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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2, Jan 2021

테크놀로지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

Impact of Technology on Art

칠흑같이 어두운 한 해를 지나 여명을 맞는 마음으로, 2021 신년호 특집은 미래를 조망한다. 우리 주변 세계에 의해 형성되는 예술이기에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예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질 것이라는 예측은 가히 선명하다. 하지만 기술의 영향을 받은 미래 예술의 모습을 명확하게 그리기는 쉽지 않다. 이번 기획은 그 고민과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우리는 먼저 예술과 기술이 걸어온 길을 추적하고 두 영역의 융합 당위성을 확인한다. 이어 인공지능이 참여 작가를 선정하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전시 기획을 들여다보고, 앞으로 그것의 방식 변화와 과제를 가늠한다. 끝으로 기존의 창작 방법론을 넘어 동시대 예술과 기술의 융합형 교육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고 있는지 또 교육이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지 돌아본다. 테크놀로지와 함께 나아갈 예술 생태계의 모습을 구체적인 시선으로 살펴볼 기회다.
● 기획 · 진행 정일주 편집장, 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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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서울과기대 교수, 김주옥 홍익대학교 교수, 손경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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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No. 1

기술과 예술의사회미학적 조건_이광석

 

SPECIAL FEATURE No. 2

큐라트론전시 기획: 판단중지(epoché)의 주체_김주옥 

 

SPECIAL FEATURE No. 3

기술로 인한 예술교육의 변화_손경환





아담 하비(Adam Harvey) <CV Dazzle: Camouflage from Face Detection> 2020 © the artist





Special feature No. 1

기술과 예술의 ‘사회’ 미학적 조건

●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새로운 기술 매체의 출현은,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언급대로 인간 감각의 확장에 가속을 가져왔다. 미적 감각의 확장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기술은 예술 창의력을 촉발하는 붓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자명한 사실은 기술이 인간에게 아주 투명하거나 중립의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기술 설계에 이미 사회의 권력, 편견, 문화, 정서 등 다종다양한 맥락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기술-예술은 대단히사회적인 것과 얽혀있다고 할 수 있다. 뉴미디어 이론가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는 기술-예술의 위상과 관련해, 최근 페이스북에 첨단넷플릭스 세계를 칭송하면서 이른바-디지털아트 선언이란 논쟁적 사족을 남겼다. 그의 동시대 디지털아트 경향에 대한 혹평은 지금까지 기술-예술 작업들에 드러난 이른바 사회 현실과 유리된 미술계의 정체된 미학 작업들에 맞춰져 있다


이를테면, 그는 디지털아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체 기술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앵무새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비현실의 미학적 독백만 있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그는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세계가 더 리얼하고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그의 논평은 여러모로 논쟁적이다. 일단 그가 준거로 드는 넷플릭스의사회적인 것에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플랫폼 영상 기계인 넷플릭스를 그 지향점에 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으킨 논란은 우리에게 기술-예술의 관계 속사회적인 것의 위상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오래된 난제를 다시 환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기술-예술, 그리고 사회적인 것

 

20세기 매체 기술의 진화와 맞물린 예술사를 잠시 복기해보자. 오히려 당시가 지금 첨단의 시대보다 기술-예술 속사회미학적 지향이 꽤 뚜렷했던 듯싶다. 먼저 예술에 미쳤던 사진의 영향을 보자. 20세기 초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사진 기술이 만들어내는 대량복제의 예술 혁명을 일찍이 꿰뚫어보았다. 사진은 작가들에게 빛의 세기와 농담을 통해 기억과 시간을 담아내는 대표 기술이었다. 가령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사진 작업에 미래파와 다다이스트들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그룹들에게 당대의 새로운 사회상과 예술의 가치를 표현하는 데 사진술만큼 잘 떨어지는 표현 매체는 없었다


미래파의 일원이었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나 카를로 카라(Carlo Carrà)의 속도와 운동에 대한 표현들, 큐비즘과 사진의 정지 화면을 반영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존 하트필트(John Heartfield) 등 다다이스트들의포토몽타주기법 등은 사진술에 영향을 받은 대표 사례들이다이 아방가르드 작가들에게 사진 기술은 당대 나치즘과 광기 어린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시각적 매체로 탁월했다어디 사진뿐이랴. 기술-예술의 관계 속사회는 매 시대 미학적 성취를 좌우했다. 가령 영화와 텔레비전은 스펙터클의 권력 장치이기도 했지만, 예술에서 또 다른 미학적 저항 장치였다. 필름 편집 기법을 통해 생동하는 감정선을 표현했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의 몽타주 기법은 소비에트 혁명 사회의 새로운 이상향과 비전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기 드보르(Guy Debord) 등 상황주의자들은 스펙터클 사회 비판에 가장 대중적인 영화와 텔레비전이란 시각적 몰입 장치가 뿜어내는 이미지들을 문화정치적으로전용해 썼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플럭서스(Fluxus)’ 예술운동은 네오-다다적이고 반예술적 지향으로 퍼포먼스,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비디오를 그들의 중요한 예술 수단으로 활용했다.1) 1970년대 소니의 포터팩(Porterpak) 휴대용 비디오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이 게릴라 장치는 대안미디어 운동과 소비자본주의 비판 예술의 시발이 되기도 했다. 포터팩은 사회의 질곡과 상품문화 비판의 목소리를 쉽게 담아내며 주류 시각과 다른 참여형 기술 매체로 자리 잡았다. 예술계에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나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등은 비디오 작업을 통해 미국식 소비문화와 남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 이 휴대 영상기기를 최적의 장치로 활용했다.2)

 




제임스 브리들(James Bridle) <Rainbow Plane> 2014 Installation, Kiev, Ukraine © the artist and booktwo.org





테크노 사회미학의 소멸

 

기술과 예술의 물리적 관계 밀도가 한층 깊어진 것은, 컴퓨터의 발명과 인터넷의 출현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 상업용 컴퓨터의 대중화와 함께컴퓨터 아트가 출현한다. 초기 컴퓨터 아트가 네트워크 혹은 인터랙티브 통신 기술의 속성이 빠진독립 개체형(stand-alone)’ 기술에 의존했다면, 인터넷 통신이 대중화되면서 본격적으로인터넷 아트혹은넷 아트로 진화했다. 전시의 역사와 관련해서 보면, 인터넷의 아키텍처 설계가 처음 기획되었던 1969년 바로 전 해에 런던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이버네틱적 대발견(Cybernetic Serendipity)>이란 기획전은 주목할 만하다.3) 


이는 과학기술을 테마로 삼아 그 역할을 축복했던 최초의 전시였다. 이로부터 예술과 기술 간의 친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전시 기획, 페스티벌, 뉴미디어 예술 연구소 등이 유럽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면서, 신개념 아트의 영향력도 급속도로 확산됐다. 디지털 아트는 컴퓨터 아트에 이어서 1990년대 인터넷() 아트, 뉴미디어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가상 아트, 그리고 이제 데이터 아트, 소셜 아트, 인공지능(AI) 아트 등 디지털 기술 원리를 활용하는 다양한 예술 장르들로 자가 증식하고 있다


그 외에도 디지털 아트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에정보 아트를 두고, 다른 한 축에 창·제작의 생물학적, 유전공학적 표현 형식과 장르적 확대로 이뤄진 생명 아트(life art), 생체 아트(bio-art) 혹은 유전학 아트(genetic art)로 분화되기도 한다여기서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신생 기술이 예술적 창작 행위 그 자체를 압도해 장르화되고 무한 증식되어 만들어진 기술-예술의 과잉 경향이다. 이제 이 증식된 장르적 호명들은 예술의 다양성으로 보이기보단 기술의 과포화로 읽힌다. 어찌 보면 오늘 기술의 사회미학적 쟁점이 사라진 자리에, 기술숭고와 숭배만이 기념비처럼 서 있는지 모르겠다.



기술-예술사 속 전술미디어

 

구소련의 붕괴라는 이념의 세기가 끝날 무렵, 새로운 테크노 문화정치의 급진적 바람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전술미디어(tactical media)’란 신생 아방가르드 운동이 그것이다. 이는 기술-예술-사회(문화실천) 세 영역의 절합을 공식적으로 꾀했던 최초이자 마지막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실천가 듀오 헤르트 로빙크(Geert Lovink)와 앤드루 가르시아(Andrew Garcia)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 문화실천의 새로운 자율적 경향에 주목해전술미디어란 개념어를 만들어낸다.4) 로빙크와 가르시아가 쓴 시대 선언의 파장은 유럽을 시작으로 서구 전체로 확산되면서 다종다기한 예술문화계 실천 지형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주목했던 전술미디어적 문화실천의 신경향이란,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멕시코 농민군 사파티스타(Zapatista)식 고강도 게릴라전뿐 아니라, 예술가와 일반 대중 스스로 전자 네트워크와 함께 구성하는기술정치(technopolitics)’의 가능성이었다.5) 로빙크와 가르시아는 뉴미디어를 매개로, 일상 속 실천적 주체들이 재기발랄한 현실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 스펙터클 문화에 저항하는일상 혁명에 큰 의의를 두었다. 그들이 볼 때 전술미디어의 주요 주체에는 예술가, 실천적 큐레이터, 문화기획자를 포함해 사회운동가, 미디어 운동가, 문화활동가, 해커, 길거리 래퍼, 캠코더 1인 게릴라 미디어, 그래피티 아티스트, 디자이너, 메이커, 평론가 등이 포함된다.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Hostage> 1994 Six-channel video, six channels stereo audio, inter-active laser-beam 

sender and receiver, four silkscreen prints on Plexiglas panels, custom metal support system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Marian Goodman Gallery, London, 2018/2019  © the artist and Marian Goodman Gallery Photo: Thierry Bal Copyright: Dara Birnbaum





실제 전술미디어가 역사적으로 과연 어떠했는가의 여부는 1993년에서 2003년까지 암스테르담 등지에서 이들이 모여 벌였던 비정기 국제 페스티벌넥스트 5(Next 5 Minutes)’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넥스트 5은 특정 문화실천을 화두로 삼아 예술-()미디어-정보 테크놀로지 간의 상호 융합 실험을 응집해 보여줬던 예술 마당 역할을 제공했다. 당시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인 크지슈토프 보디치코(Krzysztof Wodiczko), 미디어 아티스트 케빈 맥코이(Kevin McCoy),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Critical Art Ensemble)의 이론과 전시 작업 등이 특별히 강조됐다


로빙크 또한 전술미디어 활동에 가장 가까운 원형으로 보디치코를 꼽고 있는데, 이는 그가 1980년대부터 “(정치)행동주의, 예술·저항문화, 미디어 그리고 부상하는 기술 실험의 특수한 접합을 누구보다 잘 기획했던 선구자격 예술가란 판단에 근거한다.6) 전술미디어를 정점으로 디지털혁명과 인터넷은 수십 년간 대중의 민주적 기술이자 다양한 사회적 욕망의 번식처가 되었다. 이른바 포스트-미디어 시대 화이트큐브 안팎에서 만인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디지털 문화정치, 예술/문화행동주의, 문화간섭(cultural jamming), 뉴미디어 아트 행동주의 등 다양한 사회 실천과 급진 예술의 횡단과 접합을 이끌었다. 사회 실천적 욕망이 디지털 매체와 온라인 공간에 의해 매개되면서 극도로 활성화됐고 당대 사회적인 것의 미학적 가치를 확장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포스트-디지털’, 예술-기술의 향방?

 

전술미디어로 정점을 찍은 디지털 문화정치의 한 세기가 끝나고 난 뒤, 한 인터뷰에서 로빙크는 기술-예술에 대해잠재 잉여(potentiality surplus)’란 비관적 표현을 쓴 적이 있다.7)  미래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미적 표현이 다채롭게 확장될 것이란 대개의 가정과 달리, 그는 1960-1970년대의 문화정치가 만개하던 시절에 비해 기술로 매개된 예술이 전혀 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아니 그보다 더 퇴화했다고 봤다. 무엇보다 기술 물신이 예술을 압도해가는 기술과잉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외려 그는 동시대 기술이 인간의 성찰 능력을 소외시키고 사물의 이해력을 떨어뜨리면서, 기술-예술에서 현실 사회와의 접점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오늘날포스트-디지털시대 예술 상황은 어떠한가


로빙크의 날선 비판은 오히려 지금 더 잘 맞아떨어진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인공지능, 모빌리티(무인자동차) 기술, 나노기술,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들이 혼성해 만들어내는 동시대 자본주의의 물적 조건은 가히 기술 가속과 폭주 상태다. 디지털 예술은 신생 기술 매체에 부속된 장르들로 해체되는 것도 모자라, 이에 투항해 첨단 기술의 아우라를 갱신하는데 쓰이거나 거대 닷컴 기업들에 자발적인 복속의 길을 택하기도 한다


한때 지녔던 디지털 예술의 급진성은 테크노 자본주의의 야만을 포장하는데 재활용되고, 넷우익 문화와탈진실기계의 가짜 정보를 미러링하기 위해 재전유되고 있다. 디지털 문화 예술적 실천이나 욕망의 정치학은 기술의 가속에 반비례해 빠르게 퇴화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새로운 미디어 감각과 예술의 창작 조건들은 부단히 기술 유희로 퇴락하거나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동력으로 흡수되고 있다.





다라 번바움(Dara Birnbaum) <Transmission Tower: Sentinel> 

1992 Eight-channel color video, eight channels stereo audio, 

two sections of Rohm steel transmission tower, custom-designed hardware and brackets 

Installation view <Operations: The Gulf Wars 1991-2011> at MoMA PS1, 2019/2020 

© the artist and Marian Goodman Gallery Photo: Alex Yudzon Copyright: Dara Birnbaum

 



전술미디어등 기술-예술의 급진적 경험들은 후기자본주의적 광풍 속에서역사적 아방가르드처럼 스러져가고 있다. 이들 사회 미학의 흔적조차 사라져가는 오늘, 우린 앞으로 기술-예술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기술 예속 상황을 벗어나려면 과연 우린 어떤 기술-예술을 지향해야 하는가? 적어도 이 질문들에 적극적으로 답하려면, 기술-예술의 창제작 행위를 더 이상 자본 권력의테크닉스(technics)’를 위한 미적 장신구로 둬선 곤란하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산물이지만 갈수록 다루기가 더 쉽지 않다. 자칫 헛발을 딛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영원히 압도될 수 있다. 20세기 초 매체 기술의 자율 가능성에 비해 오늘의 첨단 인공기술은 복잡한 만큼 이미 처음부터 구조와 권력의 편견을 더 내밀하게 그리고 더 많이 담지하면서 미적용도 변경조차 쉽지 않게 한다. 일종의 자본주의내장 미학(embedded aesthetics)’이 설계 안에 미리 거푸집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화된 테크놀로지 현실 앞에서 기술-예술의사회미학적 감각과 질감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테크노자본의 포획에 맞선 고강도 실천 미학적 구상, 기술주의 너머 작업 토픽의 급진화, ‘포스트-디지털국면 사회적공통감각의 개발이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 궁극의 지향이 마노비치식의 넷플릭스 영상미학의 세련됨이나 AI 알고리즘 기술의 숭고미가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부터라도 예술계 스스로 21세기 비판적 기술미학과 기술-예술의 새로운 창제작 전망과 방법론을 따져 물어야 할 때다. PA

 

[각주]

1) Florence de Méredieu, Arts et nouvelles Technologies - Art Vidéo, 정재곤 옮김, 『예술과 뉴테크놀로지』, 열화당, 2005, p. 28-29

2) 당시 번바움 등 작품 소개는 Michael Rush, New Media in Late 20th-Century Art, London: Thames & Hudson, 1999, pp. 98-99

3) 제도 예술에서 전시를 통해 디지털아트 영역을 공식화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Mark Tribe & Reena Jana, New Media Art, Taschen, 2007, p. 21, 그리고 Rachel Greene, Internet Art, London: Thames & Hudson, 2004, p. 23

4) 그들이 넷타임 메일링 리스트(www.nettime.org)에 실은 「전술미디어의 ABC(1997)와 이의 보론격으로 쓰인 「전술미디어의 DEF(1999)라는 두 짧은 글이 일종의 전술미디어에 관한 중요한 선언문들로 회자된다.

5) Gregory Sholette & Gene Ray, “Reloading Tactical Media: An Exchange with Geert Lovink” in Third Text, 22(5), p. 557

6) Eric Kluitenberg, Legacies of Tactical Media: The Tactics of Occupation from Tompkins Square to Tahrir, Amsterdam: Institute of Network Cultures, 2011, p. 14

7) Sholette & Ray, 위의 글, p. 556에서 인용 및 참고



글쓴이 이광석은 테크놀로지, 사회, 문화가 상호 교차하는 접점에 비판적 관심을 갖고 연구와 비평, 저술과 현장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비판적 문화연구 저널 <문학/과학> 공동 편집주간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일한다. 주요 연구는 기술문화연구, 예술행동주의, 플랫폼과 커먼즈, 인류세, 포스트휴먼 등에 걸쳐 있다. 지은책으로는 <디지털 배신>, <데이터 사회미학>, <데이터 사회 비판>, <옥상의 미학노트>, <뉴아트 행동 주의>, <디지털 야만>, <사이방가르드> 등이, 기획하고 엮은 책으로는 <사물에 수작부리기>,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불순한 테크놀로지>등이 있다. 

 


 


<AI: More than Human> Barbican Centre 16 May-26 August 2019 Alter 3

© Hiroshi Ishiguro, Takashi Ikegami and Itsuki Doi and Tristan Fewings/Getty Images


 




Special feature No. 2

큐라트론전시 기획: 판단중지(epoché)의 주체

● 김주옥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겸임교수

 


2020 7 22일부터 8 19일까지 개최된 전시 <사적인 노래Ⅰ>은 목홍균이 기획했고 8명의 작가, 5명의 협력큐레이터,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5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전시의 큰 주제는기획자와 작가의 사적 관계가 배제된 전시가 가능한가?’였는데, 이를 실험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큐라트론(curatron)’이 사용됐다. 작가는 큐라트론 웹 페이지(http://curatroneq.com)에 공고된 전시 참여자 모집 프로세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데, 이 온라인 소프트웨어 도구에 작가가 정보를 제공하면 업로드된 자료를 알고리즘이 분석해 적당한 지원자를 선정한다.


본 전시의 기획은 분명 목홍균 큐레이터가 담당했지만 그는 대체로 기획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가 선정에 개입하지 않았고, 주로 작가, 협력큐레이터, 연구자들의 일정을 조율하거나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진행 상황들을 체크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러한 일들은 전시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전시 기획에 있어 큐레이터의 업무라 하면크리에이티브 컨트롤(Creative Control)’ 역할을 중요시 생각하고, 또 그것이 기획자에게 큰 의미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수면 아래에 있는 잡무들은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이라는 역할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혹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자잘한 일이라고 여겨지도 한다.


물론 목홍균 기획자 외에도 작가 선정 과정에 자신의 리서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협력큐레이터가 있었다. 5명의 협력큐레이터 역시 알고리즘 플랫폼인 큐라트론에 의해 선정됐다. 그들은 작가 리서치를 한 후 다른 협력큐레이터의 데이터에서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작가 리서치를 하고 작가와 출품작 리스트를 만들 수 있는 협력큐레이터들이 오히려 목홍균 기획자보다 작가 선정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물론 협력큐레이터 중에도 자신의 의견을 만족할 만하게 어필하지 못한다는 것에 약간의 불만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고, 전시 준비 단계에서 배제당한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기획자의 역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쉬운, 전시 일부분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것에 큐레이터로서 결정권을 박탈당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큐라트론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전시 기획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질 수 있다.





세바스티안 버거(Sebastian Burger) <Untitled> 2020 Video, Raspberry Pie



 


기획자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전시 진행 과정에서기획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하는 역할 또는 그들의 존재감, 비인간과 함께하는 인간의 협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 참여자 선정에 있어 큐라트론이 그 역할을 담당하면 그동안 기획자가 독차지했던참여자 선정이라는 눈에 띄게 중대한 역할을 비인간-기계에 양도하게 된다. 우리가 도구적인 측면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컨트롤하지 못했을 때, 다시 말해 참여자 결정권을 뺏기게 되었을 때 인간은 왜 실존적 좌절에 빠지게 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간의 예술, 기획자가 만드는 전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드는 전시를 체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 기획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끌고 갔던 전시가 이번 큐라트론의 도입으로 기획자를 그저 전시의 한 부분, 내부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큐라트론이 스스로 전시 전체를 조망하고 의견을 피력하며 전시를 컨트롤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기획자를 포함하여 협력큐레이터, 작가, 연구자 모두 외부 관찰자임과 동시에 전시를 구성하는 내부적 역할 수행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가끔 이 전시 연구자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획자는 연구자의 역할을 제한하지 않았다. 연구자는 전시 전반에 대해 내부인이자 외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었고, 때로는 전시 진행에 대해 또는 작가 작업에 대해 비평할 수 있었다


필자의 경우 연구자로서 전시에 참여하며기획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참여 작가 중 한 명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큐라트론에 접속해 지원하는 일련의 과정을 분석하고 전시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 또한 목홍균 기획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초기 전시 기획 아이디어 수립에서부터 전시가 끝날 때까지 수행했던 많은 단계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 인터뷰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물을 제출했다. 모든 참여자에게는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지만, 그것의 방식이 제법 열려있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On the Use of Unknown Objects> 2019 Exhibition View Aldea Gallery, Bergen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며 인간과 비인간 주체가 겹쳐진다

 

큐라트론의 도입으로 기존에 생각하던 기획자가 크리에이티브 컨트롤 하는 역할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콘셉트를 짜내며 동기를 만들어 내거나, 작가 리서치를 하거나, 결과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점에서는 기계가 기획자의 역할을 대체하지 못했다. 여기서 큐라트론이 행한 역할은 인간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는 일종의역할 분담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정확하게 말하면 큐라트론은 큐레이터를 대체하지는 못한 것이다. 대신 큐라트론은 기획자의 역할을 일부 변형시켰다. 인간이 전시 전반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기보다 전시에 개입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기계 사이의 협업이 진행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기획자가 작가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복불복의 전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전시가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만이 전시의 기회를 얻게 된다. 작가가 공모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기획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므로 전시를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또한 여기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는 이 알고리즘 플랫폼이 지원자들의 데이터 값을 분석해 선정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지원자가 그에 맞는 양질의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느냐 하는 부분이다.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식의 전환을 뜻한다

 

필자는 인간이 현실에 만족해 안주하고 지금의 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힘보다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에 더 큰 욕망을 느낀다고 본다. 기술의 발달 역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향이기 때문에 과거가 당기는 힘이나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도 새로운 것을 학습해 받아들이고 변화할 것이다. 필자가 2019년 출판했던 책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과 예술-대칭적 인류학의 해법』에서 밝힌 바 있지만, 사실 기술의 발달이라는 것은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을 강요하는 측면도 있다.1) 쉽게 적응하는 사람, 다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뉠 수는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신에게 익숙한 습관을 바꾸는 능동적인 실천을 뜻한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이 평소 익숙하게 생각하던 습관을 없애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인식이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렇듯 <사적인 노래Ⅰ>은 인간과 새로운 기술이라는 비인간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다중의 주체들이 서로 행위능력을 발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기획자가 작가를 선정할 수 없다는 문제는 어쩌면 참여 작가부터 출품작까지 계속되는 우연 발생의 연속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원리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 정해진 절차나 방법을 통해 계산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인간이예상할 수 없는부분의 결과를 우리는우연한 것처럼 여긴다.





폴 바슈(Paul Barsch) <Event Horizon> 2019 Found Cardboard, Acrylic Paint, ABB Robot Arm, Wooden Hand Model, 

Wooden Mannequin Model, Dead Mealworms, Handmade Birchwood Chess Pieces, Handmade Birchwood Fingerbone Chess Pieces 

(Based On Artist’s Hand), Miniature Metal BBQ, Miniature Metal Garden Furniture, Miniature Metal Fences, Transparent Filament





여기서인과적 우연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일어나는 일 또는 일어난 일에 대해 과학적, 논리적 필연성이 보이지 않는 사상(事象)”을 가리킨다. 또한 논리적 필연성이 보장되는 연역적 사고와는 다르게 가능성으로서의 ‘chance’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용이성을 지칭하는 반면, 확률로서의 ‘probability’는 진실성 또는 합리적 믿음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2) 특히 확률론에서의 우연은불확실성(uncertainty)’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그렇기에 우리가 큐라트론이 선정한 참여자를 예측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연적 효과를 상상하는 것은 다분히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본 견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우연의 효과가 아니며 큐라트론의 알고리즘 시스템 속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후설(Edmund Husserl)이 말했던선험적 환원(transzendentale reduktion)’의 맥락에 대입해 보았을 때 보편적 판단중지(epoch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후설은 선험적 환원이 현상학자로 하여금 선험적 주관성과 세계의 지향적 상관관계를 볼 수 있게 해 주리라고 믿었다.”3) 판단중지의 본래 목적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말했듯 “‘결코 의심할 수 없는’, 따라서 필연적인 진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4) 이러한판단중지에 대한 개념을 비인간-기술에 적용해보자면, 인간이 판단하고 진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태도를 중립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인간 주체가 양산해내는 결과에 대한 판단중지이고, 다양한 개체가 서로의 역할을 하는 부분에 대한 중립화 작용이기도 하다. 큐라트론을 통한 전시는 다중적 개체의 세계관과 개체들의 행위성 집합들이 모여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기획자가 주요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이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할을 위해 전시의 안이자 바깥에 위치한 존재의 구성원이 되었던 것이다. PA





큐라트론 홈페이지(http://curatroneq.com) 스크린샷

 


 

[각주]

1) 김주옥,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과 예술-대칭적 인류학의 해법』, 그레파이트온핑크, 2019, p. 25

2) 고은성, 황은지, 「확률과 통계에서 우연(chance)의 의미 고찰」,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Vol. 20, No. 1 (2020), p. 941

3) 박승억, 「현상학적 판단중지와 가능세계」, 『현상학과 현대철학』, Vol. 43 (2009), p. 1

4) 앞의 논문, p. 3

 


글쓴이 김주옥은 현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전시기획미술비평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미디어아트포스트휴먼신유물론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히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 주목한다. 2019년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과 예술-대칭적 인류학의 해법』을, 2020년에는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이 가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안 볼(Iain Ball) <Huhoh (RES Lutetium)> 2019 3d print, Halo 3 poster variable dimensions






Special feature No. 3

기술로 인한 예술교육의 변화

● 손경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

 


4차 산업혁명 시대라 불리고 있는 지금, 국내외의 많은 예술가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 Data), IoT(Internet of Things)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기술 매체의 보급과 확산, 동시대 사회문화적 현상의 인식과 표현에 있어 새로운 질료와 형식의 실험을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노력에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기민한 반응과 실험에 비해 예술교육은 전통적인 장르와 체계, 교육을 위한 제반 사항 구성의 한계 등이 있기 때문에 그리 빠르게 반응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물론 국내외의 우수한 대학에서 예술과 기술(Art & Technology)의 융합에 대해 다학제 또는 학제 간 연구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 첨단 기술 바탕의 전문교육이다. 기술로 인한 예술교육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첨단 기술보다 보편성을 가진 기술이 예술 창작과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Collage by Ryan Gerald Nelson with photography by Bobby Rogers © Walker Art Center

 

 


1. 창작 환경의 변화

 

기술을 활용한 예술 창작 수요 확장의 주요한 계기는 오픈소스(Open Source)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2010년경부터 확산하기 시작한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 3D 프린터로 대표되는 제작 문화의 혁신과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아두이노(Arduino)와 같은 저렴한 마이크로컨트롤러(Micro Controller)의 보급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아두이노는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누구나 소스 코드에 접근, 수정, 배포가 가능하며 다수의 입출력 장치를 통해 상호작용이 가능한 장치를 만들기 용이하다. “이제 훌륭한 것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1)는 아두이노의 창시자 마시모 반지(Massimo Banzi)의 말처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혁신적인 제작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오픈소스를 필두로 한 동시대 기술과 제작 문화의 혁신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장치를 직접 제작, 실험하고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상당히 큰 매력으로 작용했으며, 기술 사회에 대한 메타적 인식과 접근의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유니티(Unity)와 같은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을 위해 개발된 게임 엔진의 보급은 VR, AR 등을 활용한 창작 확산의 중심에 있으며, 인간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인공지능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오픈소스 컴퓨터 비전(Open Source Computer Vision, OpenCV)과 같은 기술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인식을 선사하는 창작 메이트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창작 환경의 변화는 창작 과정에 있어 전통적인 예술 창작과는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인 예술 창작의 경우 작가 개인이 숙지하고 있는 창작 과정에서 숙련된 스킬과 감각을 기반으로 한다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타 분야와의 협업, 공통 언어 사용을 전제로 결과물을 위한 입출력 장치의 설계와 코드(언어)의 이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코드를 작성하는 데 있어 기술 문서와 오픈소스를 찾기 위한구글링과 정보를 읽고 재편집할 수 있는리터러시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달리 말하자면 전자의 창작이 한 개인에게 내재한예술가의 블랙박스에 근거한 결과물이라면, 후자의 창작은집단 지성공유 문화를 바탕으로 하므로예술가의 블랙박스가 창작의 결과물 도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러므로 기술을 활용한 창작은 한 개인의 역량에 전적으로 기반한다기보다 알게 모르게 다원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창작이 오롯이 자기만의 것인 장르 기반의 교육을 받은 예술가에게 공유는 생소한 개념이고, 아무리 쉬운 기술이라고 해도 당장 배워서 자신의 작업에 활용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힘들다.





Stephan Bogner, Philipp Schmitt, and Jonas Voigt <Raising Robotic Natives> 2016 

© the designers Photo: Stephan Bogner, Philipp Schmitt, and Jonas Voigt

 




2. 예술과 기술의 융합 교육

 

필자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 교육에 있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전문가 양성 교육도 중요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호기심과 니즈(needs)는 있으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 기존 예술에서 추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잘 모르는 분야를 같이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창작을 통해 협업의 의미를 알게 될 때, 지속 가능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일어날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업과 공유를 위한 플랫폼 구축, 같이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 형성, 시의성 있는 수업 주제 제시, 수업의 난이도 조절이 중요하다. 특히 수업 난이도 조절은 상당히 중요한데 너무 어려운 기술을 제시하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은 기술적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뿐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지 못한다


물론 기술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초 교육에서는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그들 스스로 정의하게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한 목표라 생각한다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융합예술센터 아트콜라이더랩에서 매 학기 진행되는 예술과 기술 융합형 파운데이션 교육 프로그램팀러닝은 앞서 얘기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팀러닝은 한예종 재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과 함께 동시대 미디어의 사회적 담론과 창작 환경을 다루는 강연, 기술 워크숍, 프로젝트 활동으로 구성된다


특징은오픈소스 바탕의 기술적 소양 교육과 칸반 방식(Kanban System)2)이 도입된 협업 기반 예술 교육’, ‘웹 플랫폼(트렐로(Trello)3), 원노트(Onenote)4))을 통해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는 수업 자료 제공’, ‘프로젝트 활동 가시화를 통한 학생 수업 참여도 모니터링과 운영진, 강사의 기민한 대응 유도’, ‘팀 티칭을 통해 피교육자에게 제시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선 제공과 비판적 사고 형성이다. 아트콜라이더랩은 이러한 예술학교 기반의 융합형 교육 방법론 연구/개발을 통해 장르 예술을 넘어 새로운 분야를 궁금증을 가지고 실험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교육, 지원하고 있다





제임스 브리들(James Bridle) <The Light of God> 2012 Digital Image © the artist and booktwo.org

     




코로나19로 인해 소규모로 진행된 2020년도 1학기팀러닝 2020: Teaching Game’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작품의 사례와 다양한 의미를 알아보고, mBlock5)의 기계 학습(Teachable Machine) 기능을 사용해 학생들이 직접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았다. 그들은자신의 성향을 알아가는 기계(기계 MBTI)’, ‘시를 만드는 인공지능(창작자)과 이것을 관람객에게 파는 인공지능(판매자)’, ‘인간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표정을 학습해 관람객이 입력하는 문장에 따라 표정을 짓는 인공지능을 결과물로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지점은 학생들에게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작품을 같이 구현하는 일종의 연기자이자 작업 메이트였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도구적 관계도 아니었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예를 들어 창의성)를 침범당할까 두려워하는 위협적 관계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은 아날로그 세대가 자신이 오래 사용한 물건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것처럼 자신이 만든 디지털 존재에 어떤 유대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물리적이지 않은 대상에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아날로그 세대인 필자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다. 수업에 참여했던 강사, 운영진, 학생 모두가 인간의 거울상처럼 작용하는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팀러닝 2020 : Another Future without [   ]’ 포스터



 


3. 코로나 시대, 지속 가능한 교육을 위한 실험

 

기술을 다룬다고 해도, 따라 할 수 있는 구조화된 수업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교육의 효과는 참여자들 간에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지식과 가치관의 공유가 수반될 때 나타난다. 이 수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소규모 실기 교육을 열어두었던 학교의 방침과 참여자들의 개인위생 수칙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 덕분이었다. 하지만 언제 악화될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코로나19 상황을 교육 규모의 축소와 시민의식에 기대는 것은 상당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아트콜라이더랩은 2020년 하반기 코로나19 상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면과 비대면 교육을 병행하는 블랜디드 러닝(Blended Learning)6)을 실험하고 있다.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우리 삶에 있어 대체할 수 있는 것이나, 새롭게 채울 수 있는 것에 SF적 상상력을 더해 실현해보는팀러닝 2020 : Another Future without [   ]’는 비대면 방식의 사전 녹화와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강연, 기술 워크숍, 대면 방식으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 비대면과 대면 방식을 병행하는 프로젝트 활동으로 구성된다


특히 실시간 교육의 경우 뉴노멀 트렌드 플랫폼이라 불리는 줌(Zoom)을 벗어나 가상 공간인 모질라 허브(Mozilla Hubs)7)를 사용해서 진행 중이다. 모질라 허브는 사용자에게 FPS(First Person Shooting) 게임과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이를 통해 참여자들의 능동적인 가상 교육 공간 사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웹브라우저로 간단하게 접속 가능하다는 점과 다양한 매체를 삽입할 수 있다는 점, 3D 모델을 사용해 사용자 스스로 모임 공간을 재미있게 꾸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팀러닝 2020 : Teaching Game’ 트렐로 보드

 



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기존에 추구하던 대면을 전제로 한 교육 내용을 온라인(실시간, 녹화)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리가 있으며, 학생들이 수업 중 겪는 다양한 문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또한 학생들이 보유한 컴퓨터 사양에 따라 가상 교육 공간에 대한 사용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에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8)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 배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당장 그 종식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해 우리는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상 공간에 걸맞은 완전히 새로운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랩은 향후 교육에 참가한 참여자들의 만족도, 사용성 조사를 통해 장기화할지도 모를 코로나 시대에 지속가능한 융합예술 교육의 형태를 찾고자 한다. 아트콜라이더랩이 추구하는 예술과 기술 융합형 교육은 기술을 예술 표현의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일상적인 경험에 연결되어 있는 기술과 특수한 경험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을 분리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융합예술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색과 수평적 창작 문화를 통해 우리의 사회문화적 배경 안에서무엇을 만들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다룸으로써 동시대에 대한 복합적 이해와 인간 경험의 확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PA


[각주]

1) 한국형 메이커 무브먼트(K-Maker Movement), “공유 문화의 탄생”, 원문: THEMAKER MINDSET Dale Dougherty, https://llk.media.mit.edu/courses/readings/maker-mindset.pdf

2) 칸반 시스템: 칸반이란 생산시스템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마분지 카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부품에 대한 정보가 기록된다. 칸반 시스템은 특히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시스템에서 유래된 용어로서 JIT(Just in Time) 시스템의 생산 통제 수단이다. 낭비를 제거하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물건을 필요한 양만큼만 만들어서 보다 빨리, 보다 싸게 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3) 트렐로(https://trello.com):  칸반 방식으로 주어진 프로젝트를 시각화 할 수 있는 무료 웹 플랫폼, 팀러닝의 경우 각 학기별 교육 과정 아카이브를 이 플랫폼으로 하고 있으며, 포털사이트에서도 검색이 가능하다. 학생들의 반응과 요구에 따라 수업 회차별 내용을 즉각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팀러닝의 후반부에 진행하는 프로젝트팀 활동 내용은 참여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다. (‘팀러닝 2020: Teaching Game’ 트렐로 보드: https://trello.com/b/t8LhPOa6)

4) 원노트(https://www.onenote.com)

5) mBlock(https://www.mblock.cc):  MIT Media Lab에서 청소년 대상 코딩 교육을 위해 개발된 스크래치(https://scratch.mit.edu)를 기반의 오픈소스 블록 코딩 프로그램으로 확장 기능을 통해 AI, Google Data Sheet, Robotic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6) 블랜디드 러닝: 두 가지 이상의 학습 방법을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학습이다. 일반적으로는 온라인 학습과 면대면 학습이 혼합된 학습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출처: 위키백과)

7) 모질라 허브(https://hubs.mozilla.com): 웹브라우저 기반 무료 가상 모임 공간, VR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8) 디지털 격차: 디지털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계층(階層)은 지식이 늘어나고 소득도 증가하는 반면, 디지털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혀 발전하지 못해 양 계층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글쓴이 손경환은 국민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원 시절 그림에 푹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지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떻게하면 디지털회화에 녹일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실험 욕구 덕분에 지인들과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매번 미끄러질 만한 실험만 골라서 하다 보니 가상과 실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영역과 그 외부 사이의 경계에서 다양한 분야와의 연결을 바탕으로 새롭게 보기를 시도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에서 예술과 기술(Art & Tech) 바탕의 융합예술 기반 교육 프로그램 '팀러닝'을 기획 및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술학교에 걸맞은 융합형 교육 방법론의 실질적인 실행과 구성 방안, 평가 방안을 연구 및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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