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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0, May 2023

팬텀센스

2023.3.24 - 2023.6.28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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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진 현대미술연구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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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얼굴을 떠올리며


유령 감각, 환영 감각 등의 표현으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 ‘팬텀센스(Phantom Sense)’가 암시하듯 전시는 작가 7명의 작업에 나타나는 감각 실험을 조명한다. 각 작품은 두 개 이상의 감각이 연동되는 순간을 조성한다. 전시는 주로 설치, 영상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작품을 유무형의 재료 단위로 세분화해본다면 소리, 언어, 게임, 모래, 향수 등 더 많은 요소가 드러난다. 작품들 사이에 공통분모를 이루는 부분은 미술의 영역에 새로이 유입된 기술의 이용으로 가능해진 감각의 확장을 각자의 방식으로 설계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기념하는 태도를 지닌다는 점에 있다.

장시재, 고휘, 안성환의 작업은 공간을 인식하는 방법을 촉각, 청각, 후각과 연동시키며 끊임없이 변동하는 상태에 있는 현재를 재연한다. 장시재의 <무제_소극적 진동>의 흰 표면에서 투명 접착제가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은 다 마르지 않은 재료의 중간 상태처럼 보이는 순간을 포착한다. 고휘의 <소리 오브젝트와 중첩된 8개의 스피커, 3개의 구조물을 위한 구성>은 일종의 악보를 설계한 작업이며 물리적 공간과 그와 연동된 컴퓨터 시스템의 형태를 띤다. 벽에 비춰진 평면도에는 연주 영역과 음표가 부유하듯 움직이고 있으며, 이때 이 이미지는 기상 예보에서 볼법한 기호와 유사하다.

작가가 만든 이 시스템은 하나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평면도의 관점으로 그리고 공기 중 떠다니는 가상 입자를 통해서 감각하는 길을 내어준다. 안성환의 <Sweet!>는 전시실 규격에 꼭 맞는 PVC 탱크를 설치한 작업으로 안에는 작가의 체취로 만든 향수가 채워져있다. 무작위로 크기가 변하는 이 탱크는 자신의 부피로 공간을 채웠다가 부피가 줄었을 때는 그만큼의 향을 분사해 공간을 메운다. 관람자의 눈이 닿는 높이에서 작품과 공간의 전체 크기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투명한 향은 미약하게나마 공간의 경계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안성석과 염인화는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공간을 구축하고, 그에 해당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한 상태로 관람자의 입장을 요청한다. 안성석의 <T/S>를 통해서 관람자는 바다 위를 달리는 버스를 운전한다. 가상공간이라는 자유를 의식한 채 무법적으로 페달을 밟고 휠을 돌리며 의자의 진동과 엔진 소리를 감각한다. 염인화의 <임포스터 키친>(2022)의 VR 작업에서는 마우스를 클릭하면 화면 속 ‘나’인 서버가 이동하며 손님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이때 관람자는 그 상황에 참여하고 있지만 관여할 수는 없는, 다르게 말하면 책임도 없고 위험도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작가가 제공한 시나리오 속 캐릭터로서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관람자는 낯선 존재의 감각을 입은 채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꿈속처럼 현실적인 책임과 위험이 부재한 공간 안에서 내리는 선택은 ‘나’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두 작가는 현실과의 단절이 아닌 그와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춘 가상공간을 구축하며, 그곳의 도덕적·위계적 체계 안에서 자기 의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시험한다.

후니다 킴과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는 데이터와 소리의 호환성과 실재성을 탐구한다. 후니다 킴의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 수석 시리즈)>(2021)는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수석으로 자연에서 채집한 돌의 데이터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데이터는 돌의 형태를 스캔한 정보와 돌이 발견된 장소의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유전자를 재조합하듯 출처가 상이한 데이터 조각을 접합해 ‘네오 수석’을 만든다. 그리고 이 수석은 표면을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소리로 출력된다.

네오 수석의 데이터와 자연에서 찾은 돌의 데이터는 이처럼 동등한 조건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이질적인 사물과 환경 정보의 조합에서 파생된 상상적 자연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클레멘세비츠의 <종 / 총 (소리단어 시리즈)>(2018)에서는 종과 총을 의미하는 모양의 설치물에서 그것을 연상시키는 소리가 난다. 그 어떤 사전 정보와 한국어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작업을 보았다면 그것은 그저 추상적인 소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만약 시각을 사용하지 않는 존재가 이 작업을 마주했다면? 그는 아마도 소리의 진동이 남겨둔 여백 공간을 상상하며 눈으로 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지형도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지 않았을까?

이처럼 <팬텀센스>에 대한 생각은 매체의 다채로운 면면을 기념하는 전시라는 인상에서 출발했지만, 그 끝에는 작품이 제시하는 감각을 이미 익숙한 것으로 체화하고 있을 유령의 얼굴을 상상하는 일로 옮겨졌다. 이 유령은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지만 간과된 기억 또는 감각일 수도 있고, 인간과는 다른 감각 체계를 가진 미지의 종(species)일 수도 있다. 감각이 먼저 존재하고 역으로 그것의 잠재적 주인을 유추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새롭거나 낯선 것을 둘러싼 낙관, 비관, 단순화의 구멍에서 잠시 떨어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디코딩을 위한 돌 #01(네오수석시리즈)> 2021 모래 3D프린팅, 32비트 마이크로컨트롤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ToFsensor, 온도센서, 스피커 100×100×120cm 사진: 조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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