈을 돌려 그 내부의 ‘서로’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일시적 개입>의 기획에 놀란 것은 제도권 미술관이 짓고 일으키는 ‘작(作)’의 언어를 전시로 가져온 것이고, 더군다나 흔적만 남았을 관계의 언어와 무늬를 펼쳐냈다는 점이다. 체험되어진 관계는 사실 마음에만 남을 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베틀을 짜듯 그들의 촉각으로 예술을 지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은 있는 그대로 ‘기술(記述)’하되 짓고 일으키지(作) 않는다는 뜻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첫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풀려 하면 괴이, 완력, 패란, 귀신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뭇 삶을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주목했다. 떠도는 말들의 흔적에는 말을 퍼트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이 스며 지배자의 언어를 간단히 묵살하는 통쾌함이 있다. 그리고 그 말들에는 거짓과 환상으로 가득한 것 같으나 진실을 묘파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늘 현존한다. <일시적 개입>은 그런 창조적 술수(術數)의 보이는 말들로 가득했다.  


* 다이애나랩×우에타 지로 <우리는 이미 펜스를 만난 적이 있잖아요> 2022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시간 39분 40초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