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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99, Apr 2023

프루던스 플린트
Prudence Flint

방 안의 멜랑콜리

● 이민주 미술비평가 ● 이미지 작가, Fine Arts, Sydney 제공

Exhibition view of 'Conditions for Sprouting Seeds' at Fine Arts, Sydney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Fine Arts, Sy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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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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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은 더 이상 은밀한 장소가 아니다. 유튜브(Youtube)의 브이로그 콘텐츠,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 업로드되는 포스팅 등. 수많은 일상이 전시되며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례 없이 무수한 플랫폼과 사람과 사람을 뛰어넘어, 사물과 사물까지 초연결하는 세계에서 프루던스 플린트(Prudence Flint)는 막힌 방과 고립된 몸을 그린다. 욕실 혹은 침실, 벌거벗거나 속옷만 입은 여성. 사적이고 내밀한 방에 혼자이면서 가끔씩 둘인 인물들. 표정 없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닥과 벽으로 꽉 닫힌 방에서 인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프루던스 플린트는 정신분석에 관한 깊은 관심을 토대로 미묘하게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며, 여성 신체를 주제로 작업한다. 몸에 새겨진 무의식 혹은 숨겨진 충동과 힘의 역학을 보여주며 그는 주로 홀로 있는 여성을 그린다.1) 아주 가끔 벌거벗은 남성 또는 아기가 등장하지만 장면의 소품처럼 삽입될 뿐이다. 여성은 부푼 가슴과 풍만한 엉덩이를 드러내며 침대 위에 걸터앉거나 누워있는데, 침실이라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육감적인 신체를 상상하게 하는 앞선 묘사와 달리 그림 속 플린트의 여성들은 일말의 섹슈얼리티도 자랑하지 않는다. <The Wish>(2020)에서 침대 위로 기타와 함께 놓인 여성의 몸은 화면을 가로지른다. 비대한 동시에 왜소한 인상을 연출하면서 끝 모를 소실점을 향해 늘어진 몸이 사물과 나란히 등치된다.



<The Blow> 2020 Oil on linen 135×10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ine Arts, Sydney



플린트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다. 양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샤워를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의 사람들은 대부분 사물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동작을 취하며 마치 감정이 소거된 인물처럼 등장한다. 욕조 안에서 두 인물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The Deal>(2020)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은 좌우 대칭의 구도로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치 거울을 마주하듯, 이 장면에선 어떠한 교감이나 일말의 성적 긴장감도 포착되지 않는다. 건조하게 거리를 둔 인물을 그린 장면은 부재하는 ‘밀착’, ‘연결’의 감각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국 하나 남기지 않은 붓질과 얼룩 없이 번진 물감에서도 포착된다. 뽀얗게 스머징(smudging)된 표면이 한 구역에 오랫동안 머무는 붓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가의 태도, 이미지에 구현된 대상 모두 어딘가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웅크리고 수프를 먹는 여성, 샤워 호스 아래서 두 손으로 감싼 얼굴.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어딘가 외롭다. 공원을 그린 그림 <Bird Park>(2014)에서조차 플린트는 막힌 벽으로 풍경을 제한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확장과 단절, 연결과 고립 사이를 그리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무한히 확장된 세계에서 하염없이 고립된 인물들의 쓸쓸한 정서를 담는다. 그리고 이 고독, 외로움, 쓸쓸함의 정서는 저 자신의 결핍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 속 인물들은 스스로를 관찰하는 인물처럼 감정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감정을 은폐 혹은 마비시킨다. ‘우울한 나르시시스트’처럼 소진되고 개별화된 현대의 주체로서 등장하는 플린트의 여성들은 멜랑콜리하다.



<World Map> 2009 Oil on linen 122×109cm



멜랑콜리한 주체는 자기애에 마비된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며 언제나 현실 너머를 꿈꾸는 망상적 인물이다. 멜랑콜리는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서 정신분석에서 애도에 대응하는 개념이다.2) 상실된 대상 향하던 충동을 철회하지 못하는 실패의 정조인 것이다. 애도는 대상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결국 다른 현존 대상에게 충동의 에너지를 전환할 수 있는 기제를 말한다면, 멜랑콜리한 주체는 새로운 대상을 찾지 못하다 이내 자아를 상실 대상과 동일시한다. 말하자면 정신분석(특히 프로이트 이론)에서 멜랑콜리 환자는 텅 빈 자아, 자기 안에 갇힌 나르시시즘적 인물로 묘사된다.3)

하지만 멜랑콜리는 단순히 슬픈 감정이나 우울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정서는 언제나 동전의 양면처럼 기능한다. 독일의 역사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비애극의 분석을 통해 멜랑콜리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처럼, “슬픔은 자신의 지향성을 특별하게 강화시켜 지속적으로 침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4) 그것은 사물 세계를 충실하게 슬퍼함으로써 집요함을 드러내고 사물과 거리 둔 채 다른 면을 발굴할 기회를 마련한다.



<The Wish> 2020 Oil on linen 122×10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ine Arts, Sydney



한 명의 인물로 캔버스를 구성할지언정, 플린트의 여성들은 자기 안의 타자를 향한 상상적 이미지를 품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나르시시즘의 세계에서 타자의 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플린트는 왜 꽉 닫힌 방에서 타자 없는 고독한 여성을 그리는가? 아마도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혼자인 여성들의 고독, 우울, 외로움의 감정이라기보다 부재하는 사랑의 감각일 것이다. 이때 사랑은 남녀 간의 섹슈얼한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오늘의 세계에는 무한한 연결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유비쿼터스적 존재로 어디든 접속할 수 있는 메타버스 세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더 많이 접속할수록 더 빠르게 단절되고 있다. ‘재미’와 ‘편리함’을 우선하는 지금,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의 경계에 선 인물들은 더욱더 혼자이기를 자처한다. 오늘의 쾌락과 내일의 생존 앞에 사랑이라는 판타지는 낭만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개인의 이름으로 그 어느 하나 힘을 행사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세상으로부터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보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력이다.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것, 자신을 거스르는 실오라기 하나조차 그들에게는 배제의 대상이 될 뿐이다.



<Green Tea Ice Cream> 
2012 Oil on linen 122×102cm



플린트가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정신분석의 맥락에서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사랑이 사회적인 관계망 속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5) 한 인간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확인하고, 타인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재편하는 행위인 것이다. 한편 사랑은 판타지의 차원, 상상적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나르시시즘적인 측면이 있다. 사랑에 빠진 인물이 대상과 하나를 이루고 싶어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을 하나로 만드는 융합과 집합의 에로스적 충동에 휘둘리는 것. 하지만 현실 혹은 상징의 세계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언어화된 상징 구조 안에서 사랑은 섹슈얼하거나 낭만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차원에 속한다.

다시 플린트의 여성들에게 돌아와 보자. 부푼 가슴과 엉덩이를 감싸는 속옷, 표정 없는 얼굴. 풍만한 여성의 신체를 보여주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섹슈얼리티. 주름과 균열 하나 없는 기묘한 방 안에서 세계를 조망하는 여성(<World Map>(2009))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비대한 자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는 오늘의 고립된 세계를 비춘다. 어딘가 사랑스럽고, 어쩐지 불안한 풍경. 아주 차분하고 왠지 위태로운 장면들. 플린트는 타자 없는 세계의 나르시시즘적 주체를 그리며, 그들로부터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끌어낸다. 그리고 과도하게 노출되고 모든 게 벌거벗겨진 오늘의 포르노적인 풍경에서, 어디에 있는지 모를 에로스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PA



<The Gift> 2019 Oil on linen 122×102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Fine Arts, Sydney



[각주]
1) Tony Magnusson, Bedroom theatre for the exhibition, Conditions for Sprouting Seeds, The Saturday Paper(Visual art: March 12-18, 2022), thesaturdaypaper.com.au/culture/visual-art/2022/03/12/conditions-sprouting-seeds/164700360013480#hrd, 2023년 3월 10일 접속
2) Sigmund Freud, Trauer und Melancholie, Internationale Zeitschrift für Ärztliche Psychoanalyse, 4(6), pp. 288-301
3) Sigmund Freud, Trauer und melancholie: 윤희기·박찬부 옮김, 「애도와 멜랑꼴리」,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열린책들, 2003, pp. 243-252
4) 백수향, 「멜랑콜리의 야누스적 두 얼굴: 벤야민의 멜랑콜리 이론을 중심으로」, 『美學』, 제86권, 3호, 2020년 9월, p. 54에서 재인용
5) 사랑과 성적 주체에 관한 논의가 궁금하다면 다음 서적을 참고할 것 자크 라캉(Jacques Lacan), 『세미나20: 앙코르(Encore : Le séminaire, livre XX)』, 1975


Portrait of Prudence Flint Photo: Karina Dias Pires



작가 프루던스 플린트는 1962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멜버른대학교(Univer-sity of Melbourne)와 모나시대학교(Monash University)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Conditions for Sprouting Seeds>(Fine Arts, Sydney, 2022), <The Call>(mother’s tankstation, 2021), <The Wish>(Fine Arts, Sydney, 2020) 등이 있다. 내면화되고 소설적인 세계를 그리는 그는 2023년 4월부터 5월까지 Fine Arts, Sydney에서 개인전 <Drawings & Studies>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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