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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8, Mar 2023

곽수
Su Kwak

곽수 추상화의 시각적 통합

● 이정실 신시내티대학 한국미술사 겸임교수 ● 이미지 작가 제공

[우주의 빛 #36(Cosmic Light #36)] 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102×15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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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신시내티대학 한국미술사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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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며 꾸준히 물질적, 영적 빛을 주제로 추상화 작업을 하고 있는 재미 한인 작가 곽수. 1980년대 중반부터 자연의 땅, 물, 빛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반추상 풍경화로 시작한 그의 추상화 양식은 1990년 말에 이르러 종이 콜라주와 석고에 아크릴 물감을 칠해 조각적인 회화를 실험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 실험적인 작품들은 버지니아의 친코티그 섬에서 본 노을과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이 재해석한 <십자가의 길> (1958-1966)에서 영감을 받았고, 보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

2002년부터 곽수는 연약하고 병든 육체를 치유하는 빛의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추상화 속의 빛에 영적인 의미를 더했다. 2003년부터 2006년에 작업한 ‘치유의 빛’ 시리즈에서는 원색들의 극명한 대조와 캔버스 틀을 드러나는 표면의 절개가 더욱 대담해졌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빛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작품들에서 영적인 빛이 캔버스에 생긴 열린 상처를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이 매우 역동적이고 조각적인 추상 작업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2013년부터 2015년 ‘우주의 빛’ 시리즈에서는 내면화된 빛을 보여주게 된다.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양식은 좀더 차분하고, 그 구성에 있어서도 자제된 색상과 반복적인 빛의 순환, 비교적 편평한 표면으로 안정되어있다. 실제로 작가는 ‘내재적 빛’ 시리즈(2016-2017)와 ‘빛의 순환’ 시리즈(2018)에서 캔버스 내부에서 빛을 토해내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곽수의 ‘우주의 빛’ 시리즈는 내재적 치유의 빛을 품고, 이후 몇 년간 생명으로 태어날 빛의 분출을 준비하는 배양 기간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곽수는 「회화에서 반대의 통합」이라는 제목의 1979년 석사논문에서 자신의 회화철학이 17세기 중국 명청 전환기의 화가 석도(石濤)의 미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곽수는 불교와 도교의 수행자이기도 했던 석도가 성립한 일획론(一劃論)을 수용하여, 실체와 공간, 글과 그림, 음과 양, 육체와 영혼, 삶과 예술, 개인과 우주 사이의 구분을 떠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곽수가 석도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놀랍지 않은 것은, 그의 논문 지도교수가 저명한 중국미술사학자 해리 반데스테판(Harrie Vandestappen)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제프리 웩슬러(Jeffrey Wechsler), 알렉산더 먼로(Alexander Munroe)를 비롯한 다수의 학자들이 추상표현주의의 발전에서 동양의 중요성을 점차 인정하고 있을 때였다.



<우주의 빛 #40(Cosmic Light #40)>
 2015 캔버스에 아크릴릭 76×102cm



실제로 추상표현주의는 절제된 색상과 서예적인 이미지, 거칠고 빠른 붓놀림, 비대칭 구도, 신체의 움직임을 사용하는 작화 방식에서 동아시아 수묵화 전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도 추상화 초기부터 추상회화와 개인의 종교관 및 음악과 문학을 포함한 영적 경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주목했었다. 동양미술과 추상표현주의의 작풍과 미학이 이러한 유사성과 상호교류를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생각과 영혼에 공유된 정신성이 특정 종교를 초월한 영적인 계시로서 예술에 보편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미국 추상표현주의자들 및 비평가들은 지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모더니즘의 연장으로 경도하여 형식적이고 자기지시적인 회화를 강조하고 문학적 배경이나 개인적인 서사를 제거하였다. 그 결과, 추상 미술에서 신비적인 측면을 드러나게 표현하는 것은 미국화된 추상미술의 예술지상주의라는 명목 하에 금기시되고 잊혀지게 되었다. 20세기 미국미술에서는 현대미술의 정신성을 언급하는 것이 절제되고 은폐되어 온 것이다.

곽수의 미술의 특성은 뉴먼이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같은 추상주의 거장들의 단색화가 보여주는 무언의 형이상학적 기념비성과 다르다. 곽수는 자연에서의 모티프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적 동기, 삶의 경험과 기억을 색채가 풍부한 추상화에 솔직하고 긍정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이러한 접근은 미국 미술사에서 동양 표현주의와 서양 표현주의, 그리고 정신성과 현대성 사이의 근본적인 통합을 다시 환기하며 새롭게 하고 있다.

그간 곽수의 회화에서 빛은 물에 반사된 햇빛에서 시작하여, 영적인 치유의 빛으로, 그리고 결국 시간과 공간 속에 움직이는 우주의 빛으로 변화해왔다. 빛이라는 모티프가 이 땅에서부터 초월적인 영역으로 올려진 것 같이 보이지만, ‘우주의 빛’ 시리즈에서 빛의 묘사는 그 나름대로의 시각적 특성을 드러낸다. 이전 작품에서 광원과 광선을 표현하던 뚜렷한 선들과 달리, 우주의 빛은 종종 집합된 입자들과 같이 뿌옇게 분산된 선들로 표현된다. 우주의 빛은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서, 시공간 사이에서 증발하듯이 모호하게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인다. 작품마다 원형의 광원 혹은 빛의 반사체가 한 개 이상 반복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선들로 표현되어있다.



<삶의 충만함(Fullness of Lif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102×152cm



다양한 색상과 단절된 선들로 이루어진 수많은 붓놀림은 원들 사이에 직각으로 교차하거나 관통하는 직선적인 광선들에서도 보인다. 광선들의 율동적인 반복과 급격한 파열은 연속되는 생명의 순환과 개인적이거나 실질적인 우주 공간에서 일어나는 시간의 속도와 정지, 팽창의 결정적인 순간들에 투영되어있는 시간의 개념을 보여준다. 이처럼 비교적 내면적이고 명상적인 추상을 지닌 ‘우주의 빛’ 시리즈는 멀리서 보면 평화롭고 고요해 보인다. 비록 내향적이지만, 빛이 나아가는 눈부신 여정 속에 미래를 향한 역동성이 담겨있다.

‘우주의 빛’ 시리즈는 빛의 근원, 빛의 시작, 빛의 방출, 그리고 빛과 다른 우주체와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탐구를 반영한다. 그의 작품에서 광원은 주로 태양과 그 태양빛을 반사하는 달이다. 이러한 광원들은 종종 한 화면 안에 함께 묘사된다. 지구에 있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개의 광원은 낮에는 해고 밤에는 달이다. 동양의 유교 및 도교에 바탕을 둔 음양오행의 우주관에 따르면, 해는 양의 기운을 대표하는 예이고 달은 음의 기운을 상징한다. 이러한 우주관은 조선시대 궁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궁중 병풍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궁중 화가들은 원색을 사용하여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라 불리는 다폭 병풍을 제작해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전시하였다. 유교의 원리와 도교의 우주관에 따라 영속적인 질서인 음과 양, 그리고 다섯 가지 요소들을 재현한 일월오봉도 병풍 앞에 왕이 앉는 것은 그 왕이 하늘로 부터 권위와 복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반대되는 광원들이 한 화면에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캔버스 하나, 둘, 혹은 넷을 연결하여 만든 곽수의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작품 안에서 만나는 해와 달은 빛의 모든 색이 만나면 흰색이 되는 가색혼합을 보여준다. 작가는 갖가지 물감들을 섞었을 때 검은색으로 채도가 낮아지는 감산혼합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스른다. 게다가 자연현상에서의 일식이나 월식은 구름이 그늘을 만들 듯이 빛을 가리게 되지만, 그의 우주의 빛은 그 반대로 작용한다. 곽수의 작품에서는 해와 달이 서로 겹쳐지거나 구름이 드리워질 때, 빛의 반사와 분산의 효과로 인해 광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갈망(Longing for Life)> 
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61×76cm



곽수는 또한 창조적인 작업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쌓아나간다. ‘우주의 빛’ 시리즈 대부분의 작품 표면은 두꺼운 물감 아래 접착된 재료들로 인해 편평하지 않다. 작가는 예전에 완성한 작품을 기다란 모양으로 잘라서, 새 캔버스에 밑칠하기 전이나 색칠을 하는 과정에 그 불규칙한 조각들을 붙인다. 낡은 조각들을 덧붙이는 과정은 예상치 못한 관점과 이미지를 연상시켜서 결국에는 새 작품에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깊이를 창출한다. 곽수는 점점 더 완성과 오리지널이라는 확정된 개념을 거부하고, 완성된 작품의 덧없음을 새 물감 아래 기억의 단층들 속으로 매장시키고 있다.

이전 작품 전체를 완전히 새로 칠한 그림 두 점은 특히 주목을 끈다. 1985년에 그린 풍경화 <새로운 강 시리즈 #1>은 <우주의 빛 #30>(2014)의 바탕 캔버스가 되었는데, 그 캔버스는 그간 틀 없이 말려서 보관되어왔던 것이라 수직선 주름들이 남아있었다. 원래 풍경화의 모티프는 버지니아주와 워싱턴 D.C.의 경계를 흐르는 포토맥 강이었다. 작가는 이 강을 보고 한 찬양을 떠올렸는데, 그 후렴구 한국어 가사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다.

그런데 같은 후렴구가 원래 영어 가사로는 “저 아름다운 강가에서 만나리”다. 영어 가사는 생명의 물을 염두했는데, 한국어 가사는 천국의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것, 즉 모순되게도 죽음을 암시하게 되었다. 물론 많은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강을 건넌다는 것이 이별이나 죽음을 뜻하지만, 이 작품을 위한 모티프가 한국 기독교에 기초한 작가의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곽수는 여러 번의 유산을 겪은 후에 그 슬픔을 극복하고자 이 격동적인 풍경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삶의 순환을 따스하게 묵상하면서 그 힘들었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끌어안으며, 주름진 강의 풍경화를 천국에서 회오리치는 우주의 빛의 움직임으로 변모시켰다.



<광선(Light Rays)>
 2018 캔버스에 아크릴릭 76×122cm



재활용해서 출품한 또 다른 한 예는 <우주의 빛 #2>(2016)다. 2002년에 곽수는 조각적인 회화 <빛 #32>을 제작했는데, 건축 재료인 타이벡 지를 접었다가 방사형으로 펼친 후에 낚싯줄로 캔버스에 꿰매어서 광선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2012년에 그 실험적인 작품에 붙어있던 타이벡 지를 떼어내고 조각적인 광선들을 대신 광원으로 바꾸어 색칠하여 이차원적인 <우주의 빛 #2>를 만들었다. 이것을 2013년에 다시 작업하고, 2016년에 다시 네 번째 버전을 완성하여, 밝은 파란색을 칠한 육지 혹은 물을 배경으로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노을을 보여준다. 물감 밑으로는 이전에 광선을 붙였던 자국이 남아서 빛의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동시에, 폭발적으로 분산했던 조각적 빛은 중력에 이끌려 화면의 ‘라이트 홀’로 수렴되고 사라지면서 이 땅에 닿아있다.

‘우주의 빛’ 시리즈는 곽수가 자신의 예술에서 통합의 의미와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한 지난 40여 년 동안 성숙하게 된 경지를 보여준다. 곽수에게 영감을 주었던 추상표현주의도 애초에 동양수묵화 전통과 서양미술경향이 통합된 예술이었다. 그의 작품 안에서 빛도 작가가 관찰하는 자연의 태양빛과 계속해서 묵상하고 표현하는 영적인 에너지의 통합을 의미하며, 이는 한국 기독교에 녹아든 유교, 도교, 무속의 혼합적인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곽수는 시간성과 영원성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의 통합을 가시화한다. 파괴적인 무질서와 우울한 불확실성으로 고통받는 이 세상에서 곽수의 그림은 우리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의 빛을 통해, 갈등과 고정관념과 편견과 부정을 소멸시키고, 조화와 관용과 애정과 생명력을 전하는 궁극적인 통합으로 향하여 계속하여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준다.PA



곽수
사진: 리사 그로스(Lisa Gross)



작가 곽수는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세인트 토마스 대학(University of St. Thomas)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1979년 시카고 대학원(University of Chicago)에서 회화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발파라이소 브라우어 미술관(Brauer Museum of Art), 워싱턴 조던 슈니처 미술관(Jordan Schnitzer Museum of Art) 등에서 회고전을 개최했고 유수 기관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뵌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 워싱턴 국립 여성 예술가 미술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조던 슈니처 미술관, 브라우어 미술관 등에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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