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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05, Jun 2015

오늘의 일상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life So Different, So Appealing?

매일 아침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작업에 몰두한 후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갤러리를 찾기도 한다. 여느 날처럼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의 눈앞에 차가우리만치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분명 실내인데 급작스럽게 야외풍경이 등장하기까지. 우두커니 서 있는 남성과 어린소년. 난데없이 거위가 돌아다니고, 공사장표식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저 새하얀 캔버스의 빈 화면, 가벽, 의자, 사다리 등 모든 것이 분명 익숙한데, 왠지 모르게 혼란스럽다. 이는 작가의 스튜디오나 갤러리에서 시작해 결국에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세계를 그린 채지민의 작품 속 한 장면이다. 세상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창조한 그의 그림에서, 이처럼 “평범하고 익숙한, 하지만 기이하고도 낯선 일상”을 발견한다.
● 기획·진행 백아영 기자

메리 치아라몬트(Mary Chiaramonte) 'I Take You with Me' 2015 패널에 아크릴릭 24×30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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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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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뜻하는 일상’. 그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상의 모습은 미술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특히나 보통 삶 속 풍경을 색다르게 묘사해 낯선 장면들을 포착하고, 실제로 존재할 법한 현실적 이미지와 비현실적 요소를 뒤섞어 오버랩 시킨 차재민의 작품처럼, 인간이 살면서 매일같이 맞닥뜨리는 삶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익숙하지만, 그 이면에 드리워진 낯선 모습은 어느 샌가 고개를 들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여기, 규정된 상황을 전복시켜 반란을 꿈꾸는 일상이 있다. 그들의 반란은 익숙한 사물과 상황, 사람들을 화면 안에서 병치시키고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함을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기발한 착상과 화면구성으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새롭게 물들이고, 어쩌면 예술보다 더 다이내믹한 삶을 예술로 승화하는 작가들. 이들은 일상의 소소함을 화면에 스스럼없이 끌어와 늘어놓고, 한 눈에 눈치 채기 어려운 낯선 사물을 군데군데 삽입해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익숙함과 낯설음을 맛깔스럽게 들춰내는 한국화가로 정연지를 들 수 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과 도로 위를 이동하는 차들, 깨알같이 그려나간 도시풍경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따라 올라가보면, 안개가 드리워진 오래된 산수화에서 금방 도려낸 듯 보이는 정자가 있다. 이는 작가가 일상풍경 곳곳에 삽입해 놓은 그만의 안식처이자 유토피아다. 자신의 삶에서 이상향을 찾으려 시도하고 그 공간에서 휴식을 꿈꾸는 정연지의 긴 화폭 안에서 현재와 과거의 익숙한 사물과 풍경이 생명력을 갖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평소에 보아 온 다양한 장면을 비단 위에 서술적으로 나열하고, 이상향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들을 예고 없이 삽입하거나 틈틈이 숨겨놓아 이들이 한 화면 안에서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게 한다.





하이경 <전환(A Change)> 

2014 캔버스에 유채 121×121cm 

 



이은채와 이우림은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삶 속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그 중 이우림이 낯선 풍경을 연출하는데 사용하는 무기는 짙은 원색의 빛깔이다. 녹색의 잔디밭과 풀숲, 흑백 문양으로 표현되는 색감 뿐 아니라 소재를 통해서도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그림 속에서 본 적이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조선시대 풍속화 속을 노닐던 여성들이 한 화면에 빼곡히 들어차있는 그림도 있다. 그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개의치 않는다. 이우림의 조합이 다소 엉뚱하고 능청스럽다면, 이은채의 구성은 자연스럽고 교묘하다. 그럼에도 단숨에 포착 가능한 기이함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둘 사이의 간극을 초월하는 상상의 장소를 만들기 위해, 현대식 방 안 풍경에 전통 풍속화를 그린 액자를 걸어놓거나, 익숙한 해외 거장의 명작을 삽입한다. 이러한 다채로운 연결고리가 하나로 이어져 원초적인 삶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차원을 거듭하는 삶의 영속성을 낳는다.


한편 통상적이고 사소한 순간들, 흔히 볼 수 있는 인물과 매일을 묘사하면서도 묘하게 낯선 뉘앙스를 풍기는 예술가들이 있다. 현대인의 삶 속 한 단면을 담백하면서도 무표정하게 포착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고독과 단절을 노래하는 것.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인물과 삶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러다가도 한 걸음 떨어져 무덤덤하게 관조하는 방식으로 일상적 서사를 완결시키는 작가들을 만나보자. 대표적으로 캐나다 예술가 알렉스 콜빌(Alex Colville)이 있다. 보통의 삶과 일상사에서 드러나는 멜랑콜리한 감정을, 마치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의 인상주의 점묘화를 연상시키는 톤다운 된 색채로 담담히 그려나가는 콜빌. 그의 단순한 묘사법은 오히려 대상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복잡한 세상사를 감내하는 듯한 절제가 돋보이는 그의 그림 속을 살아가는 인물은 평온하고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두렵도록 낯선 인상을 뿜어낸다. 





채지민 <Artificial Situation> 

2015 캔버스에 유채 112.1×145.5cm 

 




한편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우수에 젖은 기운이 화면 가득 녹아있는 서동욱의 그림은 한층 더 무게감 있다. 그가 그린 인물은 웃음기를 잃은 표정으로 시선을 허공에 고정하고 있다. 게다가 작가의 손을 거친 도시풍경은 항상 어스름 짙은 해질녘과 어둠이 내리깔린 밤이다. 작가는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물 개개인과 하루의 모습이 지닌 개별성을 묵직한 컬러의 유화로 표현한다. 현대인의 삶 속에 자리한 내면의 고독함과 허탈함, 지나간 향수를 시각화하는 화가 서동욱은 사람들과 강하게 밀착한 감정을 화면 속으로 끌어와 충돌하게 하거나 나열한다. 그런가하면 하이경의 화면은 삶의 한 귀퉁이를 뽑아내 특정 순간을 고스란히 포착한다. 주로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을 그린 장면들은 등장인물 없이 텅 빈 골목길, 집 앞, 횡단보도, 가게 내부 등에서 따온 편린들이다


사물 자체의 의미 보다는 하나의 씬으로, 버티컬 친 창을 내다보듯 한 숨 걸러 낸 시선으로 흘려보내 무심을 담고자 한다는 하이경의 언급처럼, 개별 오브제가 지닌 특징 보다는 인간이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무료하고 단순한 삶의 한 장면을 포획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며, 그러한 행위를 통해 그 이면에서 드러나는 특별함을 잡아낸다. 하이경이 날씨를 빌어 무심한 시선을 표현했다면, 이여운은 아예 시작부터 차가운 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도시 속 일상을 점유한다. 농담을 머금은 그의 건물은 도식화되어 묘사됐지만, 동시에 흐물거리는 그림자를 숨겨놓고 있다. 과거 도시 속 우두커니 남겨진 인간의 고독함을 묘사했던 그이기에 최근 작업도 그와 다름없이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감성을 대표한다.


지금까지는 회화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다른 매체는 일상을 어떻게 그려낼까? 삶 속에 숨겨져 있거나 가려진 다소 위험한 감정과 상황 등을 극적인 사진으로 연출하는 미국인 사진가 제이미 발드리지(Jamie Baldridge)를 보자.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고 실제 사람을 분장시켜 자신이 만든 공간에 집어넣는 사진 장르인 활인화(Tableau vivant, Living photo graphy)’가 그의 주요 방식이다. 발드리지의 사진에 첨가된 요소는 어느 하나 낯익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가 연출한 상황은 현실을 가뿐히 넘어선다. 깨진 새장을 탈출한, 혹은 자신이 찌그러트리고 도망친 새, 기계가 몸에 연결돼 있는 소녀, 물 속에서 벽시계를 등에 지고 몸을 기울인 남성과, 그가 떨어트렸지만 왠일인지 물에 빠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모자, 자신의 얼굴보다 큰 비누방울을 부는 남자와 비누방울 속 환상의 세계. 이러한 새장, 벽시계, 모자, 하늘을 나는 연 등 일상적 사물을 재해석해 발드리지가 만들어낸 장소는 중력을 거부한 미지의 공간이다.  





서동욱 <Fumee> 2012 

캔버스에 유채 50.5×65.1cm





영국 출신 포토그래퍼 그레고리 크류드슨(Gregory Crewdson)의 이미지도 분위기 자체만으로는 이와 유사성을 지닌다. , 발드리지가 현실의 인물을 초현실적인 공간에 들여왔다면, 크류드슨은 반대로 익숙한 현실 공간에 미지의 피사체를 가져다놓는다. 판타지 혹은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을 떼어놓은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드는 그. 꽤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재현된 방 안 침대, 화장대, 식탁에 앉아있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한창 활동 중인 이들을 스톱모션으로 강제로 멈추어놓은 것만 같다. 매일 오가는 집과 거리, 짙푸른 화면 속에 자리한 이들의 표정과 눈빛은 일관적으로 공허하고 두려움에 빠진 듯 보인다. 이렇듯 사진예술가들은 작품에 실제 인물과 오브제를 등장시키는 것이 가능했기에 신비로움과 리얼리티가 효과적으로 공존하는 화면을 만들어내는데 어쩌면 회화 이상으로 더 탁월한 표현이 가능하기도 했다. 한층 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가 탄생한 것도 이 덕분이다. 


사진매체는 아니지만 발드리지와 크류드슨의 작품과 맥락을 함께 하는 화가를 만나보자. 익숙함 속에서 지극히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어둠과 빛 사이에 위치한 미스테리함 속에서 자극적인 백일몽을 발견하는 그림을 선보이는 메리 치아라몬트(Mary Chiaramonte). 그의 평면이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치아라몬트는 어린 시절 도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져 거주했던 터라 남들만큼 다양한 일들을 접할 수 없었고, 오롯이 자연과 주변 오브제에게서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타 매체의 방해 없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집중해 관찰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치아라몬트. 그는 대부분 그가 보고 자란 자연을 배경으로 독자적인 인물을 표현하며, 여느 장면 하나도 무심코 지나치는 일 없이 작품으로 끌어와 견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마치 공포영화 같기도 한 신비로운 삶의 굽이굽이를 시각화함이 가능했다.





 제이미 발드리지 <Vox Dei, third movement> 

2009 프그먼트 프린트 107×134cm 




이들은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로 분류되기도 하는, 익숙한 일상적 코드를 비튼 기이한 상황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대입한 마술적 현실을 표현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과 새로운 의미가 요구되는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다. 허나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도 결국 이들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현실일 것이다. 초현실로 넘어가기 직전, 현실에 기반을 둔 채 더욱더 리얼리티로 중무장한 그런 진짜 현실. 수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일상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서사들. 실로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좋은 면모이든 거친 단면이든 그것을 발견하고 들춰내 작품으로 끌어오는 것은 오롯이 예술가의 몫이다. 영국 팝아트의 시초인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1956년 작품 제목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를 빌어 묻는다. "오늘의 일상을, 예술을, 그리고 예술 속 일상의 모습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저마다의 일상을 각기 다른 개성으로 노래한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세계를 유랑하며 질문의 해답을 찾아나서는 것은 어떨까


 


알렉스 콜빌 <Embarkation> 

1994 하드보드에 아크릴 폴리머 에멀전

43.2× 69.9cm Beaverbrook Art Gallery, Fredericton

 NB Gift of Harrison McCain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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