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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3, Feb 2016

조각가 피카소? 조각가 피카소!

U.S.A

Picasso Sculpture
2015.9.14-2016.2.7 뉴욕, MoMA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피카소다. 그는 미술의 대명사로 존재한다. “피카소 같다”는 말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표현으로 클리셰 된, 전 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수사가 됐다.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시대적으로 너무 멀리 있는 느낌이고, 동시대 작가들의 이름은 그 난해한 작품만큼이나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피카소라면 귀에도 입에도 착착 감긴다. 한평생 그림만을 그리며 살아온 한 작가가, 이처럼 거대한 대중적 명성을 얻는 일은 피카소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어 보인다. 전후관계가 좀 뒤바뀌긴 했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피카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신화에도 빈틈은 있다. 페르낭드부터 에바, 올가, 마리 테레즈, 도라, 프랑소와즈, 자클린까지 그를 거쳐 간 무수한 여성들의 이름을 외울수 있는 사람도 화가로서의 피카소를 떠올리느라 조각가 피카소를 간과했을 테니까. 어떻게 그토록 단언하는가 하니, 바로 내가 그랬다. 피카소의 공공 조각품도 피카소미술관(Museu Picasso)의 무수한 조각들도 열심히 챙겨봤지만, 여전히 내게 피카소는 청색시대, 장미시대 등의 특정 색채로 기억되거나, 입체파 초기의 콜라주, 콜라주 같은 화면, '아비뇽의 처녀들'이나 '게르니카' 같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회화를 먼저 상기시키는 평면화가였다.
● 이나연 아라리오뮤지엄 큐레이터

Installation view of 'Picasso Sculpture'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2015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Pablo Enriqu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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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아라리오뮤지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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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조각가 피카소라니. 회화작가로선 훈련받았지만, 피카소에게 조각은 혼자서 습득한 기술이었다. 모마(MoMA) 바로 낯설법한 지점, 조각하는 피카소에 주목해 전시를 마련했다. 모마 4층에 마련된 11 갤러리에 141점의 입체조형물들을 풀어뒀다. 갖가지 재료를 세자면 손가락 개수와 비슷하고, 제작된 기간은 1902년부터 1964년까지 60 년이 넘는다. 대부분은 당연하지만 대여 작품들이고, 50 점은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에서 왔다. 700 점의 오브제와 4,500 점의 페인팅을 남긴 다작의 왕이자, 92세까지 살며 장수력을 과시했고, 죽기 직전까지 팔팔한 정력을 과시하며 작업을 이어나간 우리의 피카소다. 조각의 일부로만 영역을 한정해도 미술관 스케일에 잘도 어울린다. 그런데 맙소사, 판화며 드로잉, 이런저런 작업의 파편을 모으자면 5만여 점이 넘는단다. 그래서 내남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를 거장으로 덮어놓고 인정한다. 다작이 걸작을 만들어내는 아니지만, 걸작의 탄생 확률은 높이는 확실하니까. 자신은 일기를 쓰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라고 태연자약하게 말하는 피카소를 보며, 일기쓰기도 힘든 게으른 범인은 한숨 쉬고, 거장의 흔적을 좇기에도 힘이 부친다.    






Installation view of <Picasso Sculpture>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5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Pablo Enriquez






피카소는 일찍이 천재성을 과시했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9 이미 비둘기 데생이 살아있는 생생했단다. 그가 14살에 그린 <페파 아주머니의 초상(Portrait of Aunt Pepa)>(1896) 렘브란트(Rembrandt) 연상시키는 빛과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묵직한 초상화다. 같은 나이에 그린 < 영성체(First Communion)>(1896) 색감, 구도, 형태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클래식을 재현했다. 15살에 그린 <과학과 자애(Science and Charity)>(1897)로는 전국미술전에 출품하고 화가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게 작품이었다고. 평면적 재현 능력이며 조형능력은 그저 타고났으니, 어려움 없이 필요할 적마다 꺼내어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능력을 입체에 적용시켜 보는 것도 딱히 힘든 일은 아니었을 .  드물고 귀한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얻고, 피카소라는 성은 어머니를 따른 미술계 메시아는 앉은뱅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처럼,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로 소머리를 만들고, 뜯어진 냅킨으로 개의 얼굴을 만들었으며, 장난감 자동차로 잘생긴 고릴라 얼굴을 탄생시켰다. 도기도 도예작품도 청동도 석고도 목재도 종이도 철판도, 재료들 나름대로의 특성을 내세우며 입체주의적으로도 조형적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다. 하지만 가장 피카소답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 1945년부터 1949 사이에 중점적으로 제작한 조약돌 작업들이다. 4cm에서 6cm 정도를 최대 길이로 하는 작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에 얼굴표정을 새긴다. 단순함과 익살맞음이 감상 포인트다. 하나, 압생트 위에 압생트 스푼, 위에 각설탕을 올린 위태로운 구도감을 즐겼는지, 컴포지션으로 만든 브론즈 작품이 6점이나 전시됐다.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잔들과 모양은 다분히 입체주의적이다






<Bull. Cannes> 1958 

Plywood, tree branch, nails, and screws 117.2×144.1×10.5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Gift of Jacqueline Picasso i

n honor of the Museums continuous commitment 

to Pablo Picassos art  2015 Estate of Pablo Picasso/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아름다운 시절이던 에포크(La belle époque)’ 전쟁으로 끝나버린 시기인 1914 제작된 술잔들은 과거 압생트에 취한 좋았던 시절을 청동으로 박제화 시키려던 것일까? 아니면 불이 붙을 정도로 독한, 55도가 넘는 술로 정신을 놓은 혹독한 시대를 맞이하고자 했던 것일까? 1939년에 이미 피카소는 모마 회고전을 가진바 있다. 당시 보도자료는 세기에 가장 규모의 피카소 전시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해 끝자락부터 올해 앞자락까지 이어진 이번 모마 전시는 세기 가장 규모의 피카소 조각 전시 기록된다. 모마의 회화 조각 부문 수석큐레이터인 탬킨(Ann Temkin) 큐레이터 엄랜드(Anne Umland), 피카소 미술관 큐레이터 비르기니아 페르드리소트(Virginie Perdrisot) 거대 지상 프로젝트의 수행자들이었다


입체물, 3차원 작품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에 걸맞게 모든 작품을 사방에서 있도록 전시를 주역들. 모마의 전시공간이 새롭게 보일 정도로, 작품관람의 동선을 창의적으로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모든 입체물들이 리듬감과 맥락을 동시에 갖고 적합한 곳에 딱딱 놓였다. 앞태와 뒤태, 옆태까지 꼼꼼히 살펴야 작품을 제대로 것으로 여기는 우리네 미술 덕후들에게 이만큼 친절한 전시가 있었던가? 굳이 물어보면 과장 조금 보태 전무후무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구석 가장자리에서 음습하게, 혹은 벽에 붙어서, 아니면 과도한 바리케이드에 압도된 채로 씁씁하게 관객들의 한편에서 외롭게 부유하던 명작들에 비해, 이번 전시의 피카소 입체물들은 얼마나 축복을 받은 건지. 그리고 수없이 소비되며 살짝 싫증나려 했던 피카소에 대한 재발견의 기회를 제공했으니 얼마나 의미 있는지. 






<Chair> Cannes, 1961 Painted sheet metal

 115.5×114.5×89cm Musee national Picasso, 

Paris  2015 Estate of Pablo Picasso/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하여간 요즘 뉴욕은 파리의 화가였던 피카소를 향한 열기가 영국의 가수 아델(Adele)만큼 뜨겁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슈들도 심심찮게 기사화된다. 옥션 레코드 갱신 기록은 흔한 얘기니 넘기고,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 카타르 왕조가 마리 테레즈 월터(Marie-Thérése Walter) 모델로 <여인의 흉상(Bust of a Woman)>(1941) 두고 소유권 타툼중인 이야기를 남겨둔다. 모마 전시에서도 선보이는 중인 작품에 대해 카타르 왕족은 지난 2014 피카소의 마리 위드마이어-피카소(Maya Widmaier-Picasso)에게서 4,200 달러( 509 2,500만원) 구매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작품의 소유주가 가고시안이라는 . 가고시안은 지난해 5 위드마이어-피카소에게서 작품을 1 600 달러(1,285 2,500만원) 곧바로 뉴욕에 사는 익명의 수집가에게 재판매했다고 밝혔다. 위드마이어-피카소는 카타르 왕족에게 작품을 4,200 달러에 팔기로 했으나 이후 가격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 계약을 파기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카타르 왕족 측은 위드마이어-피카소 측의 일방적인 계약파기로, 본인들과의 거래가 아직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가고시안 역시 이미 전체 대금의 75% 이상을 지불해 완벽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Installation view of <Picasso Sculpture> 

at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2015 The Museum of Modern Art. Photo: Pablo Enriquez





피카소는 1973 심장마비로 사망할 당시 5만여 점의 미술작품을 자녀 4, 손주 8, 다수의 부인과 연인에게 나눴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사랑하는 상속자들이 피카소의 재능 덕에 온갖 부를 누림과 동시에 구설수에 오른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좋았던 피카소는 누구보다 화려한 명성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그림만 그릴 있었으나, 그의 작품을 둘러싼 세계는 어린아이들의 것이 아니었다. 어른스러운 추문들이 얼마나 강력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유명한 피카소의 문장은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나는 열다섯 살에 이미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처럼 그렸다. 덕분에 나는 80 동안이나 아이처럼 그림을 그릴 있었다.”  




글쓴이 이나연은 홍익대 회화과에서 학사를,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미술비평으로 MFA 받았다. 학장은 데이빗 리바이 스트라우스였고, 논문제목은 「한국인 이주 작가들의 틈새 만들기」 였다. 특정 장소에 연관되는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 그리고 결과물에 관심이 많다. 제주, 서울, 뉴욕이 이나연이 가장 관심을 두는 특정 장소들이다. Fresh Art New York_뉴욕 지금 미술』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현재 제주에서 아라리오 뮤지엄 큐레이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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