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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0, Jan 2015

공공미술을 넘어

Beyond Public Art

각 분야마다 상투적인 안건이 있다. 너무 많이 들어 ‘뻔하다’고 느껴질 만한 논쟁거리 말이다. 정치, 경제 그리고 예술 등 각 장르마다 똑같은 주제를 논의하고 또 논의한다. 뾰족한 결말이 나지 않아 늘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제가 되풀이 의논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주제에 대해 고심하고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미술계의 이런 주제는 무엇일까?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동시대 미술에서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란 명제다. 한 해에도 수 십 개의 포럼과 심포지엄, 강연이 이 주제로 진행된다. 맡은 바 업무가 업무인지라 기회 닿을 때 마다 귀 담아 듣지만, 언제나 명확한 해답을 건네받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난해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부대행사로 마련된 학술세미나의 강연은 좀 달랐다. ‘삶 것’의 양수인 소장이 덤덤하게 내놓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례와 그와 관련된 이슈들은 그 어떤 학구적 이론보다 공공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예견해줬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이때, 가까운 미래를 똑똑하게 예측해야 하는 때, 양수인 소장에게 ‘포스트 공공미술’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가 보내온 답이다.
● 기획·진행 편집부 ● 글 양수인 삶것/Lifethings 소장

'Amphibious Architecture' 뉴욕의 이스트 강(East River)위에 떠 있는 빛의 구름을 통해 수질과 수중 물고기의 움직임을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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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인 삶것/Lifethings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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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축가의 공공예술-시각적 감상의 대상을 넘어서

  

처음 이 글을 의뢰 받았을 때, 그 주제는 Post-Public Art 였다. 뭔가 대단한 새로운 공공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해야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됐다. 하지만, 나는 이론가도 아니고, 예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닌 이상, 지금까지 현장에서 길지 않은 몇 년간 작업을 진행하며 꼼꼼히 메모하고 되뇌었던 깨달음들과 나의 배움의 과정을 공유해 보기로 했다. 따라서 이 글은 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나에게 쓰는 편지’같은 글임을 밝혀둔다. 


공공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도 청계천의 ‘소라’를 보면서, 저게 왜 저 장소에 있을까? 어떤 의미일까? 항상 궁금했다. 혹자는 예술은 그냥 스스로 느끼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고도 하지만,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일분일초마다 수천, 수만 개의 컨텐츠가 생산되고 공유되는 시대에 시각적 감상에 국한된 정적인 조각 작품보다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공공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예술 작업을 하면서 처음 진심으로 보람을 느꼈던 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리빙 라이트(Living Light)> 문자메세지를 통해

 서울시 각 구의 실시간 대기오염정도를 소통하는 작업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소마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던 청계천 공공예술 프로젝트 지명공모에 당선되어 <있잖아요>라는 작업을 완성하고 비디오 촬영을 하기 위해 청계광장을 다시 찾은 어느 늦여름 밤이었다. <있잖아요>는 일방향 반사 유리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박스이다. 시민들이 박스 안에 들어가 다양한 발언을 하게되면, 그 것을 녹음하고 저장하여 광장에서 들을 수 있도록 재생해 주는 일종의 공공발언대 였다. 


한 청년이 <있잖아요>안으로 들어가 퇴직하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메세지를 남겼고, 이어서 다른 청년이 들어가 연인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남겼다.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일까 궁금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녹음 된 메세지가 광장에 울려퍼지는 순간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해 주었다. 광장에 앉아있던 사람들 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만든 작업을 실제로 시민들이 사용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있잖아요> 이전에도 <Living Light>, <Am phibious Architecture>,  <Street Life> 등의 작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항상 시민들의 참여는 미미했었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있잖아요>를 구상할 때는 시민의 참여를 최대화 할 수 있는 나만의 행동강령을 실험해 본 터였기에 시민들의 참여와 격려를 목격하는 것은 굉장한 보람이었고, 이후 비슷한 스타일의 ‘참여적 공공예술’작업을 진행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 당시 구상했던 성공적인 참여적 공공예술 구현을 위한 나만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았다.




<있잖아요> 반값등록금 집회가 있던 

날 작품에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학생



 

1) 참여를 유도하기 좋은 장소에 설치하라!


세상에 아무리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출근길의 지하철 플랫폼에서 걸음을 멈출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참여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찾을 수 있는 장소에 작품을 설치하거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본능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


이전의 작업 <Living Light>와 <Amphibious Architecture>에서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시민들이 공공예술 작품과 양방향적인 소통을 하는 방법을 실현해 보았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였으나 실제로 참여는 미미했다. 스티브잡스의 디자인 과정을 다룬 『Wired』지의 기사를 보면, 애플 아이팟 스크롤 휠의 디자인, 그리고 정지(stop) 버튼이 없이 일시정지(pause) 버튼만 있는 인터페이스는 세번 이내의 버튼조작으로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용자 친화적인 개념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문자 메시지는 전화기를 꺼내어서 메세지창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타이핑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이미 너무 번거롭다. 아무리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이 일상이 되었어도 우리는 답답할 때 직접 이야기를 한다. 이렇듯 말은 우리에게 가장 본능적이고 쉬운 매체이기 때문에 <있잖아요>에서는 시민이 직접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3)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하라!


냉정히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000작가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걸음을 멈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참여를 유도하려면 ‘내가 XXX를 했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있잖아요>에서는 가장 직접적으로 익명의 힘을 빌어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여보세요> 당선안

 



4)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라!


예능프로를 보면 리액션(reaction, 반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반응이 없는 시큰둥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공공예술도 마찬가지다. 참여를 유도하려면 적당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있잖아요>의 초기 운영방식은 박스 안에서 하는 이야기가 동시에 광장으로 전달되는 것이었다. 며칠간 운영을 해보고 시민이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먼저 재생되고 다시 기존의 플레이리스트로 돌아가 그동안 축적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재생되는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이야기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는 모습은 주변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고, 더 많은 참여를 유도했다. 


나는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믿는데,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근본적인 차이는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는가 아니면 의뢰가 없이 작품을 만드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진행할 때는 자신의 예술관을 구현하는 것 이상으로 의뢰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주어진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예술작가는 디자이너적인, 어쩌면 약간은 업자적인 자세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해결책이 기능적인 해결책에만 머무는 흔한 업자와, 예술적, 사회적, 공공적인 가치도 지닌 해결책을 제시하는 디자이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2012년 말 지명공모에 당선되어 서울시청 지하의 시민청 상징조형물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당선된 다음날 거버넌스 위원회는 당선안과는 전혀다른 작업을 요청했다. 박원순 시장의 경청의 자세를 상징할 수 있도록 ‘큰 귀’모양의 조형물을 원했다. 공공예술은 순수한 예술이라기 보다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발주처가 일정한 예산과 목적을 갖고, 특정한 장소에 의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이야기를 녹음하는 신문고와도 비슷한 참여적 기능은 유지한 채, 서울광장에 설치된<여보세요>의 외관은 원안과는 180도 다르게 새로 디자인되었다. 


<여보세요>는 세계 140여 개 팀이 응모하여 당선된 미국 새너제이 컨벤션센터(San Jose Con vention Center)의 상징조형물인 <Idea Tree>의 형제작업이다. 거의 동일한 방식의 시민참여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업 모두 조형물의 물리적인 형태보다는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참여의 방식이 작업의 핵심이었는데, 이 두 작업을 통해 <있잖아요>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성공적인 참여적 공공예술을 위한 행동강령에 중요한 한 항목을 더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다이어그램





5) 자생하는 콘텐츠의 생태계를 만들라!


참여적인 공공예술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참여가 원활할 경우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반면,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자체가 저조하다면 소수의 콘텐츠만이 반복되는 심심한 작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와<Idea Tree>에는 참여자에 의해 입력된 콘텐츠를 스스로 리믹스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이 포함돼 있다. 그리하여 소수의 입력만으로도 자생하는 콘텐츠의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2014년 새로운 작업 하나를 진행하면서 시민의 참여라는 측면에서 나의 시각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거창군에 교통로터리를 조성하면서 로터리 중앙에 조형물 디자인을 의뢰받은 것이다. 교통로터리와 그 중앙 교통섬의 조형물관계는 살펴볼수록 매우 이상했다. 로터리의 효과는 주로 사고가 줄어들고, 공회전이 줄어들고 차량통과시간이 단축되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이는 모두 운전자에게만 좋을 뿐, 시민보행자에게는 오히려 더 불편할 뿐이다. 


중앙교통섬에 흔히 볼 수 있는 조형물 역시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에 로터리 지하에 시민을 위한 지하광장을 조성하고 그 중앙에 거창의 특산물인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거창에는 한국 승강기 대학교, 승강기 연구개발 센터 및 승강기 밸리가 있다) 하늘광장을 조성하는 공공예술 작업을 제안하여 현재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과학에 있어서 중요한 발견의 80%는 해당학문의 외부인이 이루어 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치적으로 정확한지 확인해 보지는 않았으나, 그럴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공공예술이 참여적일 필요는 없다. 조금 더 전통적인 시각에서 조형미를 강조하는 조각 작품들이 필요한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공공예술 작업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던 시민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시각적인 감상의 대상을 넘어서는 공공예술 작업을 앞으로도 진행해 나가는 것이 나의 관심사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양수인은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다. 건축, 참여적 예술, 디자인, 마케팅, 브랜딩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건물, 공공예술, 체험마케팅,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스케일과 매체로 작업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한 디자인 작업이 모두 직면한 과제를 의뢰인의 상황에 부합하는 형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라고 믿으며, 그 근저에는 어떤 ‘것’을 만듦으로써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목표의식을 갖고 작업한다. 그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뉴욕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졸업 후, 이례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컬럼비아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및 리빙아키텍처 연구소장으로 7년간 재임했으며, 2011년 서울에 돌아와 ‘삶것/Lifethings’이라는 조직을 꾸려 활동 중이다. 이 글에 소개된 작품들은 www.lifethings.in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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