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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72, Jan 2021

생명의 공존과 조화: 바이오필릭 시티

Coexistence and Harmony of Life: Biophilic City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느냐(How Dare You)?”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매섭고 날카로운 한 마디가 우리의 귀를 관통해, 뇌리에 박히고, 양심을 찌른 지 어언 2년. 전 세계를 휩쓴 감염병은 물론 거대한 산불, 극심한 폭염, 파괴적인 가뭄과 홍수가 뒤섞인 한 해를 지나 우리는 그간 아무런 죄책감 없이 ‘감히, 어떻게든’ 행하고야 말았던 결과물을 고스란히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절망적이게도 이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전염병의 시대를 헤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아마도 경제적 타격 극복을 위한 개발 계획들이 가장 먼저 행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더 이상 환경을 희생시키는 경제적 도약은 무의미하며, 자연을 배제하는 행위는 있어선 안 된다. 이러한 자각 속 다양한 미래 도시가 논의되는 가운데, 인간과 자연, 생명의 깊은 관계를 조성하는 바이오필릭 시티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획 · 진행 김미혜 기자

Kemi & Niko 'Whareroa Hut' © Commissioned by New Zealand Festival of the Arts Photo: Matt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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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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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필릭 시티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도시계획 방법론이다. 바이오필리아는 독일계 미국인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주창한 개념인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생명(Bio)’에 대한 ‘사랑(philia)’을 내재하며 진화한다. 즉, 인간의 유전자에 본능적으로 자연에 끌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바이오필릭 시티는 일상에 자연을 접목해 다양한 생명체와 공존하고, 궁극적으로 회복탄력성(resilience) 있는 도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포틀랜드, 워싱턴 D.C.를 포함해 캐나다 토론토, 영국 버밍엄, 스페인 바르셀로나, 뉴질랜드 웰링턴, 싱가포르 등 약 25개 도시가 바이오필릭 시티 네트워크(Biophilic Cities Network)에 참여하고 있다. 바이오필릭 시티는 단순히 도시계획에 공원 조성이나, 나무를 심는 행위 등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 고유의 지리적, 자연적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위한 기본적이면서 심화된 고민들, 예를 들면 열섬 효과 억제, 이산화탄소 격리, 손실된 서식지의 재활 및 복원, 도시 생물 다양성의 증가 등에 대한 공인된 해결책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도시와 자연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위한 프로젝트들은 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진행되고, 이는 미학적 요소를 갖춘 구현물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1Stefano Boeri Architetti <Liuzhou Forest City> © Stefano Boeri Architetti


 



웰링턴: 토착 생물의 다양성을 담은 공공미술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은 독특한 지리적 특성과 자연사(Natural History), 문화와 도시 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다. 시는 도시의 특징인 토착 생물의 다양성을 바탕으로우리의 천연자원(Our Natural Capital)’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문화 정체성에 기반을 둔 모든 토착 생물의 역할을 탐구하고 위협받는 종들을 보호 및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는 천연자본을 성장시키고 이를 즐기는 것, 경제를 변화시키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 지역사회의 행동을 장려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을 지향한다. 


특히 시는 사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예술가 혹은 예술단체와 협업한 공공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웰링턴 시의회는 지난 2017년 작가들에게 잡초에 대한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환경적 잡초(Environmental Weed)가 토착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했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환경전문가와 예술가로 구성된 패널들이 선정한 작품은 사진작가 손 매튜스(Shaun Matthews) <침입(Incursion)>이었다. 오타리 윌튼스 부시(Otari Wiltons Bush) 식물원을 포함한 4개 장소 나무와 덤불 사이 높게 전시된 작품은 잡초가 생태계에 침입하는 가장 좋은 예를 찾아 전국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다


여러 이미지를 조합해 천에 프린트한 총 8개의 대형 작품은 일련의 시리즈로 구성됐다. 토종 새와 식물의 서식지를 질식시키는 잡초의 파괴성과 식물 본연의 고귀하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대비해 보여준 매튜스의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좀 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작가도 있다. 아티스트 그룹 케미와 니코(Kemi and Niko)는 지난 6년간 웰링턴에서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연결하는 작업들을 내보이고 있다. 최근 그들이 진행한 <도시의 오두막 클럽(Urban Hut Club)>은 집 앞에 숨겨진 야생 공간과 창조물을 발견케 한다


이들은 카피티 해안(Kapiti Coast)을 따라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한 5개 장소를 선택하고, 지역 사회와 협업해 오두막을 완성한다. 케미와 니코는 해당 지역에서 발견한 생태계 요소를 바탕으로 지역 작가들에 새로운 작품을 의뢰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 소설은 오두막 안에 전시된다. 또한 모든 오두막 안에는 숨겨진 코드가 있어 이를 휴대폰으로 인식해 페이지에 접속하면 소설을 텍스트로 읽을 수도, 오디오로 들을 수도 있다. 이외에 방문객이 글이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도 함께 제공해 지역 생태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온전한 쉼터로서 오두막은 자리한다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연 환경에 의존한다는 믿음에 근거해 웰링턴은 지역 곳곳에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본질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공공미술은 이를 구현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인식을 확장시키고 있다.





Shaun Matthews <Incursion> 2018 Otari-Wilton’s Bush, Wellington


 



포틀랜드: 강의 도시를 감싸는 그린 스트리트

 

미국 오레곤 주의 가장 큰 도시 포틀랜드는 도시 내외부가 자연과 인접해있어 환경에 가장 민감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그중 스톰워터(stormwater, 폭우)는 포틀랜드가 직면하고 있던 중대한 문제 중 하나였는데, 포틀랜드 시의회는 2004년 그린 스트리트 정책 목표(Green Street Policy Goals)를 발표하며 공공 및 민간 개발에 그린 스트리트 시설물을 포함시켰다. 그린 스트리트는 식생을 활용해 빗물 유출을 원천적으로 관리하고 강과 하천으로 오염된 빗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 수질 개선 및 자원 보호를 꾀하는 지속적 전략이다


이러한 근본적 목적 외에도 거리는 포틀랜드 주민의 성향과 교통 환경, 자연적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과감하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몽고메리 그린 스트리트(Montgomery Green Street)는 그 대표적 예로 꼽힌다. 포틀랜드 도심 남부 지역, 서쪽으로 포틀랜드 주립대학교(Portland State University)와 동쪽으로 윌래메트(Willamette) 강을 연결하는 구심점에 위치한 몽고메리 그린 스트리트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많은 곳이다. 주요 계획 전략은 주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스톰워터의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관리, 지역 활성화 및 공동체 문화 조성, 보행자의 경험 향상 등이다. 차례로 살펴보면 시는 먼저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차도 폭을 좁아지게 만들어 운전자가 절로 서행하거나 차량 통행이 제한되게끔 했다. 그리고 식재지의 폭, 가로수의 나이와 크기 등을 고려해 바이오스웨일(Bioswale)을 설치했다


바이오스웨일은 빗물 유출을 집중시켜 파이프에 도달하는 물의 양을 줄이도록 설계된 통로인데, 초목과 흙으로 채워진 이 작은 빗물 정원은 보도와 도로 연석 사이에서 수질오염물질 유입을 막고 일종의 조경수 역할을 수행한다. 몽고메리 그린 스트리트는 생태계 분석 기반의 도시 계획 설계가 직접적인 환경적 이점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도시 가로경관에 미적으로, 조화롭게 통합된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다. 이러한 점에 말미암아 거리는 2006 ‘ASLA 프로페셔널 어워드(ASLA Professional Awards)’에서 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거리는 도시 계획 디자인이 가장 먼저 구현되는 곳이다. 시민들이 공원보다 거리에 머무는 시간이 약 10배 정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린 스트리트는 번화한 도시의 거리가 어떻게 생태 조건을 개선하고 지역사회 정체성을 구성해 이를 유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공공의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이 생물학적 요소와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할 때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

 




Portland, Oregon, U.S.A. 이미지 제공: TFoxFoto/Shutterstock.com




버밍엄: 도시를 넘어 하나의 네트워크를 꿈꾸며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버밍엄은 18세기 산업혁명 중심지로 자동차와 기계 공업을 중심으로 번영했던 곳이다. ‘산업계의 거인’, ‘회색 산업 지역으로 불렸던 시는영국의 첫 번째자연 수도(natural capital city)’가 되겠다고 천명하며 포괄적이고 통합된 접근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를 설계하고 있다. 버밍엄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그린 리빙 스페이스 플랜(Green Living Spaces Plan)은 국가 생태계 평가(National Ecosystem Assessment)를 기반으로 도시의 모든 자연 요소를 평가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발전시키고 시각화하기 위해 영국 예술 위원회는 시각예술 에이전시이자 프로젝트 공간인 솔트 로드(Salt Road)의 트리라인(Treeeline) 사업을 지원한다. 트리라인은 생물체의 특성, 구조 및 원리를 산업 전반에 적용하는 생체모방(biomimicry)을 탐구하는 예술가 주도 프로젝트다. 과학, 지리, 지질학 등의 학술 파트너들이 생체모방과 환경학 연구를 진행하고 이들의 연구에 대한 반응을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제작한다. 특히 트리라인은 2018년 바이오필릭 시티 네트워크인 노르웨이 오슬로(Oslo), 스페인 비토리아-가스티즈(Vitoria-Gasteiz)의 예술가, 큐레이터, 과학자, 환경론자, 대학, 예술단체, 지역사회 등과 협력해 예술작품을 만들고 세미나와 전시를 진행했다. 단순히 하나의 도시가 아닌, 세계 환경의 변화를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모색해나갔다는 점에서 트리라인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Installation view of Treeline Exhibition 1 February-4 February 2018 at Vivid Projects





현재 솔트로드에는 바스크 대학(University of the Basque Country), 바스크 기후 연구 센터(Basque Centre for Climate Research BC3), 버밍엄 대학(University of Birmingham), 버밍엄 시의회(Birmingham City Council)가 참여해 국제적인 협업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바이오필릭 프레임워크(framework)를 마련해 도시에 생존하는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솔트 로드의 이러한 시도는 생명의 공존과 조화를 향한 첫걸음,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5%가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이 되면 68%까지 치솟는다고 한다.1) 대부분의 사람이 살고, 살게 될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다. 우리 앞에 놓인 위기 상황을 누군가는 77억 명이 함께하는 조별 과제라 일컫는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다 같이 F(ail)의 나락으로 떨어지고야 마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지금이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미래 도시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PA


[각주]

1) UN 경제사회국 홈페이지 참조 https://www.un.org/development/desa/en/news/population/2018-revision-of-world-urbanization-prospec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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