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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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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Title A to Z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봉 당시 돌풍을 일으켰다. 허나 유명세를 탄 이 영화는 원제 “Dead Poet's Society”와 전혀 딴판으로 번역됐단 사실로도 화제가 됐다. 여기서 말하는 ‘society’는 한국판 제목에 있는 ‘사회’의 뜻이 아니다. ‘협회’, ‘모임’을 뜻하기도 하는 society는 영화에서 극중 학생과 선생이 만드는 문학 동아리의 이름일 뿐이다. 즉, 직역하면 ‘(죽은 시인들이 지은)고전 시 협회’ 정도가 되는 것. 그러나 이 틀린(?) 제목은 오히려 영문 제목보다 영화 내용을 더 잘 반영했단 호평을 얻었다(한 평론가는 오역이 걸작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고전 시 협회'로 개봉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죽은 시인의 사회]만큼 흥행 성적을 낼 수 있었을까? 이렇듯 제목은 한 편의 영화든 책이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대중들은 제목을 보고 선택을 내리기도, 제목을 통해 그 줄거리를 예측하기도 한다. 「퍼블릭아트」 또한 특집 타이틀을 비롯 모든 기사의 제목을 정할 때 엄청나게 고민한다. 미술 전시도 예외는 아니다. 텍스트가 흔치 않은 미술에, 몇 안 되는 글자를 접할 수 있는 것 바로 ‘제목’ 아닌가? 관람객은 제목을 통해 전시의 흐름과, 작품이 담고 있는 맥락을 유추하려 하기 때문에 미술에서 전시 제목은 그만큼 큰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면 전시제목은 과연 무슨 역할을 하며, 어떻게 지어질까? 과연 전시제목도 유행을 따를까? 이번 특집은 중책을 짊어진 전시제목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 기획 이효정 기자 ● 진행 편집부

멜라 자아스마(Mella Jaarsma) 'Until Time is Old' 2014 sea urchins, stainless steel, thread, clips, fabric 80×280×150cm Courtesy the artist Photograph- Mie Cornoe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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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Ⅰ_정민영

제목, 전시를 춤추게 하다

 

SPECIAL FEATURE Ⅱ_이효정

제목, 트렌드를 탐하다

 

SPECIAL FEATURE Ⅲ_백아영

전시제목의 시대적 흐름, 네이밍에서 브랜딩으로



 


 

피터 윌리엄 홀든(Peter William Holden)

 <아라베스크(Arabesque)>

 

 



Special feature Ⅰ

제목, 전시를 춤추게 하다

● 정민영 미술 칼럼니스트

 


‘이중섭은 죽었다’


3월 셋째 주 월요일, 서울미술관을 지나다가 본 전시 제목이다. 이중섭의 얼굴이 인쇄된 플래카드에 저 제목이 박혀 있었다. 궁금했다. 이중섭이 죽은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다시 그것을 확인 사실하는 듯한 제목은 뭐지? 의문은 곧 풀렸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것은 이중섭의 일생을 죽음에서부터 탄생까지 역순으로 보여주는 기획전 제목이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라고 한다. 이중섭 전은 개최할 때마다 관람했음에도, 저 야릇한 제목에 낚여 다시 가슴이 뛰었다. 



제목은 ‘삐끼’다


제목은 전시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는 ‘파라텍스트(paratexte)’라는 개념으로 책의 구성요소를 설명한 바 있다. 즉 제목, 저자 약력, 헌사, 발문, 차례 등 본문 텍스트를 제외한 모든 요소를 그렇게 불렀다. 이 개념에 기대면, 전시의 제목도 파라텍스트가 된다. 전시에 기생하는, 곁다리 같은 존재가 제목인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전시 내용을 저장한 채, 홍보에 헌신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제목은 관람객의 기대심리를 자극한다. 나아가 관람 과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사실 전시장에 가기 전까지는, 그것이 좋은 전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관람객은 ‘좋아 보이는 전시제목’을 통해 ‘좋은 전시’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좋은 전시’는 ‘좋아 보이는 전시제목’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말하는 ‘좋아 보이는 전시제목’ 이란 ‘이 전시에는 이런저런 작품이 출품되어 있다’가 아니라 ‘이 전시에는 진짜 맛있고 재미있는 이런저런 작품이 출품되어 있다’라는 점을 암시하는 제목을 말한다. 기획자는 매혹적인 관람 단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작품에 의한, 작품을 위한 잔치가 전시인 까닭이다. 역량 있는 작가도 중요한 관람 단서가 되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 결정적인 단서는 무엇보다도 제목이다.

 




지지수 <꽃밭에서 | 가짜 종이꽃 접기>전

(2015.12.15-2016.1.20, 대안공간루프) 전시전경  




제목은 ‘첫인상’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상대방 인상의 90%는 처음 본 순간(30초 안)에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첫인상에서 받은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고, 강화되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신문에서 가장 먼저 읽는 것이 헤드라인(제목)이다. 제목을 보고 나서 해당 기사를 읽을지 말지 결정한다. 책에서도 제목부터 본다. 제목이 매혹적이면 책을펼쳐서 읽게 된다. 요컨대 기사든 책이든 제목이 첫인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전시에서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전시회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존재가 제목이기 때문이다. 맨 앞에 있기에 중요하고, 가장 먼저 보이기에 신경 써야 한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고 마음을 훔칠 수 있어야한다. 


전시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관람객을 사로잡지 못하는 제목은 결국 알맹이도 보여주지 못한 채 다른 전시들 속에 묻히고 만다. 제목은 중요한 관람 단서가된다. 제목을 읽은 ‘독자’를 ‘관람객’으로 전환시키는 마법의 효모가 제목이다. 싱거운 것보다 매운 것이 좋다. 청양고추처럼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옛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부분이 전체를 대변하고, 전체가 부분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제목은 짧은 문구 속에 전시회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흡인력 강한 제목은 좋은 첫인상을 줌으로써 경쟁력의 우위에 서게 한다. 전시회에서 첫인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 바로 제목이다. 

 


제목은 ‘홍보’다


제목 짓기는 전시회의 개념을 정의하는 일이다. 제목을 짓는 과정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한번 짓고 나면, 해당 전시를 정의된 제목으로 부르면 된다. 편리하다. 제목은 의사소통의 편의성에 기여한다. 제목의 편의성은, 어떤 전시회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은 상황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럴 때 전시회 광경을일일이 묘사하며 상대방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제목이 있으면 그것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제 아무리 두꺼운 책도 내용을 장황하게소개할 필요 없이 제목 하나면 통하는 것과 같다. 제목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전시 내용의 압축 표현이 1차적 기능이라면, 홍보가 2차적 기능이 된다. 이들 기능은 동시에 작동한다. 이때 기획자가 더주목해야 할 기능을 2차적 기능, 즉 홍보다. 전시 내용을 대변하는 제목 짓기는 대부분 전시 기획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러나 그것을 홍보의 관점에서 가공하여 매력적으로 상품화하기란 쉽지 않다. 제목은 철저하게 해당 전시를 보디가드하면서 홍보에 헌신하게 빚어야 한다. 전시회가 매력적임을 점잖게, 혹은 강렬하게 조형해서 부단히 관람객 구애에 나서게 해야 한다.





<응답하라 작가들>전

(2014.11.28-12.21, 스페이스 오뉴월) 전시전경  





제목은 ‘갑’이다


유념할 사항이 있다. 제목을 대하는 기획자의 입장과 관람객의 입장이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기획자는 전시 내용을 바탕으로 제목을 짓지만(전시 내용→제목짓기), 관람객은 제목을 통해서 전시 내용(제목→전시 내용)으로 진입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제목이 전시의 부차적인 요소여서자칫 소홀할 수 있다. 전시의 본질인 내용만 좋으면 됐지, 제목 짓기에까지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관람객은 부차적인 요소인 제목을 통과해서 전시회로 들어간다. 조금 과장하면, 관람객에게 전시 내용은 제목에 딸린 부록처럼 보일 수 있다. 제목이 ‘갑’이고 전시 내용이 ‘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제목이 중요하다. 기획자는 부단히 관람객의 입장에 서서 제목을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제목은 관람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 관람객은 전시회를 보기 전까지, 즉 전시회 관람을 결심하기까지 제목의 표정에 영향을 받는다. 제목 짓기에서, 부단히 관람객의 심정으로 문안을 검토하고 맛을 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신의 기획전에 한 자부심으로 충만한 기획자는 미술계의 제목 관행에 젖어있는 탓에 관람객의 입장에 서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홍보 전략의 차원에서 볼 때, 제목 짓기는 전시 관람률을 높이기 위해 고도의 스킬을 구사하는 작업이다. 전시회에는 기획취지에 맞는 작품만 있으면 된다. 제목따위는, 실용적인 면에서 보면 없어도 그만이다. 전시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변적 요소인 까닭이다. 기획자의 메시지는 작품 구성에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제목을 붙이는 것일까? 전시를 더 많은 관람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작명에 공을 들인다. 기획자는 제목으로 발언한다. 제목에는 기획자의 사고나 가치관, 감각 등이 고스란히 담긴다. 제목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기도 하다. 제목은 뛰어난 홍보맨이다.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이끌고, 전시를 즐기게 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게 만든다. 전시 개막 전에는 ‘앞으로 개최될 전시’를 널리 알리고, 전시 기간 중에는 전시를 보고 뜯고 씹고 맛보게 한다. 이 두 단계에서 제목은 전시회의 부속물임이 분명하다. 전시회가 끝난 뒤에는 어떨까. 상황이 바뀐다. 전시회가 제목의 부속물이 된다. 제목이라는 USB에 압축 저장된 전시회는 제목을 통해서만 호출된다. 평문에서든 미술사에서든 전시회는 제목으로언급되거나 제목과 더불어 서술된다. ‘이미 개최된 전시’를 오랫동안 빛내는 것도 다름 아닌 제목이다.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전시회는 끝나면 제목을 남긴다. 때로는 잘 지은 제목 하나가 열 홍보맨 안 부러운 법이다. 






조성묵 <빵의 진화> 2008 폴리우레탄 가변설치  



 

제목은 ‘바지사장’이다  


제목에는 제목만의 ‘원맨쇼’가 있는가 하면, 부제가 동행하는 ‘투맨쇼’도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제목은 ‘넘버1’으로서, 맛깔스러운 표정과몸짓으로 관람객을 호객하는 행위가 주요임무다. 반면에 ‘넘버2’인 부제는 ‘넘버1’이 유인한 관람객에게 전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준다. 직접적인 전시회 소개는 2인자인 부제가 담당하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시 내용을 품은 ‘넘버2’를 제목으로 삼으면 된다. 그런데 다시 별도의 제목을 지어앞세우고 자신은 2인자로 물러선다. ‘넘버2’는 ‘모태 범생이’여서, 독자의 재미나 호기심 자극 유전자가 약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넘버2’는 정직하게 전시회만 대변한다. 그래서 호객성이 강한 제목을 앞에 배치하여 독자를 휘어잡게 한다. 


그리하여 ‘넘버1’과 ‘넘버2’는 합동으로, 독자를관람객(독자→관람객)으로 변화시킨다. 제목마다 표정이 다양하다. 그것은 제목 자체에서 생성되는 표정이기도 하지만 제목의 느낌에 걸맞게 디자인된 서체나 크기, 색상 등이 연출하는 표정이기도하다. 제목은 체형이나 목소리가 크다. ‘제발 나를 봐 달라’며 온몸으로 연기한다. 또 그렇게 연출해야 한다. 관람객의 가슴을 훔쳐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종종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편승하는 이유도 관람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다. 당대에 익숙한 유행어, 책이나 드라마 제목 등을 차용하여 제목을 지을 경우그만큼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다. 일단 익숙한 용어 때문에, 분야는 낯설지만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보이게 된다.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 같은 제목이 그렇다. 이는 매년 개최되는 한 아트페어의 제목으로, 직장에서 ‘과장’급이면 작품을 구입할 만한 여건이 된다는 점에착안한 의미 있는 제목이다. 아트페어나 옥션 같은 미술시장의 활성화라는 큰 흐름을 타고 있는 제목이기도 하다. 또 2014년에 열린 기획전 <응답하라, 작가들>도 눈길을 끈다. 한 평자에 따르면, “노동자로서 예술가, 미술계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생계를 고민하는이 전시는 우리 시대 순수 시각예술인이 겪는 고군분투기가 그려진 작업과 이들의 생존을 위한 자료로 채워진 예술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제공했다.”(신현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한 케이블티브이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이 제목은 전시회를 동시대의 것으로 호흡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소마미술관의 기획전 제목도 주목된다. <소마 인사이트_지독한 노동>이 그것. 이 전시는 “오랜 시간의 신체적·정신적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작품 또는 작품을만들어내기까지 준비, 조사, 수집, 기록 등 지난한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미술 전시와 노동이라는 예기치 않은 분야의 조합이호기심에 불을 지핀다. 최근 전시만 해도 <백년의 신화>(변월룡전) <어둠 속의 변신>(주재환전), <미끼대왕>(이주리전), <아름다운 미망인의 봄>(최봉림 사진전), <춘천 고고학적기상도>(임근우전) <만일(萬一)의 약속>(임민욱전), <꽃밭에서|가짜 종이꽃 접기>(지지수전) 등 제목이 감각적인 몸짓으로 관람객에게 추파를 던진다.

 




토미 웅거러(Tomi Ungerer) <The Bait> 

2010 Collage 44.5×33.3cm 

The Tomi Ungerer Collection, Ireland 

ⓒ Tomi Ungerer




전시는 제목으로 산다


제목도 과거에는 미술계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용어 사용이 주였다. 미술도서가 전문서 위주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인이 미술에 관심이 있으면, 전공자들이 보던 전문서를 함께 읽어야 했다. 그 결과, ‘미술=난해한 것’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갔다. 미술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거나 있어도 극히좁았다. 그러나 시대는 급변해서 인터넷의 발달과 전자기기의 일상화로 사람들의 감각도 달라졌다. 미술 관련 정보도 핸드폰만 있으면 전 세계의 미술 동향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누구나 세련된 글과 제목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문어체보다 구어체가 대세다. 이에 따라 제목도 서서히 관람객의 입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멋의 맛>(조성묵전), <진실한 남자>(정주아전),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서울미술관 기획전), <백세청풍―바람이일어나다>(김병기전), <부산을 사수하라> (강용석 사진전), <육갑, 병신―비가 나를 맨발로 걸어가게 한다>(최광호전), <담배 한 갑의 무게>(최병소전), <74㎝>(김도균·이은우 2인전), <내숭놀이공원>(김현정전) 등 서술형이거나 일상어로 독자에게 어필한다. 제목은 앞으로도 우물(미술계) 밖을 지향하며, ‘비 관람객’을 관람객으로 만드는 데 적극 나설 것이다. 예전에는 ‘전시회를 어필하라’가 기획자에게 부여받은 제목의 임무였다면, 이제는 ‘전시회를 어필하고, 상대를 움직여라’가 제목의 임무다. 어필하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관람객을 움직여야 한다. 가슴을 뛰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제목은 허우대만 멀쩡한 백수와 다를 바 없다. 제목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제목이 춤을 추면 전시회도 춤춘다. 제목은 전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글쓴이 정민영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때 예비화가로서 각종 인문서를 미친 듯이 복용하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문학에 눈이 멀어 점차 미술 바깥의책에 빠져 살았다. ‘우연히’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단행본 편집자로 출발하여, 미술잡지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미술현장을 체험했다. 지금은 미술전문 출판사 아트북스의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간간이 미술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취미가 직업이 된,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그동안 몇 권의 공저에 이름을올렸다. 

 



주재환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8,601> 2010

 캔버스에 냄비, 돌, 사진복사 70.8×53.7×11cm


 



Special feature Ⅱ

제목, 트렌드를 탐하다

● 이효정 기자

 


세상에 유행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있을까? 특히 유행에 민감한 한국에선 패션을 필두로, 메이크업, 음식, 운동, 여행지, 서적, 소셜네트워크 등대중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하나의 유행으로 형성돼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전시제목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해, 전시들은 막을 올리고 내리기를 수백 번을 반복한다. 물론, 다른 매체에 비해 유행이 삽시간이 바뀌는 경향이 크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만큼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무시할 수 없을 것. 과연 최근 강타한 예술계 전시제목 트렌드는 무엇일까? 이에 「퍼블릭아트」는 2015년 1월을 기점으로 최근 모습을 드러낸 전시제목을기자의 눈으로 훑고자 한다. 





박형지 <무제(벚꽃놀이 3)> 2015 린넨위에 유채 

200×160cm 이미지제공: 하이트컬렉션  





제목, 타장르와 융합하다


사이먼 몰리의 <키스 미 데들리(Kiss Me Deadly)>, 안규철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이 세 전시. 그러나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타 장르의 제목을 인용했다는 점이다. 각각을 살펴보자면, 로버트 알드리치(Robert Aldrich)의 영화 <키스 미 데들리> (1955),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그리고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1919)에서 전시제목을 따왔다. 왜 타 장르의 타이틀을 인용했을까 하니,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그 예로 살펴보겠다. 예술가의 방황과 찬란한 예술혼에 대해 그리는 소설로, 주인공클링조어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술과 여자로 허송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삶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을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자화상이지만, 그림이 생김새를 유추만 할 수 있을 뿐 실제 그 그림이 어떻게 생겼는지 독자는 알 턱이 없다. 이미지를 상상할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놓는 소설의 특징이자 강점 때문이다.  


지난해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은 앞서 언급한 헤세의 소설을 시각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전시 또한 클링조어 마지막작품인 초상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작품들을 통해 헤세의 문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하여 머릿속에 자화상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문학이 지닌특징을 차용한 전시는 마치 한편의 이미지 북을 읽는 것처럼 다른 방면으로 접근해 클링조어의 자화상이 어떠한지 유추하도록 한다. 이미 입증된 작품의 스토리를 재해석해 이미지를 통해 또 다른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 이러한 방식은 이제 단일 작품 하나하나 만을 개별적으로 감상하는 전시의종식을 알리고, 내러티브가 있는 전시를 표방하는 움직임이다. 이런 타 장르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제목의 열기는, 올해에도 계속된다. 올 9월 개막을 앞둔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제목 또한 <네리리키르르 하라라(Neriri Kiruru Harara)>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등장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화성인의 언어라 하니, 앞으로 이 유행은 당분간 이어질듯하다. 

 




에두아르도 나바로(Eduardo Navarro)〈Horses Don’t Lie〉 

2013 시간 기반 퍼포먼스 Alec Oxenford 개인소장 

사진:Indicefoto  




클래식의 강세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매년 해당 연도를 이끌어갈 트렌드 키워드를 예측하는데 지난해에는 ‘럭셔리의 끝, 평범(End of luxury: just normal)’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패션계를 강타했던 ‘놈코어(Normcore)’처럼 평범함과 단호함이 럭셔리를 넘어 특별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란 ‘심플한게 최고다’는 예측에 전시 제목도 영향을 받았다. 이는 바로 작가의 시리즈 명을 그대로 전시제목으로 차용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가장 안전한 노선을 택하는 이 방식은 극히 평범하며,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현재 트렌드 중 하나로 선정한 이유는 평범함이 두각을 드러내는 전반적 흐름과 일치할 뿐 아니라 고전(?)의 강세는유행 속에서도 유효하단 것을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 이 작명법은 보통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시리즈를 전시 제목으로 차용한 가장 큰 이유는 그 시리즈가 전시의 주인공임을 강조하기위해서라 볼 수 있다. 해당 전시의 대표 격인 시리즈 명칭이나 가장 많이 출품된 작품이 그 시리즈에 해당할 경우 또는 새로운 신작 시리즈를 공개할 때자연스레 제목 또한 시리즈 명을 따라가는데,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의 개인전 <자가해체8: 신병>은 작가의 ‘자가해체(Autodestrucción)’ 시리즈 중 한국에서 제작된 8번작을 전시 제목 전면에 내걸었으며, 윤정원과 천성명은 각각 자신의 대표 시리즈인 ‘최고의사치_라 스트라바간자(La Stravaganza)’와 ‘부조리한 덩어리’를 그대로 사용, 전시의 주인공이 해당 시리즈란 것을 넌지시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정직하기 그지없는 방법은 동명의 시리즈를 중심으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도모한다. 이런 정통법이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하니, 간결함의 힘은 여전하단 트렌드를 전시제목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안나 코닉(Anna Konik) Installation view of 

<Strach i Zauroczenie (Play back (of Ire`ne))> 

at Atlas Sztuki Lodz, Dominik Szwemberg  




블록버스터 전시, 스토리를 입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고흐(Vincent van Gogh), 가우디(Antoni Gaudi)와 같은 예술가들은 이름만 들어도 작품이 바로 떠오르는 이미 ‘입증’된 인물들이다. 이름만으로도 관람객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한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이전 블록버스터 전시의 부제를 살펴보면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 <빛의 화가 모네> 등 꽤 높은 비율로 해당 작가 사후에 미술사적 평가에 의해 얻은 ‘호칭’ 또는 ‘별명’을 사용했었다. 작년부터 붉어진 유행이라 딱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부터 블록버스터 전시에 사뭇 다른 모습의 부제가 붙기 시작했다. 최근 일 년간 열린 전시의부제를 훑어보자면 <프리다 칼로: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거장 이쾌대: 해방의 서사>,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 <안토니 가우디: 바르셀로나를 꿈꾸다>, <허브릿츠: Work 할리우드의 별들> 등을 들 수 있는데 부제 안에는 단순 수식을 넘어 하나의 스토리가 존재한다. 


프리다 칼로는 그의 예술뿐 아니라 기구한 삶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 그는 극심한 후유증으로 수차례 힘든 수술을견뎠으며, 게다가 끊이지 않는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바람기까지. 칼로는 자신의 일생을 작업의 소재로 삼기에, 작품에는 자전적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난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프리다 칼로의 내한 전시는 그의 스토리와 작품을 십분 활용한 부제를 내걸었다. 절망 속에서 예술의 끈을 놓지않고 작업한 그, 이렇게 부제는 그의 일생을 설명하는 작품에 텍스트란 부가적 설명을 더 해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고 전시의 목적을 파헤치는데 더 큰 역할을하는 것이다. 거장들의 별명은 사실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에 그들의 이름을 검색만 해도 그들의 별명은 쏟아져 나오기에, 재미를 주는 요소로는 그 매력과 흥미가 다소떨어진다. 사람도 적당히 베일에 싸인 모습이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법. 이전보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부제는 대중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해서일까, 이전 호칭을 밀어내고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정지현 <Reconstruction Site 01> 2015 

피그먼트 프린트 135×180cm ⓒ 정지현  




도시의 무한한 변주


지난해를 기점으로 전시 제목을 쭉 훑어보니, 유독 눈에 띄는 한 단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시’. 물론 다른 여러 단어도 빈출하였지만, 도시가 단연 1등을 차지할 만큼 제목에 가장 많은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리스트를 잠시 살펴보자면 <송영후: 일상의 상-도시>, <도시의 색>, <도시. 미를 입히다>, <적은 차. 나은 도시>, <김정아: 행운의 도시>, <우리가 알던 도시>, <잃어버린 도시, 서울 1950s-60s: 모더니티 서울-성두경>, <도시 수집가>, <도시탐색-박능생>, <도시에 서식하다>, <도시 기체> 등 많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도시에 관심을 쏟았다. 앞서 말했듯 예술은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기에, 예술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의 변화가 응당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인상주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당대인들이 자연을 벗 삼아 살았기에 도시 대신 자연이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가 부상한 이후 도시는 자연을 밀어내고 자연스레 예술속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전시 제목에 유달리 ‘도시’가 빈출함을 이해하기 쉽다. 현재 한국 인구는 5,000만, 그중 1/5이 수도 서울에 몰려 살고 있다. 그 덕에서울은 지구상 몇 안 되는 메가시티(인구 1,000만 명 이상의 거대 도시)에 해당되는 영광 아닌 영광을 누리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화려하고 발전된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워낙 우리는 이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인지할 수 없을지 몰라도 말이다.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 이 공간이 예술가에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 많은 문화시설이 밀집해있는 나라는 예술가가 도시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연스레 이들은 도시에 노출되어있는 삶을 살고, 그 삶을 자신의 작품에 옮기게 되는 것. ‘도시’라는 하나의 단어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가지각색이다. 있는 그대로의 겉모습을 탐색하거나, 자신의 주체성을 잃고 비대하게 몸집을 불려만 가는 도시를 비판하거나, 자신만의 제3의 도시를 구축하기도 한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삶의 터전이 된 도시, 2015년 전시 제목에 빈출함으로써 얼마나 우리가도시에 관심이 있고 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지 반증한 셈이다. 

 

동시대인들은 일분일초를 아까워할 만큼 바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겉모습만 보고 내용을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판단에는 30초도 채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요즘 들어 내용물 포장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전시를 포장하는 것은 단연 제목이다. 전시 기획이나 작품이 좋아도 제목이 눈에 확 띄지 않는다면 악수로 작용할 수 있고, 반대로 제목이 좋으면 시너지효과를 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대중들의 관심이 쏠려 형성된 유행은허투루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대중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적인 제목의 필요성이 높아져 가고 있는 이 시점에, 그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트렌드를감안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우슬라 메이어(Ursula Mayer) 

<GONDA〉 2012 16mm HD전환 28

 





Special feature Ⅲ

전시제목의 시대적 흐름, 네이밍에서 브랜딩으로

● 백아영 객원기자


 

전시제목은 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다. 출품작이나 기획의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면서 단적으로는 전시의 성격 자체를규정한다. 시대별로 인기 있는 노래가 달라지고 해마다 유행하는 패션이 바뀌듯, 전시제목에도 유행과 흐름이 존재한다. 이러한 경향은 시대를 넘어 변화하거나 되풀이되기도 한다. 전시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시대별로 아트 씬을 뒤흔드는 관심사와 문화예술의 상징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예술전시회의 제목을 벤치마킹하거나 패러디하는 사례를 보자. 1969년 스위스 베른에 있는 쿤스트할레 베른(Kunsthalle Bern)에서 열린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원제: <Live in Your Head: When Attitudes Become Form(Works-Concepts-Processes-Situations-Information)>)(1969.3.22-4.27)가 대표적이다.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이 전시 전체를 유기적으로 기획, 개별 작품보다는 과정을 조명해 기획한 이 전시는 소위 대박을 쳤다. 각 작품 간의 고정된 관계를 넘어선 다양성을 보여주며 당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전시다. 칼 안드레(Carl Andre),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이브 클레인(Yves Klein) 등 수십여 명에 이르는 작가들을 대거 소개한 이 전시는 현재까지도 전시기획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만큼, 개념적으로나 기획적으로 이를 표방해 인용한 행사나전시가 열린 바 있으며,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전시를 선보였다. 





신창용 <Skill of flying> 2013 72×72cm  

 





또한,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1998년 출간한 에세이 『관계의 미학(Esthétique relationnelle)』또한 전시에서 자주 끌어오는 단골 소재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상호작용에 대한 강박관념을 조명하기위해 인간 상호성과 만남, 근접성과 소셜 포맷팅에 대한 저항에 기초한 관계 사회를 기술한 이 책의 개념은 국제적으로 다수의 워크숍과 전시 등에서 활용된 바있으며, 지난해 타이틀을 그대로 따온 <관계의 미학>전이 대전 산호여인숙에서 열리기도 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들여다보면, 1990년대는 설명적이고 관념적인 전시제목이 대부분이었다. 직관적인 단어나 문장으로 전시주제를 담고 있으며있는 그대로의 화풍과 사조, 작가를 관람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풍자화,그 해석과 비판의 소리>(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 <구상 미술의 오늘, 꿈과 현실의대결>(덕원 갤러리), <1991년의 동향과 전망>(서울미술관) 등 직설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제목들이 많았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단순히 전시내용을 전달하는 제목이나 메타포를 주로 활용했다. 개인전의 경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작가 이름은 물론 작품제목이나 시리즈를 그대로 제목에 가져오는사례가 많은데, 특히 아이덴티티가 강한 유명 작가는 작가명이나 작품명만을 내세우곤 한다. 시그마 폴케(Sigmar Polke)와 신디 셔먼(Cindy Sherman) 등은 2000년대 초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할 당시 작가의 이름만 전면에 내세웠다. 매튜 바니(Matthew Barney)도 <구속의 드로잉>이라는 제목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들은 특별한 타이틀 없이도 작가의 이름과 작품이 곧 아이콘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스테판 프리나(Stephen Prina) Installation view of

 <As He Remembered It(datail)> 

at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2011 

ⓒStephen Prina; courtesy Galerie Gisela Capitain, Cologne, 

and Petzel Gallery, New York Photo 

ⓒ 2013 Museum Associates/LACMA

 



그리고 이 시기 즈음부터 시작해 2000년대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본격적인 영문과 외래어의 유입이다. 세계가 전환되는 시점에 모습을 드러낸 이러한 명칭은 국제적으로 변화하는 정세를 고찰하는 양상을 보이며 시대의 요구사항과 일맥상통한다. 같은 뿌리를 지녔음에도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코리안-아메리칸’들의 작품을 통해 정체성과 각기 다른 시공간에 대한 문제에 접근한 <코리아메리카코리아>(2000.5.26-8.6, 아트선재센터)전은 물론, 아트선재센터 <팝-쓰루-아웃(Pop-thru-Out)>(2003.5.27 -7.20, 아라리오갤러리)전은 여전히 변화를 거듭하며 풍성한 논의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미술사조 팝아트를 생동감이 있게 다시금 조명한 전시로, 팝아트의 ‘Pop’과 ‘통하다’라는 뜻을 지닌 숙어 ‘through out’를 합친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들어서 전시제목 선정에 있어 본격적으로 눈에 띄는 추세는 단어의 전복이다. 다소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런 제목들은 뜻이 상이한 단어의 충돌로 대조적인 효과를 빚어낸다.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말하고 있다> (2008.10.25-11.23, 아트선재센터)전은 전시에대한 감각과 경험이 완전하게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존 케이지(John Cage)가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의도되지 않는 지각적경험을 “I have nothing to say/and I am saying it/and that is poetry/as I need it” 라고 표현한 점에 근거해 이를 전시 제목으로 채택했다.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불)가능한 풍경>전 (2012.11.8-2013.2.3)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필립 가렐_찬란한절망>전(2015.11.25-2016.2.2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순회한 전시 <미래는 지금이다>까지. 일관된 주제로 수렴하기에는뜻이 상이한 단어를 열거해 동일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선사하는 효과를 누리는 제목들이 이 시기에 다수 소개됐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The Boy from Mars>

 2003 35mm transferred to HDCAM 10min 39sec 

이미지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이에서 파생해 반대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사용하는 법이 드물거나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와 단어의 혼합도 전시제목에서 자주 드러나는 양상이다. <끈질긴 후렴>전(2013.2.7-6.16, 백남준아트센터)은 “후렴은 노래나 시의 본 내용의 사이사이에 개입하는 반복적인 구절로, 주제를 직접 전달하기 보다는 반복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며, 전시 주제인 예술가의 정치성은 단순 반복을 통해 정치성을 만들어내는 후렴구의 기능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부드러운 교란-백남준을 말하다> (2013, 백남준아트센터), <폐기된 풍경>(서울시립미술관), <달콤한 은유>(롯데갤러리 안양점 외) 등 이러한 단어의 결합은 전혀 색다른 의미를 창출해내며, 기발한 조합과 상상력에 의존해 전시의 실체를 과감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2012년 <간헐적 위치 선정>전(2012.4.26-6.17)을 개최한 바 있는데, 작가들이 풀어나가는 미학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당시 한국 미술계에 폭넓게 설정된 작가관을 가늠하게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레이니즘(Rainism)’, ‘시아틱(Xiahtic)’, ‘효리쉬(Hyorish)’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한번쯤 접한 것 같으면서도 막상 뜻을 떠올리자면생소한 이 단어들은 가수 비(Rain)와 ‘ism’을, 김준수(Xia)와 접미사 ‘tic’을, 이효리(Hyori)와 ‘스타일리쉬(stylish)’를 결합한 신조어로 만든 대중음악앨범 타이틀이다. 이들이 하나의 아이콘이자 스타일로 자리 잡아 문화의 흐름을 만들고 유행을 선도한다는 점을 어필하고자 한 시도로, 이처럼 유행에 빠르고 민감한 대중문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시대별 흐름이 명확히 존재하는 미술계에서, 단어를 결합해 만든 신조어들도 21세기에 들어서 자주 나타나는 경향의 제목이다. 융복합 예술이 대세인 만큼 전시제목에도 하이브리드가 나타난다.





조문기 <싸우는 남녀> 2012

 캔버스에 유채 72.7×60.6cm  

 




<세라믹스-클라이맥스>전(2009.4.24-7.5, 경기도미술관)도 ‘세라믹스(ceramics)와 클라이막스(climax)라는 유사 외래어를 효과적으로 결합했으며, 아트선재센터의 <믹스막스>전(2004.2.21-5.2)은 유럽과 아시아 작가의 혼성적 문화를 확장된 차원의 ‘믹스’ 개념을 다룬 제목으로 혼성문화 소비과정에서 선택된 다양한 문화생산물들을 서로 믹스하고 리믹스해 관람객에게 혼합 문화생산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디지털(digital), 펀(fun), 아트(art)를합친 전시 <디지펀아트: 도시 풍경>(2015.9.22-12.13, 서울시립미술관)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아프리카, 앞으로(Africa, Afro)>전(2013.1.31-4.21)과 <총체적_난_극>전(2013.1.18-3.3)도 신조어까지는 아니지만 유사한 발음이나 음절을 통해 기발한 언어유희를 시도한 제목들이다. 이러한 전시들은 새로운 제목을 통해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 것으로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국내 전시 제목 <슈퍼플랫(super flat)>이 있다. 


그가 일본 팝 아티스트들을 규합한 그룹전의 제목으로, 현재는 서구 미술과는 다른 일본 고유의 팝아트를 세상에 알린 혁명적 미학 용어로 알려지게 됐다. 유명 미술관이나 갤러리 명칭을 적극 드러낸 전시제목도 다소 진부한듯 하나 잔상을 남긴다. 기관명을 노골적으로 투척해 주목효과를 가져오고, 미술관과전시의 브랜딩효과를 동시에 누리고자 한 유쾌한 결합이다. <아트선재 라운지 프로젝트>(아트선재센터), <소마 인사이트_지독한 노동>(2016.3.18-5.29,소마미술관), <The Moments of Arario>(2008.7.12-8.20, 아라리오갤러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제목 선정은 자칫하면 전시의 성격이나 인상을한정적인 우물 안에 가두게 되거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한편,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 스펙트럼>전을 모티브로 한 삼성미술관플라토의 <스펙트럼-스펙트럼>전도 시리즈를 넘어선 메타(meta) 전시로서 하나의 지속가능한 전시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실험한 제목이자 전시였다. <아트스펙트럼> 출신 작가가 새로운 작가를 추천하는 방식을 통해 기존 전시의 성과를 기념하고, 새 전시에서 시각을 확장한 것이다.






에르네스토 네토(Ernesto Neto) 

<Tapete campo-onde ki nos vamo?> 2012 

Velejando entre nos, 2013 KUVA Photo Petri Virtanen, 

Kansallisgalleria Finnish National Gallery  

 




지금까지 전시제목의 시대별 흐름과 경향을 살펴보았는데, 분명 흐름은 존재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건재한 네이밍 사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전시를소개하는 명칭에서 드러나는 맥락과 흐름, 중요성을 반영해 뉴욕 갤러리 중 최고의 전시제목을 가려내는 기사가 흥행하고, 한 네덜란드 웹사이트 ‘Popupcity’는 ‘Vote for the worst art exhibition title ever’라는 제목으로 역대 최악의 전시이름을 투표했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참여해 우승자(?)를 가려내기도 했다. 전시제목을 지어주는 웹사이트도 존재할 만큼, 제목이 지니는 의미와 영향력이 상당히 깊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시 방문 전부터 후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 타이틀로 경기도미술관에서 2012년에 열린 <다른 그리고 특별한>전을 소개하고 싶다. 한국, 미국, 일본의 장애를 가진 예술인들이 참여해 제목만큼이나 ‘다른 그리고 특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던 자리였고, 평범해보이는 제목이지만 이 전시를 이보다더 완벽하게 설명한 제목은 있을 수 없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무제(Untitled)>라는 타이틀로 소장품 전시가 열렸다. 


작품 제목으로도 모자라 이제 전시명까지 ‘제목 없음’을 붙이는 시대다. 그만큼 단 하나의 타이틀만으로 예술을 규정하는 것이 어려운 다양한 예술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괴물이 자신을 만들어냈지만 버린 창조주에게 “창조주 넌 나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았어.”라며 원망의 말을내뱉는 것이다. 결국 괴물은 끝까지 이름을 얻어내지 못했지만, 예술과 전시는 그 반대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목을 붙여나간다. 최근 많이 보이는 전시제목의행보는 과거로 회귀하고 추억을 이야기하는 <응답하라>, <레트로 씬> 등 ‘복고’다. 이런 유행의 다음주자로 나타날 경향과 형식은 어떤 흐름을 띄게 될까? 전시에서 모습을 드러낼 무궁무진한 이름이 벌써부터 기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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