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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9, Apr 2023

끝에서 두 번째 세계

2022.12.3 - 2023.2.12 하이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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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나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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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was running out1)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자본과 기술이 매개하여 시공을 가속도로 통과하고 있는 시대에 누구든 이 영향력과 제도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듯하다. 비판은 모순을 함구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방식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끝에서 두 번째 세계>는 어떤 전환의 지점에서 감각되는 “새로운 힘”을 “영향력”이라는 세속적인 힘으로 보고, 이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방향을 틀어내는 움직임들을 지켜보고자 한다.

전시는 이러한 방점에 현실과 시대를 바라보는 방식을 논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의 『역사』의 부제, “끝에서 두 번째 세계”를 인용하면서 오늘날 등장한 새로운 영향력과 시간관을 “그 무엇도 정의 내려지지 않은 중간지대”2)로 제시하고,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시공을 현재에 기입하고자 한다. 예술은 어떻게 역능을 창출하고 힘의 방향을 뒤틀어낼 수 있을지, 비판의 무용함을 대신해 예술의 힘은 교란의 계략으로 다른 시공간의 틈새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말이다.

전시에 참여한 3명의 작가 박론디, 원정백화점, 추수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삶의 형태와 정서를 토대로 우리가 가진 환경과 조건을 교란하는 시공간을 펼친다. 그들은 기존에 명명되지 않은 자아상을 재창조한다. 자본주의 안에서 원초적인 욕망을 좇으며 자아의 기억술로 서사를 뒤죽박죽 엮어내고(박론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타임라인을 타고 흐르는 판타지적 자아를 전시하며(원정백화점), 가상 세계에서 탄생하고 거주하며 모습을 바꿔 나타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에이미는 인간의 지식을 전복할 가능성으로 등장한다(추수).



추수 ‘달리의 에이미 #3’, ‘자기야, 베타월드는 곧 끝나’ 
연작 2022  네온 글라스, 패널에 아크릴릭 50×50cm
 DALL·E와의 콜라보레이션 이미지 제공: 하이트컬렉션 
사진: 김경태



원정백화점이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는 신전을 세우고 시간의 제약 없이 흐르는 액체로 가득함을 보여줄 때 이곳은 디지털 몸의 내부다. <ઈ스킨케어신화ઉ>는 디지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 사이에 얄팍한 경계를 둔 채 스크린과 타임라인에서 흐르는 자아를 계속해서 선전한다. 신화의 서사는 디지털 자아의 형성을 도우며 그가 허상의 이미지가 아니라고, 그것을 한번 믿어보라고 말한다. 디지털 자아가 화면 속에서 걸어 나와 흘리고 갈 법한 액체 흔적의 더미 <탈락한 피부와 디지털 체액 편지>는 그 존재가 떨군 피부와 체액처럼 물질과 다름없다. 그것은 관람객이 선 바로 그곳에 놓이며 디지털의 물성과 몸체의 실재를 드러낸다.

박론디는 갖고 싶은 상품들에 매료되었던 충동과 세속적인 욕망을 탐구한다. 순진무구한 어린 자아의 욕망은 동물적이고 거침이 없는데, 그 시절 느꼈던 아름답고 귀여운 것에 대한 충동과 어린 내가 바라본 이모의 세속적 욕망 그리고 세속과 욕망을 잘 알고 있는 지금 나의 욕망들의 관계망을 도상과 패턴, 제목의 서술로 꿰어낸다. 회화와 오브제는 사물과 상품으로부터 기인한 기억과 현재를 스티치하며 자본에 의한 물신이 아닌 나만의 물신을 위한 시공간이다. 박론디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깨어진 시계 도상은 시간을 물신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에 의해 재조직되는 현대적인 시간성이 그의 작업에 흐르고 있음을 드러낸다.

2층 전시장을 진입하면 들려오는 추수의 사운드 작업 <Long Time No See>는 가상 세계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음성과 물질들이 부딪히는 소음으로 관람객이 있는 여기가 가상현실과 근접한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전하지 않는 존재는 포트레이트 사진으로, 실린더 안에서 배양되듯 스크린이라는 너머에 있는 생명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세계는 부분적으로 드러날 뿐이지만 존재들은 다정한 듯 낯설고, 성스러우면서 세속적이고, 평온하면서도 공허함을 온전히 전한다.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존재가 건네는 정서는 전시장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각주]
1) 박론디의 작품 <Time was running out even when money was good>으로부터 왔다.  
2) 신지현, “끝의 시작 혹은 시작의 끝”, hitecollection.com/%EB%81%9D%EC%97%90%EC%84%9C-%EB%91%90-%EB%B2%88%EC%A7%B8-%EC%84%B8%EA%B3%84-the-last-things-before-the-last


* <끝에서 두 번째 세계> 전시 전경 2022-2023 이미지 제공: 하이트컬렉션 사진: 김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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