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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113, Feb 2016

안젤름 키퍼, 망각의 역사를 깨우다

France

Anselm Kiefer
2015.12.16-2016.4.18 파리, 퐁피두센터

과연 인류의 역사는 진보하는가? 그렇다고 수긍하기엔 우리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불릴 만큼 너무나 많은 전쟁과 살생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인간이 흘린 수많은 피를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란 단순히 피가 피를 부르는 재앙의 연속이고 반복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젖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사고들을 마주하곤 한다. 오로지 파멸만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대재앙들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마비시키고, 피와 눈물로 땅을 적신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기사회생하다시피 겨우 살아남은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재앙의 충격과 공포, 슬픔도 잠시 우리는 절대 잊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잊어서는 안 될 과거를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과 고통을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니면 무지한 것인가.
● 정지윤 프랑스통신원

'Ouroboros(detail)' 2014 Verre, metal, plomb, feuilles sechees et plastique 132×90×60cm Collection particuliere Photo ⓒ Georges Ponc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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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프랑스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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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최악의 사건이자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기록된 세계대전이 차례나 연달아 일어난 20세기는 그야말로 피와 광기로 가득 시대였다. 국가, 인종, 종교, 정치이념의 대립은 극에 달했고, 무분별한 폭력과 살상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오랜 전쟁을 겪으며 세계 곳곳은 폐허로 변해버렸고,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무뎌졌다. 매일같이 송장들로 넘쳐나는 곳에서 더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눠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환멸은 더욱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 광기에 사로잡힌 세상 속에서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던 시간, 이것이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생존한 사람들이 말하는 전쟁의 기억이다. 2 세계대전이 종전한 지도 70년이 지났다. 이제 세계대전은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과거의 기록이 되었다. 더욱이 전란의 소용돌이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전후 2-3세대들에게는 옛날에 일어난 일처럼 들려올 것이다






<Osiris und Isis> 1985-1987 Huile, acrylique,

emulsion, argile, porcelaine, plomb, fil de cuivre et circuit 

imprime sur toile 379.7×561.3×724.1cm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urchase through a gift 

of Jean Stein by exchange, the Mrs. Paul L. Wattis Fund, and t

he Doris and Donald Fisher Fund  Anselm Kiefer 

Photo: Ben Blackwell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릿해지는 법이다. 깊은 상처도 세월에 아물어지는 것처럼, 그토록 참혹했던 과거가 점점 우리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잊혀 가는 것이다. 침묵의 사라짐 끝에서 쓰라린 상처를 격렬하게 깨우는 자가 있다. 바로 독일 출신 세계적인 아티스트 안젤름 키퍼다. 그는 1945, 2 세계대전이 종전하던 바로 태어났다. 전쟁이 남긴 것이라고는 잿더미뿐인 황량한 땅에서 태어난 키퍼는 전쟁의 참극을 몸소 겪지 않은 대신, 상처투성이인 전쟁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1969, 나치즘과 2 세계대전을 모티브로 삼은 사진 연작과 회화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키퍼는 단숨에 화제의 예술가로 떠올랐다. 실제 전투가 일어났던 장소들을 배경으로, 나치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과감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가득 채워진 그의 캔버스는 세계 예술계는 물론 많은 관람객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나간 과거사라고는 하나, 아직도 대면하기 힘든 전쟁의 상처와 구태여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역사의 치부를 키퍼는 기어코 건드리고야 것이다. 일각에서는 키퍼의 작품을 두고 선을 넘은 비인간적인 예술이다. 혹은 외설에 가깝다는 냉혹한 비판을 퍼붓기도 했다. 도대체 그는 가슴 아픈 역사의 기억을 계속해서 불러내는 것일까? 그는 그토록 우리의 망각을 저지하는 것일까?






<Ouroboros(detail)> 2014 Verre, metal, plomb, 

feuilles sechees et plastique 

132×90×60cm Collection particuliere 

Photo  Georges Poncet  






지난해 12월부터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는 키퍼의 회고전이 한참 진행 중이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업까지 무려 150 점에 이르는 작품들을 시대 순으로 총망라한 이번 전시 키퍼의 다채로운 예술적 스펙트럼을 번에 살펴볼 기회이자,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와 역할을 가늠해볼 있는 자리이다. 키퍼는 회화, 사진, 조각, 설치라는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확장된 조형성을 구축해온 작가이다. 하지만 회화를 빼놓고는 그의 예술세계를 논할 없을 정도로 그의 커다란 캔버스에서 보이는 시공간의 초월성, 사실적이지만 동시에 시적이고 몽환적인 표현력은 가히 독보적이라 있다. 키퍼의 초창기 작업은 크로키, 수채화, 유화와 같이 순수한 회화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후 서구회화의 특징이 강하게 녹아든 키퍼의 회화가 조금 특별해질 있었던 것은 그가 선택한 논쟁적 주제와 더불어 독창적인 화면구성과 미장센 덕분일 것이다. 나무들로 빽빽하게 우거진 가운데 우두커니 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 자화상 < 속의 사람(Mann im Wald)>(1971) 기원후 9세기에 로마군과 게르만족 사이에 일어난 토이트부르크 전투를 모티브로 작품이다. 유독 그의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라는 장소는 역사적 사건이 재조명되는 무대이자, 게르만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하지만 로마군을 물리치고 게르만족이 승리한 속에 있는 작가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한없이 쓸쓸하고 울적해 보인다



<Fur Paul Celan: Aschenblume(Pour Paul Celan: Fleur de cendre)> 

2006 Huile, emulsion acrylique, 

shellac et livres brules sur toile 330×760×40cm

 Collection particuliere Photo  Charles Duprat  






침울함과 어둠으로 둘러싼 키퍼의 , 이곳은 승리와 영광이 깃든 곳이 아니다. 오히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절대고독만이 맴도는 생지옥에 불과하다. 불타버린 숲과 잿빛의 하늘로 가득 메어진 키퍼의 캔버스 속에서 종전의 기쁨과 환희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전후 세대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라는 것은 고작 어깨를 짓누를 듯한 무거운 죄책감과 잃어버린 정체성뿐이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덮인 황량한 논길, 화염에 휩싸인 마을 풍경들은 키퍼와 같은 전후 세대가 마주해야만 했던 심적 고통이자 사회의 혼돈을 대변한다키퍼의 회화 속에서 보이는 다른 특징은 전쟁의 참상을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적 관점에서 폭넓게 바라보고 화폭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키퍼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있는 유대인 출신의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에게 바치는 <파울 첼란을 위하여, 유해의 (Für Paul Celan: Aschenblume)> 비롯해 그의 「죽음의 푸가(Todesfuge)」를 묘사한 <마르가레테(Margarethe)> 유대인 학살의 참상을 알리는 동시에, 수많은 희생자를 향한 깊은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또한, 키퍼는 이스라엘, 이집트,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접한 히브리, 이집트문화, 불교, 유대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를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Shevirath ha Kelim(La Brisure des vases)> 

2015 Verre, metal, plomb, 

ceramique, cendres et encre 210×121×50.5 cm

 Collection particuliere Photo Georges Poncet






어두 컴컴한 땅으로부터 천상을 향해 세워진 <치천사(Seraphim)>(1984) 사다리, 10개의 광선으로 깨어져 버린 신의 빛이 인간에게 불꽃으로 전해졌다는 카발라의 철학을 담은 <용기의 파괴(Shebirat Ha Kelim)>(1990), 고대 이집트 망자의 신으로 알려진 오시리스와 죽은 그를 다시 살려낸 이시스의 신화를 재현한 피라미드는 어둠과 , 죽음과 부활, 파괴와 창조라는 우주 만물의 순환성을 보여준다. 어둠 뒤에는 반드시 광명이 찾아오고, 죽음은 생명으로 이어지며, 파괴는 창조의 밑거름이 된다는 믿음에는 과거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과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 아무도 없는 키퍼의 작업실 바닥 중앙에 부러진 자루가 꽂혀있다 칼의 주인은 다름 아닌 <니벨룽의 노래(Nibelungenlied)> 주인공, 지크프리트이다. 오늘날까지 게르만족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회자되는 지크프리트 왕자는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가 열렬히 추앙했던 자이기도 하다. 그런 자의 칼이 부러졌다. 민족과 국가의 정신이 깃든 부러진 , 이것은 세기를 피로 들이고 자신마저 추락해버린 독일의 모습과 같다. 사라져 가는 기억을 깨우며, 키퍼가 그토록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혹독한 자기반성이 담긴 부러진 칼이 아니었을까. 얼마 , 위안부 협상안이 타결됐다. 위안부, 보기만 해도 가슴 아픈 단어다. 그런데도 절대 잊혀서는 것이다. 과거로 회귀할수록 미래로 향해간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과오를 범하는 것보다 우둔한 일은 진심 없는 사과, 성찰과 반추 없는 망각이다.   






<Heroisches Sinnbild I(Symbole heroique I)> 

1969-1970 Huile et fusain sur toile 

260.5×150cm Collection Wurth, Kunzelsau 

Photo  Jorg von Bruchhausen, Berlin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Vincennes-Saint-Denis)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현대예술과 뉴미디어아트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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