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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1, Jun 2023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

2023.5.2 - 2023.10.9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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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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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수장고의 개척자들


대전시립미술관이 지난해 10월 수장고를 개방, 공개하는 ‘열린수장고’를 개관했다. 현재 진행 중인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은 개관 이후 열린수장고에 마련된 첫 번째 기획전시다. 전시가 진행 중인 장소가 열린수장고라는 새로운 형식의 공간인 만큼 전시 또한 새로운 형태일 것이라 예측하게 하는데, ‘개척자들’이라는 전시 제목이 비단 작가와 작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사실 수장고와 전시는 상호 공존하기 어려운 단어다. 수장고는 작품을 보존·보관하는 공간으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지만 전시는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열린수장고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열린수장고는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수장고 공간을 관람객에게 개방해 소장품을 더 가깝게 관람하고 작품의 보존 환경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혹은 전시 공간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개방형 수장고를 이미 접해본 관람객이라면 ‘수장고 전시’ 혹은 ‘수장 전시’라는 단어가 크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품의 ‘수장’과 ‘전시’는 사뭇 다른 목적과 역할을 갖는데, 수장의 목적이 작품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관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시의 목적은 정해진 의도에 따라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개방형 수장고, 즉 열린 수장고는 각각의 목적을 가진 수장과 전시의 경계 지점에서 소장품을 관람객들과 최대한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육태진 <숨> 1999 싱글채널 비디오
(프로젝터, VCR, 앰프, 스피커, 어두운 방) 
2분 18초 1,360×320×1,000cm



대전시립미술관의 열린수장고는 미술관 본관 옆 지하 공간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으로, 그간 미술관 로비에 작동을 멈춘 채 설치되어 있던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1993)을 복원하고 이동·배치하며 개방했다. <프랙탈 거북선> 외에도 미술관 대표 소장품들이 수장대와 회화랙에 설치되어 수장고의 형태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거대한 크기로 열린수장고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프랙탈 거북선> 앞의 별도 공간에 전시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이 진행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전시가 개최된 공간은 열린수장고 내에 있는 ‘제6전시실’이다. 일종의 소장품 상설 전시를 위한 공간이 열린수장고라면, 안쪽에 별도로 조성되어 ‘전시실’이라 명명된 공간은 열린수장고와 조화를 이룬 기획전시를 개최하겠다는 미술관의 운영 방침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관리하는 ‘수장’과 관람을 위해 작품을 공개하는 ‘전시’는 공유되기 힘든 영역인데, 이것은 특히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가 사용되거나 시간 기반의 미디어 작품에서 더욱 강조된다. 장비의 노후 문제나 수명 단축의 문제가 예상되는 뉴미디어 작품의 경우 수장고 내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보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시의 영역에서 작동되지 않는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기계, 장비로만 인식될 수밖에 없다.

불이 꺼진 미디어 작품 앞에 관람객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수장과 전시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인데, 제한된 시간을 설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이를테면 <프랙탈 거북선>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라는 약속된 시간에만 운영된다는 점이 수장과 전시를 절충한 해결책의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열린수장고 안에 위치한 전시실에서 한정된 기간 동안 열리는 미디어아트 전시는 수장과 전시 사이의 절충선을 절묘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
1997 비디오 프로젝터 110×110cm



‘개척자들’이란 제목 아래 나열된 3명의 작가는 명실공히 한국의 미디어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국내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이며 한국적 소재를 미디어 기술에 녹여낸 박현기, 현대 사회와 인간 존재의 고독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다양한 미디어 매체로 표현한 육태진, 미디어가 가진 매체적 속성을 감각적으로 전환하고 실제 현실 세계와 영상 속 가상의 경계에서 말을 거는 김해민은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미디어 작업을 해온 작가들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전부 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으로,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뉴미디어 작품 중 한국 미디어아트의 흐름을 짚을 수 있는 작가와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사실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소장품은 미술관의 얼굴이며,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소장품 전시는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특히 열린수장고는 많은 소장품을 관람객과 공유함으로써 그 자체로 미술관의 수집 의도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수집된 이후 소장품의 운명은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전시를 위해 선택되지 않은 작품들은 수년간 빛을 보지 못한 채 수장고에 보관되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작품을 폭넓게 공유하려 하는 것이 수장고를 개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획된 전시처럼 분명한 의도가 반영되기보다는 수장고와 소장품을 그 자체로 노출하는 것이 열린수장고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미술관의 뉴미디어 소장품 중에서도 3명의 작가, 작품 8점을 선정하며 ‘한국 미디어아트의 세대별, 작가별 독자성과 실험성을 조망하는 전시’라는 기획의도를 명확히 밝힌다. 그리고 기획의도처럼 3명 작가의 8점 작품이 각자 독특한 지점에서 한국적인 미디어아트의 독자성과 실험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전시 참여 작가는 공식적으로 3명이지만 전시실 입구에 배치된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은 묘하게 전시의 작가를 4명으로 읽히게 한다.



김해민 <접촉불량> 
2006 싱글채널 비디오 6분



이것은 전시장소가 열린수장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백남준의 거대한 작품이 불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그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미디어 작품들이 전시를 통해 소개되며 미디어아트의 다양성에 대해 다각도로 살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미디어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위시한 열린수장고에서 미디어아트 소장품전이 개최된다는 것은 전시장소의 의미와 맥락이 충실히 반영된 결과다.

한편 제작연도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로 구성된 전시 작품들에는 미디어아트가 가진 시각적 화려함 혹은 기술적 실험 이면에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기술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며 이제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보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디어아트의 흐름과 당시 작가들의 고민은 현재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다. 전시를 통해 참여 작가들마다 개성을 살려 미디어의 물질성과 의미를 개척해나갔던 당시 한국의 미디어아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개별 작품이 가진 시각적 특성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면서도 작품들이 상호 주고받는 영향이 작은 공간에서 느껴지며 미디어아트에 대한 밀도 있는 공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영역을 일구어나간다는 의미의 ‘개척자들’이 열린수장고라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 공간에서 개최된다는 점은 이번 전시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점이다. 수장고 안에서의 전시 경험은 잘 꾸며진 기획전시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체험이다. 과학과 기술, 예술의 조화를 표방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의 미디어 소장품을 관람할 수 있는 <개척자들: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은 전시의 특별함뿐만 아니라 공간의 특별함이 더해지며 전시를 한층 더 흥미롭게 한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개척자들의 실험정신과 관람객 스스로 수장고 공간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능동적인 작품 감상을 권장하는 열린수장고의 목적이 맞닿아 개척자들의 폭을 넓힌다. 한국 미디어아트를 개척한 3명의 작가를 비롯해 수장고에서 전시를 개척한 기획자 그리고 이제 수장고에서의 전시 경험을 개척해 갈 관람객들이 남았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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